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근혜 제3회 인도네시아 아시안 패러게임 볼링 2관왕
이근혜 제3회 인도네시아 아시안 패러게임 볼링 2관왕
  • 박선호 기자
  • 승인 2018.11.12 12: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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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식 경기 1년 만에 2관왕 오른 볼링 여제(女帝)

아시안 패러게임 개인전 및 2인조서 금메달 획득 '망막색소 변성증' 불구 지독한 연습으로 정상등극

▲ 제3회 인도네시아 아시안 패러게임에서 딴 금메달 2개와 동메달을 목에 건 이근혜 선수. 손에 들고 있는 금메달은 각각 개인전 및 2인조서 획득한 것이다.
▲ 제3회 인도네시아 아시안 패러게임에서 딴 금메달 2개와 동메달을 목에 건 이근혜 선수. 손에 들고 있는 금메달은 각각 개인전 및 2인조서 획득한 것이다.


7㎏의 묵직한 볼링공을 레인 끝 핀을 향해 수 십 번 굴리다 보면 어느새 옷은 땀으로 범벅된다. 다음 날엔 젓가락 들 힘조차 생기지 않을 지경이다. 볼링은 그런 운동이다. 보통 정신력으로는 쉽게 하지 못할 운동인 것이다. 성인 남자도 숙달되지 않으면 손에 금세 힘이 빠져버리는 볼링. 그런 운동을 남들보다 불편한 눈으로 능수능란하게 하는 선수가 있다.
바로 이번 2018 인도네시아 아시안 패러게임 볼링 개인전 및 2인조 부문에서 금메달을 선사해 2관왕에 오른 이근혜(46·유영제약 소속) 선수다. 메달리스트답게 볼링 시구를 하는 그의 표정은 언제나 진지하기만 하다. 하지만 일상적인 대화를 나눌 때는 그저 시종일관 소녀처럼 밝게 웃는 이근혜, 선수 그의 금빛 시구 스토리가 궁금하다.
떠오르는 샛별 주목'
시각장애를 앓고 있어 15㎝ 이상의 세상은 잘 보이지 않는 이근혜선수는 그의 재능을 알아본 충북장애인볼링협회 허강연 전무이사의 권유로 지난 2017년 장애인 볼링 경기에 정식으로 데뷔했다. 선수로서는 뒤늦은 나이에 시작한 그였지만 지독한 연습벌레였던 탓에 실력은 금방 일진월보(日進月步)했다. 그는 지난해 일본에서 열린 국제시각장애인스포츠연맹(IBSA)이 주최한 세계시각장애인볼링선수권대회에서 시각장애인 선수의 기록이라고 믿겨지지 않는 300점 만점에 1점 모자란 299점을 기록하며 '장애인 볼링계의 떠오르는 샛별'로 주목 받았다. 이어 '2018 파라볼링 투어 홍콩' 대회에서 그는 패러 볼링 대회 사상 최초로 300점(퍼펙트)을 기록하는 신기를 보여줬다. 이런 뛰어난 기량 때문에 그는 주변인들로부터 “혹시 눈이 잘 보이는데 안 보이는 척 하는 거 아니냐”는 의심을 받는 해프닝이 벌어지기까지 했다.
볼링에 중독된 지독한 연습벌레
딸만 넷인 집안에서 셋째로 자란 그는 남자처럼 씩씩하게 자랐다. 어릴 적부터 태권도나 투포환 등의 운동에 재능을 보인 활발한 아이였던 그는 유독 또래 아이들 보다 벽에 많이 부딪히고 쉽게 넘어지곤 했다. 그와 가족은 처음엔 그게 그저 남들보다 시력이 나빠서 생기는 정도로만 생각했다. 하지만 나중에서야 병원에서 '망막색소 변성증'이라는 시야가 점점 좁아지는 유전병에 걸리고 말았다는 것을 진단을 통해 알게 된다. 그때부터 그는 '언젠가는 시력을 완전히 잃을 지도 모른다는 공포감'을 안고 살아가야만 했다.
실명의 공포에서 잠시라도 벗어나기 위해 그는 무언가에 몰두해야 했다. 그가 몰두한 것은 다름 아닌 운동이었다. 2008년 아마추어로 비교적 뒤늦게 시작한 볼링에서도 그의 몰두는 계속 됐다. 특히 아시안 패러게임을 준비하면서는 남들보다 1시간 일찍 일어났고 손가락이 골절되는 와중에도 훈련을 강행했다.
그에게 10개의 볼링핀은 그저 한 무더기로 흐릿하게 보일 터였다. 하지만 지독한 연습을 한 그에게 그건 문제가 되지 않았다. 악착같은 연습 덕분에 그는 인도네시아 아시안 패러게임 혼합싱글 TPB2(시각볼링) 및 혼성 2인조 TPB2(시각볼링) 부문에서 금메달을 따 2관왕에 오르는 기염을 토하고야 만다. 특히 혼합싱글에서는 성별 핸디캡을 극복하고 남자선수를 1핀 차로 이겨 패러게임 볼링 역사상 최대의 이변을 낳았다.
“언제나 희망 가지며 살아갈 것”
이근혜선수는 지난달 24일부터 사흘 동안 열린 제38회 전국장애인체육대회 볼링 경기에서도 개인전과 2인조 부문 금메달 2개를 획득하며 발군의 실력을 자랑했다. 운동선수로서는 최고의 전성기를 보내고 있는 그는 최근 좌골신경통으로 인해 몸이 많이 고생했다고 한다. 그러나 진정한 시련은 따로 있었다. 얼마 전 아들이 자신과 똑같은 유전병 진단을 받은 것이다. 그는 “병이 아들에게 유전된다는 것은 이미 짐작 했지만, 막상 병원에서 확진을 받으니 가슴이 덜컥 내려앉고 하늘이 무너지는 듯했다”고 당시 소감을 말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아들은 비록 장애판정을 받았지만 자신처럼 늘 긍정적인 생각으로 세상을 살아간다”며 “아들이 이번에 대학에 진학하며 장애인 관련 학과에 간 것을 보면 자신처럼 세상을 씩씩하게 살아갈 것이라고 굳게 믿는다”고 말했다.
이근혜선수는 지금도 시력을 점점 잃어가고 있는 중이다. 그럼에도 그는 희망과 긍정의 힘만은 잃지 않고 있다. 그는 요즘 건강관리에도 박차를 가하는 한편, 다음해에 또 열릴 전국장애인체육대회를 위해 전부터 합을 계속 맞춰왔던 우상영 코치의 지도아래 한참 연습 중이다. 무거운 볼링공을 활동보조 없이 혼자 들고 다니지만, 굴복할 그가 아니다. 그는 어릴 적부터 “인생은 끊임없는 극복 아니면 굴복이다”라는 자신의 좌우명을 언제나 되새기며 살아왔다. 어쩌면 그가 메달을 따낼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재능이나 훈련량뿐만 아니라 세상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희망의 눈' 덕분이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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