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산면 기전리 기지마을
덕산면 기전리 기지마을
  • 이승훈
  • 승인 2015.04.24 1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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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심 좋아 사람 사는 맛 느낄 수 있는 동네

마을주민 4년 동안 '갈티고개' 임도 정비
이영남 장군 탄생지·묘소 등 마을의 자랑

▲ 덕산면 기전리 기지마을. 정면에 기지방죽이 있고, 뒤로는 갈티고개로 넘어가는 임도 입구가 보인다.
▲ 덕산면 기전리 기지마을. 정면에 기지방죽이 있고, 뒤로는 갈티고개로 넘어가는 임도 입구가 보인다.


속리산 천황봉(千皇峰)에서 서북으로 뻗은 한남금북정맥 산줄기 갈현산 자락을 따라 촌락을 이룬 덕산면 기전리 기지마을. 진천읍에서 덕금로를 따라 진천IC를 지나 옥동교차로에서 덕산 방향으로 빠져나오면 덕산과 초평 방면의 갈림길이 나온다. 여기서 초평 방면으로 우회전해 옥동초 앞 삼거리에서 좌측 석장길을 따라 직진해 혁신도시 인근에 다다르면 오른편으로 기지마을로 가는 이정표가 눈에 들어온다. 이정표를 따라 우회전해 석장리저수지를 끼고 이영남로로 들어서 가다보면 왼편으로 기지마을 입구를 볼 수 있다.

창녕 조 씨(昌寧 曹 氏) 세거지
▲ 마을 입구에 창녕조씨세거비와 덕산면 최초로 지어진 정자, 마을 수호목이 있다.
▲ 마을 입구에 창녕조씨세거비와 덕산면 최초로 지어진 정자, 마을 수호목이 있다.
마을 입구에서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창녕 조 씨 진천세거비'와 마을 표지석, 그리고 나무 한 그루와 낡은 정자다. 세거비 뒤편에 있는 건물은 이 마을주민들이 주로 모이는 기지경로당이다. 노후된 건물이지만 마을의 대소사가 모두 이곳에서 이뤄진다고 한다.
이 마을에는 38세대 100여 명이 거주하고 있다. 주민 대부분이 벼, 수박, 사과 등 농업에 종사하며 살고 있다. 한때는 창녕 조 씨(昌寧 曹 氏) 일가의 세거지로 대성을 이뤄 100여 호가 넘게 살기도 했었다고 한다. 지금은 10호 정도만 남아있다.
'창녕 조 씨 진천세거비'에 따르면 조 씨 일가가 이 마을에 정착하게 된 것은 400여 년 전으로 추정된다.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등을 피해 표전남하하면서 정착한 것으로 표기돼 있다.
마을 초입 왼편에는 하늘을 향해 가지를 넓게 펴고 있는 참나무가 있다. 보호수종이 아니라 보호수로 지정되진 못했지만 주민들은 마을의 수호목으로 여기고 있다. 그 아래 낡은 정자는 덕산면에서 가장 먼저 지어진 정자라고 한다. 지금 지어지는 정자에 비해 투박하고 볼품은 없지만 여름철 주민들의 휴식처로 인기가 좋다.

기지마을의 유래
기지마을은 일제강점기 전에는 진천군 산정면이었다. 지난 1914년 행정구역 통페합 정책에 따라 화전리, 선옥리, 기지리 등의 일부 지역을 병합되면서 기전리에 포함돼 덕산면에 편입됐다. 덕산면소재지에서 4km정도 떨어지 마을로 초평면 금곡리와 경계를 이루고 있다.
이 마을이 형성된 것은 600여 년 전으로 추정되고 있다. 다른 마을과는 다르게 주거지가 군집을 이루지 않고 넓게 촌락을 이루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집들이 띄엄띄엄 틈틈이 박혀 있어서 마을 이름이 '트미실'이라고 사람들이 농을 할 정도다.
지금은 많이 바뀌었지만 과거에는 마을의 모습이 마치 비단을 짜는 베틀처럼 보인다. 게다가 마을 안에는 커다란 방죽이 자리 잡고 있어 이를 한자로 베틀 기(機) 자와 못 지(池) 자로 써 '기지'라 칭했다. 우리말로는 틀못실(트미실)이라 불렸다.

