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옥 진천군수 재선거 후보
김진옥 진천군수 재선거 후보
  • 이혜민
  • 승인 2016.03.26 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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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안한 분위기·솔직 고백·명사에게 듣는 취중진담


명사들이 술의 힘을 빌어 가슴에 담아있는 얘기를 솔직하게 털어놓으며 독자들에게 감동으로 다가가는 화제의 취중토크!

진천자치신문 마흔아홉번째 취중진담 명사로 다가오는 4월 진천군수 재선거에 도전하는 김진옥(69) 후보를 초대했다.

김진옥 진천군수 후보는 진천읍 읍내리 출신으로 현재 재경진천읍민회장이다.

지난 30여 년간 서울 강남에서 교육사업을 통해 교육행정전문가로 인정을 받았고 적지 않은 나이에 대학원에서 관련 수업을 받는 등 도전을 멈추지 않았다.
재경 진천읍민회장으로 재경진천읍민회지를 최초 발간해 지역을 알리고 진천의 기업을 알리는데 누구보다 앞장섰던 김진옥 후보,

그가 이번엔 진천군수 재선거 출마라는 새로운 삶에 도전장을 냈다. 이제 고향을 위해 여생을 바치겠다는 김진옥 후보, 그의 치열한 인생사와 군수 도전에 임하는 각오를 들어본다.



“여성리더로 진천을 위해 일하겠습니다”


Q 직접 승합차를 운행하며 경로당과 행사장 등을 다니고 계시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힘들지는 않으십니까?

A 서울에서 학원을 운영하면서 줄곧 승합차를 직접 운행했습니다. 평생에 내 소유의 승용차를 가져본 적이 없어요. 늘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차가 필요하면 학원 승합차를 이용했습니다. 습관이 돼서 운전이 힘들지는 않습니다.

[어릴 적부터 자기관리 철저]

Q 부모님께서 꽤 잘 사셨고 지역의 유지였다고 알고 있습니다.

A 아버지께서 故김창기씨로 진천에서 유명한 '진일당'을 운영하셨습니다. 당시 아이스케키가 유명했잖아요 아버지는 대주주셨지만 상당히 근검절약 하신 분이셨습니다.

어릴 적 저희 집은 대가족이었는데 저는 10 남매 중 여섯 째로 딸 일곱 중에서는 넷째입니다. 아버지는 정말 열심히 사시고 근검절약의 모범을 보이신 분이예요. 사실 그 정도 재산이 있으면 자식들에게 나눠줄 만도 한데, 절대 그러질 않으셨습니다. 게으른 자식에게는 용돈을 주지 않았고 사업도 전혀 도와주시지 않았어요.

생각해 보면 자식들에게 강인한 의지를 기르게 하려고 그러셨는데 그렇게 훈련(?)시키신 탓에 지금 10 남매가 모두 자수성가해서 꽤 잘 살고 있습니다.

Q 어린 시절 후보님 얘기를 해주시죠.

A 전 어릴 때 꽤 부지런한 아이였어요.

당시 언니 둘이 학교 선생님이었고 언니들에게 용돈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언니들도 집안 일을 돕거나 심부름을 해야 용돈을 주는 겁니다. 막내는 신문 배달, 또 누구는 언니들 구두닦이, 이렇게요. 저는 대청마루 청소 담당이었는데 당시 우리 집 대청마루가 상당히 넓은 편이었습니다.

한달 동안 청소를 해야 용돈을 탈 수 있었어요. 맨 손으로 열심히 청소했지요. 그 땐 고무장갑 같은 게 없었잖아요. 제 손이 못생긴 이유가 생각해 보면 그 때 맨손으로 일을 열심히 해서 그렇게 된 게 아닌가 싶어요(웃음).

Q 어릴 때부터 이미 자기관리 하는 법을 배우셨군요.

A 청주여고 다니고 객지생활 할 때도 방학 때 집에 가면 꼭 일을 했어요. 무작정하지 않고 오늘은 다락 청소, 내일은 장롱 청소, 모레는 유리창 닦기, 글피는 아버지 방 청소 이렇게 계획표를 짜서 실행했습니다. 그렇게 계획적으로 일하는 것이 몸에 밴 겁니다.

저는 지금까지 쭉 낮에는 일을 하고 그 후에는 새벽 2시까지 가족을 돌보고 집안 일을 했습니다.

그러려면 스케쥴(계획)을 잘 짜야 해요. 메모도 잘해야 하고요. 그래서 저는 잠을 잘 때도 옆에 메모지와 펜을 꼭 둡니다. 생각나는 것을 바로 바로 적어놨다가 다음날에 꼭 실행을 하는 거죠.

Q 학원은 언제부터 운영하셨습니까?

A 저는 31살 때 부터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처음 에 서울에서 슈퍼마켓을 7년 정도 경영했는데 무척 잘됐고, 그때 많은 재산을 모았어요. 그 당시 내 생활방식을 돌이켜보면 행동하는 양식이나 그런 것들이 꼭 아버지를 닮았습니다. 저희 아버지가 그렇게 계획적으로 사업적인 마인드도 있고 스케일도 크신 분이셨거든요.

