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위스님 용화사주지
무위스님 용화사주지
  • 고은석
  • 승인 2019.05.10 1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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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사회의 그늘진 곳을 안고 품은 승려
무위스님이 용화사 집무실에서 차를 내리고 있다
무위스님이 용화사 집무실에서 차를 내리고 있다

 

복지사각지대에 놓인 이웃에 장학금, 생활비 등 지원
폐사지 발굴 · 복원에 관심 많은 불교문화재 전문가

 

고향이 진천이라서 그런 걸까? 아니면, 승려라서 그런 걸까? 불쌍한 사람을 보면 습관처럼 측은지심이 발동해 도와주기를 수없이 했다. 지역사회의 그늘진 곳을 안고 품으려 매년 쌀을 기부했다.  내 생활비는 차치하고 어려운 사람에게는 생활비를 지원하면서 가슴에서 뿜어져 나오는 빗물을 주체할 수 없었다.
천성적으로 부처님의 자비로운 성품을 닮은 비구니, 용화사 주지 무위스님을 만났다.

“지역에서 함께 산다”     
무위스님은 용화사에 부임하면서 ‘지역사회와 함께 하겠다’고 다짐했다. 그는 용화사 중건을 위한 불사를 진행하는 어려운 가운데 어려운 이웃을 위해 쌀 기부를 거르지 않았고 최근 몇 년 전부터는 상산초, 상수초, 진천남중, 진천여중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전달하고 있다. 올해는 ‘부처님오신날’ 오전 11시에 용화사에서 장학금 수여식을 가진다.
또한 무위스님은 "지금은 상황이 어려워 중단했지만, 증평 37사단에 군인으로 입대한 가장의 가정에 생활보장금을 지급해 왔었다"고 말했다. 그는 “가장임에도 군에 입대해 가정을 돌볼 수 없는 처지가 안타깝다”며 “국민의 의무를 다하는 그의 가정을 돕는 일은 국가든 누구든 해야 할 일” 이라고 말했다. 지역사회의 그늘진 곳을 감싸 안고 품은 그의 따스한 마음이 곧 부처의 마음이다.

2003년 불사 시작, 2014년 완성
무위스님은 1999년 용화사에 부임했을 당시를 이렇게 기억한다. 
‘좁은 경내에 김유신 장군의 위업을 기리기 위한 석불입상(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138호)과 고려시대 조성된 석조 보살입상이 함께 세워져 있었지만, 고려시대에 조성된 용화사의 위엄은 사라져 없었고, 건축물은 요사체와 법당만이 초라하게 자리하고 있었다.’
이때 그는 고려시대 조성됐을 당시의 절의 모습을 상상하며 용화사의 중건을 결심했다.
하지만 불사의 중건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는 불사를 일으키기 위해 문화재 전문가가 되기로 결심하고 연세대학교 행정대학원에 입학원서를 넣었고 덜컥 합격했다.
그는 대학원에서 행정은 물론 문화재 연구를 통해 불사를 일으킬 자신감이 생겼다. 2003년부터시작한 불사는 총45억 원의 예산이 소요됐고 어려운 가운데 문화관광부의 전통사찰예산 11억원, 빚 19억원, 그리고 신도들의 헌신으로 2014년 12년의 기나긴 불사를 마쳤다.
보통사람은 하기 힘든 일, 그것도 여승의 몸으로 45억 원이나 되는 불사를 10년을 넘게 지속적으로 해냈다는 점에서 무위스님의 결단력과 집념은 사표로 삼을 만하다.

불교문화재 전문가
그는 대학원 졸업해인 2005년 전국 유명 사찰중건에 대한 사례연구와 문화재에 대한 정부의 정책을 사례별로 연구한 ‘정부의 문화재 보수·보존정책에 관한 연구’ 석사 논문을 발표했다.
2014년 불사를 마치고 병을 얻어 중앙승가대학원 박사학위논문이 늦어졌고 병마와 싸워가며 1년에 거쳐 ‘고유지명과 도로명주소의 관계성 연구’ 박사학위 논문을 완성해 찬사를 받았다.
“고유지명은 그 자체가 문화이며 역사”라고 강조하는 불교문화재 전문가로도 유명한 무위스님, 그는 요즘 많은 시간을  폐사지에 대한 체계적 연구와 고증을 위해 투자하고 있다.

‘108사찰순례’하며 인도성지순례 꿈꿔  
무위스님은 진천읍 원덕리에 사는 불교를 믿는 부모님 밑에서 8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다. 어린 시절 갑작스런 어머니의 임종으로 ‘죽음’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했고 성장하면서 불교에 귀의할 것을 결심했다.
중얼거리듯 “중2 때 1차 발심, 고2 때 2차 발심, 21세 되던 해에 아버지마저 돌아가시자 3차 발심으로 머리를 깎고 부처님께 귀의했다”는 무위스님은 “어린 시절 자연스럽게 이타적인 불교가 마음에 들었던 것 같다”며 밝게 웃었다. 
무위스님과 신도의 불경공부는 ‘108사찰순례’로 유명하다. 현재까지 매월 4째주 토요일 폐사지 1곳과 전통사찰 2군데를 22차에 거쳐 순례를 해왔다. 그의 마지막 순례지는 ‘인도성지순례’다.
불교의 사랑법은 존재가 존귀한 존재임을 깨닫는 것이다. 지역에서 무차별 평등의 사랑을 펼치고 있는 무위스님에게서 부처의 사랑이 그대로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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