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부섭 진천성모병원 경영원장
김부섭 진천성모병원 경영원장
  • 정선옥
  • 승인 2013.03.30 1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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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훈 대표기자의 취중토크 마흔번째 손님


오랜만에 술잔을 놓고 마주한 이는 김부섭 진천성모병원 경영원장이다. 최근 진천성모병원이 눈에 띄게 변모하고 있다. 건물 증축은 물론 최첨단의 시설과 대학병원 규모의 전문인력이 포진되고 제2의 전성기를 예고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의 바람 뒤에 김부섭 경영원장이 있다. 이미 의사로서, 경영인으로서 대내외적으로 인정받는 인물이기도 하지만 그의 이력엔 국내 의료봉사 활동 외에도 2500여 명의 무료진료 환자와 224명의 무료수술 환자라는 해외 의료봉사 경력이 따라 다닌다. 한 사람의 존재 가치가 이렇게 대단할 수도 있구나 하는 생각에 김부섭 원장을 취중토크에 초대했다.

Q 남양주에서도 큰 병원을 운영하고 계시는데 굳이 진천성모병원과 인연을 맺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만.
A
같은 대학에서 공부한 홍영종·김기성 원장과의 인연 때문입니다. 특히 홍 원장은 1년 선배로 지난 81년에 만나 산악부 활동까지 함께 한 인연입니다. 보통 산악부는 겨울이 되면 열흘 정도의 산행을 하거든요. 어려운 산행을 함께 하다 보니 신뢰하는 사이가 된 것 같구요. 머리 하얗게 돼서 경로당까지 함께 갈 겁니다.
홍 원장님은 의료 경험이 풍부하고 의사로서는 나무랄 데 없지만 사업적인 측면에 있어서는 제가 한 수 위라고나 할까요? 하하하. 농담입니다. 아무튼 홍 원장님이 진천에 와서 병원의 규모를 키워달라고 부탁을 하더군요. 작지만 경쟁력 있는 좋은 병원을 만들고 싶다구요. 진천에 왔는데 느낌이 너무 좋았어요. 포근하고 낯설지 않은 느낌이랄까요. 앞으로 진천성모병원에 많은 변화가 올 겁니다. 진천군민들이 보다 높은 수준의 의료 서비스를 합리적인 가격에 받으실 수 있습니다.

Q 경영자이기 이전에 의사이기도 하신데 의사로서의 보람이라면 어떤 걸까요?
A 의사는 스러져 가는 한 사람의 목숨만 살릴 수 있어도 평생의 보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진천성모병원에 응급의료센터를 신설하는 이유도 바로 그겁니다. 분초를 다투는 응급상황에서는 빠르고 정확한 전문의의 처치만이 환자의 생존율을 높일 수 있습니다. 응급의료시스템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일례로 대구에서는 지난해 11월 4살 된 여아가 대학병원을 찾아 헤매다가 숨지는 사건이 발생했고, 올해 초에도 중년 여성이 뇌출혈로 쓰러져 응급실을 찾느라 4곳의 병원을 옮기다가 결국 사망에 이르는 말도 안되는 사건이 있었습니다. 근처에 전문의가 상주하고 있는 응급의료센터가 있었더라면 소중한 생명을 지킬 수 있었을 텐데 정말 안타까운 일입니다.
진천 역시나 위급한 상황에서도 시설이 갖추어져 있는 청주나 천안까지 이송하느라 환자들이 제때에 필요한 조치를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진천성모병원 응급의료센터가 개원되면 진천군민들이 보다 신속하게 전문의로부터 의료서비스를 받으실 수 있습니다.

