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백면 평산리 안능마을을 찾아서
문백면 평산리 안능마을을 찾아서
  • 장가영기자
  • 승인 2009.02.17 13: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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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솔길과 같은 작은 길을 통해 굽이굽이 들어간 곳은 문백면 평산리에 자리잡은 안능마을.

늘 화려한 모습을 지닌 장미같진 않더라도 내 빛깔과 향기에 맞는 들꽃이 더 잘 어울린다.

마을을 들어선 순간 결코 화려한 것이 아닌 그저 있는 그대로의 모습에 왠지 모를 평온함과 어르신들의 후덕한 인심이 느껴지는 듯. 마을을 찾은 그 날은 꽁꽁 싸매고 감추어 두었던 하얀 눈과 차가운 바람을 내치듯 한겨울의 추운 날씨가 무색할 만큼 따뜻한 햇살이 내리쬐고 있었다.

배나무가 많아 배티라고도 불리던 안능마을은 고향의 따뜻한 정이 느껴지는 작은 마을이다. 윗마을을 윗배티(안능)라 하고 아랫마을을 아랫배티(덕하)라고 한다. 안능에는 세종조(世宗朝)에 좌의정을 지낸 충간공 남지의 묘소가 있으며, 그의 8대손 약천 남구만이 세운 신도비가 있다. 이로 연유하여 안능이란 동명이 생기게 되었다. 안능마을에는 전해 내려오는 설이 많아 마을의 역사는 물론 풍수지리가 좋다는 소문이 자자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 일지도 모른다.

■ 엄마 품 같은 포근함이…

현재 20가구로서 30여명이 살고 있는 안능마을은 좀처럼 젊은 사람들을 찾아볼 수 없다. 평균 70세 이상의 노인들이 거주하여 대부분 노인층이 주를 이루고 있다. 그래서인지 마을사람들 모두 노인공경이 이미 몸에 밴 듯 했다. 추운 겨울, 따뜻한 아랫목 이불속으로 들어가 온몸으로 스며드는 따스함과 같이 그들에게서 느껴지는 포근함이란 말로 표현할 수 없으리라.

주요 농작물은 삼과 고추를 재배하며 논농사를 친환경 무공해로 지어 안능마을의 신뢰감을 충분히 심어주고 있었다.

문백면 평산리에 있는 양천산은 평산리, 은탄리, 사양리에 걸쳐 있다. 양천산에 있는 양천산성은 원래 절터였는데 임진왜란 시 일천여 주민들이 이곳에 피신하여 목숨을 건졌다. 달리는 말의 형상을 하고 있는 산으로 산 중턱에는 아흔아홉골의 석지(石池)가 있어 찬물이 그치지 않는다. 이곳에 돌이 얹어있는 아들바위, 맷돌모양을 하고 있는 맷돌바위도 있다.

■ 주민 편의 위해 숙원사업 빨리 이뤄져야…

안능마을은 예부터 질병없는 마을로 큰 사고없이 모두가 평온하게 어우러져 살고 있다. 그래서인지 안능마을 주민들의 소박함과 순수함이 더욱 잘 묻어난다. 4년째 이장직을 맡고 있는 김수광 이장은 “주민들 모두 정이 많아 어른을 위한 마음은 어느 마을에 뒤지지 않는다”며 한 가지 아쉬움이 있다면 “젊은 층의 대부분이 외지로 나가고 마을에는 노인층만 남아있어 노인분들이 모두 적적해 하신다”며 안타까움을 표했다.

그리고 박은파(46)씨는 마을 노인분들께 남다른 정성을 쏟고 있다. “노인들에 대한 공경심은 갖고 있으나 늘 마음만 크다. 나뿐만 아니라 모두 한데 어우러져 도와주신다”며 겸손의 모습을 드러냈다. 1999년 진천군에서 주관한 진천 군민 대상 효행부문에서 효행상을 타기도 하였다. 취재를 하는 동안에도 마을 어르신들의 자랑이 끊이질 않았다.

