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해종 새정치민주연합 중부4군 지역위원장
임해종 새정치민주연합 중부4군 지역위원장
  • 임현숙
  • 승인 2015.11.04 1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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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한 분위기·솔직 고백·명사에게 듣는 취중진담

자기관리가 철저하고 엄격한 잣대로 자기 일을 추진하는 명사들이 술의 힘을 빌어 가슴에 담아놓은 얘기를 솔직하게 털어놓는 취중토크가 4년만에 재개된다.

본지는 다시한번 독자들의 가슴을 뛰게 할 스물 두번째 취중진담 명사로 내년 총선에 도전하는 임해종(58) 새정치민주연합 중부4군 지역위원장을 초대했다.

문백면 구곡리 굴태 출신으로 경제기획원·재정경제원·기획예산처·국방부·기획재정부 등에서 경제 관료로 30년을 근무했고,
과학기술정책국장·국방부 기획예산담당관·기획재정부 공공정책국장 등을 거친 제정·경제분야 예산전문가로 살아온 그가 중부4군 국회의원으로 도전장을 냈다.

굵직굵직한 국가 경제 업무에 관여했던 그 실력과 경험을 이제 중부4군 지역발전을 위해 아낌없이 내어 놓고 싶다는 임해종 위원장,
그의 순한 웃음과 따뜻한 사람 냄새나는 이야기를 들어본다.

“지역에 꼭 필요한 주춧돌이 되겠습니다”

Q 오늘도 행사장 방문이 있으셨죠. 약주 한 잔 하시면서 편하게 담소 나누시겠습니다. 평소 주량은 어느정도나 되십니까.
A 소주 두 병 정도면 많습니까(웃음)? 좀 강한 편입니다. 자주 마시지는 않지만 두 병까지는 기분좋게 마실 수 있습니다.
요즘은 술을 자주 마십니다. 행사장을 다니다 보면 마실 일이 많이 생겨요. 분위기상 기분좋게 마시고 있습니다. 집에서는 아예 입에 대지 않습니다.


Q 위원장님의 어린 시절은 어땠습니까?
A 문백면 구곡리 굴태에서 태어나 줄곧 그 곳에서 살았습니다. 모두 살기 힘들었던 시기였고 특히 아이들은 학교에서 돌아오면 먹을 것이 없었습니다.
보리밥에 늦은 봄까지 바람 든 고구마를 먹고, 여름에는 그마저도 없었죠. 농다리 근처를 주 무대로 아이들과 놀러다녔는데 여름엔 친구들과 논 둑에 피어있는 삐리라고, 껌처럼 질겅질겅하게 씹으면 달착지근한 물이 나오는 풀을 단맛에 많이 먹었습니다. 여름엔 소 묶어놓고 농다리 아래서 미역감고, 한창 뛰놀다 배속에서 꼬르륵 소리가 나면 개암나무 열매를 따먹곤 했습니다. 참 고소했어요. 하얀 런닝, 검은 바지가 주된 복장이었는데 머루포도, 풀물이 들어 런닝이 늘 지저분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12시에 점심먹고 저녁 8시나 돼야 저녁을 먹었으니 한창 때 늘 배가 고파겠지요.

“2등을 제일 많이 했다” 추미애 위원 한양대 동기

Q 학창시절 공부를 잘했다고 들었습니다, 어떤 학생이었습니까.


A 중학교 3학년 전 과정을 통해서 제일 많이 해본 게 2등입니다.
저는 전기도 안 들어오는 곳에 살면서 2등도 괜찮다고 생각했으니 욕심은 없었던 것 같아요. 고등학교 진학은 저희 아버지께서 상고에 진학해 은행에 취직해야 돈도 잘 번다고 하셨죠. 몇 몇 친구들과 청주상고 3년 장학생으로 선발됐는데 모두들 가지 않았습니다. 저는 당시 선생님들께서 '입학금 대줄테니 청주고등학교에 가라'고 권하셨고 결국 그렇게 했습니다. 당시 진천중학교에서 많은 친구들이 청주고교에 진학했습니다.
대학은 한양대에 진학했어요. 떨어질 거라고 생각도 안했는데 원하던 대학을 못가서 많이 실망했었습니다. 추미애 위원이 한양대 동기입니다.


