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승기 진천경찰서장
남승기 진천경찰서장
  • 정선옥 기자
  • 승인 2009.09.16 10:4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상훈 대표기자의 취중토크 스물한번째 손님


사람이 겉모습만을 보고 누군가를 판단한다는 건 적지 않은 오류를 불러일으키기 마련이다. 어렵게 마련한 자리이니 만큼 그동안 딱딱한 제복 속에 감춰졌던 남승기 진천경찰서장의 색다른 면모를 발견할 수 있기를 기대하며 약속 장소로 향했다. 지난 3월 24일 제59대 진천경찰서장으로 부임한 남 서장은 수개월씩 방송 3사의 헤드라인을 장식했던 굵직한 사건들을 도맡아 해결해 온 수사통으로 알려져 있다. 흔히 상상하는 드라마틱한 형사답지 않게 술을 전혀 못한다는 그였지만 오늘만큼은 술잔을 청해 취중진담을 기대해 보기로 했다.

Q 진천경찰서장으로 취임하신 지 6개월째에 접어들었는데 그동안 느끼신 진천군의 인상은 어떻습니까?
A 진천군은 한 마디로 축복받은 땅입니다. 지형적으로도 사람이 살기 좋은 환경을 가지고 있고, 기후가 온화해 다른 지역에 비해 큰 자연재난이 없을 뿐만 아니라 농작물이 잘 자라고, 지리적으로도 교통의 중심지에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군민들도 여유롭고 인심이 좋습니다. 정말 살기 좋은 고장입니다.

Q 그렇게 느끼셨다니 다행입니다. 얼핏 들어 알고 있습니다만 술을 거의 못하신다고 들었는데요.
A 예, 맞습니다. 체질적으로 술이 맞지 않는 모양입니다.

Q 프로필을 보니 경북 김천서 수사과장, 경찰청 형사 및 수사과 반장, 경기고양 형사과장, 서울 은평 수사과장, 서울청 마약수사대장, 광역수사대장, 대전청 수사과장 등 수사과의 요직을 두루 거치셨네요? 경찰 업무도 다양한 것으로 아는데 굳이 수사과를 선택한 이유가 있으신가요?
A 그건 아닙니다. 처음 파출소장을 할 때 당시 서장님께서 잘 할 것 같다면서 수사 쪽 일을 시키지 뭡니까? 그 뒤로 계속 수사계통에서만 일하게 되었습니다.

Q 그만큼 그 분야에서 탁월한 능력을 발휘하셨단 뜻 아니겠습니까? 그러면 어렸을 때 꿈은 무엇이었나요?
A 장군이 되는 것이 꿈이었습니다. 어린 마음에 故박정희 대통령이 썬글라스를 끼고 지휘를 하던 모습과 백마를 탄 나폴레옹의 모습이 얼마나 멋져 보였는지….

Q 그럼 구체적으로 언제부터 경찰의 꿈을 키워 오신 건가요?
A 사실 처음부터 경찰이 되겠다고 마음 먹었다기 보다는 어떻게 연이 닿아 시작을 했다는 표현이 맞을 겁니다. 지금은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는 후배가 좋은 기회니까 꼭 시험을 보라며 책을 사다 주기에 얼떨결에 시험을 보게 된 것이 합격까지 하게 된 것입니다.

Q 운동을 좋아하신다고 들었습니다만.
A 운동이 생활화 된 셈이지요. 매일 철봉과 바벨 등 운동을 꾸준히 합니다. 주말에는 집사람과 함께 하구요. 주말에 내려오면 교회에 가는 일부터 거의 모든 활동을 같이 합니다.

Q 사모님이 굉장히 미인이시라고 들었는데 두분은 어떻게 만나셨습니까?
A 인생에 여러 개의 관문이 있지만 그 중 첫 번째 관문이 결혼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스스로가 부족함이 많은 사람이란 걸 알기 때문에 저를 보완해 줄 사람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늘 해왔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팔불출이라고 웃으시겠지만 예쁘고 똑똑하고 키가 큰 집사람을 보고 첫눈에 반해 이 사람과 꼭 결혼해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그래서 대학에 들어가서 아직 고등학생이던 집사람을 김천역 앞 고려당이라는 빵집으로 불러내 제 마음을 전했지요. 제 입장에서야 미리 결심한 바였으니 새로울 것이 없었지만 집사람 입장에서는 어이없는 이야기였을겁니다. 난데없이 나타나서 자기랑 반드시 결혼을 해야 한다고 으름짱을 놓았으니 말입니다.

