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달식 진천소방서장
배달식 진천소방서장
  • 정선옥 기자
  • 승인 2009.02.17 1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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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질문에도 거침없이 답을 내놓는 배달식 서장의 솔직함과 순발력 덕분에 공식적인 취중토크는 4시간 만에 끝났다. 이후 막힘없는 언변, 지칠줄 모르는 체력, 좌중을 압도하는 카리스마 로 새벽 1시까지 이어진 자리는 그의 어린 시절부터 청장년기를 거쳐 지금에 이르기까지 배달식 서장의 또다른 인간적인 면모를 만날 수 있는 자리가 되었다.


Q 소방서라고 하면 단순히 화재 진압이나 119를 생각합니다만 실제 기관에서 하는 일이 많지 않습니까?
소방서는 국민의 귀중한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기 위한 화재 진압과 예방에 최선을 다하고 있으며, 응급상황 발생시 119로 신고하면 신속히 달려가 응급처치는 물론 병원까지 이송해 드리고, 각종 재난 사고가 발생했을 때 소방 구조대가 신속히 출동하여 구조 및 병원 이송을 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한해, 수해, 수방 활동이나 고지대 급수지원, 건축허가 등록 등에 관한 업무, 예방행정, 위험물 취급시 관리·감독, 화재 예방 홍보, 장비관리 등 일일이 열거하기 힘들 정도로 많은 일을 하고 있습니다.

Q 소방공무원이 평범한 직업은 아닌데 특별히 이 길을 택하게 된 계기가 있으십니까?
특별한 계기라기보다는 환경의 영향이라고 해야겠네요. 아버님께서도 의용소방대원이셨고 형님 또한 의용소방대 대장까지 하셨습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이 길을 택하게 된 거지요.

Q 사회적으로야 인정받는 위치에 계시지만 가정에서도 그만큼 인정받고 계십니까?
1977년부터 소방공무원을 시작했습니다만 그 때는 지금과는 달라서 가정보다는 일이 우선이었던 시절입니다. 공무원에게 사적인 영역이란 거의 없다고 봐야지요. 매일 귀가가 늦다보니 아들이 일기장에 우리 아버지는 매일 밤늦게 집에 들어오신다고 썼더군요. 그 아들이 지금은 경찰공무원이 되어 저를 가장 많이 이해하여 줍니다.

Q 아드님이 소방공무원이 되겠다고 했었더라면 흔쾌히 동의하셨겠습니까?
저는 소방공무원이 되길 원했습니다만 아들이 자기 적성에는 맞지 않는 것 같다고 해서 더 이상 권하질 못했습니다.

Q 지난 33년 동안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이 있다면 어떤 일이 있을까요?
영동서장으로 있었던 2005년 4월, 영동군 천태산 화재가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천태산에는 천연기념물인 수령 600년이 넘는 은행나무와 보물로 지정된 원각국사비, 부도, 그리고 망탑봉 3층석탑 등의 소중한 문화재가 있는 영국사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화재 시점이 낙산사 화재 보름 후여서 문화재 소실에 대한 우려가 컸습니다. 대원 모두가 천년고찰 영국사를 사수한다는 일념으로 꼬박 2박3일을 진화하는 데 불길이 워낙 거세 한 치 앞도 분간하기 힘든 상황에 직원들의 생사조차 확인할 수 없어 정말이지 가슴이 덜컹 했습니다. 다행히 연소 확대 저지에 성공해 영국사를 지켜냈고 인명피해도 없었습니다.

Q 저도 기억납니다. 낙산사 화재 직후여서 방송사마다 앞 다퉈 방송했었고 그만큼 국민적인 관심도 높았던 사건이지요. 아무래도 현장에서는 지휘관의 역할이 중요하지 않겠습니까?
그렇지요. 현장 지휘관의 능력에 따라 화재 피해 규모가 달라지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평소 직원들과의 신뢰를 쌓으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현장에서 최대한의 능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평소 훈련도 중요하지만 위급한 상황에서는 동료에 대한 믿음과 확신이 가장 큰 힘이 됩니다.

Q 진천의 업소들은 화재로부터 안전합니까?
진천의 경우 노후화된 건물이 많은 편이지만 업소 개체수가 그리 많은 편이 아니고 다중이용업소법이 신설되어 2007년까지 방염이나 비상구 등의 예방, 대피 시설을 완비하게 되어 있습니다. 때문에 대부분의 업소들이 시설을 완비한 상태지만 아직 미비한 업소가 있습니다. 시설에 대한 업주들의 재정부담이 커 가끔 마찰이 생기기도 합니다.