Q 진천성모병원 응급의료센터 규모는 얼마나 되는 겁니까? 일반인들이 생각하기에는 웬만한 병원엔 다 있는 것이 응급실 아니겠습니까?
A
응급의료센터란 곧 24시간 응급실에 전문의가 대기하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현재 관련 전문의 3명을 확보 했습니다만 앞으로 6명까지 확대할 계획입니다. 아직 군 단위 병원엔 응급의학과 전문의가 없습니다.
그리고 규모는 전에 관광호텔로 사용하던 건물 1층 전체를 응급의료센터로 계획하고 있습니다. 2012년까지 진천성모병원 응급의료센터를 전국 10위 안에 드는 시설로 만들기 위해 완벽한 시스템을 갖출 것입니다. 이에 대한 병원 측의 비용 부담이 적지는 않지만 경쟁력 있는 병원을 만들고 지역 주민들에게 보다 나은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Q 병원 규모가 상당히 커지는데요.
A
그렇지요. 장기간 이어지는 공사에 각종 소음과 주차, 통행에 불편을 끼쳐 드려 우선 주민들께 사과의 말씀 드립니다. 많이 배려해 주셔서 빨리 공사를 마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다음 달이면 지역 주민들에게 양질의 의료서비스와 쾌적한 휴식공간을 제공하는 병원으로 거듭날 것입니다.
새로 단장한 진천성모병원은 눈에 보이는 것은 아니지만 오히려 대학병원 보다 높은 수준의 응급실과 수술실, 재활치료실, 중환자실을 갖추게 될 것입니다. 응급실과 마찬가지로 중요한 것 중 하나가 수술실과 중환자실입니다.
특히 중환자실은 의료장비가 부족해 입원이 불가능한 경우가 많습니다. 현재의 진천성모병원 역시 그렇구요. 게다가 장기 입원이 필요한 중환자의 경우 보호자는 물론 병문안을 가는 지인들까지 시간적, 경제적인 손해를 감수해야만 합니다. 우리 병원은 웬만한 대학병원을 능가하는 시설을 갖춘 중환자실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중환자실이 오픈되면 더 지역 주민들이 여러가지 측면에서 혜택을 받으실 수 있을 겁니다.
이들 이외에 기본적인 검사장비도 투자를 많이 하고 있습니다. 같은 기능을 가진 기계라고 해서 모두 성능이 같은 것이 아닙니다. 쉽게 말해 일반 TV와 HD TV의 차이라고나 할까요? 눈에 확연히 보이는 차이는 아니지만 고가의 성능 좋은 장비를 갖춤으로써 치료율과 병변 발견율, 생존율을 높이고 감염률을 줄이는 등의 효과를 볼 수 있습니다.

Q 병원 이야기를 조금 더 해 보겠습니다. 시설 투자도 좋지만 좁은 지역에 너무 무리한 투자가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도 있는데요.
A
물론 그렇게 생각하는 분도 더러 있겠지만 경쟁력 측면에서도 병원의 확장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진천성모병원의 규모가 커지지 않으면 앞으로 2, 3년 이내에 우리 병원 규모의 다른 병원이 진천군에 들어오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관내에 중급 병원만 2개가 되는 샘이지요. 규모에 따라 병원에서 환자에게 제공할 수 있는 서비스는 차원이 달라집니다.
무엇보다 저는 진천성모병원 이용자들을 진천군민 뿐이라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이웃한 음성군, 증평군, 괴산군, 그리고 충남과 경기 경계지역까지 확대해도 충분히 경쟁력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진천성모병원으로 인해 진천군에 대한 외지인들의 호감도와 방문 빈도가 높아지고 지역경제에도 상당한 도움이 될 것입니다.

Q 수년 전부터 우리 지역 경제가 많이 침체된 것은 사실입니다. 지역경제 활성화에 도움이 될 것이란 말씀은 구체적으로 어떤 의미인가요?
A
앞으로 1년 뒤. 그러니까 진천성모병원의 모든 시설 정비와 공사가 끝나면 진천읍 상권 자체에도 변화가 올 것입니다. 병원 직원들과 입원환자, 외래환자, 보호자, 납품업자, 일반인 등 병원 앞 유동인구를 2천명에서 2천5백 명 수준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아직까지는 인구 흡인력이 적고 내원 환자의 70~80%가 진천군민이지만 조금 더 오픈하면 60% 가량이 외지인이 될 것입니다. 고용 확대는 물론이구요. 올해 진천성모병원 매출 목표는 170억입니다. 내년도에는 240억으로 잡고 있으니 세수도 만만치 않겠지요.
그리고 병원에서 사용하는 식자재 역시 전에는 청주에서 구매했지만 제가 온 뒤로는 진천농협에서 일괄 구매하고 있습니다. 쌀이 유명한 지역인데 농사를 짓는 분들이 밥맛을 더 잘 아시지 않겠습니까? 구입량도 많아서 진천농협 최고의 고객이랍니다. 덕분에 쌓이는 포인트는 어려운 이웃을 위해 제공될 계획입니다.

