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로 또 같이’ 공존하며 살아가는 동네
‘따로 또 같이’ 공존하며 살아가는 동네
  • 이창복
  • 승인 2015.09.14 10: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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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동네최고야] 덕산면 산수리 중방마을
유교적 도덕질서 확립·미풍양속 진작 '마을전통'
토지 비옥·수리시설 양호…화훼·과수 재배 많아

▲ 마을 입구에서 바라 본 중방마을. 주민들은 유교적 도덕질서와 미풍양속을 계승하며 아름다운 정과 뜨거운 사랑을 품고 생활하고 있다.
▲ 마을 입구에서 바라 본 중방마을. 주민들은 유교적 도덕질서와 미풍양속을 계승하며 아름다운 정과 뜨거운 사랑을 품고 생활하고 있다.


▲ 중방마을 주민들이 마을회관에 모여서 힘 있게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 중방마을 주민들이 마을회관에 모여서 힘 있게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 마을 입구 도로 옆에 위치한 마을 유래비. 마을의 유래와 특징 등이 자세하게 기록돼 있다.
▲ 마을 입구 도로 옆에 위치한 마을 유래비. 마을의 유래와 특징 등이 자세하게 기록돼 있다.

산업화가 급속도로 진행되면서 농촌마을은 예전의 한가로운 분위기를 기대하기가 어렵다. 도시와 공장이 영역을 넓혀가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때에 흔들림 없이 전통을 지키며 농촌의 두터운 정과 뜨거운 사랑을 품고 사는 마을이 있다.

앞으로는 새로 조성된 산수산업단지, 뒤로는 중부고속도로에 둘러싸여 현대화의 밀물 한 가운데 서 있는 마을. 하지만 지나가던 길손도 마을 한쪽에 자리 잡고 있는 팔각정에 들러 주민들과 막걸리 한 잔을 기울이며 사람 사는 얘기를 나누고 싶은 동네. 바로 덕산면 산수리 중방마을이다.

중방마을의 유래

중방마을 입구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중방마을 유래비가 찾는 이를 묵묵히 맞아준다. 마치 마을을 처음부터 지켜 본 목격자처럼 마을유래에 대한 비밀을 간직한 채 자리를 지키고 있다. 중방마을의 자랑이다.

이 비는 마을의 역사와 사정을 누구보다 가장 잘 알고 있는 주민들이 마을의 유래와 정체성을 잊지 말고 후세에 전하고자 하는 뜻을 모아 지난 1995년 마을 입구에 자발적으로 세웠다.

유래비에 따르면 “중방마을은 차령산맥 줄기가 덕산면과 이월면 간을 뻗어 내린 우청지맥(右廳地脈)이 수려하고 좌룡우호(左龍右虎)가 청수한 곳에 아담하게 자리를 잡으니 산수가 아름답고 잘 조화돼 마치 꽃이 피는 형상과 같다하여 꽃다울 방(芳)자를 쓰고 또한 명기(明氣)임을 뜻하는 '방골'이라는 이름의 마을이 됐다.

동명(洞名)의 변화 과정으로는 예전에 '방골', 그 후 진천군 방동면으로, 다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고수말, 중방고, 매산이 병합해 매산, 고수리의 명칭으로 따서 '산수리'라 하고 덕산면에 편입됐다.

백제 초기의 마을에 관한 전설은 있으나 많은 고증을 요하고 확실한 것은 이조 초기에 경주 정 씨 휘방광공이 삼용리에 정착해 그 후손이 번창한 것을 시작으로 이 씨, 오 씨, 김 씨, 신 씨, 한 씨가 입주했으며, 현재는 박 씨, 조 씨, 성 씨, 권 씨, 방 씨, 전 씨, 임 씨가 더 입주해 살고 있다.

본래 이 마을은 유교의 학풍을 이어받아 명륜학습 생활에 의거해 미풍양속이 이어져 왔으며 토지가 비옥하고 수리가 양호하여 풍흉이 없이 의식이 풍족한 마을로서 근자에는 화훼단지와 과수재배, 기타 농작으로 더욱 발전하고 있다. 공직자, 사업가, 기술자들이 많이 배출되어 각계각층에서 크게 성공하고 있어 마을의 장래가 크게 총망 되는 바 이를 오래도록 기리기 위해 전 주민들의 정성을 한데 모아 이 비를 세우게 됐다.

