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산면 화상리 상고 마을
덕산면 화상리 상고 마을
  • 정선옥
  • 승인 2010.01.14 1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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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년 넘게 자리잡고 살아온 땅, ‘집안’ 아니면 ‘사돈’… 가족같은 이웃


상고마을을 둘러싼 야트막한 뒷산엔 이른 봄마다 붉은 진달래와 철쭉이 흐드러지게 피어나 그 향내가 온 동네에 퍼져 혼기에 들어선 선남선녀들의 마음을 동하게 하던 시절이 있었다. 예부터 어르신들은 마치 그 화려한 품새가 꽃상을 차려 놓은 것 같다 하여 뒷산을 '꽃상치기'라 불렀었다.
이제 눈발처럼 하얀 꽃무리를 이루는 아카시아가 그 자리를 대신해 예전의 소담스럽고 화려한 진달래 군락을 보기는 어렵지만 아직 마을사람들의 추억 속엔 이른 봄 진달래꽃을 따다가 소박한 화전을 부치며 봄을 만끽하던 기억이 생생하다.

▶ 살기 좋은 윗고재 이야기
고재 위쪽에 있다 하여 윗고재라 불리는 상고마을은 500년이 넘는 마을의 긴 역사를 자랑한다. 그도 그럴 것이 삼태기 모양의 지형은 뒷산이 우긋하게 휘어져 겨울의 찬바람을 막아주는 역할을 해 냉해가 없고, 마을 앞으로는 넓고 비옥한 평야가 끝 간 데 없이 펼쳐져 예로부터 이 땅을 일구어 온 이들에게 정직하게 흘리는 땀의 대가를 선사했을 터다.
스물다섯 가구가 옹기종기 모여 있는 마을에 사람들이라 봐야 112명이 전부인 작은 마을이지만 이 곳 주민들은 큰 마을이 부럽지 않다. 예부터 김 씨와 이 씨가 대성을 이루고 살았던 땅인지라 '집안' 아니면 '사돈'이라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만큼 주민들은 한 집안처럼 화목하다.

▶ 방구팅이와 옻샘골 이야기


긴 역사만큼이나 윗고재엔 오밀조밀 숨겨진 이야기도 많다. 마을 초입의 방구모팅이에는 자칫 해를 입혔다가는 마을에 과부가 난다 하여 아직도 마을을 드나들 때 어르신들이 몸가짐을 조신하게 하는 바위가 장승처럼 마을을 지키고 있다. 비록 크지 않은 바위 하나지만 우리 조상들은 이런 바위 하나에도 의미를 부여해 마을을 들고 남에 한 번 더 조심과 겸손을 가르쳤다.
자연의 순리를 따르며 사는 이들에겐 자연의 선물도 있다. 정확한 나이를 알 수 없을 만큼 오랜 세월을 마을의 터줏대감 노릇을 해 온 느티나무를 지나 마을을 가로질러 닿는 서남편 옻샘골 한복판엔 사시사철 마르지 않는 옻샘이 자리 잡고 있다. 물이 달기도 달거니와 여름에도 손이 시릴 만큼 차가운 샘물은 붉게 옻이 오른 피부염에 특효가 있다고 알려져 있다. 무더위와 질병으로부터 마을을 지켜 준 자연이 준 천혜의 선물인 샘이다.

▶ 들에서 나는 산물의 소중한 가치를 아는 농심
지금은 주변에 공장이 많이 들어서서 회사에 다니는 주민들도 많고 농사와 회사 일을 병행하는 이들도 적지 않지만 평야가 넓은 만큼 예부터 수도작이 활발한 지역이다. 주변에 높은 산이 없어 일조량이 풍부한 너른 들판엔 가을이면 황금빛 벼이삭 물결이 장관이다. 한 때는 고추와 담배를 재배해 높은 수익을 올리기도 했지만 요즘은 수박도 인기다.
하지만 농부임을 자처하는 이들은 집 앞 돌담에 올라앉은 늙은 호박 한 덩이나, 통통하게 살이 오른 벼이삭이나, 끼니때마다 텃밭에서 한움큼 뜯어오는 상추나 똑같이 손이 가고 애정이 가는 작물이란다. 이들에게 들에서 나는 농산물은 현대의 금전적인 평가 기준으로는 절대 가늠될 수 없는 소중한 가치다.

▶ 마을의 전통을 이어가는 상조회
상고마을의 상조회는 부모님의 연세가 70세가 넘으면서 자동적으로 그 자손이 가입되는 시스템이다. 현재 22명의 회원이 상조회에 가입되어 마을 애사 시 경제적인 지원뿐만 아니라 직접적인 수고를 아끼지 않는다. 비단 애사를 대비하기 위한 것만이 아니라 이 상조회를 통해 마을의 전통이 이어지고 있다.
다른 농촌 지역도 마찬가지지만 상고마을 역시 핵가족화가 진행된 지 오래여서 고령자 가정이 많은 마을에 상조회는 없어서는 안 될 제도다.

▶ 동계, 풍성한 먹거리만큼 풍성한 인정
요즘처럼 시설하우스가 보편화 되어 있는 농촌에 따로 농한기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요즘도 매년 겨울이면 온 마을 사람들이 모여 잔치를 한다. 예전에야 정월이라 하면 한달 내내 축제 분위기였지만 이제 그런 모습은 어느 시골에 가도 찾아볼 수 없다.
대신 일 년에 한 번 여는 동계는 어느 잔치보다 먹거리도 풍성하고, 이야기거리도 넘쳐난다. 마을의 중요한 일은 이 날 회의를 통해 결정되고 오랜만에 만나는 얼굴들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인심 좋은 상고마을 동계에는 해마다 축산업을 하는 강규식 씨가 돼지 한 마리씩을 쾌척해 좋은 날을 더욱 흥겹고 풍요롭게 만들어 준단다.

