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곡면 사송리 지구(池九)마을
백곡면 사송리 지구(池九)마을
  • 정우철 기자
  • 승인 2009.04.09 14:3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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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묻지 않은 자연의 아름다움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청정지역 지구마을


지구마을은 1914년 일제의 행정구역 통폐합 정책에 따라 상송리(上松里), 사정리(沙亭里), 지구리(池九里)와 백곡면의 두주리(斗酒里) 일부 지역을 병합하여 사정(沙亭)과 상송(上松)의 이름을 따서 사송리(沙松里)라 명명하여 군중(진천)면에 편입하였다가 1930년 3월 1일 백곡면(栢谷面)에 다시 편입되었다.

지금으로부터 500여 년 전 고씨(高氏)와 정씨(鄭氏)가 처음 들어와 살기 시작했으며 그 당시 아홉 골짜기마다 연못이 있어 못 지(池)자에 아홉 구(九)라 하여 '지구머리'라 하였다.

현재는 고씨나 정씨의 후손들은 살고 있지 않으며 38호 가구 중 9호가 주변 경관에 매료되어 외지에서 들어와 살고 있다.

■ 사정교를 건너 잠시 차에서 내려 혹자에게 물어보았다.
“여기서 한 1㎞정도 더 가면 '지구마을'이라고 GPS에 나오는데 혹시 아십니까?”
“허허, 쥐구멍에도 볕들 날 있다고 이 길(34번국도)이 생기기 전에는 도로가 비좁아서 오지나 다름없었는데 지금은 그 쥐구멍에도 볕이 들었다 해서 지구마을 아닌가벼” 하고 껄껄 웃으신다. 화통한 웃음소리에서 농담인 줄 알아차리고 고개를 숙여 고마움을 표하고는 백곡지 상류를 바라보았다.
봄의 정취는 역시 오감(五感)으로 맛보아야 제맛인가 보다.
진천읍에서 백곡면 방향으로 10분정도 운행하다 보면 아직 만개하진 않았지만 제법 진달래, 개나리꽃이 즐비하고, 사정교를 지나 왼쪽 백곡지 상류 수면 위에는 물가 쪽으로 버드나무 새싹들이 봄의 정취를 느끼게 해준다. 꽃샘추위가 물러가면서 엊그제도 없었던 강태공들의 차량 행렬이 도로변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백곡지는 진천의 3대 낚시터 중 하나로 지난 84년 제방 숭상공사로 인해 수면적이 확대되어 2.32㎢의 규모를 자랑하고 자연경관 또한 수려하다. 잠시 차에서 내려 저수지를 바라보니 가슴이 확 트여왔다. 다시 차에 올라 1㎞ 정도를 더 가니 드디어 마을에 도착, 뒷산에는 만뢰산 줄기 갈미봉이 우뚝 서 있었다.

■ 굽이굽이 골짜기가 많은 마을
총 38가구에 65명이 살고있는 이마을에는 65세 이상의 어르신이 12명, 여성이 20명이고 그 외에는 모두 청년이란다. 노인 회장님 말씀에 따르면 나이 팔십이 되어도 우리 마을에서는 노는 사람들이 없다고 하신다. 항아리처럼 움푹 패인 주변 경관을 볼 때 만뢰산 정기를 받는 마을답게 주민들에게서 생생한 에너지가 느껴진다.
옛날 기와와 토기를 구웠던 곳이라 하여 '개와골', 둑이 두툼하다하여 '도둑골', 사정 서남쪽에 있는 '동정골', 두주 뒤쪽에 있다하여 '뒷골', 밤나무가 많아 '밤나무골', 왁새풀이 많아 '왁새골', 두주 남쪽에 있는 '장사골', 연곡리 진우니로 넘어가는 곳이라 하여 '진우니골', 찬 우물이 있다하여 '찬우물골', 만뢰산 자락 갈미봉으로 올라가는 '큰골'이라는 지명들을 열거하며 “우리 마을에는 골짜기가 많아서 이것도 자랑인가?” 하고 웃으며 말씀하시는 이장님의 얼굴이 눈에 선하다.
여기에 더해 '점말'은 지구마을 동쪽에 있는 마을로 몇 개의 옹기점이 있었던 곳으로 지금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으나 땅을 일구다 보면 아직도 푸른색 토기와 그릇 조각이 나온다고 한다.

