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성 동
김 성 동
  • 이순자
  • 승인 2019.12.05 11:5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아름다운 은퇴 후 더불어 사는 삶을 사는 변리사
김성동변리사가 포즈를 취하고 있다.
김성동변리사가 포즈를 취하고 있다.

 

과거 특허청 공무원, 변리사로 특허법률사무소 운영
귀향 후 농촌관광해설사, 합창단원, 정책자문위원 등 활동

 

부모님이 농사짓던 밭뙈기가 조금 있어도 좋고, 없으면 없는 대로 울타리 안 텃밭 농사 조금 지어 찬이 없으면 어떠랴, 밭에서 갓 따온 상추쌈에 아욱국, 보약이 따로 없을 소박한 밥상을 마주하고픈 마음을 누구나 품고 있을 것이다. 
50여 년 전 고향을 떠나 공무원과 변리사로 서울과 대전을 오가며 생활하다 5년 전 고향으로 돌아와 신나고 행복한 제 2인생을 살아가는 김성동(70) 씨를 만났다. 

 

‘박수받을 때 떠나라’ 명예퇴직
김성동 변리사는 광혜원면 실원리에서 중학교까지 마치고 서울에서 유학생활을 하며 공학석사과정까지 마쳤다.
그는 특허청 공무원으로 심사관, 항고심판보좌관, 심사과장, 심판관을 거쳐 공업부이사관직을 마지막으로 명예퇴직을 했는데 “후배들에게 앞길을 열어주고 박수 받을 때 떠나리라는 생각이 들어서 명예퇴직을 신청했다”고 했다. 그때가 그의 나이 50대 초반이었다.
그는 특허청 재직 당시 악성민원을 해결하기 위해 민원인을 찾아 부산까지 찾아갈 정도로 열정적이었고, 일할 분위기의 직장을 만들고 직원들의 사기진작과 역량을 높이는데 많은 노력을 했다. 그 공로를 인정받아 특허청 모범공무원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15년 변리사 활동 후 귀향
그는 명예퇴직 후 서울에서 특허법률사무소를 운영하며 15년간 특허전문가로 활동했고 기업이나 고객이 특허권을 획득하고 사업이 번창하는 것을 지켜보며 보람을 느꼈다.    
그러나 나를 위한 삶을 살고 싶고 건강도 여의치 못해, 가슴 한 곳에 담아두었던 고향을 떠올리며 자연과 더불어 살면서 나를 필요로 하는 곳에 찾아가는 삶을 살고 싶었던 김성동 변리사, 그는 65세가 되던 지난 2015년 봄, 변리사로서의 삶을 과감히 정리하고 광혜원면 실원리로 귀향했다. 

 

많은 분야 다양한 활동 이어가 
고향에서 그는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삶을 택했다. 마을 노인회 총무를 맡았고 생거진천 카네이션클럽의 감사가 됐으며 진천혼성합창단 단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농업기술센터 농촌관광 해설사 과정을 수료해 농촌관광해설사로 활동하고 있다.
그는 경원대학교 산업체 명예교수, 관동대학교 산학협력교수를 엮임했고, 현재 진천군농업기술센터 특허제도 관련 강사로 활동 중이며 진천군청 정책자문위원회 위원이기도 하다.
그는 요즘 더 많은 봉사를 하기 위해 시민교육 강사과정을 이수했고 이상설학교 강사과정 교육도 받고 있는 중이다.

 

봉사자로의 삶 “행복하다”
그는 학생들의 발명에 대한 동기부여와 기술적인 자문 역할을 기대하고 있다. 또 진천 소재 기업체에서 특허관련 정보지식을 필요로 한다면 언제든지 무료로 상담할 계획이며 동년배 심리상담도 적극 참여할 계획이다.
최근엔 그는 광혜원면지발행위원회의 자료수집분과위원으로 선정돼 면지 발간에 역량을 쏟아 부을 계획이며 내년에는 그동안 집필했던 논문, 기고문, 컬럼 등을 모아 자서전도 발간할 계획이다. 
그는 기독교 신자로 매사에 감사하고 이웃과 더불어 사는 삶을 살아가고자 노력한다.  작물재배에도 재미를 붙여 텃밭농사를 지으며 광혜원 로컬푸드 직매장에 출하하는 기쁨도 누리고 있다. 
부인 유인자(65)씨와의 사이에 1남1녀를 둔 그는 ‘뿌린대로 거두리라’는 철학을 가지고 고향에서 신나고 행복한 노년을 보내고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