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 정 규 백곡초등학교 방과후 영어교사
심 정 규 백곡초등학교 방과후 영어교사
  • 변상희 기자
  • 승인 2019.04.15 16:4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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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은 오늘도 포클레인 행복 운전 중”

‘누구든지 학교에 오너라’ 백곡의 채영신 꿈꿔
포크레인과 함께 하며 ‘사람 사랑하는 법’ 배워

심정규 백곡초등학교 방과후 교사가 자신의 분신과도 같은 포클레인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심정규 백곡초등학교 방과후 교사가 자신의 분신과도 같은 포클레인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자격증 시대, 남들은 하나 갖기도 어려운 교원 자격증을 무려 3 개씩이나 가지고 있으면서도 포클레인 면허증까지 취득한 사람이 있다. 심정규(63) 백곡초등학교 방과후학교 영어교사다.
영어 1급 정교사, 도덕 2급 정교사, 2급 한국어 교원자격에 건설기계조종사(굴삭기) 면허증,  그리고 15t 덤프트럭을 몰 수 있는 1종 대형면허까지 자격증만 5가지다.  
백곡에서 ‘포클레인 운전하는 영어선생님’하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그는 이 지역의 유명인사다.
“숭의여고 영어교사 경력 27년에 포클레인 운전기사 경력 6년까지, 도합 33년이 짬짜면처럼 한데 어우러졌다”며 스스로를 ‘짬짜면 같은 사람’이라 칭하는 백곡의 유쾌한 심 선생을 만났다.

내 인생의 책, 소설 ‘상록수’
“‘어떻게 사느냐’가 아니라 ‘무엇을 하며 사느냐’에 몰두한 인생이었다” 그는 숭의여고에서 27년간 영어교사로 일하던 시절을 이렇게 평가했다.
‘무엇을 하며 사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사느냐’로 생각이 바뀌자 작은 시골 마을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이야말로 진정 보람 있고 아름다운 일로 여겨졌다. 영어는 큰 학교에서건 작은 학교에서건 충분히 가르칠 수 있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퇴직 후 귀촌하겠다는 결심이 굳어졌다.
그가 연고도 없는 백곡 지역에 자리를 잡기로 결심한 건 심훈의 단편 소설 ‘상록수’에 나오는 여주인공 채영신의 영향이 컸다.
‘영신은 창문을 말끔 열어젖혔다. 그리고 청년들과 함께 칠판을 떼어 담 밖에서도 볼 수 있는 창 앞턱에다가 버티어놓고 아래와 같이 커다랗게 썼다. ‘누구든지 학교로 오너라’ ‘배우고야 무슨 일이든지 한다’ 나무에 오르고 담장에 매달린 아이들은 일제히 입을 열어 목구멍이 찢어져라 하고 그 독본의 구절을 바라다보고 읽는다’
바로 이 대목에서 그는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의미의 학구열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좋은 대학에 보내기 위한 학구열이 아닌 학문 그 자체에 대한 열의, 그리고 그는 문득 운동장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작은 분교에서 올망졸망한 아이들을 모아놓고 영어를 가르치는 자신의 모습이 궁금해졌다.
농촌의 일손을 도우면서 영어 선생님으로도 활동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을 것 같았다.
그렇게 1999년 그는 ‘백곡의 채영신’이 되기로 결심했고 퇴직후 2012년 서울을 떠나 해발 280 m 백곡면 학동길로 거처를 옮겼다.

포클레인 몰며 지역 일에도 앞장
그는 현재 백곡초등학교에서 방과후 아이들에게 영어를 가르치고 있다.  
2012년 생면부지도 없는 백곡에서 처음 시작한 일도 백곡면 공부방 지도 교사였다. 공부방에서 2년간 아이들을 맡아서 공부를 지도하다가 인근에까지 잘 가르친다는 소문이 나 진천군립도서관 평생학습센터에서 운영하는 해외유학반 교환학생 프로그램을 맡아 강의하게 됐다.
그 후로는 자연스럽게 불러주는 사람이 많아졌고, 해외펜팔반과 영어문법반을 운영하면서 해외배낭여행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해외여행 팁을 전수해주는 알짜배기 수업도 진행했다.
아이들을 교육하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와중에도 부지런히 포클레인 자격증을 따기 위해  준비했다. 포클레인 자격증은 스스로 집을 짓고 공사를 하는 데에 꼭 필요한 자격증이었기 때문이었다.
자격증을 취득한 그는 집 앞마당에 수영장을 크게 만들었고 주민들을 초대했다. 매년 여름마다 동네 아이들과 학부모들이 놀러와 첨벙대며 수영을 하고 그의 집에서 라면도 끓여 먹고 논다고 한다. 

포클레인으로 주변 많이 도와
“처음엔 집을 짓기 위해 포클레인 자격증을 땄는데 생각보다 유용하게 쓰이고 있다”는 그는 “마을 어귀 길(학동길)을 넓히는 일에도 참여했고 3~4년 전에는 백곡초등학교 운동장에 놓여있던 바위 3개를 다른 곳으로 옮겨준 적도 있다”고 자랑했다.
이 때문에 ‘우리 영어선생님은 영어도 재밌게 잘 가르치지만 포클레인 운전도 수준급’이라는 소문이 일파만파로 퍼져나갔고 그를 찾는 사람도 부쩍 많아졌다. 그는 “도움이 필요한 곳에는 언제나 내가 있다는 소문이 나서 바빠졌지만 더할 나위 없이 기쁘다”고 전했다.
그는 “포클레인을 운전하면서 비로소 ‘사람을 사랑하는 방법’에 대해 배운다”고 말한다. 내가 도움을 줄 수 있는 곳이 있다는 것이 매우 보람되고 자긍심이 생긴다는 심정규 씨, 그의 포클레인이 쉬지 않는 한 그의 열정도 식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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