■ 작지만 큰 마을
심희철 새마을 지도자는 2년 전 '새 농민상'을 받았고 대통령상을 시상한 경력도 있다. 연 매출 6천만원. 시골에서도 아직까지는 오지라지만 농번기의 시작이라 바빠서 함께 참석하지 못하신 어떤 분도 약 1억여원 이상의 연 매출을 올리고 있다고 한다. '참숯으로 재배한 생거진천 싱싱오이'는 목초액과 참나무 숯가루로 재배한 진천군의 특화작물로 유명하다.
새마을 지도자의 소박한 웃음 속에 이장님이 마을의 출향인들 자랑에 열심이시다.
“마을이 작아도 우리 마을에서 증권 감독원, 은행장, 공기업 이사까지 나왔어요!” 하며 소박한 웃음을 지으셨다.

■ 지구마을의 결속력
1년에 한 번 6월 첫째 주 '향우회'에서 야유회 및 여행이 이루어지며 '대동계'라 하여 정월 대보름 윷놀이, 야유회 및 여행 등의 행사가 있다. 이날은 실향민들도 적극적으로 참여해줘서 고맙다는 말을 아끼지 않았다. 38가구에 65명이 옹기종기 모여 한 가족같이 사는 마을, 십여 년 전 효부상을 받은 심희철(새마을지도자)은 쑥스러운 듯 애써 감추려했다. 매년 유월 첫째 주 향우회에서 경로잔치 및 여행을 보내주신다 한다.
또한 해마다 음력 1월 3일은 산제를 드리는 날로 주민들은 마을 뒤편 만뢰산 줄기, 갈미봉에 모여 마을의 안녕과 풍년을 기원하는 제를 올린다. 제를 올린 그 날은 누구를 막론하고 그 마을을 못 벗어나고 하룻밤을 유하고 다음날 행차 하는 것이 전례이나 요즘은 시골도 글로벌 시대를 맞이하여 격식만 갖추고 떠나는 출향인들을 보며 못내 아쉬워 하는 모습을 엿볼 수 있었다. '대동계'는 12월에 1년 동안의 동계 결산이 이루어지고 윷놀이를 하며 주민들과의 친목을 다진다.

■ 이제는 더 이상 오지가 아니다
불과 5~6년 전만 해도 지구마을로 통하는 농로길은 협소하고 주민들이 기거하기에 상당한 불편함을 토로했었다. 지금은 도로가 마을 앞으로 나서 큰 불편 없이 그렇게 소박하게 살고 있지만 이장님과 노인회장님, 새마을지도자, 부녀회장님은 한 목소리로 지구마을에서 생태공원(연곡리)까지 조속한 시일 내에 마무리 공사를 염원하고 '07년 착수해 미처 마무리되지 못한 하천 제방공사를 아쉬워했다.
또한 하루 네 번 정도 운행하는데, 아침 일곱 시 반 시내버스는 문봉리 까지만 운행하고 지구마을 까지는 오지 않는다 한다. 누군가 시내버스가 닿는 곳까지 운행해 주어야만 아이들의등교가 가능한 실정이어서 고교생 3명, 초등생 2명이 상당한 불편을 겪고 있다. 어차피 진천에서 출발하는 버스 노선을 바꿔서 진천읍까지 편리하게 다니는 것 또한 주민들의 바램이다.
백곡면 사송리 사방댐은 이미 큰골에 설치되어 있으며 한 곳은 새매기에 건설 중이고 주민들의 휴식공간으로 활용할 목적으로 시공한다고 한다. 아무쪼록 부실공사 없이 시공하는 것이 마을 주민의 소박한 바램이다.
백곡면 일대에 2012년까지 다양한 관광자원을 개발할 계획이고 때 묻지 않은 자연의 아름다움을 그대로 후손에게 물려주어야 할 의무가 있다고 말씀하신 노익장들의 얼굴이 하나둘씩 뇌리를 스쳐가며 작지만 큰 마을로 자리매김 하겠다는 마음을 읽을 수 있었다.


/우/리/동/네/이/장/님/

권익향상을 도모하는
일에 한마음으로
일하겠습니다.

