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곡면 사송리 사정마을
백곡면 사송리 사정마을
  • 장문수
  • 승인 2014.06.01 1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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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혜의 자연환경 갖춘 살기 좋은 동네


맑은 공기, 깨끗한 물, 수려한 산세 '마을의 자랑'
1984년 백곡저수지 증축 공사 때 이주 조성된 부락


▲ 사정마을 앞 사정교에서 바라본 마을 전경. 앞에 보이는 건물이 새로지은 경로당이다.
▲ 사정마을 앞 사정교에서 바라본 마을 전경. 앞에 보이는 건물이 새로지은 경로당이다.

진천읍에서 입장방면으로 34번 국도를 타고 백곡저수지 입구와 진천역사테마공원, 진천군공설묘지 입구, 사정교 등을 지나 7km 정도 가면 사정마을로 빠지는 갈림길이 나온다, 좌측 도로를 따라 500m 정도 가다보면 사정교가 있다. 굽이굽이 백곡천을 따라 흘러온 맑은 물이 모이는 백곡저수지 입구를 가로지르는 사정교 위에서 맑은 물과 푸른 숲, 청명한 하늘이 만들어 내는 백곡저수지 풍경은 장관이다. 새로 포장한 널찍하고 깨끗한 도로도 이곳을 찾는 사람들에게 좋은 이미지를 심어준다.

수려한 자연경관 '자랑거리'
사정교를 건너면 얼마 전 준공한 사정마을 경로당이 보인다. 경로당 입구에는 길이 2.5m 정도가 되는 직사각형 모양의돌덩어리가 세워져 있고 그 옆에 천하대장군 지하여장군 장승이 특유의 웃음을 짓고 있다. 주민들은 특이한 모양의 이 돌덩어리를 마을의 상징물 처럼 여긴다. 이 돌에는 옛날부터 민간에서 전하여 내려오는 이야기가 있다.

전설속의 인물인 여장군이 말을 타고 커다란 통나무 크기의 직사각형 돌 3개를 팔 양쪽에 끼고 머리에 이고 부락을 지날 때 백곡저수지 인근 산에서 하나를 떨어뜨려 잃어버렸다고 한다. 남은 두개의 돌을 마을에 보관해 달라고 해 지금까지 내려오고 있다는 것이다. 하나는 농어촌공사 진천지사 마당에 보관하고, 하나는 사정 마을에서 보관해 왔다. 사정마을에서 보관하던 돌은 경로당을 신축하면서 천하대장군 지하여장군 장승 옆에 세웠다.

48명 주민들 오소도손 생활
충북대학교 중원문화연구소와 진천군이 지난 2008년 발간한 '진천군 지명유래'에 따르면 백곡면 사송리는 본래 진천군 행정면 지역이었다. 지난 1914년 일제의 행정구역 통폐합 정책에 따라 상송리(上松里), 사정리(沙亭里), 지구리(池九里)와 백곡면의 두주리(斗酒里) 일부 지역을 병합해 사정(沙亭)과 상송(上松)의 이름을 따서 사송리(沙松里)라 이름 짓고 군중면에 편입하였다가 지난 1930년 3월1일 백곡면에 다시 편입하였다. 사송리는 두주·상송·사정·지구마을 등 4개 자연부락으로 구성됐다. 각 마을 모두 백곡저수지 수변에 있어 좋은 풍경을 자랑하지만, 가장 수려한 곳이 사정마을이다.

사정마을 주민들은 맑은 물, 푸른 산, 도시에서는 마실 수 없는 맑은 공기를 마음껏 마시고 산다. 주민은 20가구 48명에 불과하다. 이 가운데 홀로 사는 할머니 세대도 6가구나 된다.

주택은 경로당을 중심으로 몇 채가 뭉쳐 있을 뿐 띄엄띄엄 3군데로 퍼져있다. 이렇게 된 이유에 대해 마을주민들은 마을이 생긴 것은 백곡천 백사장 덕이고, 마을이 쇠락한 것은 백곡저수지 때문이라고 한다.

33년 전 수몰의 아픔 겪어
이 마을은 조선조 중엽, 선비들이 백곡천 중에서도 산수가 수려한 곳에 정자를 짓고 글을 읽고 시를 읊으며 지냈다고 한다. 냇가의 백사장이 깨끗하고 넓어 정자 이름을 '모래 사(沙)','정자 정(亭)' 자를 사용해 사정(沙亭)이라 했다고 한다. 이 정자 근처에 조성된 자연부락을 사정마을이라 불렀다.

백곡천이 흐르듯이 시간이 흘러 일제강점기 때 진천읍과 백곡면 일대는 진천군에서 농지가 풍부한 곡창지대임에도 불구하고 농업용수 부족으로 증산에 어려움을 겪어 저수지 건립을 추진했다. 백곡저수지는 동양 유일의 사이펀(siphon)식 저수지로 1942년에 시작해 1949년에 완공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자연부락 사정마을은 원래의 모습을 유지했다. 그러나 미호천 1단계 농업종합개발 사업으로 지난 1981년 5월부터 3년 4개월만인 1984년 10월까지 백곡저수지 제방 증축공사가 이뤄지면서 저수량이 3배 이상 늘어 사이펀 시설과 함께 사정마을도 수몰됐다.