'따로 또 같이'

현재 중방마을은 1반에서 4반까지 86가구 190여 명이 살고 있다. 꽤 큰 마을이다. 주민들의 상당수가 어르신들이다. 주민 가운데 절반에 가까운 40여 가구가 경주 정 씨다. 마을의 형성단계인 이조 초기에 경주 정 씨 집성촌으로 시작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김은태 이장은 “우리 마을은 성 씨의 벽이 없다”며 “성씨에 관계없이 서로 간 화합이 너무나도 잘 이루어지는 마을이다”고 잘라 말한다.

이성희 노인회장도 “우리 마을은 집성촌으로 이루어 진 곳이지만, 집성촌의 성격을 조금도 드러내지 않는 마을”이라며 서로를 배려하며 살아가는 마을임을 자랑했다. 중방마을은 마을행사나 개인 일을 내일처럼 돕고 사는 마을이다. 한 마디로 중방마을의 가장 중요한 키워드는 '따로 또 같이', 즉 '화합'이다.

매년 정월달에는 마을의 모든 주민이 모여 윷놀이를, 여름에는 더위에 지치기 쉬운 어르신들을 위해 삼계탕을 준비해 경로잔치를, 가을에는 한 차례 효도관광을 실시한다. 정인순 부녀회장은 “이때마다 주민들이 십시일반으로 도와 모자람 없이 풍성하게 행사를 연다”며 자랑스러워했다. 이 또한 주민 화합의 아름다운 결과다.

마을 주민들은 몇 가지 숙원 사업도 힘줘 말했다. 김 이장은 “마을 앞 농로가 오래돼 깨지고 파인 곳이 많은데, 군에서 이런 곳을 깔끔하게 보수해 주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부녀회원들은 “마을 입구 팔각정의 깨진 바닥을수리하는 것과 방충망 설치, 그리고 팔각정의 퇴색된 부분들을 깔끔하게 덧칠 했으면 좋겠다”고 입을 모았다.




우 / 리 / 동 / 네 / 사 / 람 / 들



“화합과 효의 중방마을, 최고죠”

“우리 마을처럼 주민들끼리 갈등 없는 마을도 드물다.” 김은태 이장은 마을의 자랑을 이렇게 말했다. 그는 또 “마을 입구에 효행비를 보듯이 예로부터 우리 마을은 효의 마을이다”며 “아름다운 효의 전통은 오늘까지 이어지고 있으며 다음 세대에게도 자연스럽게 이어질 것”이라고 자랑했다.

김 이장은“마을 주민들이 건강하고 행복하게 지금처럼 변함없이 어르신을 공경하고 서로 화합하는 마을을 만들겠다”고 다짐했다.

“마을 협력의 한 축이 되겠다”

이성희 노인회장은 “우리 마을 노인들은 마을의 협력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며 “마을 환경정화를 위해 회원들이 마을의 각 가정을 방문해 폐품을 수집하고, 체육공원 등 마을 구석구석 청소에도 솔선수범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회장은 또 “효의 마을이 되기까지는 마을을 위한 노인들의 헌신과 노력이 있기에 가능했다”며 “자라나는 세대에 효와 협력의 귀감이 되는 노인회가 되겠다”고 밝혔다.

“어르신 섬기는 부녀회 만들겠다”

정인순 부녀회장은 “우리 중방마을의 부녀회는 예로부터 어르신들을 깍듯이 섬겨왔다”며 “겨울철 농한기에는 변함없이 어르신들을 위해 노인정에 점심 봉사를 해 오고 있다”며 앞으로도 계속 어르신들을 잘 섬기겠다”고 말했다.

그는 또 “부녀회에서는 마을회관 옆 문화생활관 2층에 마련된 가공실에서 주민들의 편의를 위해 명절 때마다 원가만 받고 저렴하게 떡을 만들어 주고 있다”며 “앞으로도 주민들을 위해 궂은 일도 게을리 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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