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평면 용기리 수의마을
초평면 용기리 수의마을
  • 안창규
  • 승인 2015.01.26 1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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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타산 정기 품은 유서 깊은 고장

▲ 금성대군의 증손 덕천군 이인(李仁) 이주 후 400년 역사를 간직한 초평 수의마을. 마을 뒤로 두타산이 보인다.
▲ 금성대군의 증손 덕천군 이인(李仁) 이주 후 400년 역사를 간직한 초평 수의마을. 마을 뒤로 두타산이 보인다.

덕천군 이인(李仁) 이주 후 400년 역사 간직
전통의 맛과 정취를 그대로 느껴볼 수 있어

진천군 상당수 지역은 산업화가 확대되면서 조상들의 얼이 담겨 있는 전통 마을의 모습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 그러나 문화유산을 잘 보존하면서 전통 마을의 정취를 유지하는 마을이 있다. 초평면 용기리 수의(守義)마을이다.

초평저수지 입구를 지나 증평군과의 경계지역에 위치한 수의마을에 들어서면 병풍을 두른 듯 두타산 줄기가 동네를 내려다보고 있다. 해발 598m의 두타산은 진천군 초평면, 증평군 증평읍·도안면 등과 경계를 이루고 있는 산으로 진천 상산8경 중 하나인 고찰 영수사를 품고 있다.

▲ 400년과 200년의 역사를 간직한 사각정(왼쪽)과 회룡통(오른쪽).마을주민의 희노애락이 서린 곳이다.
▲ 400년과 200년의 역사를 간직한 사각정(왼쪽)과 회룡통(오른쪽).마을주민의 희노애락이 서린 곳이다.
'금성대군 사우' 마을의 자랑

마을 중앙 뒤편으로 금성대군 사우(錦城大君 祠宇)가 있다. 이 사우는 세종대왕의 6남인 금성대군(李瑜, 1426∼1457)의 위폐를 봉안하고 있는 사당이다. 금성대군은 전주이씨 금성대군파의 시조이다.

디지털진천문화대전에 따르면 금성대군은 1456년(세조 2) 사육신에 의한 단종복위 사건에 연루돼 유배지를 전전하다 경상도 순흥에 유폐됐다. 그곳에서 순흥부사 이보흠(李甫欽)과 함께 단종 복위를 위한 격문(檄文)을 돌리다 반역행위로 몰려 1457년(세조 3) 사사(賜死)됐다.

금성대군이 화를 당한 후 부부인 전주 최 씨가 고향으로 낙향했고, 증손 덕천군 이인(李仁)이 초평 수의마을로 이주하면서 뜻을 같이하는 친인척들과 동지들이 모여 촌락을 이뤘다고 한다. 금성대군 사우는 후손들이 1740년(영조 16)에 건립했고, 1974년 삼문과 담장을 중건하였다. 1990년 충청북도 문화재자료 제10호로 지정되었으며, 전주이씨 종중에서 소유 및 관리를 하고 있다.

따라서 마을이름인 '수의(守義)'도 금성대군과 관련이 있다. 마을 이름의 유래는 금성대군의 증손인 덕천군 3형제가 이 마을에 살면서 형제간의 의리를 중히 여겼다고 하여 명명됐다고 전해진다. 또한 '숯을 굽던 골짜기', 또는 '수'를 물 '水'로 보아 물이 좋아서 붙여진 이름이라고도 한다. 지금도 마을 어느 곳을 조금만 파도 좋은 물이 펑펑 솟아오른다고 한다.

희노애락이 머문'사각정'과 '희통샘'

수의마을은 물이 좋은 동네였던 만큼 유구한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두개의 우물이 있다.'사각정'과 '회통샘'은 400년 역사의 수의마을 식수원이었다. 마을의 주민이 늘면서 원래의 사각정의 물로는 부족하여 200년 전, 사각정 바로 옆에 보조우물을 만든 것이 15m 깊이의 '회통샘'이다.

