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준화 교육제도는 발목 잡는 인격을 형성한다(1)
평준화 교육제도는 발목 잡는 인격을 형성한다(1)
  • 진천자치신문
  • 승인 2009.02.17 1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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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학습보다 절대학습 습성이 필요하다

이창대 칼럼

필자는 중학교 시절에 읍내에서 자취생활을 하였는데, 생활이 어려워 학교를 파한 나머지 시간은 용돈이 없어 집안에 틀어박혀 있을 수밖에 없었다. 용돈이 없으니 하고 싶은 군것질도 못하고 친구와 어울리지도 못했다.
그래서 하는 수 없이 심심해서 집에서 교과서와 참고서와 대화하는 것으로 시간을 보냈다. 그러다가 시험 때가 되면 부족한 것을 학습하는 정도였는데, 성적 예측은 단지 교과서 내용을 얼마 정도로 이해하고 있는가를 스스로 평가하면 비교적 결과와 맞았다. 80% 이해하였다고 스스로를 평가하면 성적이 80점이 나온다고 믿었던 것이다. 즉 나의 학습 성취도는 절대학습에 의해 학습이 완성된 정도를 저울질하는 방법이었다. 이런 학습법으로 학습을 하다가 보니 반에서 몇 등수에 신경 쓰는 것은 2차적인 문제였다. 그 만큼 남들과 석차를 비교하는 것을 염두에 두지 않고 완성도에 신경을 쓰는 학습 습관을 가진 것이다.
이에 대비하는 학습법으로 '상대학습'을 생각할 수 있다. 같이 공부하는 사람과 경쟁하여 서열을 염두에 두고 남 보다 앞서기 위해서 학원에 가거나, 뒤지지 않으려고 밤늦게 또는 새벽 일찍 책상에 앉아 공부하는 사람이 이에 속한다. 그저 책상에 오래 않으면 앞 설 것이라는 학습태도로 무리하게 노력을 하는 사람을 일컫는 말이다. 나는 책상에 오래 앉아 학습하는 사람을 보면, 어떤 학교도 합격할 것이란 생각이 들었지만, 그러나 실제로 성적은 그렇게 나오지 않는다는 것을 보아왔다. 그래서 공부는 조금을 하더라도 집중력과 노력이 최고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오래 한다고 좋은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상대학습을 하는 사람을 보면 정말 피곤하다는 생각을 하였다. 남보다 앞선다는 생각에 집착하고 남과 비교하면서 공부를 하면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 그러면 집중력이 떨어진다. 그 결과 뜻대로 되지 않게 되어 방황을 하게 되는 것을 종종 보게 된다. 그러다가 빗나가면 나쁜 무리에 휩싸여서 건전한 성장을 하지 못하게 된다. 아이러니 하게도 상대학습은 평준화 교육을 받은 층에서 더 나타난다는 것이다. 평준 속에는 경쟁이라는 의식이 잠재적으로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상대학습 습관에 치중하는 사람들이 학원을 많이 찾는다. 부모도 학원에 의지하여 자식을 혹독하게 길들인다. 그렇게 하여 자란 사람은 성장하면 정말 건전한 사회인이 될까.
그렇지 않다고 본다. 학습하면서 이기적인 인격이 형성되어 자기본위로 생활을 하게 되어, 남의 성공을 축하할 줄 모르는 불량 지식인이 된다. 지금 상당한 지식인 또는 사회운동가는 어떻게 하면 남의 약점을 잡아내 끌어내리거나 억지 논리개발을 하여 상대를 격하시키는 궁리에 몰두한다.
이제 절대학습 습성을 가져서 인격을 제대로 함양하여 인격이 일하는 사회를 만들어야 된다고 생각한다. 평준화 교육은 그 목적과 달리 오히려 상대학습과 상대생활을 하는 사회인을 양성하였다. 참으로 아이러니 하지 않는가. 평준화에 내포된 이중적 이념은 증오하는 사회를 만들어 촛불 군상을 양산시켰다.
남이 어떤 분야에서 우월성을 가지면 그러한 능력을 인정해주고 자기는 자기 적성에 맞는 것에 열중하면 된다. 그렇게 하면 언젠가는 그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낸다.
비교하여 학습하고, 비교하여 직장을 가지고, 비교하여 재테크를 하고, 비교하여 행복을 추구하는 것은 20세기의 인생 가치다.
우월성을 가진 사람은 '노블레스 오블리지' 정신에 따라 그 결과를 사회에 환원하는 환경을 만들도록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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