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광섭 진천군의회 의원
정광섭 진천군의회 의원
  • 이상훈 대표
  • 승인 2010.04.22 1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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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훈 대표기자의 취중 Talk 스물아홉번째 손님


6·2 지방선거가 40여 일 앞으로 다가왔다. 지역 정가가 숨가쁘게 돌아가고 있는 이 때, 3선의 저력을 지닌 정광섭 의원이 집권여당인 한나라당의 공천을 받고 군수 후보로 출마를 선언했다. 서글서글해 뵈는 호남형의 외모와는 달리 평소에도 강직한 성품으로 소문난 그인지라 부담을 갖지 않을 수 없었지만 지역민들에게 최대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는 주요 인물을 만나보지 않을 수 없었다. 잠 자는 시간을 아껴가며 진천군수 당선을 향해 전력질주하고 있는 정 의원을 어렵게 취중토크 자리에 초대했다.

Q 건강은 어떠십니까?
A 지금은 아주 좋습니다. 지난 2007년 식도암 판정을 받고 큰 수술을 했었는데 관리도 잘 하고 있고 지금은 아주 건강합니다.

Q 식도암이면 치료가 쉬운 병은 아닌데 일찍 발견을 하신 모양이네요.
A 예. 건강검진을 받다가 우연히 발견됐는데 천운이라고 봐야지요. 서울에 가서 정밀검사를 받아보니 0.4㎜ 정도의 암세포가 발견되었는데 4㎝를 제거했습니다.
그로부터 벌써 3년이나 지났습니다만 그 때 정말 많은 분들이 걱정해 주시고 기도해 주셨습니다. 이 자리를 빌어 감사의 말씀 드립니다. 그 때 다시 태어난 기분으로 이제는 내가 봉사하는 삶을 살아야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그 마음으로 일하고 있구요.

Q 어린 시절은 어떠셨나요?
A 제가 4남 3녀 중 막내여서 유년시절에는 부모님의 사랑 듬뿍 받고 자란 편입니다. 중도에 아버님이 사업에 실패하셔서 집안이 갑자기 어려워졌지요. 그 때가 형님들이 중학생, 제가 초등학생이었는데 공부할 수 있는 길이 막힌 거지요. 다행히 교회에 중등과정이 있어서 중학교 과정까지는 이수를 할 수 있었습니다.

Q 그럼 태권도는 언제부터 시작하신건가요? 운동을 오래 하신 걸로 아는데요.
A 그 때가 1969년도니까 고등학교에 갈 나이가 됐을 즈음이네요. 태권도에 입문해 처음 진천군 대표로 충북체전에 나가 은메달을 땄습니다. 바로 태권도 도관 대표선수로 발탁되어 서울로 올라가 국기원 생활을 하게 됐습니다. 그 때가 83년이었는데 공인 7단이었어요. 나이가 제일 어렸지요. 제 인생에 가장 어려웠던 순간을 태권도로 이겨낼 수 있었습니다.

Q 그럼 언제 진천에 다시 오셨나요?
A 아버님이 돌아가시고 진천에 내려왔는데 마침 음성경찰서에서 태권도 사범으로 일해 달라는 연락이 왔어요. 그래서 음성경찰서와 진천경찰서 두 곳을 왔다갔다 하면서 경찰들에게 태권도를 가르쳤지요.

Q 제가 알기로는 새마을지도자 생활도 오래 하신 걸로 아는데요.
A 진천에 와서 농사를 조금씩 짓고 있으니 동네 분들이 새마을지도자를 맡으라고 하시더군요. 그래서 덕산면 용몽리 시장1구 새마을 지도자를 맡게 되었습니다. 1년 정도 지나니 덕산면을 맡아라 해서 면 회장을 3년 했고, 군 회장을 3년 했어요. 그리고 도로 갔더니 가던 해에 충청북도협의회 부회장을 시키더군요. 부회장으로 3년 일하고 회장을 했겠지요. 그 때도 군 단위 최초의 군 회장이라고 떠들썩했는데 중앙회에 갔더니 상임부회장을 시켜 주시더군요. 생각지도 않게 일사천리로 중책이 주어지더군요.

Q 중앙회 상임부회장은 어떻게 임명이 되나요?
중앙회장은 정부가 임명을 하게끔 되어있고 상임부회장은 직선제로 선출됩니다. 이북5도까지 17개 시·군이 참여해 11표를 얻었습니다. 충북에서는 제가 유일한 상임부회장이었지요.