이영남 장군 출생지
▲ 이영남 장군의 영정을 모신 충용사. 지난 2009년에 준공됐다.
▲ 이영남 장군의 영정을 모신 충용사. 지난 2009년에 준공됐다.
이 마을은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을 도와 많은 전공을 세운 이영남(1547~1598) 장군이 태어난 곳이다. 이 장군의 본관은 양성(陽城), 자는 사수다. 그는 노량해전에서 이순신 장군이 전사하자 패적을 추격하다가 향년 33세의 나이로 적의 유탄에 맞고 순국했다.
그의 묘소는 마을 서편 갈현산 선영에 자리하고 있다. 지난 2008년 충청북도 지정기념물 제144호로 지정됐다. 묘소는 원형의 봉분으로 직경 약 600㎝, 높이 240㎝ 정도로 둘레를 십이지신상의 호석으로 조성됐다. 묘소 정면으로 상석 및 계체석, 좌우측으로 문인석과 망주석이 각각 1기씩 있다. 우측에는 이영남 장군 사적비가 지난 1983년에 순국 385주년을 기념해 세워졌다. 좌측에는 평소 장군이 아끼던 말의 무덤인 용마총도 함께 하고 있다.
이런 연유인지 묘소 부근에 70년생 소나무와 상수리나무로 이뤄진 연리목이 자라고 있다. 이 나무들은 30㎝ 간격을 두고 자라면서 3m 높이에서 서로 합쳐져 한 나무가 된 듯 보인다. 아울러 이곳에는 지난 2009년 준공된 장군의 영정을 모신 사당인 충용사가 자리하고 있다.

갈티고개 산책로
기지마을 주민들은 무려 4년에 걸쳐 갈티고개 임도의 잡목을 제거하는 등 정리작업을 했다. 마을에서 초평면 금곡리 대바위로 넘어가는 4㎞ 정도 구간이다. 걸어서 왕복 2시간이 걸리는 이 임도는 갈현산의 능선을 따라 이어져 있다. 지금은 주로 사람들의 산책로로 이용되고 있지만 과거에는 음성, 초평 등으로 장을 보러 넘어 다니던 고개라 '장고개'로 불리기도 했다.
갈현산은 봄철이면 진달래, 철쭉, 벚꽃 등 야생화가 흐드러지게 펴 형형색색 장관을 연출한다. 소나무도 많아 피톤치드향이 진하게 퍼진다. 정상에 오르면 진천읍내가 훤히 내려다보인다. 시야가 맑은 날에는 이월까지 보일 정도로 탁 트인 경관이 마음속까지 시원하게 만들어준다. 이 때문에 입소문을 타고 산악회 사람들의 발길이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지역주민들도 밤, 도토리 등을 주우러 많이 찾는 곳 중 하나다.

정이 넘치는 마을
갈현산이 감싸고 있는 이 마을은 지형 특성상 여느 동네와는 달리 주민들이 함께 모이는 일이 쉽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옛날부터 주민들 간 단합이 잘되고 애처가가 많아 가정이 화목하다고 한다. 또한, 자신의 것을 나누며 살아가는 정이 넘치는 마을이다. 그래서 마을사람들의 얼굴에는 항상 여유로움이 가득하고 인심도 후하다.
성만경 노인회장은 “우리 마을주민들은 품성이 넉넉해 나눌 줄도 알고 베풀 줄도 안다”며 “우리 마을처럼 화합이 잘되는 마을이 있을지 모르겠다”고 자랑스러워한다.

우/리/동/네/사/람/들


성만경  노인회장
성만경 노인회장
“마을주민 모두가 한 가족처럼”

성만경(78) 노인회장은 마을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마을어른들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누구의 잘못을 탓하기보다는 작은 일에도 칭찬을 아끼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은 마음이다.
성 회장은 “임도를 정리한 것이 그리 거창한 일은 아니지만 그래도 마을주민들이 힘을 합쳐 임도 주변을 정리해 보기도 좋고 다니기도 좋게 만든 것은 높은 평가를 받을만하다”고 했다. 그는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앞으로도 마을주민 모두가 한 가족처럼 정이 가득 넘치고, 건강하고, 행복하게 지냈으면 한다”며 “언제나 주민들과 함께하는 노인회가 되도록 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유순호  새마을지도자
유순호 새마을지도자
“마을 발전되도록 노력할 것”

유순호(67) 새마을지도자는 김희식 이장이 병환 중이라 이장대리를 맡고 있다. 요즘은 새마을지도자의 역할이 많이 축소돼 예전처럼 주어진 일이 많지 않다고 했다. 새마을지도자의 역할이 확대됐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고 있다.
그는 “마을 일로 언제나 고생하시는 이장을 곁에서 도와드리는 일이 마을을 위한 일이라 생각한다”며 “마을 주민들과 함께 이장을 도와 마을의 발전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조정환  청년회장
조정환 청년회장
“살기 좋은 마을 만들어가겠다”

고향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마을을 위해 일해보자라는 취지로 결성된 마을청년회를 이끄는 조정환(62) 청년회장은 살기 좋은 마을을 만들겠다는 의욕이 넘친다.
조 회장은 “청년회 회원 대부분이 객지에서 생활하고, 동네에 사는 회원은 얼마 되진 않지만 다들 적극적으로 참여하려고 노력해줘 항상 고맙다”고 말했다.
그는 “마을어른들이 건강하고 행복하게 사셨으면 좋겠다”며 “우리 마을이 진천군의 어느 마을보다도 행복하고 살기 좋은 마을이 되도록 힘닿는 데까지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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