예전에 동네 아낙들이 이 우물에서 물을 길러 머리에 올려놓은 똬리 위에 물동이를 이고 집으로 나르기도 했고, 여럿이 모여 빨래를 하는 장소로도 이용됐었다고 전해진다. 풍수명당에 자리한 사각정 우물은 이 마을의 번영과 화함에 중추가 됐을 뿐만 아니라 400여년 간 주민들의 기쁨과 노여움과 슬픔과 즐거움이 머무른 곳으로 평가되고 있다. 회통샘은 큰 가뭄에도 부족함이 없었다고 한다.

마을 안으로 들어서면 여느 마을에 없는 2000㎡ 규모의 드넓은 광장이 있다. 광장 맞은편에는 건강생활관(마을회관)이 있고, 그 우측 앞으로 2층 건물 규모의 큰 곡물건조기 4대가 우람하게 자리하고 있다. 2층인 건강생활관은 출향인들의 출연금과 마을기금 등 6500만 원을 들여 지난 1992년에 건립됐다. 남녀 찜질방 시설까지 갖추고 있다. 4대의 첨단 곡물건조기는 2000만 원을 들여 설치했다. 벼를 비롯해 농작물을 신속하게 건조시켜 상품성을 높일 뿐만 아니라 일손이 부족한 마을에 시간과 경비를 절감하는 효과도 크다.

▲ 단종복위 사건에 연루돼 사사당한 금성대군의 위패를 봉안한 금성대군 사우(錦城大君 祠宇)
▲ 단종복위 사건에 연루돼 사사당한 금성대군의 위패를 봉안한 금성대군 사우(錦城大君 祠宇)
편안하고 풍요로운 고을

마을광장을 벗어나면 오랜 세월의 풍상을 견딘 우람한 버드나무가 있다. 수령 200년, 수고 8.5m, 나무둘레 4.1m 정도의 크기다. 주민들은 우리나라에 이정도 규모의 버드나무 보호수는 7그루 밖에 없다고 한다. 수의마을 버드나무는 지난 1997년 3월 12일 보호수로 지정됐다.

수의마을은 78가구에 163명의 주민이 거주하고 있다. 이중 12가구가 전주이씨 금성대군파다. 조상의 연원이 그러한 탓인지 수의마을 주민의 교육열은 남다르다. 주민의 거의 모두는 논농사를 주로하면서 일부 고추, 옥수수 등 밭농사를 짓는다. 마을에 대동계가 조직돼 있고, 봄에 주민 단합 여행을 다녀오고 있다. 수의마을은 물과 공기, 인심 좋고 환경문제 등 현안도 거의 없는 편안한 동네다.





우 / 리 / 동 / 네 / 사 / 람 / 들



이 태 종  이장
이 태 종 이장
“특별한 현안이나 문제없어 다행”

전주이씨 금성대군파 19대손인 이태종(59) 이장은 지난 2011년 이후 4년째 마을 이장을 맡고 있다.

그는 “400년 역사가 마을의 자랑”이라며 “환경문제 등 특별한 현안이나 문제가 없어 다행”이라고 했다.

이어 “두타산 자락의 맑은 정기와 맑고 깨끗한 지역에서 푸르게 살아온 주민의 깨끗한 인심에 조상들이 살았던 전통 마을의 모습을 오래도록 간직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 재 혁 노인회장
이 재 혁 노인회장
주민들 마음 넉넉하고 이해심도 많아”

이재혁(73) 노인회장은 “이장이 잘하고 있어 마을 정비가 아주 잘 진행되어 있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이 회장은 “특별히 골치 아픈 일이 없는 마을이 바로 우리 수의마을”이라며 “주민 모두가 마음이 넉넉하고 이해심도 많아 큰 다툼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 동네는 천혜의 자연과 전통문화가 살아 숨 쉬고 있다”며 “전통의 맛과 정취를 그대로 느껴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 권 종  주민
이 권 종 주민
“주민들 자녀 교육열 대단히 높아”

마을 주민 이권종(70) 씨는 내색은 않지만 마을에 대한 애정이 남다르다. 그는 마을회관 준공기념비문을 쓰고, 400년 역사의 마을우물 사각정과 회통샘의 유래를 정리한 안내판의 문안도 작성했다.

그는 “조상의 영향을 받아서인지 수의마을 주민들은 자녀에 대한 교육열이 남다르다”며 “대다수 가정의 자녀들 모두가 대학까지 졸업해 여러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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