Q 그런데 병원 밥은 맛이 없다고들 하지 않습니까?
A
하하하. 당연한 것 아닙니까? 병원에서 밥을 먹는 사람들이 환자 아니면 보호잔데 몸이 아픈 사람이나 간호하는 사람이나 무슨 입맛이 있겠습니까?
게다가 화학조미료를 일체 사용하지 않으니 거기에 길들여진 입맛이 쉽게 바뀔리도 없겠지요. 대신 음식맛을 불평하는 환자들에게는 화학조미료를 따로 제공합니다. 첨가해 드시라구요. 그럼 열이면 열 분이 안 드십니다. 몸에 해롭다는 사실을 아니까요.

Q 평소 의료봉사를 많이 하신다고 들었습니다. 지난해 KBS 감동대상에서 故 이태석 신부가 대상을, 김 원장님이 나눔상을 수상하셨던데.
A
예, 맞습니다. 오랜 시간 몽골 등지에서 의료봉사를 해 왔는데 부끄럽게도 그 사실이 알려져서요. 처음 몽골에 가게 된 건 우연치 않은 기회였지만 꾸준히 가게 된 계기는 한 소녀 때문이었습니다. 몽골은 의료수준이나 설비가 우리보다 많이 뒤져 있는데다 근친결혼이 많아 기형아가 많습니다.
그런데 여의사 한 분이 자신의 10살 된 딸을 데리고 오셨어요. 다리가 펴지질 않아 무릎으로 걷는 아이였습니다. 한국에 나와서 한 달 동안 소아장애전문의들과 수술 방법을 모색하고 공부해 수술을 했는데 다행히 경과가 좋았습니다. 힘든 수술이어서 고통스러웠을 텐데도 웃으면서 맞아주는 소녀의 얼굴을 잊을 수가 없어서 해외 의료봉사를 계속하게 된 겁니다. 우리에게는 단 몇 시간의 수술이지만 그들에게는 평생이지 않습니까?
사실 처음부터 해외봉사가 쉽지는 않았습니다. 제3세계에 우리나라의 이미지가 그렇게 좋은 편은 아닙니다. 외국인 노동자들에 대한 처우 때문이지요. 저희 봉사단도 처음엔 말이 많았어요. 4, 5개월쯤 지나고 나서야 인식이 바뀌고 이미지가 많이 좋아졌습니다. 우리가 연간 2, 300명씩 진료를 하니까 그 부모와 형제들 1천명을 알게 되는 샘이죠. 그들이 바로 우리의 든든한 후원자가 되는 겁니다. 주변에 어려운 아이들이 있으면 직접 데리고 오기도 해요. 많은 생각을 하게 된 계기였습니다. 앞으로 우리 진천 지역에서도 의료봉사를 통한 지역 환원사업을 펼쳐나갈 예정입니다.

Q 지역주민으로서는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는데요, 조금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A
1차적으로 사회복지사 2명을 채용할 계획입니다. 지금도 대학병원까지 그러한 관행이 남아 있지만 예전에는 응급수술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도 보호자가 없으면 수술이 불가능하지 않았습니까? 저희는 환자라면 무조건 받을 겁니다. 치료 이후의 문제는 사회복지사들이 방법을 강구할 겁니다. 남양주 현대병원 역시 마찬가지로 그런 시스템을 갖추고 있습니다. 의사나 간호사가 돈을 생각하고 환자를 본대서야 되겠습니까? 저희가 그렇게 병원을 운영하니 오히려 많은 분들이 좋은 뜻을 전해 주셨습니다.