Q 그래도 인연이 닿았으니 결혼에까지 이른 것 아니겠습니까? 들리는 소문에 사모님 사진을 꼭 지니고 다니신다면서요?
A 집사람 뿐만이 아니라 지갑에 아이들 사진까지 꼭 넣어 가지고 다닙니다.

Q 정말 가정적이시네요. 아까 두 분이 운동을 함께 하신다고 하셨는데 주로 어떤 운동을 하시나요?
A 제가 하는 운동은 집사람이 늘 같이 하고 싶어하기 때문에 함께 하는 것이 많지만 그래도 최근 배우기 시작한 인라인스케이트와 승마를 즐깁니다. 승마는 시작한 지가 꽤 오래돼서 집사람도 말을 잘 타는 편입니다. 팔을 한 번 부러뜨리긴 했지만요. 습보훈련을 하게 되면 속력이 시속 75㎞까지 이르는데 호흡을 죽여가며 달리는 그 쾌감이란 이루 말 로 다 표현할 수 없습니다. 그게 바로 승마의 매력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Q 경찰의 역할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A 경찰이라는 직업은 다른 어떤 직업보다도 근무 분야가 다양하고 국가와 국민을 위해 공헌할 수 있는 기회 역시 많은 직업입니다. 경찰의 업무는 단순히 단속이나 검거, 제재 같은 단순한 업무에 국한된 것이 아닙니다. 이제는 한 단계 업그레이드 시킨 치안서비스가 필요합니다.

Q 얼핏 상당히 피상적인 듯 보이는데 좀 더 자세히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A 얼마 전 방화범을 검거했습니다. 연쇄 사건이었기 때문에 범인을 검거함으로써 차후로 발생할 수 있는 추가 범죄를 예방했다고 볼 수 있지만 문제는 피해자입니다. 정작 피해를 당한 주민들은 어떻게 해야겠습니까? 피해자가 워낙 어려운 상황이었기 때문에 (사)청주범죄피해자지원센터와 협의해 재정지원을 요청한 상탭니다.

살인이나 상해 사건이 아닌 방화사건은 사실 해당 사항이 아니었지만 이번 일을 계기로 전국적으로 방화 피해자에 대한 구제가 이루어졌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이렇게 사건의 예방이나 범인의 검거는 물론 피해자의 구제까지 신경 쓰는 종합적인 치안서비스가 이루어져야 합니다.

Q 그러고 보니 진천경찰서 내에 범죄피해자지원 상담팀이 별도로 운영되고 있던데 같은 맥락이겠네요.
A 그렇습니다. 이곳에서는 형사절차 안내와 범죄로 인한 피해자 구제, 형사재판 과정의 민사상 손해배상 청구 등 범죄 피해와 관련된 정보 제공과 상담, 구제에 관한 전반적인 민원을 처리해 드립니다. 좀 전에 거론했던 방화사건의 경우도 재판과정에 피해자가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는 배상명령 신청제도가 있습니다. 비록 범죄를 저지른 것은 자식이지만 그 가족들이 피해자의 손해에 대한 배상을 해주게 되면 피의자 역시 형량이 감량되는 제도입니다.

이렇게 되면 피해자와 피의자 양측이 다 어느 정도 구제를 받게 되는 셈입니다. 그러나 일반인들은 이런 제도가 있다는 사실 조차도 모르는 사람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구제받지 못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Q 그런 제도가 있다는 것은 저도 오늘 처음 알았습니다. 경찰이 기존의 업무보다 한 차원 높은 통합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는 말씀이시군요. 그러면 이쯤에서 진천군민 누구나가 가장 궁금해 했을 질문을 하나 드리겠습니다. 처음 부임하신 직후부터 강화된 음주운전 단속에 유언비어가 나돌 만큼 진천군이 떠들썩했습니다만 특별히 음주운전 단속에 총력을 기울여 오신 이유가 궁금합니다.
A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라야 하듯이 진천에 오면 이 고장 나름의 지역정서와 상황에 맞는 치안행정을 펼치는 것이 맞습니다만 음주단속은 차원이 다른 문젭니다. 어느 조직이든지 명분만 내세우다 보면 경직되기 마련입니다.

