화폭에 가득 담긴 진천사랑
화폭에 가득 담긴 진천사랑
  • 오선영기자
  • 승인 2008.09.25 10: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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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영 선 화백

추석을 목전에 두고 진천 종박물관에서 열린 김영선 화백의 '진천의 풍경전'을 찾았다. 진천을 오가며 너무도 익숙했던 풍경들이 그의 화폭 속에선 놀랍게도 너무나 아름답게 묘사되어 있었다. 잊혀져가고 사라져가는 진천의 풍경 하나하나를 마치 사진을 찍듯이 하나하나 작가의 눈 속에서 재탄생해 진천에 적을 두고 있는 모든 이들에게 적잖은 감동으로 다가온다.
그래서 김화백은 그의 첫 번째 개인전을 고향진천에서 열었다고 한다. 그렇다 그는 진천군에서 나고 자란 진천인이다. 농다리를 뛰어다니며 유년을 보냈고 백곡저수지에서 동심을 퍼올렸다. 그래서 진천을 담은 그의 그림에는 향수가 서려있다. 그에게 있어 진천은 부모님의 따뜻한 품과 같은 애정과 가슴 깊은 곳에 새겨져 있는 그리움이 내재된 곳이다. 어린시절의 가난과 고달픈 현실을 안겨준 진천은 그에게 그런 아스라히 아픈 추억일 뿐아니라 부모님의 힘든 삶과 사랑을 대신하는 그의 정신적 안식처다.
그의 작품을 하나하나 둘러보고 본격적인 인터뷰에 들어갔다. 그는 그림을 그리는 지금의 활동과는 너무도 안 어울려 보이는 공직생활을 오랜 생활 해왔다. 국정원이라는 그의 근무처는 역사적 파동을 수차례 겪으면서 그의 생활을 지치게 만들었다. 초기에 그는 이러한 마음을 추스리기 위해 화집수집을 하고 박물관을 둘러보며 수석을 모았다고 한다. 그러나 본격적으로 그림을 그리게 만들었던 것도 아이러니 하게 그의 공직생활이었다. 80년대말 '평화의집'건립에 참여하여 미술관련 업무를 담당했던 그는 많은 화가들과 접하게 되고, 북한미술(사회주의 미술)에 대한 안목과 지식에 넓어지며 각국 미술관련 공부를 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러한 지식을 토대로 10여년전 대학의 강단에도 서게 되었으며, 오랜 세월 막연한 소망이었던 그림도 그리게 되었다.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던 그때를 회상하며 그는 시간이 없어 밤 1~2시가 넘도록 캔버스 앞에 앉았던 열정을 떠올리며 미소가 베어나왔다. 처음 시작은 무작정 독학으로 시작하였으나 정성재이사장의 권유로 체계적 교육을 받으며 오늘날의 실력을 다졌다.
그의 문화계에 대한 열정은 그림을 그리는데 그치지 않았다. 그의 유별난 진천사랑은 문화계에 대한 열정으로 합해져 목우회,상문회 활동 등을 통하여 진천문화계 발전을 도모하고 있다.

그림에 대한 열정, 중부권 문화 발전을 향한 포부


김화백의 최대의 꿈은 '중부권 문화'발전에 이바지 하는 것이다. 그의 이러한 노력은 진천-인사동간 자매결연은 물론, 인사동 전통문화보존회와 연계하여 인사동 다음의 전통문화거리를 진천에 만들겠다는 포부를 여과없이 보여줬다. 상모회(상산문화를 사랑하는 모임)를 주축으로 표암 강세황 선생의 위업을 계승 발전시키는 기본정신으로 서울, 부산, 광주 등 눈부시게 발전된 문화를 낙후된 중부권 지역으로 특성에 맞게 문화발전으로 연결시킴은 물론 더나아가 국제적 미술단체와의 교류도 추진하고자 한다. 조선시대 르네상스 시대 기반을 조성하고 김홍도, 신위 등 많은 제자를 길러냈으며, 시·서·화의 3절로 존경 받는 표암 강세황 선생의 본향인 진천의 문화적 가치를 높게 평가하는 김화백은 노고지리의 남구만, 월북작가인 김주경선생, 우리나라 미술사를 정립한 문화재 위원장 안휘준박사, 세계적인 조각가 심재현선생, 국악계의 인간문화재 장재국 선생등의 인물들이 현 위치에서 활발한 문화 활동에 참여하고 있는 이때가 진천의 문화 르네상스를 이룰 수 있는 최적기라 말하며 그뿐만 아니라 진천과 진천의 문화를 사랑하는 많은 사람들의 참여를 바라고 있다. 특히나 표암선생의 뜻을 추모하고 선양하는 표암사업을 중요시 하고 있다.
한편 농다리축제의 최초 창안자중의 하나인 김영선 화백은 농다리축제의 발전방향에 대해서도 의견을 제시했다. 초기의 기본적인 사업취지에는 어긋나지 않게 나아가고 있지만 농다리 축제 프로그램의 고급화와 특성화를 통하여 지역 특성화 축제로 거듭나야 한다고 이야기 했다.
또한 앞으로 진천 발전을 위해서는 전문성을 갖춰 도시개발을 추진해야 하며 단기적 안목보다 장기적 안목으로 개발 방향을 잡아야 한다고 진천의 발전 방향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진천의 전반적인 발전은 물론 문화적 발전을 위해서는 자생력을 갖추고 문화 예술인들을 많이 발굴하기를 바랬다.
기자가 만난 김영선 화백은 공직생활을 마감하면서 자신의 꿈인 그림을 그리는 열정과 재능을 갖춘사람이었다. 한편 그의 지칠줄 모르는 진천사랑은 진천 문화의 발전을 위하여 최선을 다하는 모습으로 나타나 너무도 아름다워 보였다.
그의 인생관은 '사랑'이라고 한다. 나라를 사랑하고 진천을 사랑하고 가족을 사랑하고 그림을 사랑하는 그의 현재의 삶을 반영한 인생관이다. 그는 열정 만큼이나 감수성도 풍부하여 그의 그림하나하나에선 한낱 풍경이 아닌 진천의 영혼을 담은 진천의 모습이 너무나도 잘 드러나 있다.그의 소망은 이렇듯 사랑을 담아 '아들의 결혼'이라는 소박한 바램부터 진천을 고급문화와 만날 수 있게하려는 고향사랑, 중부권 문화의 부흥을 도모하는 하는 것까지 사랑으로 점철된 바램들이었다.그의 사랑을 담은 소망들이 모두 이뤄지길 기자도 같이 소원해보며 인터뷰를 마무리 지었다. 취재 / 오선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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