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경진천군민회 서정국 총무국장
재경진천군민회 서정국 총무국장
  • 강성진 기자
  • 승인 2009.09.03 17: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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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농심성불성사(以農心誠不成事)의 마음으로 고향진천을 사랑하는 출향인


처서가 지나고 백로가 임박하여 아침 저녁으로 제법 선선해진 9월초. 종합광고회사(주)나인애드의 대표이자 재경진천군민회의 총무국장으로 진천을 사랑하는 출향인 서정국(59)씨를 만났다.

내가 만난 서국장는 세월의 나이테를 가늠할 수 없는 다부진 체격과 꼿꼿한 몸매를 가진 건강미 넘치는 사람이었다.

서정국 대표는 1951년 백곡면 사송리 지구머리 마을에서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새벽부터 일어나 논에 거름을 져다주고 학교를 가야 했을 만큼 어렵고 가난했던 어린시절 이야기로 말문을 열였다.

“많은 자식의 노동력이 절실하던 농경시대에 가난을 숙명처럼 받아 안고 태어났습니다. 12년동안 초등학교시절 6km , 중고교 시절 8km를 매일 걸어서 통학을 하면서 버스를 타고, 자전거를 타고 통학하는 친구들이 제일 부러 웠답니다”며 “철이 들면서 고난을 벗어나야 겠다는 생각과 지금여기서 한탄만 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곳에서 삶의 지혜를 찾아야겠다 결심 했지요” 라는 소년시절의 이야기였다.

백곡초(34회), 진천중(18회), 진천농고를 나와 성균관대 사범대를 졸업했으며, 대학시절 어려운 가정형편을 이겨내야 했기에 아르바이트로 가정교사를 하면서 등록금을 마련했다고 한다.

그의 과외실력이 소문이 나면서 동국제약, 삼성그룹 가정에서 이루어진 과외일은 그에게 대학등록금 마련뿐만아니라 부모님이 계신 시골집에 송아지를 사주며 그가 결혼할 때쯤 어미소 4마리가 되면서 결혼자금까지 장만할 수 있었던 계기였다고 했다.

그는 유년시절부터 별명이 '아나운서', '국사박사'라고 했을만큼 명석 했었다.

1972년 당시 '100만인의 퀴즈'라는 전국적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던 퀴즈 프로그램에 나와서 20살밖에 안되는 청년이 대부분 역사문제로 이루어져 관련학을 공부한 나이 지긋한 어른들에게도 난해했던 문제들을 술술 풀어내며 월장원 기장원까지 차지하는 기염을 토하면서 고향의 자랑이 되기도 했던 인물이다.

퀴즈프로그램에 출연할 때마다 그는 “충북 진천에 사는 서정국 입니다”라고 자신을 소개했던 그의 마음속에서 막연하지만 고향을 향한 사랑과 애틋함이 깊게 싹트고 있었음을 알게한다.

그렇게 그가 대학을 졸업하고 정치경제(일반사회)과목 선생님으로 서울 풍문여고에서 2년간 교사생활을 하던 중 삼성그룹의 이건희 회장의 둘째 누나인 이숙희 여사와의 인연으로 1980년 삼성그룹에 입사하게 된다.

그렇게 입사하게된 삼성그룹에서 그는 경영지원팀, 삼성 인력개발원교수팀장, 삼성생명 노원지점, 북부지점장을 지냈고, 1998년 삼성 계열사인 컴인스(컴퓨터 조립)에서 관리본부장을 역임했다.

이후 휴대폰 배터리를 제조하는 (주)에피테크 대표로 있다가 2001년 현재의 (주)나인애드를 창립하게 된다. 또한 그는 화려한 수상이력도 가지고 있다.

(주)에피테크 대표시절 불공정거래 퇴치를 통한 투자자보호와 관련된 논문을 발표해 금융감독원장으로부터 최우수표창장을 수상하는 영예를 안았고 삼성인력개발원 근무 당시 최우수 강사로 선발, 2006년 진천군수표창, 2008년 진천군의회 의장표창상 등 화려한 이력의 소유자다.

연간 수십억원의 매출을 달성하고 있는 그의 기업인 (주)나인애드(서울 충무로)는 옥내외광고물 제작과 기업체 교육교재를 제작 납품하고 있다.

삼성생명 옥외 입간판 제작을 비롯해 삼성 휴먼센터, 삼성인력개발원 교육교재 제작, 현대건설 순창지역 고속도로 입간판 제작 등 많은 기업체와 지자체의 옥내외 사인몰과 입간판을 제작하면서 회사를 키워나가고 있다.

특히 현재 총무국장으로 있는 재경진천군민회(서울 역삼 사무실)의 홍보전시관과 진천읍에서 백곡방향 17번국도상에 있는 생거진천쌀 광고탑은 5년 전쯤 진천군과 협조로 만들어낸 그의 손길이 닿아있는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천시나 안성시의 경우는 중부고속도로상에 광고탑을 수km에 하나씩 설치할만큼 공격적인 지역홍보를 선도하고 있다” 면서 “내 고향인 생거의 땅 진천군을 전국에 알리는 다소 공격적인 홍보탑광고가 필요할 때이고, 기회가 닿는다면 자비가 들더라도 참여해 보고 싶다”는 숙원을 털어놓기도 했다.

일을 추진하다보면 모든 것이 순탄하게 다 이루어지는 법은 없다며 “권토중래(捲土重來:어떤 일에 실패하였으나 힘을 축적해 다시 그 일에 착수하는 것을 비유)하는 삶을 살자”가 그의 첫번째 좌우명이며 “이농심성불성사(以農心誠不成事:시골농부의 농사짓는 마음으로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하면 이뤄지지 않는 일은 없다)”가 그가 세상을 사는 이상향이라고 전했다.

두 아들의 아버지로 환갑의 나이가 된 서국장은 “내고향 진천군을 위해 봉사할 수 있는 자리가 주어진다면 기꺼이 봉사 하겠노라”고 약속하면서 “고향과 후배를 위해, 향우를 위해 보탬이 되어야한다는 사명감은 곧 그를 태어나게 한 고향에 진 빚을 갚는 길이 아니겠냐”고 서국장은 덧붙인다.

너와 내가 숨쉬며 뛰어놀던 저기만큼에 내 고향이 있기에 우리는 그 원동력으로 지금의 세월을 살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며 취재를 마무리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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