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평면 영구리 죽현(竹峴)마을
초평면 영구리 죽현(竹峴)마을
  • 정선옥
  • 승인 2011.03.17 11:5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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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머니의 품처럼 포근한 고향 ”

봄을 시기하는 꽃샘추위가 채 가시지 않아 아직은 쌀쌀한 바람을 느끼며 찾은 죽현마을. 초평면 소재지를 지나쳐 그 옛날 명곡 최석정(明谷 崔錫鼎)이 후학을 기르던 지산서원(芝山書院) 자리에 세워진 초평초등학교를 돌면 영구리 상영에서 하영, 죽현마을에 이르는 너른 정자들이 나타난다. 야트막한 산들로 둘러싸인 들판엔 대지의 축복인 양 밝은 햇살이 가득 담겨 있다.

◐ 댓재(竹峴)라 이르는 마을
정자들 한쪽으로 길게 들어선 죽현마을은 예전부터 댓재라 이르던 곳이다. 명칭은 마을 생김새가 대나무처럼 길게 생겼다 해서 댓재라 불렀다는 설도 있고 마을 뒷산에 대나무가 많아 그리 불리게 되었다는 설도 있지만 양쪽 모두 신빙성이 있다. 실제 마을은 한일자로 길게 뻗은 모양새고 뒷산엔 지금도 대나무 숲이 우거져 대나무가 많은 고개라는 뜻의 댓재가 낯설지 않다.
생긴 모양이 그래서인지 마을은 밖에서 보기에도, 또한 안에서 느끼기에도 시원스레 확 트였다. 길게 늘어선 마을 뒤로는 야트막한 산자락이 마을을 보호하듯 아늑한 병풍처럼 줄지어 서있다. 지난해에 이곳으로 이주한 부부는 마을에 들어서자마자 곧바로 계약서를 썼을 만큼 사람을 끌어들이는 묘한 매력이 있는 마을임을 자랑한다.

◐ 500년 역사를 지닌 죽현마을
서른다섯 가구가 모여 사는 죽현마을의 역사는 무려 500년을 거슬러 올라간다. 조상들은 사람이 살기에 적당한 자리를 골라 일찍이 이곳에 자리를 잡았다. 지금으로부터 500여년 전 반남 박씨가 최초로 이곳에 터를 잡고 이어 양성 이씨가, 그리고 경주 김씨가 합류해 현재에 이르렀다.
오랜 세월 가까운 이웃으로 지내온 마을사람들은 얼핏 닮은 얼굴을 하고 있다. 부부는 닮는다고 하지 않던가? 한 지역에서 같은 생활방식과 문화를 영위해 온 마을 주민들은 지나온 세월만큼이나 닮아 있다.
아마도 그것이 인근에서도 소문난 주민화합의 주요소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예전엔 한 달에 한두 번씩 마을사람 모두가 두타산으로 등산을 다녔을 만큼 여유롭고 건강한 삶을 누려온 마을이다. 그래서인지 지금도 90세 넘게 장수하는 분들이 많다.

◐ 부지런함이 건강의 비결
가을이 되면 넓은 정자들은 말 그대로 황금색 물결이 일렁인다. 지금은 주로 쌀농사와 축산업, 양봉 등에 종사하는데 예전엔 콩과 마늘, 고추를 재배하는 농가도 많았다. 무엇보다 이곳에서 나는 담배는 진천군에서도 가장 품질이 좋기로 유명하다. 워낙 부지런한 탓도 있지만 재배 기술이 뛰어나 언제나 높은 값을 받을 수 있었다고 한다.
여느 농촌마을과 마찬가지로 노령인구가 많지만 아직까지 농사일을 손에서 놓지 못하는 이들은 평생 업으로 삼아온 일을 손에서 놓는 것이 쉽지 않다. 물론 그 덕에 이만큼 건강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박인순 이장은 어르신들을 위한 교육프로그램을 마을에 들여오고 싶지만 워낙 부지런한 분들이라 따로 시간을 내기가 쉽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생각 끝에 마을회관에 조작이 간편한 안마기 등의 의료장비를 갖춰 놓았다. 이제 어르신들은 종일 들일을 하고 마을회관에 들려 잠시 편안하게 안마를 받고 집에 돌아가신다고 한다.

◐ 살기좋은 죽현마을
올해 죽현마을엔 굵직한 사업들이 이루어진다. 마을 안길 정비사업 같은 남은 과제들이 있기는 하지만 우선 소하천 정비사업과 상수도사업이 예정되어 있다. 이로써 주민들의 생활이 한층 쾌적하고 편리해질 것으로 주민들은 기대하고 있다.
여러모로 죽현마을은 한번쯤 살고 싶어지는 곳이다. 마을회관의 분위기를 보면 그 마을의 성격을 알 수 있다. 마을회관 작은 칠판에 빼곡이 적인 기부 물품이나 기탁자들의 이름을 보면 이곳 주민들의 고운 심성이 그대로 드러난다. 서리태나 고추, 마늘, 쌀 같은 물품 외에도 마을회관에서 어르신들이 생활하는데 불편함이 없도록 조금씩 추렴한 기부금 내역이 이방인의 눈에 너무도 정겨워 보인다. 이런 살가움이 사람을 끌어들이는 이 마을의 매력이리라.

