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으로 보는 그 옛날 진천의 모습은
사진으로 보는 그 옛날 진천의 모습은
  • 진천자치신문
  • 승인 2020.07.31 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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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1910년대 백곡천 물길(하)

 

위 사진(왼쪽)은 1918년(대정 7년) 제작된 백곡천 일원 지도이다. 백곡천의 물길은 지난 호에서 소개한 지적원도의 1912년과 마찬가지로 백악관장례식장에서 남한강마트 뒤쪽으로 와서 급히 꺾은 후 정암6차아파트를 통과하고 영마트에서 괸돌 쪽으로 흘렀다. 그런데 지적원도에는 있던 백곡천의 하중도 2개가 없어졌다. 큰 섬이었는데 실제로 없앴는지 지도 편의상 생략했는지 알 수 없다. 지적원도에 이월 방면 길은 현 읍내리 4구를 빙 돌아갔는데 지도에는 직선화하고 다리도 가설되었다. 
당시에는 백곡천이 읍내리와 성석리 경계선을 따라 흘렀고 현 대성빌딩과 신명약국 사이로는 벽암리에서 흘러오는 조그만 개울만 있었다. 우측 사진은 신명약국 앞에 흘렀던 벽암천 모습이다. 이 개울은 현 보림한우 부근에서 백곡천과 합류한다. 현 kt~단위농협 이북 지역은 당시에는 인가는 서너 채에 불과하고 나머지는 전부 전답과 임야뿐이다. 특히 몇백 평짜리 임야가 군데군데 많았다. 과연 옛날은 옛날인가 보다.
  100년 전보다 더 오랜 그 옛날에는 물길이 어떠했을까. 예전에는 하천에 제방이 없어 홍수가 지면 수로가 바뀌었다. 장관리 원장관 마을의 경우 지금도 우물을 파거나 토목공사로 흙파기를 하면 강모래와 강자갈이 무수히 나온다고 한다. 옛날에는 마을로 큰물이 흘렀다고 한다. 세종대왕이 한글 창제에 너무 골몰하다가 안질이 생겨 치료차 청주 초정으로 가는 도중에 진천중학교 앞 성평 냇가에서 하룻밤을 쉬었다 갔다는 기록이 있고, 성석리 주평(舟坪) 마을의 '주'자는 배 舟자로 배를 매어둔 곳이라 하여 '배머리'라고도 하는데 동리 전설에 의하면 아득한 옛날 그곳은 나루터였다고 한다. 지역 향토지에 세종대왕 시절 백곡천은 진천중학교 앞으로 흘렀다고 하는데 그 사실이 아마 맞을 것이다. 
신 태 선 (진천향토사연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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