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천군 덕산면 주공아파트
진천군 덕산면 주공아파트
  • 최나훈
  • 승인 2009.11.16 1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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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탕이 시골인심, 두터운 콘크리트벽이 싸리문 인심으로…


우리가 돌아가는 곳, 집이란 닻이자 덫이다. 안주하려는 욕망과 벗어나려고 하는 욕망이 팽팽히 길항하는 곳이다.

사진이나 그림에는 유난히 '귀로'라는 제목의 작품이 많다. 그런 작품들을 만날 때마다 우리가 얼마나 허약하고 불안하며 위안과 안식처를 필요로 하는 존재들인가 하는 생각을 새삼 하게 된다.

인간은 원래 흩어지려는 습성을 갖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가족이라는 제도가 생겨났고 집이란 안식처를 갖게 되었는지 모른다. 가족처럼 오매불망 붙드는 인심이 있다. 그런, 마을이 덕산면에 고즈넉이 자리 잡았다.

불협화음 허문 시골인심
덕산면사무소와 키 재기를 하며 풍만한 인심을 뿌리로 우두커니 서 있는 덕산주공아파트. 2007년 완공돼, 284세대 600여명이 17평, 20평, 25평으로 각각 나눠 살고 있다.
주공이 들어서기 전만해도 덕산에는 큰 아파트가 없었다. 주공이 들어서자, 입주민들의 마찰이 일기 시작했다. 아파트 생활을 처음 접하다보니, 소음문제로 다퉜다. 덕산주공아파트는 70%이상 외지에서 입주했다. 시골에 기반을 둔 이주민이다 보니, 콘크리트를 벽에 맞댄 공동체 생활은 처음인지라 초기의 불협화음은 다반사였다.
바탕이 시골인심인지라, 두터운 콘크리트벽이 싸리문 인심으로 바뀌었다. 넉넉한 이해심에 관리사무소에 민원제기는 사라졌다. 음식이라도 할라치면 앞집, 옆집, 윗집이 먼저 맛을 본다.
활발한 공동 활동을 통해 황혼 길에 접어든 어르신들은 삶을 다시 꽃피우고 있다. 노인들은 노란 어깨띠를 두르고 아파트는 물론 면사무소와 면내 관공서 또는 후미진 곳 등을 누비며 쓰레기를 줍는다. 힘겨운 다리를 이끌고 허리를 굽이는 어르신들을 보면서 젊은이들은 부끄럽다는 표정이다. 처음엔 아파트운영비를 폐지수집으로 충당하다가 지난해까지 조경업자들이 어르신들에게 단지 내 화단정리를 해주는 댓가로 소정의 봉사료를 지급해 운영비를 충당했다 한다.

공무원 달달 볶는 '억척'아줌마 이장님
최은경 이장은 면내 유일의 여성이장이다. 공동체를 위해서라면 물불 안 가리는 다부진 여성이장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면사무소 공무원들을 달달 볶아가며 주민들의 편안한 삶과 양질의 혜택을 위해 동분서주하는 모습에서 일에 대한 열정을 느낄 수 있었다.
최 이장은 경로당에서 부녀회에서 어르신들게 식사를 대접할 때면 지역 유지분들도 함께 자리에 모신다. 이때, 몇몇 분들은 봉투를 들고 와 어르신들 극진히 모시기를 바라다며 고마운 당부도 한단다. 음식은 어르신들도 집에서 가져 나와 이웃과 함께 한다. 어르신 자제 중에서는 쌀 한 포대를 성큼 내놓고 가는 사람도 있다.
최성진 관리소장은 “빈대떡이나 고기를 구우면 으레 관리소에 내놓고 가시는 분들이 많다”며 공동체의 인심에 칭찬이 입에 마른다.
윤인순 부녀회장은 노인정에서 국수를 삶으면 덕산장날 외지에서 온 장꾼들에게도 대접하며 인정을 나눈다고 자랑이다.
이렇듯, 훈훈한 인심이 옹기종기 모여 일가를 이룬다. 덕산주공공동체는 의료기 나 운동기구가 여타 아파트에서도 볼 수 없을 정도로 잘 갖춰져 있다. 안마기와 지압침대며 운동기구들이 경로당 내부에 설치돼 노인들의 건강생활에 보탬이 된다. 아파트 한 켠에 위치한 노인정은 함께 식사도 하고 이야기도 나누는 공동체주민의 사랑방으로 손색이 없다.

