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설 선생 숭모사업 청사진 나왔다
이상설 선생 숭모사업 청사진 나왔다
  • 한인수
  • 승인 2013.11.29 13:5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2017년까지 기념관 건립, 문화재 정비 등 추진

▲ 보재 이상설 선생 숭모사업 기본계획 최종보고회가 지난 21일 진천군청 소회의실에서 열렸다.
▲ 보재 이상설 선생 숭모사업 기본계획 최종보고회가 지난 21일 진천군청 소회의실에서 열렸다.


진천군 출신으로 헤이그특사 사건의 주인공인 보재 이상설(1870∼1917) 선생의 국가적 정통성 회복과 유업 계승을 위한 숭모사업이 추진된다. 내년부터 순국 100주년이 되는 2017년까지 선생의 생가 주변과 해외를 대상으로 실시될 기념관 건립, 문화재 정비, 국권회복 노력 등 숭모사업 밑그림이 공개돼 관심을 모으고 있다.

진천군은 지난 21일 소회의실에서 '보재 시상설 선생 숭모사업 기본계획' 최종보고회를 열었다. 충북발전연구원이 수립한 기본계획은 숭모사업을 위한 기초조사와 분석, 인물조명, 군 의견조사 등을 바탕으로 선양사업과 숭모시설사업 구상을 제시했다.

연구용역을 맡은 이경기 연구원은 “이상설 선생은 동서학문을 통달한 근대자연과학의 선구자이자 헤이그 만국평화회의 외교 활동은 물론, 해외독립운동을 주도한 최고의 지도자”라고 평가했다. 그는 “진천군민 의견조사 결과 숭모사업 필요성에 공감했고, 생가주변에 복합문화공간 형태의 기념관 조성을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말했다.

'보재 광장'과 '보재 기념관'은 국가보훈처 등의 지원을 받아 선생의 생가가 있는 진천읍 산척리에 조성 및 건립되는 것으로 돼 있다. 일제강점기 때 러시아에서 타계, 대한민국 국적이 없는 선생의 국적 회복에도 군이 나설 계획이다. 정부는 지난 2009년 2월 독립유공자에 관한 법률에 순국선열과 애국지사의 가족관계등록부를 창설하는 조항을 만들었지만, 직계비속이 신청해야 한다는 규정 때문에 선생은 아직도 국적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선생이 항일 민족교육을 위해 지난 1906년 중국 지린성(吉林省) 룽징(龍井)시에 건립한 '서전서숙(瑞甸書塾)'을 재건하는 것과 네덜란드 헤이그 상설전시관에 흉상 건립 등 정비, 러시아 우수리스크에 추모비 건립 등도 포함됐다.

이밖에 선양사업 구상은 △학술세미나 개최, 인물평전, 만화 등 자료집 간행 등을 통한 학술적 고증과 가치 발굴 △선생의 가치와 문화원형을 활용한 콘텐츠 발굴 △성금모금, 기념 사업회 확대, 역사교과서 수록, 청소년 교육프로그램 개발 등 군민과 함께하는 숭모사업 추진 △다른 인물 선양사업과 시너지 유도 등이 제시됐다. 선양사업 프로그램 1단계( 2014년도) 단기 계획은 △국적회복 노력 △이상설 수학경시대회 개최 △유적지 청소년 탐방프로그램 시행 및 특별추모강연회 △국제문화교육특구 프로그램 연계 시행 △홈페이지 및 사이버 기념관 시행 △공중파TV 다큐멘터리 제작 △선양사업 지원조례제정 △기념관 및 보재광장 조성 예산 확보 등이다.

장기계획은 2015년에 △장학회 발족 △기념관 및 보재광장 착공 △네덜란드 헤이그 이준 열사 기념관내 흉상 및 기념관 착공 △중국 용정시 서전서숙 재건 착공 △러시아 우스리스트시 순국 추모 동상 건립 준비 등이 계획됐다. 2016년에는 △장학재단 설립 △약전 간행물 발간 △중국 용정시 서전서숙 재건 준공 △러시아 우수리스크시 순국 추모 동상 건립 착공 등이 예정돼 있다. 2017년도에는 △기념관 및 보재 광장 준공 △러시아 우수리스크시 순국 추모 동상 건립 준공 △순국 100주년 추모제 개최 등이 제안됐다.

군은 이 연구 결과를 토대로 보재 이상설 선생 순국 100주년이 되는 2017년까지 숭모사업 기본계획을 구체적으로 실행하고 시설 조성사업에 박차를 다할 계획이다.

이에 대해 이원희 진천군 기획감사실 주무관은 “내년 선양사업을 위한 1단계 프로그램을 추진할 예정이고, 충북도와 협의해 내년 초 정부에 숭모사업 기본계획안을 신청하고, 하반기 확정이 되면 국비를 받아 숭모사업에 착수활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상설 선생은 1870년 12월 7일 진천읍 산척리에서 태어났다. 1894년(25세) 과거에 급제한 뒤 성균관 교수, 한성사범학교 교관, 탁지부 재무관 등을 역임했다. 그는 1907년 네덜란드 헤이그 만국평화회의에서 이준ㆍ이위종 열사와 함께 일본의 불법성을 알리는 외교활동 전개했다. 1910년 경술국치 이후 러시아 연해주 일대에서 권업회와 대한광복군정부 조직해 독립운동에 헌신하다 1917년 러시아 니콜리스크에서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정부는 지난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했다. 이상설선생기념사업회는 1971년 숭모비를 1975년에는 사당인 숭렬사를 건립해 해마다 추모식을 하고 있다. 생가 주변에는 묘소 등이 있으나 대형버스가 들어가지 못할 정도로 도로가 좁고 주차장이 협소해 상대적으로 열악한 환경에서 관리되고 있는 실정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