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곡면 사송리 상송(上松)마을
백곡면 사송리 상송(上松)마을
  • 강성진
  • 승인 2011.04.11 1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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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시사철 마르지 않는 샘과 깨끗한 공기, 그리고 풍성한 인심의 고향

답답한 시가지를 벗어나 백곡지를 끼고 국도를 달리다 보면 볕이 잘 드는 들녘이 나온다.
옛부터 소나무숲이 울창하여 송정(松亭)이라 하였고 그 윗마을에 위치했다 하여 붙여진 이름 상송(上松)마을이 오늘 길손이 찾은 마을이다.
벼농사를 주로 짓는 지역이니 만큼 봄기운이 파릇하게 올라오는 들녘에선 자그마한 소쿠리를 끼고 냉이며 쑥을 캐는 아낙들의 야문 손끝이 분주하다. 제법 소복해 뵈는 파릇한 봄나물은 오늘 저녁 저들의 소박한 밥상을 향긋하게 버무려 줄 것이다. 마을을 둘러싼 크고 작은 등성이들은 사철 마르지 않는 샘과 깨끗한 공기, 그리고 풍성한 산물을 제공한다. 일찍이 500년도 훨씬 이전에 이 풍요의 땅을 골라 안착한 조상들의 안목이 놀랍다.
그 산의 기운을 따라 두주(斗酒)마을과 나란이 하고 있는 상송(上松)은 따스한 봄볕 아래 고향집처럼 아늑하기만 하다.


■ 봄볕 따스한 아늑한 고향집 '상송'
본래 진천군 행정면 지역이었던 사송리는 1914년 일제의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상송리, 사정리, 지구리와 백곡면 두주리 일부 지역을 병합하여 사정과 상송의 이름을 따서 붙여진 곳이다.
지금으로 500여 년 전부터 경주 이씨가 처음 들어와 살기 시작했으며 조선 인조 때 세워진 충신 이성문 열녀문과 충렬각은 상송마을의 연대를 짐작케 해주는 중요한 역사자료다. 또한 아직도 상송마을에는 200년이 넘은 집터가 있는데 전라도 화순 고을 원님이었던 김준훈(청풍김씨) 일가가 이곳 상송에 정착해 살면서 마을이 번성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지난 1984년 백곡저수지 제방 숭상공사로 인해 수면적이 확대되면서 수몰예정이었던 10여 가구의 상송마을 주민들이 마을을 떠나면서 40여 호가 넘던 상송은 현재 119호만이 남아 마을을 지키며 살고 있다. 그런 이유로 현재 백곡지에 시행중인 둑높이기사업에 대한 주민들의 우려감은 높은게 사실이다.

■ 작지만 큰 마을
상송마을은 백곡지 상류수변에 위치한 마을이다. 그리하여 주변 경관에 매료되어 외지인들도 꾸준히 찾고 있고, 출향인들 가운데 다시 고향마을에 돌아와 집을 짓고 살고 있을 정도로 아름다운 곳이다.
'상송'마을에서 진천읍 건송리 '두건'마을로 넘어가는 고개인 금은고개, 장사골이라고도 하는 상송 동남쪽에 있는 골짜기인 장수골, 마을 북쪽에 있는 골짜기 이름인 벼락박골 그리고 쌀과 벼를 보관하는 창고가 있었는데 항상 곡식이 많은 이곳을 '쌀뒤주'라 하기도 하고, 대주가(大酒家)가 있어 말술을 먹었다고 하여 붙여진 마을 두주(斗酒)가 상송마을과 함께 자연부락을 형성하고 있다. 40년전만해도 이곳 상송과 두주는 한 마을이었으나 행정구역 개편으로 분리 되었다고 설명한다.
이규익 이장의 소박한 웃음 속에 마을 향우회 회장을 겸하고 있는 이재성 노인회장은 상송출신 출향인들 자랑을 빠뜨리지 않는다.
“마을은 작아도 우리마을에서는 대학교수, 한의사, 서울구청 고위 공무원에 군의원까지 나왔구먼!”하며 소박하게 웃어 보였다.
실제로, 진천군의회의 김윤희 의원도 상송마을 출신이고, 백곡면장을 지낸 김주성씨, 경희대 한의학과를 졸업하고 한의원장으로 대학교수로 각각 활동중인 이주호, 김은주, 김재수씨 서울구청 서기관을 지낸 김주선씨, 주성대학교수인 김진혁씨의 子 김현기씨, 혜원대학교 교수인 김유호씨의 子 김문수씨 그리고 진천읍 김유영 법무사 등 사회 각계 각층에서 상송마을 출신들이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것은 작지만 큰 마을임을 입증해 주고 있다.

■ 마을의 결속력은 향우회에서
특히, 1년에 한번 7월 첫째주 열리는 '향우회'는 상송마을 주민들과 출향인들을 단단하게 결속시켜 주고 있다. 해마다 향우회가 열리는 7월이면 전국각지에 흩어져 살고 있는 상송출신 출향인 30~40명이 잊지 않고 마을을 찾고 있다.
이날은 출향인뿐만 아니라 1984년 백곡지 제방 숭상공사로 고향을 떠나게 된 실향민들도 적극적으로 참여해줘서 고맙다는 말을 아끼지 않았다.
19가구에 42명이 옹기종기 모여 한 가족같이 사는 마을 상송은 지난 2004년부터 백곡면이 삼성물산(주)과 결연을 맺고 1사 1촌 사업도 지속적으로 펼쳐오고 있다.