Q 의정활동 하시면서 가장 큰 보람이라면 어떤 것이 있을까요?
A 10년 간 의정활동을 하면서 그래도 가장 큰 보람이라면 혁신도시 확정에 일조한 일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혁신도시 실사단이 진천을 방문했을 때가 1월이었는데 때마침 폭설이 내린데다 날씨가 굉장히 추웠어요. 묘봉 뒷산에 와서 부지를 보는데 그날 아침부터 사람들을 동원해 눈을 치우고 실사단을 맞았던 기억이 나요. 그 몇 시간을 위해 20일을 준비했었습니다. 그 때 동상까지 걸려서 한동안 고생을 했었어요.
그리고 국가대표선수촌 유치와 북진천 IC 개통 세 가지가 임기 내 가장 보람 있었던 일입니다.

Q 얼마 전 한국가스안전공사와 LH가 중부신도시에 부지매입계약을 체결해 공공기관 이전이 본격화 되지 않았습니까?

A 정말 잘 된 일입니다. 사실 혁신도시가 진천 발전의 견인차적 역할을 할 수 있으리라 기대가 컸는데 사업 진행이 지지부진해서 실망도 많이 했었습니다. 이제 공공기관 이전이 본격화 되었으니 기대해 봐야지요.
혁신도시도 그렇지만 국가대표 선수촌 역시 서울에 있는 대한체육회에 몇 번을 방문하며 준비했던 사업입니다. 선수촌과 함께 진천군에 체육용품 등을 생산하는 기업들을 유치해 진천군이 앞으로 대한민국의 체육 메카로 거듭날 수 있도록 계획 중에 있습니다.

Q 북진천 IC의 경우는 유치가 어렵다고들 했었던 사업 아니겠습니까?
A 그렇습니다. 꽃동네 IC가 가까워서 내줄 수 없다고 했었지요. 당시 김종률 前 의원이나 우리고장 출신인 송기섭 청장의 힘이 컸습니다. 물론 주민들이 농기계로 길을 막고 데모를 하기도 했구요. 결국 도로공사 측에서 손을 든 거지요.
이런 일은 누구 한 사람의 힘만으로 되는 일이 아닙니다. 군민 모두의 결집된 힘이 있어야 가능한 겁니다. 이렇게 우리 진천군민 모두가 매 순간 뜻을 함께 할 수 있다면 앞으로 어떤 시련이 와도 극복할 수 있고 어떤 사업이라도 유치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Q 그러면 가장 안타까웠던 순간을 꼽으신다면.
A 지난 2002년 폭설 피해와 2006년 폭우 같은 인력으로는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자연재해가 발생했을 때였던 것 같습니다.
지난 2006년 덕산에 물난리가 났을 때는 눈물 바다였어요. 군인들까지 동원돼서 복구 작업을 벌였지만 가재도구 하나 없으니 너무도 안타까운 상황이었습니다. 그때 저희 집사람도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20일을 수재민들의 식사를 준비하느라 집 식구들 밥도 못해주는 상황이었어요.

Q 정계에 입문하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나요?
A 정계에 입문하게 된 동기라면 예전에 민정당 국회의원을 지내신 안갑준 의원이라고 해야겠지요. 정당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던 시절이었는데 그 분이 찾아오셔서 외척이니 도와달라고 말씀하시더군요. 그 때부터 주욱 당원생활을 해 왔습니다. 민정당에서 시작해 신한국당, 한나라당에 이르기까지 이제껏 당적을 옮겨 본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Q 정당생활을 오래 하셨네요. 사실 3선 의원이면 군민들에게 이미 실력이나 인품을 검증받으셨다고 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A 92년도 2대 군의원 선거에서 낙선하고 3대 보궐선거에 당선해서 4대, 5대까지 군민 여러분의 지지와 성원 덕분에 의원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그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이번 선거에서 좋은 결과를 거둘 수 있었으면 합니다.

Q 의원님은 풍채도 좋으시고 호남형이셔서 젊었을 때 인기도 많으셨을 것 같은데 결혼은 어떻게 하셨습니까? 연애결혼 하신건가요?
A 2년 가까이 연애를 하고 결혼했습니다. 요즘 젊은이들이야 프로포즈도 화려하게 한다지만 저희 때만 해도 따로 프로포즈를 한다는 것 자체가 쑥스럽던 시절 아니겠습니까? 그 때는 아직 옛날 풍속을 많이 따를 때여서 어딜 가도 수줍어서 떨어져서 다녔답니다. 장인어른과 장모님도 벌써 10년 넘게 진천읍에서 생활하고 계십니다.

