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 외길, 섬세한 손길로 상산자석벼루 만드는 예술인
40년 외길, 섬세한 손길로 상산자석벼루 만드는 예술인
  • 김미나
  • 승인 2018.09.14 14:04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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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혁수 상산자석벼루 명인

 

자연, 곤충, 동물 등 조각하며 다산과 풍요 기원하는 벼루 제작
“지역 전통문화인 상산자석벼루의 맥 이을 후학 없어 안타까워”

세 평 남짓한 작은 공방에서 그의 손길은, 아니 몸짓은 분주하다. 어깨의 힘으로 돌을 다듬고 섬세한 손길로 조각을 새기며 그 옛날의 벼루를 전통방식 그대로 만들어낸다.
그는 그렇게 홀로 상산자석벼루를 만드는 사람이다. '상산'은 진천의 옛이름이고 '자석'은 수성암 지대인 두타산 일대에서 나는 검붉은 돌이다. 이를 깎고 다듬어 만드는 상산자석벼루는 사실 고려시대부터 선비들은 물론, 외국 사신들에게도 최상품 벼루로 알려졌던 진천군의 귀중한 자산이다.
상산자석벼루는 세월의 흐름과 함께 사람들의 관심속에서도 멀어져 갔지만 아직 이를 계승하고 지키며 묵묵히 벼루를 만들고 있는 사람이 있다. 이 시대, 진천군의 마지막 남아 있는 벼루제작의 장인, 권혁수(60) 상산자석벼루 명인을 만났다.

상산자석은 지역의 소중한 자산
벼루는 아주 오래 전 선비들에게 볼펜과도 같은 필수품이었으니, 상산자석벼루는 지금으로 따지면 최고급 사양의 노트북 같은 존재가 아니었을까 추측해본다.
상산자석벼루는 조선시대 영의정을 지낸 남구만(1629~1711년) 선생의 기록에도 나올 정도로 당시 최고의 벼루로 이름을 알렸다. 남구만 선생은 시조 '동창이 밝았느냐'로 유명한 당대 최고의 문신이다.
권혁수 명인은 조선시대가 전성기였을 것이 분명한 이 오래된 물건인 벼루를 21세기인 지금까지도 40년의 세월 동안 홀로 만들고 있다. 처음 벼루를 만들게 된 계기는 우연이었을지 모르지만 현재 그에게 상산자석벼루는 의무감이자 자부심이다.
그는 “40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사실 포기하고 싶었던 순간들도 있었다”며 “하지만 진천의 소중한 자산인 상산자석으로 벼루를 만들어낸다는 자부심과 전통문화를 계승한다는 의무감으로 지금껏 벼루를 만들고 있다”고 말했다
그렇게 그는 전통을 계승한다는 자부심 하나로 스승인 김인수, 유길훈 선생에 이어 3대째 상산자석벼루를 만들고 있다.
그는 작업 초기에는 스승에게서 배운 그대로 전통문양을 강조한 '용' '매죽연' 모양의 작품을 주로 조각했다. 이제 그에게 이르러 상산자석벼루는 주변 자연과 곤충, 동물들을 통해 다산과 풍요를 기원하는 예술의 세계로 확장됐다.

올해 4월 벼루분야 공예명인 지정
그는 초평면 용정리 생곡마을 출신이다. 초평초, 진천중에 이어 진천농고(현 바이오마이스터고) 축산과에 진학해 과수석으로 졸업하며 축산인의 꿈을 키웠다. 하지만 그의 삼촌 권오준 씨와 죽마고우이자 상산자석벼루의 맥을 이어오던 유길훈 선생을 알게 되며 운명처럼 벼루 제작의 길에 들어서게 됐다.
그가 벼루 제작을 배우기 시작한 시기가 1978년, 올해로 꼭 40년이다. 5년 동안 스승의 가르침을 받다 지난 1983년 상산자석벼루 제작기능자를 이수하고 석진예술원을 개원했다.
이후 충북공예품 경진대회, 관광공예상품 경진대회 등 각종 대회에서 입상했으며 지난 2010년 진천종박물관에서 초대작가 작품전시회를 열었다. 같은 해 충북공예조합 이사에 위촉됐고 현재 감사로 활동중이다.
이처럼 다양한 활동과 여러 입상경력을 인정받으며 그는 올해 4월 충북도로부터 벼루분야 공예명인으로 지정됐다.

소박한 공방에서 벼루 제작
문백면 안골마을에 있는 그의 집 마당에 지어놓은 여섯 평 남짓의 컨테이너. 이 중 반이 공방이고 반은 전시실이다. 진천군의 우수한 전통문화예술이자 보물과도 같은 상산자석벼루를 만들어내는 명인의 공방치고는 사실 너무나 소박하다.
이 작은 공간에서 그는 두타산에서 채취한 자석 원석을 자르고 다듬고 조각하고 연마하고 칠해 완성품을 만들어 낸다. 이 지난한 과정 모두 그 혼자만의 몫이다.
그는 “진천의 전통문화예술인 상산자석벼루의 맥을 이을 후학이 없다는 것이 요즘 가장 큰 고민이다”며 “상산자석벼루가 이대로 맥을 잇지 못하고 사라져간다고 생각하면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길이 없다”고 말했다.
때문에 요즘 그의 마음은 더 분주하다. 지난 3일 진천 문화의집에서 벼루만들기 체험활동을 시작으로 그는 앞으로 세상에 상산자석벼루를 더욱 알린다는 계획이다. 40년의 외길, 그 고집과 끈기, 상산자석벼루에 대한 그의 간절한 마음이 어딘가 닿아 소중한 지역의 문화유산이 사라져가지 않기를, 그의 끝나지 않을 열정을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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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아영 2019-02-27 15:35:25
한번 가본다 하면서도 차일피일이네요~
소중한 문화유산에 관한 정보기사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