■ 끊이지 않는 강태공들의 행렬
막을 수 없다면 낚시터 조성해 문제 해결해야
백곡저수지는 우리군 3대 낚시터 중 하나로 초평지, 덕산지와 함께 전국 강태공을 불러모으고 있다.
특히, 꽃샘추위가 물러가고 본격적인 붕어 산란철이 되면서 강태공들의 차량행렬은 이곳 상송과 두주 마을 앞 백곡지 상류 수변을 가득 메우고 있다. 문제는 벼농사를 주로하는 이곳 농로에 낚시객 차량들이 주차를 하다보니 트랙터나 이앙기 등 농기계가 경작지로 진입할 수가 없어 낚시객과 한참 실랑이가 벌어지기도 하고 논에 버려진 쓰레기로 경작에 어려움을 겪어온게 사실이다.
이에 상송마을뿐만 아니라 백곡지 상류 인근 주민들은 한결같이 차라리 몰리는 낚시객들을 몰아낼 수 없다면 사정교 위쪽으로 보를 막아 백곡면 소재지까지 1km 상류구간에 연중 낚시를 즐길 수 있도록 낚시터를 조성해주고 인근 주민들도 매점 운영, 입어료 징수 등 수익사업을 펼칠수 있게 해달라는 것이다.
이는 해마다 이맘때면 문제가 되는 낚시쓰레기 배출문제도 자연스럽게 해결하고 지역민도 함께 사는 일석이조의 사업이라는 이야기다. 1984년 둑높임사업인 제방 숭상 공사로 실향의 아픔을 겪은지라 이번 사업은 꼭 주민들에게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추진됐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우/리/동/네/사/람/들

둑높임사업, 백곡의 새로운 희망 되길…

이규익 이장
이규익 이장
앞으로도 상송마을의 못다한 숙원사업과 마을 어르신들의 복지향상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할 것을 약속드리며, 정부에서 시행중인 둑높임사업이 침체되고 고령화된 상송에 새로운 희망이 될 수 있도록 할 것입니다.
또한, 마을의 소득증대 효과를 창출하여 주민 모두가 웃음이 넘치고 훈훈한 정이 오고가는 진천에서 가장 살기 좋은 마을을 만들기 위해 힘쓰겠습니다.



마을행사 헌신적 참여 출향인들께 감사

이재성 노인회장
이재성 노인회장
매년 7월 첫주에 열리는 향우회 마을잔치에 적극적으로 참여해 주는 출향인 여러분 고맙습니다. 해마다 열리는 동계 등 모든 마을행사에 헌신적으로 참여해 주는 마을 청년들에게도 고마움을 전합니다.
경치 좋고 물 좋은 우리 상송 마을에 이주해주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백곡 상류 낚시터 조성해 체계적으로 관리해야…

부복연 부녀회장
부복연 부녀회장
아름답고 인심 좋은 상송마을에 오시는 모든분들 환영합니다. 둑높이기 사업과 관련 주민 여러분 모두의 권익향상을 도모하는 일에 한마음으로 일할 것이며 첫째도 화합 둘째도 화합 입니다. 모두 합심하여 상송마을 가꾸기에 앞장서고, 살기 좋은 고장 만들기에 힘을 모읍시다.






솔선수범하여 아름답고 정겨운 마을로

이근형 새마을지도자
이근형 새마을지도자
항상 초지일관하는 마음으로 어느 마을보다 아름답고 고향의 정을 느낄 수 있는 정겨운 마을로 가꿔가고, 이장님과 더불어 어려운 일이 있으면 솔선수범하여 마을의 발전을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웃음소리 끊이지 않는 상송마을

김성종 대동계장
김성종 대동계장
사람 둘만 모이면 웃음소리가 끊이질 않는 상송마을 사람들이 진정 자랑거리 입니다.
모든 일에 척척박사인 이규익 이장을 도와 부녀회, 노인회, 청년회가 잘 맞물려 한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중간 가교역할을 다하겠습니다.






아름다운 상송의 미풍양속 보존에 힘쓸 터

이주경 청년회장
이주경 청년회장
우리주민 모두가 한 가족처럼 이웃을 이해하고 배려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앞으로도 상부상조하는 마을의 아름다운 미풍양속이 보존될 수 있도록 젊은 우리들이 동네의 일에 앞장서 더욱 노력하겠습니다.











우/리/마/을/유/적/지 조선 후기 이성문 부부 충렬각

진천군 백곡면 사송리 산37번지

1728년(영조 4) 이인좌의 반란 때 의병으로 참가했던 이성문이 죽은 후 아내 정씨가 남편의 전사 소식을 듣고 달려가 시신을 찾았다.
그러나 운구할 길이 없어 울면서 목을 베어 치마에 싸서 귀향한 후 진천군 백곡면 사송리에 묻었다. 삼년상이 끝난 후에 남편의 무덤 앞에서 자결하여 남편을 뒤를 따라갔다.
이인좌의 난이 평정된 후 조정에서는 두 부부의 충의와 정절을 찬양하여 정문(旌門)을 내렸다.
이성문 부부 충렬각은 1735년(영조 11) 건립되었는데, 현재 있는 건물은 1984년 중건한 것이라고 상량문에 적혀 있다.
비문에는 '충신증병조참의이성문지려 열녀참의이성문지처숙부인경주정씨지려 명정 숭정기원후오갑신팔월일(忠臣贈兵曹參議李成文之閭 烈女參議李成文之妻淑夫人慶州鄭氏之閭 命旌 崇禎紀元後五甲申八月日)'이라고 쓰여 있다. 이 비문을 통해 비석은 1884년(고종 21)에 세웠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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