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해외여행이나 어학연수는 일부 계층만이 누릴 수 있는 특혜가 아니다.

해외여행에 드는 경비도 많이 저렴해 졌고 다양한 수요층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상품의 등장과 무엇보다 유달리 높은 우리나라 학부모들의 교육열은 어린 학생들의 해외 어학연수를 대중화 시킨 지 오래다.

덕분에 바빠진 건 여권 발급을 담당하는 공무원들이다.

진천읍사무소와 이웃한 진천군청 종합민원실은 하루 종일 저마다의 사유를 안고 찾아오는 민원인들로 북적인다. 휴가철 내내 여권을 발급받으려던 이들로 북새통을 이루던 여권민원과는 이제야 비로소 한숨을 돌린 듯하다.

종합민원실 문을 열고 들어서면 정면의 여권발급 창구에 앳된 얼굴의 청년이 보는 사람까지 기분 좋아지게 만드는 환한 얼굴로 민원인들을 맞는다.
웃을 때 더 작아지는 눈이 매력이라는 이 젊은 청년이 바로 오늘의 주인공 이산매씨다.

이제 11개월 차의 햇병아리 신참은 누구보다 이른 아침을 맞는다.

아직 부족한 것이 많아 아침에 챙길 것이 많다며 민원인과의 마찰을 능숙히 해결하는 선배들을 보면 부럽기만 하단다.

흥덕구청에서 공익근무를 했던 인연으로 행정공무원을 택하게 되었다는 그는 공무원이 된 것을 후회해 본 적이 없냐는 기자의 질문에 '시작한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후회하냐?'며 반문한다.

한번 낙방을 했으니 준비하는 데 2년은 걸린 셈이라며 전공과는 다른 분야지만 해 볼만 한 직업이라고 이야기 한다. 민원인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이 또한 본인의 보람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여권발급 업무는 정해진 법령에 따른 것이어서 민원인들과 큰 마찰은 없지만 개인의 신상 파악을 위한 정보 확인이나 문서 입력, 사진 스캔 등 처리하는 시간이 길다 보니 민원인이 몰리는 휴가철에는 몇 시간씩 기다려야 하는 민원인들을 보며 마음이 급해진단다.

한가할 때는 하루 몇 건 되지 않던 업무가 7월 들어서면서 많은 날은 하루 30건 이상씩 접수되다 보니 기다리는 민원인들도 자연 짜증이 날 수밖에 없다.
그래도 민원인들이 업무의 성격을 이해하고 시원한 음료수를 건네곤 해 공연히 죄송한 마음이 들어 몸 둘 바를 모르겠더란다.

유난히 채워야 할 칸이 많은 여권 발급 신청서는 일일이 설명해 주어야 하는 경우가 많다.

서류상 일반인들이 흔히 쓰는 용어들이 아닌 낯선 용어가 많고 영문 등 특별히 주의해야 할 사항이 많아 차라리 여권 서류의 경우 대필이 가능한 것이 다행이란다.

익숙지 않은 서류에 서먹서먹했던 민원인들도 이산매 씨의 편안한 웃음 앞에 꼬옥 쥐고 있던 서류를 슬며시 내보인다. 거기다 돋보기를 빠뜨린 어르신들에게도 이산매씨는 친절한 도우미를 자처한다.

서류도 서류지만 여권발급 민원창구에서만 볼 수 있는 풍경이 또 하나 있다.

착한 딸 덕에 비행기 한 번 타보게 되었다는 어르신들의 자랑 섞인 이야기에, 마냥 들뜬 행복한 신혼부부의 웃음에, 혼자 유학 갈 어린 자녀에 대한 걱정이 태산인 젊은 엄마의 한숨에, 덕분에 여행 잘 다녀왔다는 반가운 인사까지 청사 밖 사람 사는 이야기들이 피어난다.

아버님이 지어주셨다는 산의 맵시를 뜻하는 그의 이름은 듣기에도 산뜻하고 기억하기도 쉽다. 그래서인지 그의 이름까지 기억해 주는 민원인들이 많다.
아직 얼굴에 개구쟁이 같은 앳된 모습이 남아있는 이산매 씨는 웃는 모습이 너무도 잘 어울린다. 덕분에 민원인들이 자신을 편하게 생각해 주시는 것 같다며 또다시 수줍게 웃는다.

사람을 대면한 상태에서 상대방의 진심을 읽어낸다는 것이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다.

매번 여권 발급 창구 앞을 지날 때마다 얼핏 보이는 그의 웃음 띤 얼굴에서, 그리고 잠시 동안이나마 그와 대화를 나눈 짧은 시간에 받은 느낌에서 그를 칭찬한 많은 민원인들도 똑같이 받았을 편안함과 세심한 배려가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