생명을 앗아가고 공적자금이 유입되는 문제라면 당연히 대책을 세우고 사고 예방에 총력을 기울여야 하겠지요. 정당한 일이라면 직위를 걸고서라도 단호히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초기에 거부감을 갖는 분들도 많았는데 오히려 지금은 잘 한 일이라고 칭찬해 주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지속적인 사업에 대한 주민들의 이해와 칭찬이 또한 큰 보람이겠지요.

Q 단속 효과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A 음주운전 단속은 단순히 음주 운전자만을 적발하기 위함이 아닙니다. 물론 음주운전으로 인한 사고 예방으로 많은 인명과 재산을 보호함은 물론 5대 범죄 예방이라는 부대효과까지 얻을 수 있습니다. 실제로 음주운전 단속을 실시한 이후 관내 5대 범죄율이 30%나 감소되었습니다. 범죄자의 이동경로가 제한되기 때문에 당연히 범죄가 줄어들 수밖에 없습니다. 뿐만 아니라 야간 단속은 불법 게임장 등 사행성 게임장 단속에도 탁월한 효과가 있습니다.

Q 거기까지는 저도 미처 생각을 못했네요. 음주운전 단속뿐만 아니라 평상시에도 교통사망사고 예방을 강조하고 민·관·경 협조 치안체제를 구축해 나가고 계신데 그 이야기도 좀 해주시지요.
A 사건·사고는 개인의 재산뿐만 아니라 생명까지도 직결될 수 있는 문제입니다. 험한 표현이지만 살인으로 인한 사망이나 교통사고로 인한 사망이나 똑같은 생명입니다. 많은 분들이 협조해 주신 덕에 금일까지 87일 째 교통사망사고 제로라는 큰 불행 없이 이어오고 있습니다. 과하다 싶을 만큼 단속을 한다는 이야기들을 하시지만 생명은 고귀한 것입니다. 내 아이가, 내 부모가 교통사고로 희생되었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어느 가족이든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는데 많은 시간이 걸리겠지만 만약에 사망자가 한 가정의 생계를 책임지는 가장이었다면 그 집안의 어려움이란 이루 말 할 수가 없겠지요.

Q 서장님의 그런 진심이 통했기 때문에 전례 없이 많은 기업과 민간단체의 치안 협조가 이루어지는 것 아니겠습니까?
A 정말 많은 분들이 협조해 주고 계십니다. 특히 우리 지역에 있는 기업체들이 1촌1사 자매결연을 통해 지역에 사고 예방 효과가 탁월한 CCTV나 경광등 같은 시설물을 지원해 주민이 보다 안전한 환경에서 생활할 수 있도록 지원해 주고 있습니다. 물론 기업이 영리를 추구하기 위한 목적을 가지고 운영되기는 하지만 어떻게 하면 국가와 사회에 도움이 될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기업만이 진정 국가에 소속된 기업이라 할 수 있습니다. 다행히 요즘은 대부분의 기업들이 사회 환원활동에도 적극적이어서 앞으로 지역 주민들이 더 많은 혜택을 받을 있을 겁니다.

Q 예전에 한 보도자료를 보니 경찰서내에서 타임캡슐 행사를 가지셨던데 그 이야기도 좀 해 주시지요.
직원들에게 나의 다짐과 목표를 설정한 계획서와 함께 사진을 보관했다가 3개월이나 6개월에 한 번씩 개봉하여 자신을 돌아보고 미래를 재설계하는 시간을 갖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단순히 업무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고 삶 전체에 대한 고찰을 해 보는 겁니다.

옛 말에 지피지기면 백전불태(知彼知己百戰不殆)라는 말이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직원들에게 지기지피(知己知彼)를 강조합니다. 남을 알고 나를 안다는 건 결국 남의 생각을 읽어내고 그에 대한 대응책을 세우는데 급급해 남의 생각에 휩싸여 가게 될 뿐입니다. 우선 나를 알아야 내 인생을 설계할 수 있는 겁니다. 주체적인 나의 인생을 설계해 보자는 의미에서 타임캡슐도 만들게 된 겁니다. 목표를 세웠다고 해서 다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중간 점검은 필요하지요.

