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한번째 칭찬주인공)유순호 덕산면사무소 총무팀
(서른한번째 칭찬주인공)유순호 덕산면사무소 총무팀
  • 정선옥
  • 승인 2009.11.01 13: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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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라는 이름으로 함께 지켜야 할 더 큰 가치가 있는 법

가을 햇살이 제법 따가운 토요일 아침, 조용한 청사 앞마당에 사람 그림자가 비친다. 목마른 화초에 시원한 물을 뿌려주고 있는 유순호 씨다.

처음 유순호 씨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무심코 지나쳤었다. 그런데 한 번, 두 번, 이사람, 저 사람에게서 이야기를 듣다 보니 어느 새 눈길은 덕산면사무소를 방문할 때마다 그의 등을 따라다니고 있었다. 정말 따라다닌다는 표현이 맞을 만큼 길지 않은 대화를 청하기 위해선 그의 부지런함 만큼이나 발 빠르게 움직여야 했다.

경북 예천이 고향이라는 그가 서울에서 하던 사업을 접고 처가가 있는 곳으로 내려와 진천사람이 된 지 벌써 14년째다. 면사무소에서 청사관리를 도맡아 온 지도 6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잠시도 가만히 앉아 있질 못하는 그의 성격에 많지 않은 농사일은 그를 무료하게 했다. 그래서 지인의 소개를 받아 시작했던 산불감시원 일을 그만두고 면사무소로 자리를 옮긴 지 수년이 지났건만 그의 차에는 언제나 불을 끌 수 있는 장비들이 실려 있다. 불이 났다는 신고를 받고 면사무소 직원들이 출동을 할라치면 어느 새 현장에는 유순호 씨가 먼저 도착해 불을 끄고 있다. 내 것, 내 일이라고 이름 지어진 것만이 소중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함께 지키고 만들어 가야 하는 더 큰 가치를 아는 까닭이다.

매일 아침 7시가 채 되기도 전에 청사를 개방하고 민원인들을 맞을 만반의 준비를 하는 그는 청사 내외부의 청소와 정리를 도맡다 시피 한다. “내가 하기 싫은 일은 남도 하기 싫은 법이고, 내가 힘들면 남도 힘든 법이니 차라리 내가 조금 더 움직이는 것이 낫다”는 그의 부지런함과 희생정신 덕에 덕산면 직원들은 편하지만은 않은 혜택을 누린다.

하나부터 열까지 친정엄마처럼 먼저 챙기니 직원들은 손쓸 겨를이 없다. 오랫동안 사업체를 경영해 온 탓에 전체를 보는 관리자의 안목으로 아침에 국기 게양부터 회의실 준비, 외부 인력 관리까지 청사의 살림을 꼼꼼히 체크하고 준비한다.

그러나 유순호 씨가 회자되는 이유가 단지 부지런함 때문만은 아니다. 그와 소주라도 한 잔 기울여 본 사람이라면 그의 호탕하고 재치 있는 인간적인 매력에 또 한 번 반하게 된다. 이렇게 사람 좋은 그가 인상을 쓸 때가 있다. 등산과 낚시를 좋아하는 그는 행락객들의 무신경함을 그냥 넘기지 않는다. 빈병이라도 함부로 버릴라치면 유순호 씨의 호통이 뒤통수에 떨어진다.

가끔 꾸짖는 그에게 대드는 젊은이들도 있지만 불의와 타협할 줄 모르고 규칙과 예의를 소중히 생각하는 그가 그런 따위를 겁낼리 없다. 우리 시대에 진정한 어른이 없다고 이야기 하지만 그를 만나면 유년 시절의 기억 속에 남아 있는 따뜻하고 섬세하지만 때론 엄한 표정으로 손주를 꾸짖는 할아버지가 생각난다.

덕산면사무소는 유순호 씨에게 단순한 직장 이상의 의미가 있다. 청사를 지을 때부터 구석구석 그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다.

워낙 꼼꼼한 성격의 그인지라 당시 현장 소장과 마찰도 많았다고 한다. 자기 집을 짓듯 자재 하나에 까지 애정 어린 숨결이 닿아 있다.

유난히 재주가 많은 유순호씨 덕에 청사의 웬만한 수리는 남의 손을 빌리지 않는다. 단지 장비가 없어서 못할 뿐이라며 웃는 그는 못 고치는 것이 없고 못 만드는 것이 없는 만능 맥가이버다.

언젠가 누군가가 그를 가리켜 '아름다운 사람'이라는 표현을 썼었다. 스스로 아날로그 세대임을 자처하지만 그 의미가 시대의 흐름에 대한 뒤쳐짐이라는 뜻은 아닐 것이다. 단순히 '부지런하다'라는 표현만으로는 흡족하지 않은 그이지만 오히려 삶을 즐기고 관망하는 여유는 갓 쓰고 뒷짐 진 한량을 무색케 한다. 그의 이러한 여유는 삶에 대한 사려 깊은 통찰과 순간순간 쏟아 붓는 열정에서 오는 듯 했다. 아마도 그런 표현을 썼던 이도 나와 같은 생각을 했을 것이다.

연신 웃으며 이야기하는 유순호 씨에게서 주변 사람들을 모두 행복하게 해줄 수 있을 것 같은 유쾌함이 가을 햇살을 타고 따듯하게 전해져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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