Q 실질적으로 비용이 발생하는 상황이니 그런 어려움도 있을 수 있겠군요. 우리 지역의 경우 대형 화재는 거의 없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주로 어떤 종류의 화재 발생이 잦습니까?
진천군은 수도권과 가까워 기업체들이 많은 편입니다. 때문에 매년 두세건 정도 중급 규모의 공장화재가 발생하고 있습니다. 위험물 화재에도 직원들이 큰 사고 없이 진화해 줘 늘 고맙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Q 화재가 났을 때 그에 대한 배상책임이 있습니까?
아직까지는 방화나 실화 등의 중대과실로 인해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킨다거나 타인에게 많은 손해를 끼쳤을 때에는 형법에 의한 벌금을 물게 되어 있습니다. 지금도 소방차가 출동하면 돈을 받는 것으로 오해하고 계시는 분들도 적지 않습니다. 한 번은 신고를 받고 출동했는데 먼저 출동한 대원들이 진압을 마친 상태에 도착을 하게 되었는데 동네 주민이 '돈 많이 나오게 왜 자꾸 오느냐?'며 걱정을 하시더군요.

Q 초평지역의 경우 포사격장이 있어 이로 인한 산불이 잦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만.
아무래도 사격장이다 보니 화재가 잦은 편입니다. 사정거리를 조금만 벗어나도 산으로 떨어져 버리니 진화 장비가 부족한 군부대의 경우 어려움이 많습니다. 불발탄이나 기타 군사시설 때문에 사실상 진입이 어려워 헬기로 진화를 해야 합니다. 다행히 문백에 진천산림항공관리소가 있어 조기 진압이 가능합니다. 덕을 많이 보고 있지요. 무엇보다 진천은 큰 산이 없어 그나마 자연재해가 덜한 편입니다.

Q 소방도로가 비좁아 애로사항이 많으실텐데요.
운전자들에게 반드시 당부하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주차공간이 부족하기 때문에 소방도로에 주차를 할 수 밖에 없습니다만 정작 긴급한 화재로 내 집이 피해를 입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가져 주시기 바랍니다. 도로 양쪽에 주차를 하게 되면 소방차가 들어갈 수 없어 더 큰 피해를 유발하게 됩니다. 그리고 소화전이나 도로 모퉁이에 주차하는 일은 없도록 부탁드립니다.

Q 소방도로 주차단속권은 없습니까?
5대 도시에만 소방도로 주차단속권이 소방서에 있습니다. 긴급조치권이 있어 견인조치 할 수는 있지만 그것도 쉬운 일은 아닙니다. 주민들이 스스로 자신과 이웃의 안전을 지킨다는 생각으로 협조해 주셨으면 합니다.

Q 현재 진천서에 몇 층 높이의 사다리차가 있습니까? 진천도 고층 아파트가 많이 들어서고 있는데요.
15층 높이의 사다리차를 보유하고 있고, 고층은 옥내시설을 활용하고 있습니다만 인명 검색을 위한 옥내진입은 불가피합니다.

Q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안전교육은 충분합니까? 아무래도 실제 상황에서는 당황하게 될 텐데요.
각급 학교에 담당간부들이 있어 정기적인 교육을 시키고 있습니다. 유치원이나 초등학생의 경우 소방서 견학도 많이 와서 실습도 해보곤 합니다. 어린이들의 소화안전 기본교육을 등한시할 수는 없습니다. 청주 가경동에 안전체험장을 운영하고 있으나 필요성이 부각되어 앞으로 각 서 단위로 설치 예정에 있습니다.

Q 현재 진천소방서에 몇 분이나 근무하십니까?
현재 78명이 근무하고 있습니다만 최소한 140명은 되어야 원활하게 운영될 수 있습니다. 채용 당시 지원했던 전문분야 외에 전반적인 업무를 처리해야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대원들은 멀티플레이어가 되어야 합니다. 적십자나 의용소방대의 지원을 많이 받습니다. 군지역은 의용소방대가 차지하는 비중이 큽니다. 진천의 경우 총 12개 대에 380명이 의용소방대원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평소 생업에 종사하다가 화재 발생 시 출동하는데 현장에 더 빨리 도착해 초동진화를 맡아줄 뿐만 아니라 지리에 익숙하기 때문에 많은 도움을 주고 계십니다. 화재 진압과 보조 외에도 화재 뒷정리까지 도맡아 해주시니 늘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이분들이 계시지 않았다면 소방서 인원만으로 진천의 소방수요를 감당할 수 없습니다.

Q 119번으로 화재 신고나 구조 요청을 하게 되면 도 상황실로 연결이 되는 건가요?
그렇습니다. 상황실 접수와 동시에 관할지역 소방서에 방송되기 때문에 시간차는 거의 없다고 봐야지요. 그리고 워낙 수혜자가 화급을 다투는 상황이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관할구역이 따로 있지는 않습니다. 사고 발생 지점에서 가장 가까운 소방서에서 출동하는 것이 원칙이고 인근지역에서도 서로 지원을 하니까요. 인력이나 장비가 부족하다 보니 군 단위의 경우 큰 화재는 독자 진화가 어렵습니다. 광역행정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Q 결혼하신지는 얼마나 되셨습니까?
79년에 했으니까 30년이 넘었네요. 군대를 일찍 다녀와서 공직생활을 시작했는데 그 때는 군청 민방위과에서 근무를 하고 있었습니다. 소방업무를 담당하다 보니 자주 마주치게 되고 그러다 보니 장점들이 눈에 보이더군요. 사실 그때만 해도 제 성격이 내성적이었는데 집사람은 활동성도 있고 일도 꼼꼼하게 잘 하고 추진력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내 단점을 보완해줄 수 있는 사람이구나' 하는 생각에 결혼을 결심하게 된 겁니다. 그런 면에서는 집사람의 도움을 많이 받았습니다. 당시 집사람이 J.C.에 근무하고 있었는데 그 쪽 사람들이 제가 J.C.에 들어가야 한다는 조건을 내걸지 뭡니까? 30년이 지나 영동소방서장으로 갔더니 J.C.에서 명예회원으로 받아주더군요.