▶ 범죄 없는 마을을 꿈꾼다.
마을의 긴 역사도 긴 역사지만 한 집안이나 다름없는 마을에 예전엔 대문을 걸어 잠그는 집이 없었다. 내 것, 네 것을 따지기보다 우리 것이라는 생각이 앞서던 마을이었다.
지금도 그 마음들이 변한 것은 아니지만 가끔씩 외부에서 들어오는 좀도둑 때문에 아끼던 물건이나 애써 키운 농산물을 잃는 통에 마음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다행히 마을 사람들이 마음을 모아 마을 곳곳에 CCTV를 설치했다. 앞으로 몇 곳에 추가로 설치할 예정으로 이제는 마음 편하게 집을 비워놓고 들일을 나갈 수 있단다.

언젠가 이런 기계적인 장치 없이도 예전처럼 대문 활짝 열어놓고 살 수 있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는 순박한 마을 사람들의 웃음소리와 동계날 마을회관에서 흘러나오는 흥겨운 가락에 마을을 나서는 이의 발걸음 또한 경쾌해 진다.


/우/리/동/네/사/람/들/

김호영 이장
김호영 이장
마을주민 모두가 한가족처럼
사이좋고, 건강하고, 행복한 것이
이장으로서의 바램이자 역할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앞으로도 마을 주민 모두가 한 가족처럼 사이좋고, 건강하고 행복하게 지냈으면 하는 것이 이장으로서의 바램이자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언제나 이장인 저를 믿고 지원해 주시는 마을 분들께 지면을 빌어 감사의 말씀 드립니다.
우리 마을이 진천군의 어느 마을 보다도 행복하고 살기 좋은 마을이 되도록 힘 닿는 데까지 노력하겠습니다.
아무쪼록 주민 여러분들의 더 많은 관심과 협조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홍사임 여자노인회장
홍사임 여자노인회장
“어른으로 대접받는 만큼
어른으로서의 역할 해야지요”

우리 마을에는 40대에서 80대까지 연령층이 다양하지만 고령 인구도 적지 않습니다.
노인회의 일을 보면서 늘 걱정되는 것은 무엇보다 노인분들의 건강과 안전입니다.
다행히 마을의 젊은이들이 모두 다 내 부모거니 하는 생각으로 어른들을 섬기니 이 또한 고마운 일입니다. 어른으로 대접 받는 만큼 어른으로서의 역할을 해야겠지요.
어디에도 우리마을처럼 살기 좋은 마을은 없을겁니다.

오숙환 부녀회장
오숙환 부녀회장
“언제나 팔을 걷어부치고
일해 주시는 회원들에게 감사하죠”

다른 마을도 마찬가지겠지만 우리마을 부녀회원들은 단합이 아주 잘 됩니다.
젊은 사람들이 적어 이일, 저일 많은 일을 하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마을에 일이 있을 때마다 팔을 걷어부치고 일해 주시는 부녀회원들과 어르신들이 계셔서 가끔 힘이 들어도 용기가 생깁니다.
이 자리를 빌어 마을 주민들께 감사드립니다.

김소영 새마을지도자
김소영 새마을지도자
“새마을지도자의 역할이
확대되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요즘은 새마을지도자의 역할이 많이 축소되어 예전처럼 주어진 일이 많지 않습니다. 비단 우리마을의 일만은 아니지만 새마을지도자의 역할이 확대되었으 면 하는 바램을 이야기해 봅니다.
마을 일로 언제나 고생하시는 이장님을 곁에서 도와드리는 일이 마을을 위한 일이겠지요. 마을 주민들과 함게 이장님을 도와 마을의 발전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습니다.


우/리/동/네/이/야/기

마을의 안녕과 번영을 약속했던
삼백년 묵은 느티나무

마을 중앙에 터주대감처럼 자리잡은 느티나무는 그 수령이 삼백년은 족히 넘었음직 하다. 마을 아낙들은 그 아래 우물에서 보리쌀을 씻고 빨래를 하면서 자라나는 아이들 이야기를 하고, 때로 얄궂은 시누이나 호랑이 같은 시어머니 이야기를 풀어 놓으며 가슴의 묵은 응어리를 씻어내곤 했었다.
매년 정월 대보름이면 우물을 깨끗이 청소하고 마을의 안녕과 번영을 기원하는 우물제를 지냈었다. 따끈따끈한 떡을 높이 쌓아 올리고, 소원을 비는 초를 밝히며 마음가짐을 새로이 하곤 했었다.
이 날은 마을 사람 모두가 느티나무 아래서 줄다리기를 했다. 남자와 여자로 편을 갈라 하는 줄다리기는 늘 여자들의 승리였다. 그도 그럴 것이 여자가 이겨야 풍년이 든다는 속설 탓에 아직 결혼을 하지 않은 총각들이 여자들 틈에 끼어 힘을 썼다.
체기가 있을 때에는 이 느티나무의 껍질을 벗겨 우물물로 달여 마시면 체기가 내려가 비상약으로도 이용했다고 하니 단연 마을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음직 하다.
인근의 몇 집을 덮을 만큼 가지가 무성하게 우거져 여름이면 짙푸른 녹음으로 마을 사람들의 더위를 씻어주었던 나무는 흐르는 세월을 이기지 못하고 이제 초라한 모습이 되어 버렸지만 아직도 마을 사람들은 이 나무에 대한 애정을 과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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