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 명 한 진천읍 교성리 본동마을 전 이장
손 명 한 진천읍 교성리 본동마을 전 이장
  • 이재홍
  • 승인 2019.02.11 17: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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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난 뒤가 아름다운 우리동네 영원한 이장
손명한 교성리 본동마을 이장이 깨끗하게 정성들인 택시에서 포즈를 취했다.
손명한 교성리 본동마을 이장이 깨끗하게 정성들인 택시에서 포즈를 취했다.

 

이장으로 8년 …  마을회관 무상임대 추진 보람돼
생거진천 알리는 ‘택시홍보도우미’로 제2 인생 시작

이장의 혜택은 많다면 많고 적다면 적다. 국가 행정의 최말단으로 일한다는 것이, 지원금만 생각한다면 너무나도 열악하지만 지역 사회가 굴러가는 분위기까지 살핀다면 꼭 그렇지만도 않을 것이다. 그래서일까? 의외로 이장직에 감투 욕심을 내는 사람은 꽤 많은 편이다. 한 번 이장을 맡으면 십 년 이상 역임하는 예도 허다하다. 귀찮다며 미루는 사람도 있고 그까짓 일이라고 치부하는 사람도 있어서 해당하지 않을 것 같지만, 이장직은 ‘권력은 공백을 허용하지 않는다’라는 말이 통용되는 직책이다.
그런 이장직을 8년 만에 훌훌 털어버린 사람이 있다. 진천읍 교성리 본동마을 전 이장이장 손명한(65) 씨다.

스스로 개척한 기름밥 인생
손명한 씨는 진천에서 3남 1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진천 밖으로는 이사한 적이 없는 진짜 토박이다. 그래도 그는 전국 방방곡곡 안 다녀 본 곳이 없다. 관광버스 기사로 십 년 넘게 일한 경험이 있는 덕분이다. 버스 기사뿐만 아니라 그는 인생 전반을 통틀어 기름밥을 먹고 살았다고 표현할 정도로 운전과 인연이 깊다.
베이비붐 세대의 남자, 그는 청소년기에 시내버스 조수 일을 배웠다. 우리나라가 이제 막 산업화를 시작하는 시기였다. 당연히 전문인력이라는 개념도 부족했다. 학교 다니면서 일을 배우고, 배웠으면 별다른 시험과 인증 없이 주먹구구식으로 바로 일을 시작했다. 자격증보다는 얼굴로 사람을 익혔고, 일과 삶이 구별되지 않는 시기이기도 했다. 조수 일을 하면서 그 시설에서 숙식도 모두 해결했다.
모든 것에 최선을 다했던 젊은 날 그는 어느 누구에게도 아쉬운 소리 한번 없이 스스로 인생을 개척해 나간 것이다.   
마땅한 자동차 정비소도 없어서 운전은 물론이고 차량의 관리와 정비까지 도맡아 해야 했던 시기, 조수 일을 배우면서 스스로 생활을 감당하기 시작한 그는 “그래도 여자가 있어야 돈이 모이겠더라”며 “연애결혼을 했다”고 귀띔했다. 당시만 해도 마을 건너 집안끼리 소개하면서 중매결혼을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는데 인생을 주도적으로 사는 걸 연애에서도 깨우친 셈이다.
첫눈에 반한 아내(최재숙·63)와 결혼해 1남1녀를 낳고 잘살고 있는 손명한 씨. 그는 “힘들고 어려운 시절도 있었지만 자식들 뒷바라지하느라 보낸 세월은 달갑기만하다”고 회상했다.


“매사에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손명한 씨가 진천 토박이라 느긋한 충청도 사람을 생각한다면 사실 전혀 그렇지 않다. 손명한 씨는 오히려 지인들에겐 익히 알려진 화급한 성격이다.
마을회비와 경로당 운영비는 분명 다른 것인데, 경로당 어르신들이 마을회비로 해외여행을 다녀 왔다는 소식을 듣고 그는 화급한 성격답게 당장에 찾아가 따졌다고 한다. “아닌 건 아니잖은가!”라며 당시 상황을 설명한 그는 그 사건을 계기로 덜컥 마을 이장직을 맡게 됐다.
그는 그 이후로 8년간 이장으로 마을을 위해 열심히 일했다. 여전히 관광버스를 운행하고 용달차를 모는 등 생업에 종사했지만, “그 시기만큼은 직업보다 오히려 이장직에 더 집중했던 것 같다”고 했다.
그는 이장으로 일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일로 ‘군유지 무상임대’추진를 꼽았다. 당시 교성리 본동마을 회관은 군유지에 지어져 연 200만 원 상당의 임대료를 내고 있었고 그는 무상임대를 위해 거의 3년을 사방팔방 뛰어다녔다.
“소도시치고는 꽤 큰 일이었고 무상임대를 거머쥐기까지 만만치 않았다”는 그는 “조례를 찾고 사람들과 만나 의논하고 견해를 조율하고 행정처리를 해결하면서 그만큼 보람이 컸다”고 했다.

이장 후배에게 물려주고 ‘용퇴’
어린 시절부터 책임감을 품고 살아온 그는 모든 일을 주도적으로 추진하는 사람이다. 이장직도 같은 맥락에서 나서서 해야 할 일이 보이면 최선을 다한다.
그런 그가 이장 일을 하는 중에 택시 기사를 시작했다. 노후 대책을 겸한 생애 마지막 직업이라고 생각했고 이런 생각으로 택시 일을 하다보니 마을 업무에 소홀해지는 게 느껴졌다.
그는 곧바로 이장직을 시원하게 후배에게 물려줬다. 주민들이 그의 용기있는 퇴진에 박수를 보냄은 물론이다.  
진천군을 달리는 손명한 씨의 택시는 내외부 모두 모래 한 톨 없이 언제나 반짝반짝 빛나고 있다. 그의 소망은 진천을 방문하는 외지 승객들에게 생거진천 브랜드를 널리 알리고 문화·관광 등을 홍보하는 메신저가 되는 것이다.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고 모든 정성을 쏟는 사람, 이제는 진천의 ‘택시기사 홍보도우미’로 새롭게 인생을 시작하는 그가 바로 손명한 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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