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으로 보는 그 옛날 진천의 모습은
사진으로 보는 그 옛날 진천의 모습은
  • 진천자치신문
  • 승인 2020.12.30 1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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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1930년대 진천 풍경
1932년 신축 당시 진천군청(동아일보). 일장기가 걸려있다.
1932년 신축 당시 진천군청(동아일보). 일장기가 걸려있다.

 

조선시대 진천현이 진천군으로 바뀐 때는 1895년이다. 이때 진천군 관아는 현 삼수초등학교 자리에 있었는데 1907년 의병과 일본군의 교전으로 객사·연청 등을 제외하고 대부분이 소실되었다.  
이에 따라 군청을 현 읍사무소 자리에 있던 객사로 이전하여 사용하다가 1932년 객사를 철거하고 그 자리에 군 청사를 신축하였다(사진).
당시 동아일보 <진천군청낙성> 제목  ‘... 본년 8월 중 기공하여 본관 88평 2홉 5작, 부속건물 41평 7홉 5작의 진천 초유의 모던청사가 11월 30일까지 준공되었음으로 지난 10일 오전 10시에 성대한 낙성식을 거행하였는데 13일부터 신청사에서 사무를 보기로 하였다 한다’고 보도하고 있다(1932.12.14). 
군청사는 그 뒤로 몇 차례 개축· 증축을 하였으며 1976년부터는 읍사무소 청사로 사용하다가 2002년 철거되었다. 아직도 진천의 많은 사람들이 저 건물을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1930년대 진천의 큰 현안 중 하나가 백곡천 교량 가설 문제이다. 당시 동아일보(1935.12.14)는 <진천교 문제> 제목 기사에 ‘현금  진천사회의 허다한 문제 중 지방 발전상 가장 시급을 요하고 진천사회가 전적으로 갈망하는 것은 진천교 가설문제이다. ... 명춘에는 기어코 만인갈망의 진천교의 실현을 보도록 관계당국의 철저한 노력이 있기를 요망하는 바이다’라고 보도하고 있다. 
이때 백곡천 수로는 남한강마트 뒤에서 현재와 같이 변경되었지만 교량은 가설되지 않은 것 같다. 이 현안 사항은 공비 3만 4600원을 들여 1936년 8월 6일부터 공사에 착수하여 1937년 3월 100m 콘크리트교로 준공되었다. 이 교량이 현재 진천대교의 전신이다.
  진천에 전기가 최초로 들어온 시기는 1930년 12월이다. 당시 동아일보(1930.12.21)는 “충북 진천에는 지난 10월부터 대전전기주식회사에서 전기가설공사에 착수하여 근일 완성하였음으로 16일부터 정식 점등하였는데 암담하던 진천시장통도 광명화하여 이채를 띠이고 있다 한다.”고 보도하고 있다. 또 진천에 전화가 처음 개통된 시기는 1938년 1월이다. 당시 동아일보(1937.12.21)는 “... 지난 17일부터 가설공사에 착수하여 언 땅을 파고 전간목을 세우기에 분망한데 명년 1월 1일부터 통화를 개시하여 시내 30개소에서 모시모시를 부르기 시작할 모양이라고 일반시민들은 기뻐함을 마지않는다 한다”고 보도하고 있다. 

신 태 선 (진천향토사연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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