Q 운동을 오래 하신 분이라 안그러실 줄 알았는데 순수한 면이 있으시네요. 지금으로부터 10년 후 의원님은 어떤 모습을 하고 계실까요?
A 공인으로 살다 보니 어려운 점이 한 두 가지가 아닙니다. 무엇보다 제 삶을 정리하는 시간을 만들어 보려 합니다. 이제껏 제가 공인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가족들까지 고통과 시련을 많이 겪었습니다. 사랑하는 아내를 너무 고생 시켜서 안쓰럽습니다. 공직생활을 오래 하다 보니 가족 모두가 죄인입니다. 다행히 그 오랜 기간 어려운 고비들을 슬기롭게 넘겨준 자식과 아내에게 너무나 고맙게 생각합니다.

Q 존경하는 인물이 있으시다면?
A 故 박정희 대통령과 박근혜 대표를 가장 존경합니다. 진취적인 사고와 굳건한 신념, 과감한 업무 추진력, 누구보다 나라를 사랑하는 분들이죠.
박 대통령은 보리고개만 되면 굶주림으로 온 나라가 허덕이던 1960년대에 아무런 희망 없이 하루하루를 연명하던 국민들에게 조국 근대화의 청사진을 제시하고 새마을운동과 기술집약적인 핵심산업 육성으로 기적적인 경제부흥을 이뤄낸 분입니다.
박근혜 대표는 아버님인 박정희 대통령의 성품과 능력을 그대로 이어받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지난 대선을 치르면서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 경선에서 높은 지지율에도 불구하고 탈락했을 때 겸허히 그 결과를 받아들이는 것을 보고 이 분은 대의를 위해 소를 희생하는 원칙이 있는 지도자구나 하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그 때 굉장히 감명을 받았던 기억이 납니다.

Q 지난해 한국매니페스토실천본부에서 주최하는 '제2회 전국 지방의회 매니페스토 약속 대상' 기초지방의원 분야 최우수 의원으로 선정되셨는데 구체적으로 이 상이 어떤 상인지 설명해 주시겠습니까?
A 매니페스토 대상은 간단히 10년 이상 의정활동을 한 의원들을 대상으로 한 공약 완료 평가라고 보시면 됩니다. 저도 상을 받기 직전에야 의회에서 자료를 보낸 것을 알았습니다. 저의 경우는 교육환경 분야와 농업경제 분야, 사회복지 분야 등 3대 분야에서 12개 과제 중 11개 과제를 완료했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이 상은 사실 제 개인의 상이라기보다는 우리 동료 의원들이 함께 받은 상입니다. 그분들이 한 마음으로 의정활동에 전념해 주셔서 그런 좋은 결과가 나오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Q 의원님 자신의 장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
A 저는 자랑거리가 없는 사람입니다. 성격이 좀 별난 편이지요. 불의를 보면 참질 못하는 성격입니다. 내 재산을 투자하더라도 해결할 수 있으면 하고야 마는 성격입니다. 가슴에 담아두지도 못하고 직선적이지요. 두 마음이 없는 사람입니다.
다만 이번 선거에 후보자로서의 장점을 물어보시는 거라면 집권여당이라는 강점을 무시할 수 없겠지요. 아무래도 국비 확보에 유리한 고지를 차지할 수 있으니까요.

Q 약력을 보니 '생거진천21추진협의회'라는 단체의 회장을 역임하셨던데 구체적으로 이 단체는 어떤 성격의 단체인가요?
A 생거진천21 추진협의회'는 환경보호단체입니다. 주로 자연정화 활동에 주력하고 있습니다. 진천군의 경우 아직은 자연이 많이 훼손된 편은 아닙니다만 지킬 수 있을 때 지키는 일 또한 중요하지요.

Q 운동을 하신 분이라 그런지 강직한 성격이신 것 같습니다. 무리한 일정을 소화하시느라 받는 스트레스도 많으실텐데 평소 스트레스는 어떻게 해소하십니까?
A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다면 거짓말이겠지요. 가슴이 답답하면 주로 많이 뜁니다. 그리고 사랑하는 집사람과 대화로 많이 푸는 편입니다. 공인이 되면 다른 사람에게 말 못할 사정도 생기거든요. 집사람이 독실한 카톨릭 신자인데 제게는 인생의 선생이 되어줄 때가 많습니다.