여기저기 만삭인 새댁, 아이들이 주렁주렁
젊은 새댁들은 이사만 왔다하면 아기를 가진다. 터가 좋아서일까 금슬이 좋아져서 일까. 공동체 단지내에는 젊은 엄마와 갓 걸음마를 하는 아기들을 쉽게 볼 수 있다. 엄마가 부르니 아기소리가 아장아장 메아리치는 듯하다.
단지 내 환자, 혹은 중풍 등으로 고통 받든지, 아니면 장애우가 있다면 보살핌도 이웃의 몫이다. 보건소나 자원봉사센터에 수시로 연락을 취해 의료정보 등을 알려주고, 때로는 휠체어를 지원케 해 준다. 노인들에게는 수지침 무료봉사도 병행한다.
언제쯤인가, 희망근로노인들이 찾아와 화단가꾸기를 할 때, 부녀회에서는 빈대떡과 막걸리, 수박 등을 대접해줘 주공공동체의 인심이 말뿐이 아님을 사실로 보여줬다. 이때, 희망근로자들은 “어디에서도 이런 접대는 없었다”면서 진심으로 고마워 했다한다.

노인들, 웃음 속에 행복만이 녹아
아파트 경로당 아랫목에 몸과 마음을 푸니 정겹기 그지없다. 곤고한 세상살이의 옹이 밖힌 매듭들이 사르르 풀어지는 듯하다. 벽 한 켠에 걸린 사진틀을 바라본다. 사진틀이 오늘따라 눈 속 깊이 들어온다. 가슴이 더워 오는 건 어쩐 일일까. 공동체 어르신들의 봉사활동 모습이 빼곡이 걸려 있다. 파리똥이 켜켜이 앉은 낡은 틀 속의 사진들은 종류도 여러 가지다. 크기뿐 아니라 표정과 포즈도 다양하고 바랜 정도도 각기 다르다. 희미한 단청처럼 변색되어 가는 사진이 있는가 하면, 갓 현상한 듯한 산뜻한 컬러 사진도 엿보인다. 노란띠를 두르고 쓰레기를 줍는 어르신들의 모습에서 고단함은 보이지 않았다. 웃음 속에 행복만이 녹아 있을 뿐이다. 평생 자신을 희생해가며 베풀기만 하는 우리네 어머니들의 인정과도 같은 그런 따뜻함이 비로소 느껴졌다. 나누는 삶을 살아야한다고 얘기하면서도 도시의 각박함 속에 갇혀 자신만을 알고 채우려는 젊은이들, 그들이 부끄러울 수도 있겠다.
교양이나 지성으로 치장되어있지 않았어도, 말이 앞서는 세태에 절약과 나눔을 실천하는 어르신이야 말로 진정한 주인이자 참다운 이웃으로 보아지기 때문이다.



/우/리/동/네/사/람/들/

최은경 이장
최은경 이장
시골인심이 살아있는
주공공동체를 위해 발이 붓도록 뛸 것.

처녀 때, 서울에서 공무원 경험이 있던 최 이장은 당찬 여성으로 소문이 나있다. 그의 결혼전 짧은 에피소드 한 토막을 소개할까 한다. 명절날 고향 덕산에 내려오면 늘 아들과 연결시켜 주시려는 시어머니를 만났다. 길거리에서 해 지는 줄 모르시고 아들자랑하시는 모습, 교통사고가 나서 내가 병원에 입원해 있을 때도 과일을 사 들고 와서는 며느리가 돼 달라며 시어머니는 찾아 오셨고, 결국은 시어머니의 간곡한 부탁과 정성에 두 손 두 발 들었단다. 이후, 결혼과 함께 서울생활과 공무원을 접고 고향으로 내려와 생활하고 있다. 그녀는 10여년의 공무원 경험을 살려 주민들에게 조그만 혜택이라도 돌아 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생각이다. 화합과 단합, 무엇보다 시골인심이 살아있는 주공공동체를 위해 발이 붓도록 뛰어 보겠다는 당찬 포부를 밝혔다.


안갑순 노인회장
안갑순 노인회장
젊은이들의
귀감 되도록 노력할 것.