Q 진천중학교, 청주고등학교, 한양대 선배인 이세종 씨가 중매를 섰다고 들었습니다. 처남되시죠?
A 저는 대학 졸업을 앞두고 행정고시에 합격했고 이듬해인 24살에 사무관으로 조달청에서 수습을 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곧 입대를 앞두고 있었고 당시 이세종 씨는 한양대에 복학한 상태였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1년 선배 이세종 씨가 여자친구를 소개해준다는 겁니다. 아내 친구인 줄 알았는데 여러 이유로 자기 여동생을 데리고 나왔어요. 이러저러한 얘기 끝에 아버지가 진천중학교 교감이신 이용순 씨라고 하는 겁니다. 선배 아버지가 그분이라는 것도 그때 알았어요. 그때 아내는 대학 3학년으로 꽃다운 나이였지만 선배 여동생이라 어려웠고 곧 입대할 텐데 하며 다른 생각은 하지 않았습니다. 요즘 애들 같으면 벌써 진도 나갔겠지만요(웃음). 그 후엔 군대 갈 생각에 연락도 안했어요.

입대 3개월 전쯤인가 8월 입대를 앞두고 있는데 어느날 이세종 선배가 또 자기 여동생 축제에 파트너로 가라는 겁니다. 그때 아내를 두 번째 만났는데 훨씬 분위기가 좋더라구요(웃음). 그 다음부터는 진도 잘 나갔습니다(웃음). 입대 전에 많이 만나고 가까워졌습니다. 입대 후에는 전방에 있었는데 편지도 주고받고 면회도 많이 왔습니다.
얼마전 이사할 때 이사짐 업체에서 아내에게 짐 정리하면서 꼭 찾고 싶으게 뭐냐고 해서 '군 시절에 주고 받았던 편지를 찾았다고 해요. 근데 보니까 꽤 많더라구요(웃음).


Q 결혼은 언제하셨습니까?
A 아내는 8형제 중 막내 딸입니다.
장인은 저를 맘에 들어하셨지만 장모님은 제가 촌놈이라 싫다고 하셨습니다. 장모님은 그 후에도 제가 맘에 안 들었는지 군대에 있는 동안은 손 거칠다고 또 싫다고 하셨어요(웃음).

결혼은 1984년 11월에 했습니다. 육군병장으로 제대하고 3개월 만입니다. 저는 27살, 아내는 24살이었으니 각자 졸업하자마자 한 셈이죠. 그때 진천읍 농협 옆에 있던 신신예식장에서 결혼 했습니다. 여자가 대학나온 것도 드물던 시절이었고 서울친구들은 그런 촌스런 예식장이 어딨냐고 놀려댔었습니다.


Q 조달청에서 재경부로 가신 것은 언제입니까?
A 당시 조달청은 경제기획원 산하에 있었어요.
조달청에서 재경부 가기 쉽지 않았고, 군필자 우선, 근무평가 등 조건이 여럿 있었습니다. 실제 군대 2년 빼고 조달청 근무는 2년 정도했어요. 함께 입사한 동료가 3명이었는데 두 명이 경제기획원 통계국으로 가고 저만 혼자 본부에 남았습니다. 그후 법무담당관실 1년, 정책조정관실 1년, 그리고 차관 비서관으로 1년 반 근무했습니다. 그 중 비서관 시절에 많은 사람을 만났는데 특히 높은 분들을 많이 만났습니다.

유학도 이때 갔어요. IMF 등으로 어려운 시기였는데 공공차관인 미국 IBRD자금으로 장·차관비서 유학보내는 케이스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여러가지 사정으로 미국 유학은 양보하고 영국문화원을 통해 2년간 영국으로 유학을 갔습니다. Sussex대학원에서 국제경제학 석사를 하는데 생활비 지원이 안 돼서 힘들게 생활했어요. 유학 후에 경제개발 5개년 계획 주무부서인 경제기획국에 있었구요 재정경제원(부)에는 1994년부터 근무했습니다.