Q 서내에서 목민심서 읽기 운동을 펼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 글을 읽는 군민들에게도 목민심서를 소개해 주시지요.
A 목민심서가 주는 가르침은 현대를 사는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관속을 통솔하는 근본이 무엇보다도 몸가짐을 바르게 하는 데에 있고, 목민관의 올바른 정신 자세야말로 밝은 행정의 원천이 된다는 내용은 비단 공직자뿐만 아니라 일반인들에게도 중요한 덕목입니다. 그래서 저는 전 직원들에게 이 책을 권하고 있습니다.

Q 처음 오셨을 때부터 직장 내 분위기 쇄신에 신경을 많이 쓰셨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A 처음에는 저를 따라오기 힘들어 했던 직원들도 오히려 지금은 제가 할 일이 너무 없을만큼 자율적으로 움직입니다. 제가 직원들에게 한 가지 더 당부하는 것은 공사를 분리하지 말라는 겁니다. 자칫 오해의 소지가 있는 말입니다만 사적으로 싫어지면 공적으로도 싫어질 수 있습니다. 규정에만 따르게 되고 업무가 유기적으로 진행되기 어렵습니다. 좋은 일은 함께 즐거워해 주고 힘든 일은 서로 나눠주다 보면 공적으로도 업무 협조가 잘되더라는 말입니다.

Q 이 땅의 젊은이들에게 한 말씀 해 주시지요.
A 저는 젊은이들에게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라는 이야기를 해주고 싶습니다. 진정 실패한 사람은 실패를 했기 때문이 아니라 포기를 한 사람입니다. 실패를 했기 때문에 성공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저는 제가 부족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늘 남보다 두 배는 더 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모자란 사람이기에 더 열심히 일했습니다. 그러면서도 늘 열심히 하는 것을 즐겼습니다. 직원들에게도 그런 이야기를 늘 합니다만 일을 즐기십시오. 인생은 행복하기 위해 태어난 것입니다.

Q 마지막으로 진천서 직원들과 군민들에게 지면을 빌어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해 주시지요.
A 가끔 사무실에 혼자 앉아 이런 생각 저런 생각을 하다 보면 직원들에게 감동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닙니다. 업무에 충실하고 자율적으로 움직이고 보다 성숙된 치안서비스를 군민에게 제공하기 위해 고민하는 직원들을 볼 때마다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또한 경찰을 대표하는 입장에서 차츰 저에게 지지와 신뢰, 성원을 보내주시는 군민들에게도 진심으로 감사하는 말씀 드립니다.

한가지 당부하고 싶은 건 무엇보다 우선시 되어야 하는 것이 생명의 존엄성이라는 겁니다. 저희 경찰이 하는 일이 주민의 재산과 생명을 지키는 일임을 생각해서 적극 지지해 주십시오. 진천경찰서는 상식의 도를 벗어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살기좋은 고장, 기업하기 좋은 생거진천을 만드는 데 적극 협조하고 질적으로 성숙된 치안서비스를 제공하는 경찰로 거듭나겠습니다.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킨다'
경찰관 입직 선서 시 나오는 대목이다.
남 서장은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킨다는 원리원칙에 충실하면서도 언제나 더 먼 안목으로 그 이상을 행하려 노력하고 한 번 마음먹은 일은 끝까지 해내고야 마는 집념과 뚝심이 남다른 인물이었다.
힘없는 목도리 도마뱀이 강자 앞에서 목을 부풀리며 허세를 부린다는 이야기를 예로 들어가며 자신 역시 모자람이 많아 인상이 강해지는 모양이라고 웃는 남 서장은 겸손하면서도 사뭇 진지했다.
눈에 익은 딱딱한 제복을 벗고 사석에서 만난 남서장은 경상도 사나이 특유의 남자다운 매력이 넘치는 소탈한 모습을 지녔음에도, 적당한 타협을 모르는 강직함은 천상 경찰공무원이구나 하는 생각을 갖게 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