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으로 보는 그 옛날 진천의 모습은
사진으로 보는 그 옛날 진천의 모습은
  • 진천자치신문
  • 승인 2020.08.21 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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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일제강점 초기 진천의 주요 기관
진천읍내리 주요기관 지도(1918년 조선총독부 발행)
진천읍내리 주요기관 지도(1918년 조선총독부 발행)

 

조선시대 진천현 관아는 현 삼수초등학교 자리에 있었다. 관아는 삼수초 교정에 있는 느티나무 중심으로 20여 채가 있었는데 1907년 대한제국 군대해산으로 해산군인들이 항일 의병에 참가함으로써 의병 활동지역이 크게 확대될 때 진천에서도 의병과 일본군과의 교전으로 객사·연청 등을 제외하고 대부분이 소실되었다. 당시 대한매일신보(1907.12.10)는 진천군에서 관아 소실 31칸, 민가 소실 122호, 사망 20명으로 보도하고 있다. 

이에 따라 군청을 객사(왕명을 받아 지방에 오는 관원 등을 접대하는 곳, 현 읍사무소 자리)로 이전하고 12칸을 증축하였고 일본통치가 시작된 후에도 그대로 사용하였다(지도에는 위치 잘못 표기). 

1918년 발행된 지도에서 학교(文)는 진천공립보통학교(1911년 개교, 상산초등학교 전신)로 이때 이미 관아는 없어지고 그 자리에 학교가 들어선 것이다. 이 학교는 1940년 현 위치로 이전하고 다음해에 상산국민학교로 개칭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그리고 그 자리에는  1943년 삼수국민학교가 개교하여 역시 오늘에 이르고 있다.

진천면사무소는 현 KT 자리에 있었고(지도에는 위치 잘못 표기) 헌병분견소는 현 삼수초 앞 골목 노인회관에 위치해 있었다. 우편국은 현 위치 그대로로 1905년 진천우편소로 처음 개설되었는데 1910년 진천우편국으로 개칭되었다가 그 후 몇 차례 명칭이 변경되었다가 1949년 진천우체국으로 개칭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우체국은 진천에서 가장 오랫동안인 100년 이상 한곳에서 자리를 지키고 있다.  

1860년대부터 진천읍내 시장은 안장(내시)은 10일, 바깥장(외시)은 5일에 장이 섰는데 지도상 시장(市)은 안장을 말한다. 당시 안장은 현 군농협부터 읍사무소 앞 싸전거리까지 형성된 것으로 보인다. 바깥장은 현 경찰서 서쪽이라고 하는데 정확한 위치를 확인할 수 없었다. 1927년에는 바깥장을 안장에 합병하였다(조선일보 1927.5.13).

신태선(진천향토사연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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