그때 사회생활을 하면서 여자로 사회 활동하는 게 너무 힘들다, 바깥 일과 집안 일을 병행하는 게 굉장히 부담스럽다고 느꼈습니다.

1997년 서울 강남구 대치동에 어학원을 개원했고 그때 생각은 여성들도 공부해야 한다, 일하는 엄마를 위해 자녀를 돌 볼 수 있는 곳이 필요하다는 것이었어요. 그래서 학원을 운영하면서 아이디어를 낸 것이 직장인 자녀 종일반 프로그램이라고 직장 다니는 엄마가 퇴근할 때까지 그 자녀들을 공부시키고 돌봐주는 프로그램을 개발했습니다. 이것이 히트를 쳤어요.

Q 학원이 대치동에서도 꽤 유명했다지요?

A 당시에 제가 본 선진국 교육 프로그램은 학교 학급이 소수로 이뤄졌다는 겁니다. 열명에서 열 다섯명 정도요. 우리가 학교 다닐 때는 한 반에 육십 명이 넘었거든요.

또 선진국은 1학년부터 6학년까지 반이 바뀌질 않아요. 우리는 매년 담임 선생님이 바뀌잖아요. 매년 바뀌는 애들을 데리고 선생님이 어떻게 문제아를 발견하고 교화하겠어요. 이런 상황에서는 직장인 엄마들이 일하며 자녀 키우기가 힘들겠다고 생각해서 직장인 자녀 종일반 10년 프로그램을 개발한 겁니다.

[검소하게 살며 나누는 삶 실천]

Q 그때부터 여성의 사회 진출과 지원에 관심이 많으셨군요?

A 저는 결혼할 때 살림보다 위인전집 일곱 권을 혼수품으로 사갔습니다. 좀 특이하죠?(웃음) 제목은 잘 기억이 안 나는데 그 책을 보면서 사회를 위해 뭔가 보탬이 되는 일을 해야겠다는 꿈을 가졌습니다.

저는 나름대로 그 세대의 여성으로서는 사회활동을 활발하게 해 온 사람이고 특히 재경 청주여고 총동문회장을 하면서 우리 여성 선배들이 사회에서 중요한 역할을 통해 후배 여성들을 이끌어야 한다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Q 주위에서 후보님께서 열정적인데다 인정도 많다고 하십니다. 어떻습니까?

A 부끄럽습니다. 저는 항상 사람들을 만나면 '나를 만나면 다 잘 된다. 당신도 뭔가 변화가 생길 것이다'라고 말합니다. 저와 인연이 있는 분들이 잘되길 바라기 때문입니다.

저는 항상 남들이 잘 되는 것을 보면서 살아왔고 누군가 어렵다는 얘기를 들으면 그냥 불쌍하다 안됐다 하지 않고 달려가서 그 분이 살 수 있는 방법을 함께 강구합니다. 생각헌테 아파트 30여채는 도와주지 않았나 싶어요. 그래서 아마 인정이 많다고 하는 거 같네요(웃음). 평생 검소하게 살았고 나누는 삶을 실천했습니다.

Q 재경 진천읍민회를 활성화시키셨습니다. 큰 일을 하셨어요.

A 전 잘 몰랐는데 재경 진천읍민회가 유명무실했다고 들었습니다. 회장으로 취임하고 재경 문백면민회 정기총회에 갔더니 그분들이 나에게 '골치 아픈 일을 맡으셨네요' 라고 말해요. 오히려 그때 저는 '재경읍민회를 활성화시켜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재경 진천읍민회장 취임 일년 만에 '자랑스런 진천읍민상'을 제정하고 경제인상, 교육공로상, 가치혁신상, 문화예술상, 장한 어버이상, 공로상, 감사패 등을 만들었습니다.

또 한번은 박희수 진천읍장님이 '진천읍에 150개 기업이 있는데 어려움이 많다. 진천읍 소재의 기업을 서울에 홍보하면 도움이 되겠다'고 하시길래 자비를 들여 재경 진천읍민회 소식지 발행을 추진하게 된 겁니다.

소식지를 받은 재경 진천읍민들이 고향 소식을 한눈에 볼 수 있어 좋다고 평가해 주시고 '김진옥이 일을 잘한다'고 인정해 주셨습니다.

[능력있는 여성 위해 길 만들터]

Q 후보님께서 진천군수 선거에 출마하신다니 의아해 하시는 분들이많습니다. 왜 군수가 되시려고 합니까?

A 어떤 분들은 명예욕 때문이냐고 하시는 분도 있어요. 하지만 저는 그런 생각은 추호도 없습니다.

그 동안 고향을 자주 방문하고 특히 재경 진천읍민회장을 4년 째 하면서 고향을 위해 더 봉사할 기회를 찾았습니다.