Q 그럼 의원님도 종교가 카톨릭이신가요?
A 예. 영세까지 받았지만 성당엔 제대로 나가질 못하는 형편입니다. 집사람이야 밥을 굶어도 성당은 나가야 하는 사람이지만 의원생활을 하다 보니 참석해야 하는 술자리도 많아 술도 마시게 되고 성당에도 자주 나가지 못합니다.

Q 아침엔 보통 몇 시에 기상하십니까?
A 예비등록을 하고 나서는 새벽 5시에 기상해 6시면 밖에 나옵니다. 그리고 밤 8시에서 9시 사이에는 다음날을 위해 될수록 귀가하려 노력합니다.

Q 체력소모가 많으실텐데요.
힘들어도 제가 선택한 일이니 열심히 해야지요. 군민들의 지지를 얻어야 하니 부지런히 뛰어야 하구요.

Q 장주식 의원의 정계 은퇴를 안타까워하는 군민들이 많은데요.
A 그럼요. 장주식 의원의 은퇴는 한나라당은 물론 진천군의 큰 손실입니다. 개인적으로 너무 가슴이 아픕니다. 빨리 마음을 정리하고 재기하시길 바랍니다. 이번 선거의 당·낙에 관계없이 4년 후 그런 분들이 나오신다면 그분들의 재기를 위해 성심껏 돕겠습니다.

Q 그 말씀은 다음 선거에 불출마 하시겠다는 뜻인가요?
A 저도 이제 나이가 있으니 이번에 군민 여러분께서 기회를 주신다면 제가 진천군에 봉사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 생각하고 4년간 혼신의 힘을 다해 일할 것입니다. 다시 한 번 말씀드리지만 이번 선거에서 당선이 되든, 되지 않든 다음 선거에는 출마하지 않을 것입니다.

Q 진천읍 시가지 일방통행에 대해 불만이 많은 것으로 아는데요.
A 요즘 하루 8시간에서 10시간 정도를 주민들과 만나고 있습니다. 사실 일방통행은 김경회 전 군수 시절부터 공론화돼 유영훈 군수에 이르러 시행이 되었습니다만 저 역시 일방통행에 대한 연구를 많이 했었습니다. 경기가 어려운 때이니만큼 최근 선거운동을 시작하면서는 읍내의 상인들과 많은 대화를 나누고 있구요.
특히 롯데리아에서 신명약국에 이르는 상가의 상인들은 일방통행으로 인한 매출 감소를 호소하며 일방통행 철회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군정은 군민이 잘 살기 위한 것입니다. 군민이 불편하면 고쳐져야지요.
저는 이번 선거 공약에 일방통행 철회와 경찰서 이전을 내걸었습니다. 경찰서를 이전하고 그 자리에 공영주차장을 마련해 진천읍의 고질적인 주차난과 교통체증을 해결할 것입니다. 이 일을 해결할 수 있는 적임자는 오직 저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Q 집권여당의 군수 후보로서 앞으로 진천군수가 되신다면 어떤 군수가 되실 거라 생각하십니까?
A 10여 년 동안 축적된 노하우를 군수로 연장하고 싶어 출마를 하게 되었습니다. 누구보다 진천군의 실정을 잘 안다고 생각합니다. 10년 동안 진천군정을 다뤄 왔으니까요. 김경회 전 군수와 유영훈 현 군수의 장점만을 골라 군정에 적용할 것입니다.
군민여러분께서 제게 기회를 주신다면 저는 '소통하는 군수'가 될 것입니다. 군수가 군수실에 들어앉아 혼자서 계획을 짜서야 되겠습니까? 어떤 일이건 군민과의 소통이 우선시 되어야 합니다. 어떻게 그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일일이 다 들어 주냐고 반문하시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충분한 여론의 수렴 없이는 행정착오가 일어날 수 있습니다. 잘못된 행정으로 지역의 개발이 2,30년씩 후퇴하는 경우가 생깁니다.
여담이지만 청계천 복원 사업 때 당시 서울시장이던 이명박 대통령이 한 민원인을 108번 찾아갔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제가 군수가 된다면 군수실을 누구나 소통하고 군민화합의 장이 될 수 있는 사랑방으로 꾸밀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다시 한 번 말씀드리지만 이번 기회가 제게 주어진 마지막 기회라 여기고 진천군 발전과 군민의 행복을 위해 군민을 섬기는 일꾼이 되겠습니다. 군민 여러분의 많은 지지와 성원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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