“이장님과 부녀회장님이 노인들을 위하는 마음이 남달라요. 며느리나 딸 같다 할까요”
갈수록 고령화가 진행되면서 젊은이들의 수는 줄고 노인의 수는 늘고 있다. 부녀회에서 준비하는 노인들을 위한 식사대접 등은 쉬운 일일 것 같지만 막상 실행해 보면 벅차다. 그만치 노인을 위한 진심의 배려가 깃들여 있어야 가능하다. 늘 감사하다는 생각뿐이다. 노인회에서는 면내를 돌아다니며, 쓰레기 줍기 등의 행사를 펼치며, 젊은이들의 귀감이 되려 노력하고 있다. 또한 종이꽃을 접어 면사무소 등 기관단체에 나눠주며 노인들의 여가활동에도 전념한다.


조성우 새마을지도자
조성우 새마을지도자
제 키보다 담을 낮춘
옛 농가의 도타운 인심.

아파트 주민들을 만나 취재하고 있을 때, 사비로 캔음료수를 남을 만치 사가지고 와 노인들과 주민들에게 나눠주던, 그에게서 넉넉한 인심을 엿 볼 수 있었다. 그는 임대계약기간이 있는 주공공동체의 특성 즉, '언젠가는 여기를 떠난다'란 생각에 이웃의 정이 없을 법도 한데, 이곳은 여타 주공과는 사뭇 다른 모습을 보인다고 말한다. 아파트라기보다는 제 키보다 담을 낮춘 옛 농촌의 모습과 흡사하다며 도타운 이웃 간의 인심에 뿌듯해 했다.


윤인순 부녀회장
윤인순 부녀회장
노인 공경하고
환경정화 활동에 앞장설 것.

“대전이 고향입니다. 여러 곳을 두루 다녔지만, 이곳만한 곳이 없습니다” 현재 2년째 정착중인 그녀는 처음에는 1년만 살고 이사를 가려 했단다. 이장님을 알고부터 그의 이웃을 챙겨 주려는 열정적인 모습과 순박한 인심, 환경이 마음에 들어 이곳에 터를 잡게 됐다고 말한다. 관리소장과 직원들이 주민들의 애로사항이 있으면 즉시 시정조치 해 줘 공동체 생활에 아무런 불편이 없다고 자랑이다. 부녀회에서는 향후, 노인들을 위한 활동과 아파트 환경정화에 앞장 설 것임을 다짐했다.


최성진 관리소장
최성진 관리소장
주민들의 때 묻지 않은
순수함에 매료.

짧게는 몇 년, 길게는 십 수 년 동안 내 집 마련이나 좀 더 큰집으로의 이사를 꿈꾸거나 시도하던 사람들의 터전인데도, 이곳의 인심이 남다르다는 그는 청주에서 출퇴근 한다. 도시와 비교 할 때, 주민들의 때 묻지 않은 순수함에 매료된단다. 고기며, 음식이며 관리사무실 직원들 맛보라고 관리사무실에 놓고 가는 주민들에게 감사의 말을 전한다. 단지 내 시설하자나, 불편사항이 있으면 내 가족의 일처럼 성심껏 처리 할 것이라 밝히고, 이웃사랑의 정신이 지속되기를 바랐다.






우리동네 가볼만한 곳 - 이영남 장군 묘소


영남장군은 본관이 양성(陽城)으로 덕산면 기전리에서 태어났다.
선조 17년(1584) 무과에 급제해, 선조 25년(1592), 장흥부사(長興府使)로 있을 때 임진왜란이 일어나 옥포(玉浦)에서는 원균을 도와 왜적과 싸워 전공을 세웠으며, 선조 30년(1597) 정유재란 때에는, 가리포첨사(加里浦僉使) 겸 조방장(助防長)으로 제수 받아 삼도수군통제사 이순신 장군휘하에서 진도대첩의 큰 업적을 남겼다.
선조31년(1598) 11월 18일 노량진해전에서 이순신장군이 전사하자 패하여 달아나는 왜적을 추격하다가 안악군수 방덕룡(方德龍)등 과 함께 33세의 나이로 전사했다.
광해군 3년(1621) 병조참판을 추증하고, 다시 숙종 때 병조판서로 추증 됐다. 묘소는 덕산면 기전리 갈현산에, 장군이 사랑하던 말의 무덤과 함께 있고 1938년 10월 9일, 오석으로 순국 385주년 기념 사적비를 세웠으며, 진천군 유도회 발기로 1960년 7월 19일 삼수초등학교 앞에 높이 198cm, 폭 72cm, 두께 44cm의 오석(烏石)으로 현충비를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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