Q 혹시 진천에서 계획하고 계시는 프로그램 있으신가요?
A
계획이라기보다는 진천성모병원 역시 그동안 지역에서 의료봉사활동을 꾸준히 해 오고 있습니다.
2년 전 안성에 소재한 탈북자 자녀들이 다니는 한겨레 학교 학생이 맹장수술을 위해 응급환자를 싣고 병원을 찾아다니다가 교통사고를 당하는 안타까운 사고가 있었습니다. 그 뒤로 우리 병원에 전화하면 구급차를 보내주고 탈북자들에게도 무료 진료를 해주고 있습니다.
얼마 전에는 얼굴의 절반이 점으로 뒤덮인 탈북 여성이 찾아왔었습니다. 20대 초반의 예민한 나인데도 북한에서는 꿈도 꾸지 못하던 치료를 받게 된 것입니다. 치료에 5, 6개월 가량이 걸리는 쉽지 않은 치료였는데 치료 중에 집사람이 딸을 삼았답니다. 그리고 진천군에는 조직화된 봉사단체가 많이 있어서 먼저 계시던 김기성 원장도 사회복지협의회와 연계해 한해 1~2명씩 무료로 필요한 수술을 해 주셨습니다. 올해부터는 무조건 오시라고 말씀 드렸습니다만 이제는 많이 알려져서 다른 지역에서도 많이 문의가 옵니다.
최근에는 장호원에 사는 24살 뇌성마비 청년이 찾아왔는데 앉을 수조차 없어서 평생을 누워서 지냈답니다. 수술 후 휠체어에 앉아 똑바로 선 세상을 보는 것이 처음이라고 이야기 하는데 눈물이 나 혼났습니다. 헌데 장애를 완화시킨 그 기쁨만 있는 줄 알았건만 그 친구가 얼마 전 공부를 하겠다고 장애인학교에 입학을 했답니다. 그 이야기를 듣고 얼마나 기쁘고 감사했는지. 그 청년의 인생 전체가 바뀌게 된 것이니까요.

Q 그럼요. 24년 만에 똑바로 선 세상을 보고, 또 학교를 다니게 되고, 너무 감동적입니다.
A
그래서 앞으로는 아이들을 위한 의료봉사에 시간을 많이 할애할 생각입니다. 아직 우리 주위에는 어려운 이웃들이 많습니다. 50만원, 100만원이 큰돈이 아니어도 그 돈이 없어서 간단한 수술조차 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가급적 다 해주려 노력할 겁니다. 우선 지역아동센터와 사회복지시설, 종교시설 등을 차례로 방문할 예정입니다.
그리고 장학사업을 좀 더 활성화 시키려고 합니다. 저는 장학금을 줄 때 조건이 있습니다. 10년이 걸리든 20년이 걸리든 네가 갚을 수 있을 때 갚아라. 대신 다 갚고 나면 너도 다른 사람에게 받은 만큼 베풀라고 이야기 합니다. 그 한 명 역시 같은 조건을 따를 것이구요.

Q 드러나는 활동 외에도 좋은 일을 많이 하시던데 어린 시절은 어떠셨나요? 원래 어린 시절부터 활동적이셨나요?
A
어릴 때는 굉장히 내성적이었어요. 초등학교 때도 학교와 집만 오갔으니까요. 중학교 들어와서야 조금씩 외향적으로 변해 친구들과 어울리게 되었습니다. 형제는 1남 4녀였는데 제가 2대 독자라서 할머님이 많이 귀여워해 주셨어요. 하지만 어머니는 늘 중립을 지키는 분이셨습니다. 내성적인 저를 많이 염려하셨어요. 아버님은 일과 가정 밖에 모르는 성실한 분이셨습니다. 어렸을 때 아버님이 사업을 크게 하셨거든요. 고향에서 열 몇 분씩 늘 저희 집에 올라와 계셨어요. 그러면 아버님께서 일자리를 마련해 주곤 하셨습니다. 제법 큰살림이었지요. 헌데 100평짜리 규모의 집 40채 값을 날리는 사건이 발생했어요. 고지식한 아버님은 그저 열심히 일만 하면 되는 줄 아는 분이셨습니다. 다른 사람을 의심할 줄 모르셨어요. 사람에 대한 배신감이 컸을 텐데도 아버님은 절망하지 않고 술, 담배 까지 끊으시고 가족을 위해 다시금 열심히 일하셨습니다. 그렇게 4년간은 정말 밥 먹고 살기도 힘들었습니다.