Q 프로포즈는 어떻게 하셨습니까?
그때는 지금처럼 자가용이 흔하던 시절이 아니어서 기동력을 위해 오토바이가 필수였습니다. 당시 125cc급 오토바이를 탔었는데 뒤에 태우고 속리산 쪽의 말티고개를 넘어가면서 결혼이야기를 꺼냈습니다. 그 때 대답을 받았으니 지금 집에 있겠지요.

Q 결혼생활하시면서 사모님께 가장 미안했던 일이 있으시다면요?
따로 사업을 했던 것도 아니고 박봉이었으니 경제적으로 풍족하게 해주지 못한 것이 가장 미안합니다.

Q 사모님이 직업에 대한 반대는 하지 않으셨나요?
처음에는 집사람도 정확히 무슨 일을 하는지 몰랐지요. 따로 소방서가 없어서 화재 발생시 전반적인 업무를 처리해야 했으니까요. 불만 나면 뛰쳐 나가는데 그렇게 위험한 일인줄은 몰랐던 거지요. 그래도 지금은 자랑스럽게 생각해 줍니다.

Q 특별한 스트레스 해소법이 있으십니까?
저는 원래 운동을 좋아합니다. 직원들에게도 체력단련을 최우선으로 권하고 있지요. 직원들과 테니스를 즐겨 칩니다. 사정을 모르는 사람들이 보면 의아해 하겠지만 운동으로 상시 몸을 풀어놓아야 자체 안전사고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고 현장에서의 체력 소모도 감당할 수가 있습니다.

Q 현장에서 느끼는 어려움 중 가장 큰 것이 뭔가요?
위험요소에 직접적으로 노출되어 있다 보니 일반인들이나 소방대원들의 안전사고에 대한 우려가 가장 큽니다. 그리고 여담입니다만 아무래도 인명이나 재산피해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보니 너무 조급하게 생각하시고 간혹 오해를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소방공무원도 각기 전문분야가 있어서 모든 일을 다 해낼 수는 없습니다. 힘 닿는데까지 노력을 하지만 그 분야의 전문가가 아닌 이상 놓치는 부분이 있을 수 있습니다. 사명감을 가지고 일하는 우리 소방가족들의 진심을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Q 소방가족에게 한 말씀 해 주시지요.
화재가 발생하면 가족들도 접근을 하지 못하지만 소방관들은 사명감을 가지고 불길 속으로 뛰어듭니다. 늘 위험에 노출되어 있으면서도 화재 현장에서 몸을 사리지 않는 대원들에게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더불어 항상 부족한 소방인력을 지원해 주시는 의용소방대 여러분께도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 전합니다.

Q 진천소방서 직원들의 아내들에게 하고 싶은 말씀 없으십니까?
사실 직원들보다 그 가족들의 고충이 더 큽니다. 업무 자체가 힘들고 출·퇴근이 일정치 않다 보니 가족들도 함께 밤잠 설치는 경우가 다반사고 명절이나 휴일에도 비상근무다 뭐다 해서 가족과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이 부족한 것도 사실입니다. 가족들이 곁에서 고통을 분담해 주고 배려함으로써 우리 직원들이 힘든 가운데서도 자신의 사명을 다할 수 있음을 알기에 늘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Q 7만 군민들에게 당부하실 말씀이 있으신가요?
어느 경우에건 상식을 벗어났을 때 사고가 발생하는 법입니다. 기본적인 안전수칙만 지킨다면 소중한 생명과 재산 피해를 얼마든지 막을 수가 있습니다. 군민 모두가 사전 예방에 힘써 더 이상 화재나 안전사고가 없는 안전하고 행복한 진천군을 만들어 가는데 동참해 주십시오. 우리 소방가족 모두는 군민 여러분의 안녕과 행복을 위해 가일층 노력할 것입니다.

▲'생명의 조약돌'

지난해 서울디자인올림픽에서 대상을 수상한 작품이다. 화재진압을 위해 건물에 진입했던 소방관들이 어둠 속에서 되돌아 나올 수 있도록 이동경로를 표시하도록 고안된 작품이다. 실제 소방관의 55%가 임무수행 시 방향감각 상실로 죽음의 공포를 경험했고 출구를 찾지 못해 목숨을 잃는 경우도 있다. 뜨거운 화재 현장에서 청춘을 보낸 배달식 서장의 생생한 이야기가 타인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자신의 생명을 담보로 불길 속에 뛰어드는 소방관들의 사명감이 위험한 순간에 우리에게 빛을 주는 '생명의 조약돌'임을 실감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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