무엇보다 군수 출마를 결심한 것은 지난해 모 언론사에 게재된 기사를 보고 나서 입니다. '충북에는 여성 선출직 국회의원이나 여성 단체장이 없다'는 기사였는데, 충북에 똑똑한 여자들이 얼마나 많은데, 또 진천에 와보니까 많은 여성단체 회장들이 훌륭한 겁니다.

이렇게 일 잘하는 후배 여성들을 보고 제가 나서서 먼저 길을 만들고 이 사람들을 이끌어줘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여성 리더를 대표해서 진천을 발전시키고자 하는 마음, 그리고 제 일 처리 능력을 인정해 주신 분들이 권유해서 이번 진천군수 재선거에 출마하게 됐습니다.

Q 군수가 되면 진천군의 현안 중 어떤 일을 가장 먼저 하실 겁니까?

A 군수가 되면 진천의 물 부족 문제를 우선적으로 해결하는 게 제 1순위 목표입니다. 출마 기자회견에서도 말씀 드렸다시피 진천군이 제일 중요한 게 뭐냐, 물입니다 공업용수, 농업용수, 식수. 요새는 지구온난화로 기후 예측이 잘 안되고 매년 가뭄에 고생을 하잖아요. 주변 세종시에서도 물 부족으로 고생한다고 신문에서 여러 번 봤습니다. 물이 부족하면 공장은 물론 농사도 사람 사는 것도 모두 멈춥니다. 진천은 저수지가 있어서 사정이 그나마 괜찮지만 그래도 가뭄 때만 되면 저수지가 바닥이 보일 정도로 어려움을 겪는 일이 비일비재합니다. 진천저수지의 바닥 준설 공사로 재해에 대비하고 물을 확보하겠습니다.


[(구)전통시장 살릴 것]

Q 또 어떤 일을 추진하시겠습니까?

A 근본적인 게 중요합니다. 군수가 되면 많은 사람들이 혜택을 볼 수 있는 일을 고민해야한다고생각합니다.

구체적으로는 현재 방치돼 있는 구 전통시장을 살리겠습니다. 상거래가 활발해져야 상인들의 형편이 윤택해지고 그 사람들이 또 지역 경제를 이끌 수 있기 때문입니다.

Q 후보자님은 교육행정전문가이신데 교육문화특구 진천에 꼭 필요한 교육사업에 대해 말씀해 주시지요.

A 교육은 단순히 아이들을 가르치고 돌보는 것만이 아닙니다. 교육은 부모들의 삶과도 직결되어 있습니다.

저는 군수가 되면 영·유아부터 중학생까지 아이들을 교육하고 돌봐주는 10년 교육프로그램을 도입하겠습니다. 요즘은 맞벌이가 많아서 아이들 돌보는 것이 큰 문제입니다. 그 역할을 학교와 지역에서 맡아야 합니다. 학교에 전담 보조교사를 확대 배치하고 전담병원을 지정하여 건강까지 돌봐야 합니다. 아이들을 제대로 교육하고 돌봐주면 애들은 인재로 키움받고 부모들은 안심하고 경제활동을 할 수 있으니 지역 경제도 발전할 수 있을 겁니다.


[건강, 일처리능력, 인간미 있는 군수 되겠다]

Q 어떤 군수가 되시겠습니까?

A 제가 군수가 된다면 정말 청렴하게 할 겁니다. 그냥 제 고향에 봉사하고 싶을 뿐입니다. 또 저는 정치는 나이가 어느 정도 된 사람, 60세 내지 65세 이상인 사람이 하는 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왜냐면 시간과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기 때문이에요.

일부 사람들은 제가 나이가 있다고 색안경을 끼고 보시는데 저는 오히려 장점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건강은 물론 뛰어난 일처리 능력, 인간미 있는 군수가 되겠습니다.

Q 취미는 뭡니까. 스트레스는 또 어떻게 해소하시나요?

A 제 취미는 솔직히 일입니다. 일을 열심히 하는 게 취미에요. 또 제가 운전을 결혼 전부터 했는데운전을 하며 생각을 많이 하고, 조용한 음악을 들으면서 스트레스를 풉니다.

Q 마지막으로 군민들에게 한마디 해주시지요.

A 제가 군수가 된다면 정말 청렴하게 일하겠습니다. 군수 월급도 반납하겠습니다.

당장 빌딩 짓고 도로 깔고, 진천에 고속철도를 들이겠다느니, 그런 것보다는 근본적인 것부터 바꿔나가겠습니다.

기초를 잘 쌓겠습니다. 기초가 잘 되어 있으면 나머지는 자연스레 잘 될거라 봅니다.

선심성 개발공약보다 많은 군민들이 혜택 볼 수 있는 사업을 하겠다고 약속하겠습니다.

저는 일로서는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다고 자부합니다. 제가 당선되면 진천이 확 변할 거라고 확실하게 말할 수 있습니다.

저를 한번 믿어주시고 밀어주시면 반드시 보답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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