Q 그럼 의사가 되겠다는 꿈을 가진 것은 언제부터였나요?
A
그런 어려움을 겪고 보니 앞으로 내가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해 생각하게 되더라구요. 지금도 그렇지만 그 당시에도 우리나라에서는 공부만이 신분의 수직 이동을 가능하게 해 주는 수단이었습니다. 그래서 공부를 해서 의사가 되겠다는 꿈을 꾸게 된 것입니다. 고등학교 때의 일이지요.
부모님은 안정적인 공무원이 되기를 원하셨지만 제 성격엔 공무원 보다는 의사가 맞을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그 땐 의대가 지금처럼 인기가 있지도 않았어요. 고교 때 같은 학교 친구 7명이 의사가 됐는데 그 중 3명이 저와 같은 중앙대를 갔어요. 물론 재수한 친구들도 있지만요. 시간이 지나고 나서 생각해 보니 그것도 의미가 커요. 도움도 많이 되구요.

Q 프로필을 보니 특이한 이력이 있습니다. 국세청장 상을 받으셨네요.
A
개업하고부터 지난해까지 약 100억원 가량의 세금을 냈습니다. 개인으로는 상당한 금액이지만 제가 다른 사람들보다 돈을 많이 낸 것은 아닙니다. 병원이 지속적으로 성장을 하다 보니 시설투자가 이어지고 결국 투자세액은 공제받았으니까요. 저는 병원을 경영하면서 반드시 지킬 것은 지키는 정도경영을 하려고 노력합니다.

Q 의사의 길을 택한 걸 후회한 적은 없으신가요?
A
아뇨, 없습니다. 저는 지금도 환자를 보는 순간이 가장 행복하고 즐겁습니다. 휴가를 가도 가는 날 아침에 환자를 보고, 또 다녀오는 날 오후에 들르니 정작 병원을 비우는 시간은 하루인 샘이죠. 저는 매일 아침 즐거운 마음으로 출근합니다. 직장은 즐거운 마음으로 성큼성큼 출근해야죠.

Q 우리 진천군민들이 다음 달에 만나게 될 진천성모병원은 어떤 병원일까요?
A
지역이 발전하려면 많은 구성요소가 필요하지만 좋은 병원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시간이 걸리겠지만 환자와 보호자, 의료진이 만족할 수 있는 좋은 병원을 만들고 싶습니다. 병원이 완공되면 모두가 깜짝 놀랄 공간이 탄생할 것입니다. 작지만 작은 음악회 같은 문화행사도 마련할 생각입니다. 환자들뿐만 아니라 지역 주민들의 쉼터로도 활용될 수 있는 진천의 랜드마크가 탄생할 것입니다.

김부섭 원장의 취중토크 소식에 홍영종 진료원장과 이명환 기획실장이 응원을 왔다. 이들의 애정과 진심이 만들어내는 진천성모병원의 모습이 자연스레 그려졌다. 대형 병원이 아니어도 분초를 다투는 응급환자를 바로 진료할 수 있는 응급의료센터, 최신 설비를 갖춘 수술실, 대학병원 수준의 중환자실, 첨단 장비를 갖춘 재활치료실, 최상의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쾌적한 병원.
모든 채비를 갖춘 진천성모병원이 선보일 때 진천군민이 가장 큰 혜택을 입게 되리라 생각하니 취중토크를 마치고 돌아오는 발걸음이 살살 불어오는 이른 봄바람 만큼이나 사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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