남시우 노인회장은 “마을사람 누구하나 가릴 것 없이 어른 공경하는 마음은 최고다. 그러나 어르신들이 충분히 사용할 수 있도록 운동기구를 좀 더 지원해줬으면 좋겠다. 현재 마을회관에 있는 운동기구는 행정기관에서 지원해 주는데 2대 밖에 없다. 어르신들이 사용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고 말한다. 거동이 불편한 마을 어르신들이 물리치료를 받으려면 버스를 타고 읍내로 나가야 하는 불편한 점이 많기 때문이다

안능마을의 가장 오랜 숙원사업으로 김수광 이장은 “도로포장이 어서 빨리 이루어졌으면 좋겠다. 아직 도로 포장이 되지 않은 마을입구의 울퉁불퉁한 길로 인해 혹시 누구하나 다칠까 염려된다. 차 한 대가 겨우 지나갈 정도로 외지에서 오시는 분들도 길이 너무 협소하여 불편함을 드러낸다”며 불편 해소를 강조했다.

현재 마을회관은 다른 마을회관에 비해 자그마하다. 마을주민들이 둥그렇게 옹기종기 모여 앉으면 금새 가득 채워진다. 김수광 이장은 주민들의 편의를 위해서라도 마을회관 확장은 시급한 상황이라 여기며 내년, 마을회관 확장사업을 계획하고 있는 중이란다.

추운 겨울 아랫목 이불 속 같은 포근한 안능마을

■ 넉넉한 인심과 따뜻한 온정이 깃든 마을

오고가는 인심이 좋아 베푸는 마음이 늘 앞서있는 안능마을은 마을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다. 손재수씨는 안능마을에 거주하다가 현재 갈탄리 마을에서 살고 있는데 십리가 되는 거리를 하루도 빠지지 않고 오신다. 안능마을에 대한 각별한 애정은 후덕한 마을 인심과 마음속에 품고 있는 고향에 대한 그리움 때문이 아닐까?

안능마을 주민들은 유원지를 한 번도 가지 못했단다. 김수광 이장은 “우리마을 주민들은 외지로 나가 본 적이 없다. 어르신들께 너무 죄송하다”고 고개 숙이며 노인복지의 열악한 환경을 토로했다. 젊은 층이 모두 외지로 빠져 나가면서 노령화가 된 안능마을은 노인복지가 너무 열악하다.

그저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지닌 채 살아가는 그들의 삶이야말로 안능마을의 매력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그들에게서 느껴지는 넉넉한 인심과 따뜻한 온정이 아직도 전해오는 듯, 안능마을에서 특별히 맛본 그들의 따뜻함을 느낄 수 있었다. 콩 한쪽도 나누어 먹듯 베푸는 정이 넘치는 안능마을의 이웃을 위한 마음은 그 어디에도 표현할 수 없으리라.

한사코 나와 두 손 꼬옥 잡으며 배웅해주시는 안능마을 사람들이 있어 돌아오는 마음은 한결 가벼웠다. 안능마을 주민들이 삶을 살아가는 방식은 아마 긍정적인 마인드와 순수한 마음이 뒷받침되는 따뜻함, 고향에 대한 그리움일 것이다. 좋은 이웃은 뿌리 깊은 나무라 생각한다. 뿌리가 뽑히지 않도록 움직이지 않는 대지의 힘처럼 안능마을도 터줏대감처럼 곧은 결의로 마을 발전을 기대해 본다.

/우/리/동/네/이/장/님/

나홀로가 아닌 모두가 함께하는 안능마을 위해 제 역할 다할 터…

이장  김수광
이장 김수광


마을주민들의 협조와 격려 덕택에 마을을 이끌어 나갈 수 있었습니다. 어서 빨리 마을회관 확장과 숙원사업이 이루어져 나홀로가 아닌 모두가 단합하여 온정이 가득 넘치는 안능마을이 될 수 있었으면 합니다. 앞에서 이끌어 주고 뒤에서 밀어주는 어르신들이 있어 늘 감사합니다. 집이 무너지지 않도록 기초를 탄탄히 하는 기둥처럼 올 한해도 마을을 위해 힘쓰겠습니다.