재경부 근무 시 '종박물관 건립,
종합운동장 건설' 예산지원

Q 재경부에 있으면서 특별히 진천에 예산 지원한 것은 무엇입니까?
A 농다리 관련해서 두 번 정도 지원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김경회 군수 시절이었는데 종박물관 건립사업과 종합 운동장 건설이었습니다. 한 번에 많이 지원한 건 아니었지만 초기 지원이 중요했습니다. 계속사업으로 이어지니까요.

Q 공직생활 대부분을 재정과 경제분야에 있으면서 예산전문가로 활동하셨는데 국회의원에 대한 꿈은 언제부터 였습니까?
A 처음부터 그런 생각은 하지 않았어요.
20여 년 전 쯤인가 막연히 고향에서 나를 필요로 한다면 퇴직 후 일 할 기회를 갖는 것도 괜찮겠다고 생각은 했습니다. 경제기획원과 재정부에서 일을 많이 했으니 가능하지 않겠나라고 생각한거죠. 저 뿐만 아니라 많은 지역 출향 인사들이 지역발전에 대한 타는 목마름이 있었을 겁니다. 중앙에서 일하다가 기회가 온다면 고향에서 일 할수 있겠다는 생각이었을 겁니다.

경제기획원·재정경제원·기획예산처·국방부·기획재정부 등에서 경제 관료로 30년을 근무했고, 고위공무원으로 과학기술정책국장·국방부 기획예산담당관·기획재정부 공공정책국장 등을 거치면서 청렴결벽하게 일만 했습니다. 주변에서 말들이 많았지만 퇴직도 일주일만에 결정했어요.

그 후 충북도청 정무부지사 요청도 있었지만 거절하고 산업은행에 들어갔어요. 그런데 산업은행 퇴직 1년 전 쯤인가 고 김종률 의원이 컴백하면서 연락이 와 퇴직 하면 6월 지방선거에서 역할을 해달라는 겁니다.

Q 정치에 생각이 있으셨다면 정무부지사를 거절하지 않으셨을텐데요?
A 그랬겠죠.
어쨌든 김종률 의원이 돌아가시고 이시종 충북도지사, 변재일 도당위원장이 몇 차례 의견타진이 있지만 '생각해 보겠다'고만 했습니다. 관심은 고마웠지요. 당시는 쉬운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해보겠다고 쉽게 대답할 수는 없었을 겁니다. 2014년 4월 산업은행 퇴직 시점에 다시 타진이 왔고 그때 저는 '어떻게 해야하느냐'고 답했어요. 그렇게 6.4 지방선거에서 이시종지사 선대위원장으로 지방선거를 간접 경험했습니다. 당시는 민주당에서 새정치민주연합으로 당명을 바꾸는 등 당이 안정되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자기 일 그만두고
힘든 길 함께 하는 아내 “고맙다”

Q 정치한다 했을때 사모님께서 반대하지는 않으셨나요?


A 아내는 외국기업(유니레버 코리아) 대표였고 30년간 직장생활을 했습니다. 저 역시는 33년을 공직에 있었구요. 우리끼리 늘 하던 말이 '너무 많이 뽑아 먹으면 자식이 안된다 연금도 나오는데 퇴직 후에는 그냥 놀러나 다니자'였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아내가 뭘 보고 왔는데 제가 70세까지 일한다는 거예요. 그냥 흘려 들었지요. 제가 진천군수에 언급되고 할 때 아내는 탐탁해 하지 않았습니다. 저 역시 그런 일은 지역을 잘 아는 지역 사람이 해야 한다는 생각이었습니다. 그런데 퇴임 후 지방선거에 왔다갔다 하는 저를 보고 아내가 '아직 60세도 안됐는데 한번 해봐라'하는 겁니다.

그렇게 결심이 서자 아내는 직장도 그만두고 지난 5월부터 지역에 내려와 함께 지내고 있습니다. 가끔 우리는 이렇게 말합니다. 1년 후에는 또 어디로 갈지 모르는 파랑새 신세다…라구요.