살면서 많은 사람을 만나게 되지만 같은 고향사람 만큼 편하고 그리운 이가 또 있을까? 어린 시절 냇가에 소를 풀어놓고 알몸으로 미역 감던 아련한 시절의 친구만큼 정겨운 친구는 없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고향을 지키고 살 수 있는 사람들은 축복받은 이들이다.
겨울이면 언 손 호호 불어가며 꽁꽁 언 논에서 썰매를 타고, 봄이 되면 해지는 줄 모르고 뒷산 진달래를 따먹고, 여름이면 둠벙에서 맨손으로 물고기 잡고, 가을이면 벼메뚜기 꽹기 꿰던 그 시절을 함께 추억할 수 있는 동무와 함께 나이 들어가는 행복함이 있어 고향은 언제나 그리움이다. 죽현마을은 그런 그리움이 가득 묻어나는 고향의 품처럼 포근한 마을이다.

우/리/동/네/사/람/들

“어르신들의 건강이 제일”

박인순 이장
박인순 이장
마을 어르신들이 건강하고 즐겁게 사시는 것이 저의 가장 큰 바람입니다. 아무래도 마을엔 어르신들이 계셔야죠.
우리 죽현마을 어르신들은 작은 일이건 큰일이건 모든 면에서 솔선수범 하시는 분들입니다. 오히려 어르신들이 하려고 나서시니 젊은 사람들이 따라가지 않을 수가 없지요.
이분들이 계셔서 동네일을 하는데도 큰 도움이 됩니다. 이장으로서 마을에 어려움이 있다면 주민들과 함께 해결하고 평안한 마을을 만들도록 노력해야죠. 언제나 적극 협조해 주시는 마을 분들이 계시니 기운이 납니다. 정말 살기 좋은 마을이죠.


“우리는 이웃사촌 화목한 마을”

천혜숙 여자노인회장
천혜숙 여자노인회장
마을 젊은이들이 노인을 공경하고 마을 어르신들이 젊은이들에게 자애로우니 마을은 언제나 화목합니다. 매사에 서로서로 조금씩 배려하고, 어려운 일이 생겼을 땐 손을 잡아 위로해 주고, 또 기쁜 일이 생겼을 땐 내일같이 함께 기뻐해 주니 이웃사촌이란 우리 죽현마을을 이르는 말이지요.
아무쪼록 마을사람 모두가 건강하고 행복하게 오래오래 살았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또 새로 마을에 식구가 생기니 이처럼 기쁜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우리는 언제든 환영입니다.



“역사와 전통이 살아있는 마을”

이종용 새마을지도자
이종용 새마을지도자
하나의 마을이 형성되기까지는 적지 않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합니다. 우리 마을은 오랜 세월을 대를 이어 살아온 유서 깊은 마을입니다. 이러한 마을의 역사를 우리 후세들이 자랑스럽게 생각했으면 하는 것이 평소의 개인적인 바람입니다. 뿌리 없는 나무는 없으니까요.
올해 마을에 큰 사업이 많아 기대가 큽니다. 공사가 순조롭게 진행돼 빨리 마무리가 될 수 있도록 주민들의 협조가 필요합니다. 물론 잘해 주시겠지만 저 역시 이장님과 마을 어르신들과 함께 마을이 좀 더 발전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오래된 이웃은 또 하나의 가족”

김규옥 부녀회장
김규옥 부녀회장
저는 죽현마을이 고향입니다. 어려서부터 저를 봐주신 분들이니 마을 어르신들이 다 친척이나 다름없지요. 어르신들을 잘 모셔야겠다는 생각을 늘 하지만 마음처럼 쉽지는 않습니다. 매일 바쁘다는 핑계로 그동안 많은 시간을 할애하진 못했어요.
마을의 부녀회장으로서 할 일은 많지만 너무 욕심 부리지는 않겠습니다. 하나씩 하나씩 차근차근 숙제를 해 나가야죠.
무엇보다 어르신들이 건강하고 즐겁게 사셨으면 합니다. 집안에 어른이 계셔야 하는 것처럼 마을에도 어른이 계셔야 든든하거든요.



우/리/마/을/가/볼/만/한/곳


두타산 [頭陀山]

높이 598m로 마치 부처가 누워 있는 형상을 하고 있다.
한민족의 시조 단군이 팽우에게 높은 산과 냇물 등 산천을 다스리게 했는데, 비가 날마다 내렸고, 산천이 모두 물에 잠기게 되었다. 그래서 높은 곳으로 피난을 가야만 했는데 이때 팽우가 이 산에 머물자, 산꼭대기가 섬처럼 조금 남아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머리 두(頭) 섬 타(陀)를 써서 두타산이라 하였다.
산행은 초평면 영구리에서 영수암이라는 표지판을 기점으로 시작한다. 영수암에서 동쪽으로 난 등산로를 따라 1시간 30분 가량 올라가면 정상이다. 정상에서는 증평읍과 진천읍과 북쪽과 동쪽의 바둑판 같은 넓은 뜰이 한눈에 들어오며, 아래로는 초평저수지가 내려다보인다.
정상에는 삼국시대의 석성이 있고 부근에는 황금색 갈대밭이 우거져 있다. 산성의 규모는 높이 1.2m, 너비 2.7m, 성 둘레 약 1km 이다. 성터에는 돌무더기가 오랜 비바람에 검게 변화되어 있고, 안에는 성재(聖裁)로 보이는 곳이 있는데, 두 개의 우물 터가 있다. 신라시대의 장군 실죽이 백제군을 막기 위해 쌓았다고 한다. 통일신라시대의 토기편·기와조각 등과 고려시대의 유물이 출토된다. 하산은 서쪽으로 난 등산로를 따라 2시간쯤 내려가면 처음 올라갔던 용정교를 만나며 경사가 완만한 쪽으로 내려오면 된다. 산행거리는 6km이고, 4시간이 소요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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