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수 진천 용몽리 농요 기능보유자
이정수 진천 용몽리 농요 기능보유자
  • 김미나 기자
  • 승인 2019.08.23 14:4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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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중한 문화 유산, 용몽리 농요 지키는 예술인
이정수 선생이 최근 발표한 앨범 ‘이정수 생거진천민요’ 표지 촬영을 위해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정수 선생이 최근 발표한 앨범 ‘이정수 생거진천민요’ 표지 촬영을 위해 포즈를 취하고 있다.

 

구성진 소리 담은 ‘이정수 생거진천민요’ CD 발표
“용몽리 농요는 추억이자, 몸으로 체득된 하나의 언어”

 

삼월달에 농사일은 보리밭 관리가 제일이고/야기도 허 하나 어하 저기도 또 하나/사월이라 초파일은 석가모니 탄일인데/야기도 허 하나 어하 저기도 또 하나/집집마다 등을 달고 자손 발원 하건마는/야기도 허 하나 어하 저기도 또 하나/하늘을 봐야 별을 따지 임 없는 이 세상 어이 할꼬
올해 나이 80세인 구성진 그의 소리가 너른 들판을 메운다. 그의 선창에 나머지 농부들은 후렴구를 받아 함께 노래한다.
바쁘게 흘러가는 현대 사회에서 어쩌면 사라져 갈 수 있는 소중한 문화인 우리의 농요는 이렇게 그를 통해 이어져가고 있다.  
충청북도 무형문화재 제11호 진천 용몽리 농요를 지켜가고 있는 기능보유자, 이정수 선생을 만났다.

 

용몽리 농요 체계화 ‘앞장’
이정수 선생의 소리에는 힘이 있고 구성진 가락이 있다. 농사일에 지친 농부들의 피로를 잊게 하고 하고 흥을 돋우던 농요에는 흥겨운 풍악과 구수한 소리가 함께 한다.
특히 진천 용몽리 농요는 1999년 충북민속경연대회 대상, 2000년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 문화관광부장관상을 수상하며, 지난 2003년 3월 충청북도 무형문화재 제11호로 지정됐을 만큼 그 소리가 잘 보존돼 있기로 유명하다.
용몽리 농요는 모찌는 소리, 모심는 소리, 논매는 소리, 논 뜯는 소리로 구성돼 있다. 아주 오래전부터 미호천 유역 농부들의 노동요로 불려오던 이 소리들은 기계화된 농업 문화 속에서도 이정수 선생, 이광섭 선생, 고 박득천 선생에 의해 보존되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이 3인의 기능전수자 가운데서도 용몽리 농요를 기록하고 문서화 시키는데 가장 큰 공을 세운 사람이다.
그는 “아주 어린시절부터 용몽리 농요를 들으며 자랐다”며 “온 몸으로 기억하고 있는 용몽리 농요를 보존시키고 후대에 남기는 것이 소명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덕산읍 석장리는 삶의 터전
그는 1940년 생으로 올해 우리나라 나이로 80세를 맞이했다. 현재 살고 있는 덕산읍 석장리는 그의 아버지의 아버지부터 살아오던 곳으로 6.25 전쟁의 포화속에서도 지키며 살아온 삶의 터전이다.
이 지역에서 어린 시절부터 어른들과 함께 농사를 지으며 불러왔던 용몽리 농요는 그의 추억이자, 몸으로 체득된 하나의 언어다.
농사도 짓고 젖소도 키우며 농업인으로서의 삶을 살던 그는 55세가 되던 무렵 당시 덕산 경로당 조용철 회장의 권유로 어르신들과 함께 농악을 하게 되면서 본격적으로 용몽리 농요를 체계화하게 됐다고 한다.
지난 1999년 CJB의 한 프로그램이었던 ‘무심천의 새아침’에 ‘초평아리랑’을 부르며 인터뷰한 것 역시 계기가 됐다. 방송 이후 충북대 서영석 교수를 알게 됐고 이를 시작으로 용몽리 농요는 세상 밖으로 나왔다.

 

나이를 잊은 열정
그는 현재 아내와 알콩달콩 노후를 즐기며 용몽리농요전수관에서 용몽리 농요를 계승하는데 앞장서고 있다.
용몽리 농요는 지난 2000년부터 해마다 현장 발표를 하고 있는데, 선두에서 선창을 하는 그의 모습에서는 나이를 잊은 열정이 샘솟는다.
그의 소리는 지난 2001년 박팔괘 선생 50주기 추모 충북민요경창대회 최우수상을 수상했을 만큼 구성지다.
이처럼 구성지고 아름다운 그의 소리를 보존하기 위해 최근 후학들이 나섰다. 지난 6월 ‘생거진천 선소리’와 ‘진천 토속민요’ 두 파트로 구성된 CD 앨범 ‘이정수 생거진천민요’를 제작한 것이다.
앨범 안에는 용몽리 모찌는 소리, 석장리 고사소리 등의 농요 뿐 아니라 밤골큰애기소리, 변광쇠타령, 초평아리랑 등 젊은이들에게는 알려지지 않은 진천의 토속민요들이 알차게 담겨 있다.
그는 “80세 기념으로 후학들이 CD를 만들어 줘 감사한 마음”이라며 “이제 나이가 많이 들었지만 그래도 힘이 닿는 한 용몽리 농요를 계승하기 위한 노력은 이어나갈 것이다”고 미소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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