이건용 이장
이건용 이장

아름답고 인심 좋은 지구마을에 사시는 주민 여러분 모두의 권익향상을 도모하는 일에 한마음으로 일하며 나만을 위한 삶 보다는 이웃을 위해 사는 삶이 아름답다 생각합니다.
첫째가 화합 입니다.
모두 합심하여 가족 같은 한마을 가꾸기에 앞장서 살기 좋은 마을로 만들겠습니다.




좋은 마을을 만들기 위해 앞장 서겠습니다.

김창회 노인회장
김창회 노인회장

자신뿐 아니라 모든 사람이 자원을 아끼고 이웃과 나누고 돕는 마음으로 일하며 살겠습니다.
우리 마을은요! 나이 여든 먹어도 노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어요!
모두 합심하여 일하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정착하여 사는 좋은 마을을 만들기 위해 앞장서겠습니다.

'역지사지'를 생활에 실천하겠습니다.

심희철 새마을지도자
심희철 새마을지도자

세심한 부분을 챙기면서 새로운 봉사활동을 하고 싶습니다. 또한 새마을에 국한된 봉사활동에서 벗어나 넓은 시각으로 봉사하되 '역지사지'(易地思之)의 정신을 생활 속에서 실천 하겠습니다. 남 험담 하지 않고 내 가족처럼 항상 웃는 얼굴로 지내기 바라고 우리 마을 이장님을 잘 보필해서 마을 발전에 힘쓰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경치 좋고 물 좋은 우리 마을에 많이 이주해 주신 분들께 감사…

김기화 부녀회장
김기화 부녀회장

매년 유월 첫째 일요일 경로잔치를 마을에서 여는데 출향인 들과 자제분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지난12월말 동계 경로잔치 등의 모든 행사에 마을 부녀 회원들의 적극적인 참여에도 감사합니다. 경치 좋고 물 좋은 우리 마을에 많이 이주해주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살기 좋은 마을로 거듭났으면…

이양숙 지구 1반장
이양숙 지구 1반장

아이들 통학이 어려워서 걱정됩니다. 하루에 4대 다니는 시내버스도 여의치 않아 시내버스가 닿는 곳까지 차로 태워주거나 걸어가야 하니 아이들 안전사고도 걱정되는데, 우리 마을에서 바라는 소박한 꿈과 군에서 시행하는 사업이 원활하게 이루어졌으면 하는 바램이고 살기 좋은 마을로 거듭났으면 좋겠습니다.




우/리/마/을/유/적/지

충신 열녀문(忠臣 烈女門)


∎ 시 대 : 조선 영조(英祖) 11년(1753)

∎ 위 치 : 백곡면 사송리 52~2(상송)

∎ 규 모 : 2평(맞배지붕)

∎ 재 료 : 목조기와집


이 정문(旌門)은 충신(忠臣) 이 성문(李 成文)과 그의 처(妻) 열녀(烈女) 경주정씨(慶州鄭氏)의 충열을 기리기 위하여 세운 것이다.

이 성문은 영조 4년(1728)에 이인좌(李麟左)가 이 청주에서 난을 일으키자 충청병사 (忠淸兵使) 이 봉상(李鳳祥)이 의병을 모집할 때 80노모와 2세의 아들과 처 정씨를 두고 의병에 참가하여 토적(討賊)하다가 청주에서 전사하였다.

부인 정씨는 이 비보(悲報)를 듣고 달려가 시체는 찾았으나 운구(運柩)할 길이 없어 울며 참수(斬首)하여 치마에 싸가지고 향하여 같은 마을 지구동(地九洞)에 매장하였다. 이어 시어머니는 노환으로 별세하였고 남편의 3년상을 마쳤다. 정씨는 3년상이 끝나던 날 5살된 어린 아들만 남겨놓고 남편의 무덤 앞에서 자결하여 남편을 추종(追從)하니 향년(享年)14세였다.

문중에서 이를 가상히 여겨 합장(合掌) 제사하였으며 이인좌(李麟左)의 난(亂)이 평정된 뒤 조정(朝廷)에서 이 부부(夫婦)의 충의, 정절을 크게 찬양하여 정문을 세우게 하였다.

이 정문은 현재 언덕위에 있으며 정면 1간, 측면 1간의 맛배집으로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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