Q 요즘 사모님께서 행사장도 다니시고 많이 도와주십니다. 힘들어 하시죠?
A 중부4군이 크다면 큽니다.
어떤 때는 하루 종일 4곳을 다닐 때도 있어요. 저나 아내나 집에 가면 그냥 쓰러져 잡니다. 저는 다행히 숙면을 취하는 스타일로 자고나면 개운한데 아내는 아마 그렇지 않을 겁니다. 저야 그냥 다니면 되지만 아내는 이것저것 챙겨야 하고 집안일도 해야 하니 더 힘들죠. 그래도 한마디 불평이 없어요.

여기저기 다니면서 인사하는데 다른 사람들은 한번 고개 숙이면 된다고 하겠지만 하루 100명과 인사하면 100번 숙여야 합니다. 아무 말 없이 따라와 주는 아내가 고맙지요.


Q 가장 힘든 것은 무엇입니까?
A 사람 마음을 얻는 일이겠지요.
인간은 모두가 스스로 존엄하다고 생각합니다. 자아가 강한거죠. 이런 일을 하면서 가장 가까이에 있으면서 함께 일하는 사람의 마음도 얼마나 얻고 있는지 모르는 겁니다.

직장생활 조직은 기본행동강령이라는 것이 있어서 어떤 경우는 어떻게 해야한다지만 당은 그게 없어요. 내가 가능성이 있으면 나에게 몰려오고 그렇지 않으면 떠납니다. 충성을 요구할 수 없어요.

공부는 많이 안 하셨지만
늘 합리적이셨던 어머니 존경해

Q 1남1녀를 두셨습니다. 존경하는 인물은 누구입니까.
A 그런 질문을 가끔 듣는데, 저는 늘 어머니를 존경해왔습니다. 학교도 많이 다니지 못했지만 아버지보다 늘 합리적이고 경우가 밝으셨던 분입니다. 저희 장모님은 청주여고 1등으로 졸업하시고 공주사대를 나오셨고 장인어르신도 서울대를 나오셨는데 저는 가끔 아내에게 말합니다. 아무리 그래도 저희 어머니가 훨씬 훌륭하고 존경한다고요(웃음).


Q 돌아가신 장인 이용순 옹은 어떤 분이셨습니까
A 아내의 친할아버지(이호신 옹)는 일제시대 때 지역에서 최고 부잣집 아들이셨습니다. 그러니 장인 어르신은 유복한 가정에서 부족함 없이 자라셨어요. 저희 장인 어르신은 자식이 8명이나 되는데 늘 '나처럼 자라게 하지 못해 미안하다'고 하셨습니다. 장인 어르신은 특히 막내딸인 아내를 예뻐하셔서 막내사위인 저도 많이 좋아해주시고 예뻐하셨습니다. 환갑이 넘으셔서도 술 대작에 절대 지지 않으셨던 분이십니다.


Q 중부4군 군민에게 한마디 해주시기 바랍니다.
A 지역 주민들을 뵙기 위해 많이 다닌다고 하지만 아직 부족합니다.
행사장에서도 의례적이지 않고 진정으로 축하하고 위로하려는 마음이 큽니다. 주민들께서 더 잘 아시겠지요. 제가 잘하는지 못하는지 객관적으로 저를 봐 주시고 지역에 필요한 주춧돌, 서까래로 활용해 주시면 기꺼이 응하겠다고 말씀드리겠습니다. 저를 활용해 잘 될 수 있다면 그렇게 해주시길 바랍니다.
이제 지역을 위해 일하겠다고 결심한 이상 중부 4군 지역적인 특성에 잘 맞춰서 지역발전을 위해 고민하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을 찾겠습니다. 진천, 음성, 괴산, 증평이 조화롭게 발전하고 생동감있는 중부4군을 만드는데 힘을 더할 수 있다면 기쁠 겁니다.
풍성한 수확의 계절에 건강조심 하시고 복 많이 받으시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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