이 공사로 인해 만수면적 232ha 몽리면적 3089ha 규모인 아름답고 거대한 호수를 얻었지만 많은 주민들이 마을을 떠났다. 주민들은 당시 정부의 보상금으로 인근지역에 집을 짓고 살 수가 없어 새로운 삶을 찾아 나섰다. 조상대대로 살아오던 터전이 수몰되는 아픔을 잊기 위해 떠난 사람도 적지 않다고 했다.

이렇게 마을 사람들 상당수가 떠나고 남은 몇 가구가 함께 산 위쪽으로 이주해 조성된 곳이 지금의 사정마을이다.

예전에 선비들이 몰려와 풍류를 즐기던 곳이라 그런지 유독 공무원 가정이 많았다고 한다. 마을 수몰 전에는 10집 가운데 8집이 공무원 가정이었다.

이명구 마을 이장은 “한국의 '록의 대부'로 불리는 가수 겸 작곡가 신중현 씨가 이 마을에서 태어나 얼마 되지 않아 이주 했다”며 “몇 년전 마을에 있던 신중현 씨 부친 묘소도 이장해 갔다”고 말했다. 그는 “개그맨 서세원 씨도 이 마을에 외가가 있어 마음의 고향으로 여겨왔다”고 덧붙였다.

백곡권 관광개발…소득 증대 기대
현재 생거진천 관광 1번지로 변모되고 있는 백곡권역은 지난 2012년 농촌마을종합개발사업 완공에 이어 백곡저수지 둑 높이기, 생거진천 자연휴양림 조성, 배티세계순례성지 조성, 백곡지 참숯테마공원 조성 등이 시행되고 있다. 사업들의 공통분모는 문화관광형 수익모델을 도입해 경관개선, 기초생활 환경정비, 주민 소득기반 확충 등을 이룩하는 것이다.

사정마을 주민들도 이 같은 변화에 삶의 질이 개선되고 새로운 수입원도 창출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우리동네 사람들

▲ 정용택 노인회장
▲ 정용택 노인회장
상대 존중하고 자신은 낮춰 존경 받아


정용택(79) 노인회장은 “백곡저수지 증축 공사로 마을 사람이 줄었을 때 마음이 많이 아팠다”며 “지금은 주민들이 소통하면서 공감하고 화합을 잘해 다른 마을 주민들이 부러워한다”고 했다.

그는 주민들과 항상 마을 대소사 등 다양한 얘기를 나누지만 항상 상대를 존중하고 자신을 낮춰 존경을 받는다.






▲ 이명구 이장
▲ 이명구 이장
“마을과 관련된 일 철저히 챙기겠다”

이명구(60) 이장은 2년 째 마을 대소사를 챙기고 있다.

그는 “마을회관을 건립하고 마을잔치가 열렸던 지난해는 마을 여행을 가지 못해 아쉬웠다”며 올해는 출향인들과 마을 주민들이 참석하는 대동친목계에서 경남 통영을 찾아 미륵산의 한려수도를 조망할 수 있는 케이블카를 타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 보람을 느꼈다”고 말했다.

그는 “마을 보호수가 훼손 됐을 때 주민들께 송구한 마음이 들었다”며 “앞으로 마을과 관계되는 꼼꼼하게 챙겨 불미스러운 일이 다시 일어나지 않게 하겠다”고 했다.




▲ 조한국 새마을지도자
▲ 조한국 새마을지도자
“훼손된 보호수 조속한 조치 이뤄져야”

조한국(66) 새마을지도자는 지난 1984년 완공된 백곡저수지 제방 증축 공사로 인해 없어진 마을 앞 백사장이 평생 간직할 소중한 추억이라고 했다.

그는 마을 보호수 훼손에도 아쉬움을 표한다. “보호수 뿌리가 훼손돼 군청에 민원을 제기하고, 공사업체도 현장을 확인했지만 아직도 해결되지 않고 있다”며 “조속한 시일 내에 조치가 이뤄져야 한다”고 밝혔다.





▲ 이종인 부녀회장
▲ 이종인 부녀회장
“어르신들 식사 대접 보람 느껴”

이종인(63) 씨는 3년차 부녀회장이다. 그는 “마을 부녀회장을 맡아 어르신들을 모시고 함께 식사 할 때가 가장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그는 “마을 사람들이 워낙 허물없이 지내 일가친척처럼 느껴지고, 마을 어르신들은 친부모와 같아서 때로는 모질게 대해도 절대 서운하지 않다”고 했다.





◀ 경로당 입구에 세워진 상징물(돌)과 천하대장군 지하여장군 장승. 상징물은 여장군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 경로당 입구에 세워진 상징물(돌)과 천하대장군 지하여장군 장승. 상징물은 여장군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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