주민 편익 위해 마을 발전 주력할 터…

남시우 노인회장
남시우 노인회장

물리치료를 받으려 직접 읍내까지 나가시는 노인분들을 보면 안타까움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기축년을 맞이해 한가지 바라는 점이 있다면 마을회관에 운동기구가 늘어나 마을 주민 편의와 마을 앞으로도 주민들이 지금처럼 건강하게 오래 장수하셨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맡은 바 주어진 역할에 최선 다할 터…

최근수 새마을지도자
최근수 새마을지도자

마을 주민들이 한 식구처럼 동거동락하며 지내온 것도 오랜 세월이 지난 만큼 애틋한 고향애의 감회를 다시한번 느껴봅니다. 부족했다면 부족했을 수도 있지만 새마을 지도자로서 역할에 충실히 다하며 마을 발전을 위해 열심히 노력하겠습니다.

주민들간의 화합 통해 마을발전 앞장설 터…

김금자 부녀회장
김금자 부녀회장

지금까지 주민들의 단합이 잘돼 어려움 없이 마을이 발전할 수 있었습니다. 앞으로도 주민들 모두가 힘을 합쳐 동네가 더욱더 발전 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현재 부녀회에서는 미역과 김 등을 판매하고 있는데 많은 분들이 도와주셔서 감사인사 말씀 또한 전하고 싶습니다.


웃음과 활력 넘치는 마을로…

임태용 총무
임태용 총무

우리 마을은 웃음과 활력이 넘쳐 머리에 서리가 내리는지도 모르고 지냅니다. 마을 주민들의 미소로 인해 한 세대를 뛰어넘어 우리는 젊어졌습니다. 남녀노소 관계없이 마을일에 임해주시는 안능마을 주민들께 감사드리며 노인분들이 편한 삶에 의지할 수 있도록 기대해 봅니다.


떠나는 마을에서 돌아오는 마을로…

홍종성 대동계장
홍종성 대동계장

고령화가 정착되면서 젊은 사람이 없는 마을 현실에도 관심과 열정을 다해 마을일에 적극적으로 도움주시는 마을 주민들께 고마움을 표하고 싶습니다. 조금은 따뜻하게, 다소 추울지라도 이를 포용해 주는 마을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안능마을이 더 빛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 우리마을 문화유적 -

충간공 남지 묘소 및 신도비

이 무덤에는 남지 선생이 안장되어 있다. 장방형의 호석을 1단으로 두른 위에 사다리꼴을 한 매우 큰 봉분이다. 묘비와 문인석 및 장명 등이 갖추어져 있다. 묘소의 앞쪽 50m 지점에는 숙종 39년(1713)에 8대손인 남구만이 지은 신도비가 비각 안에 있다. 또한 묘소 뒷면으로는 부인 전의 이씨의 무덤이 있는데, 이것도 사다리꼴을 하고 있다.

남지는 생몰 연대를 알 수 없다. 조선 초기의 문신으로 자는 지숙(智叔)이며 본관은 의령이다. 17세에 음보로 감찰이 된 후, 세종 때에 지평을 지내고 의성군에 봉해졌다. 그후 여러 관직을 거쳐 문종 1년 (1451)에 좌의정이 되어 황보인·김종서 등과 단종을 보필해 달라는 문종의 고명을 받았으나 풍질(風疾)로 사직하고 낙향하였다. 안평대군의 아들 이우직이 사위였다. 계유정난에 안평대군 부자가 화를 당하자 이에 연루되었으나 성종 20년(1489)에 신원되었고, 시호도 충간(忠簡)이라 내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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