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동규 법무법인 주성 대표변호사
석동규 법무법인 주성 대표변호사
  • 이상훈 대표기자
  • 승인 2014.10.07 13:1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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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고향 진천 긍지와 자부심 느끼며, 앞으로 진천군 발전에 기여하고파 ”

학 력
진천삼수초등학교 (1974)
진천중학교 (1977)
청주고등학교 (1980)
연세대학교 법학과 (1989) 졸업

약 력
제32회 사법고시 합격 (1990)
전주지방법원, 대전지방법원, 대전고등법원 각 판사(1993.3. ~ 2008.2.)
청주지방법원 부장판사 (2008.2. ~ 2010.2.)
법무법인 주성 대표 변호사(2010.2.~)

진천 출신인 석동규 변호사는 대전지법, 전주지법 판사를 시작으로 대전고법 판사, 사법연수원 연구법관 등을 거쳐 청주지법 부장판사를 지내다 지난 2월 명예퇴임하고 법무법인 '주성'에 합류하며 변호사업계 지각변동을 일으키고 있다는 언론의 평을 받았다.
17년간의 법관 시절 쌓은 형사·행정·민사·손해배상·부동산 등 다양한 분야에 대한 재판경험을 바탕으로 법관의 판단을 예상, 의뢰인 입장에서 검토하고 해결하는 능력을 갖춘 석동규 변호사를 만나보자.

Q 고향에서 보낸 유년시절 이야기를 좀 해 주시지요.
A 중학교 때까지 고향인 진천에서 생활하고 고등학교부터 타지에서 유학생활을 했습니다. 유년시절은 당시 동년배의 친구들과 별반 차이가 있을 것 같지는 않은데, 여름철만 되면 백사천에서 멱감고 물고기 잡던 일이 특히 기억에 많이 남습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 백사천이 오염되어 발을 담그기조차 힘들다는 소식에 상당히 안타까웠었는데, 최근에 다시 깨끗해져서 물고기도 많이 노닌다고 하니 정말 다행스럽고 반가웠습니다.

Q 어릴 때 꿈은 무엇이었나요?
A 사실 어릴 때의 꿈도 법관이었습니다. 그런데 고등학교에 진학한 후 생각만큼 성적이 나오지 않아 법대 진학을 포기하고 적성과 관계없이 공대에 진학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다시 제 길을 찾아 재수 끝에 법대에 진학하였고, 결국 어릴 적 꿈을 이루게 된 것이죠.

Q 지금도 자주 만나는 고향 친구들이 있으신지.
A 초등학교 동창회, 중학교 상조회를 통해서 친구들을 꾸준히 만나고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자주 만나는 친구는 중부매일신문 지용익 사장과 대전에서도 계속 이웃으로 동고동락해온 감리업체에 근무하는 이관제 이사, 그리고 자주 만나지는 못하지만 항상 마음으로 교감하는 충주 이내과 이광희 원장 등을 들 수 있겠습니다.

Q 진천에는 자주 들르시는지?
A 친구들도 만날 겸 비교적 자주 들르는 편입니다. 제가 청주에 정착한 후에는 아무래도 그 빈도가 잦아졌다고 할 수 있지요. 또한 진천에 부모님이 계시고 7남매 중 4명의 형제들이 진천에 터를 잡고 사는 등 친척들도 많이 남아 계십니다.

Q 17년간의 법관 생활을 접게 되신 이유가 궁금합니다.
A 때가 되었다고 판단했습니다. 하여야 할 역할이 아직은 조금 더 남았다고 느낄 때가 제 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약간의 아쉬움을 남겨두어야 떠나는 사람이나 보내는 사람 모두 아름답게 추억할 수 있다고 생각하였고, 또 하나의 중요한 이유는 제2의 고향이라고 할 수 있는 청주에서 정착하고 싶은 욕심 때문이었습니다. 원래 예정되었던 2년간의 청주지방법원 부장판사 임기를 마칠 때가 다가오자 불현듯 이제 떠나면 다시는 고향 근처로 돌아오기 힘든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그래서 계속 남을 수 있는 방법을 택한 거죠.

Q 기억에 남는 사건이 있다면?
A 2000년 서산에서 형사단독판사할 때 무죄판결한 사건인데요. 어촌계에서 어업보상과 관련하여 동네 주민과 갈등을 빚게 되어 주민을 고소하였다가 오히려 무고로 기소된 사건인데 심리해보니 물증도 없는데다가 진술증거도 신빙성이 부족하여 무죄선고 했습니다. 선고 당일 평소 단단하고 우악스럽게만 보였던 피고인이 말없이 굵은 눈물을 흘리며 인사를 꾸벅하고 법정을 나가더군요.
그 후 제가 대전지방법원으로 전보되고 위 판결 선고일로부터 거의 1년 정도 지나 사건이 거의 잊혀질 무렵 이 사건의 피고인과 가족들 3~4명이 느닷없이 제 근무처로 찾아왔습니다. 무죄판결이 대법원에서 확정되었는데 너무 고맙다면서 활어운반차에 수산물을 가득 싣고 왔죠. 물론 마음만 받고 되돌려 보냈지만, 저에게는 잊을 수 없는 사건이 된 것이죠.

Q 안타까웠던 사건이 있으셨다면?
A 역시 형사사건인데요. 상습절도로 기소되어 1심에서 징역 9월을 선고받고 피고인이 항소한 사건이었습니다. 피고인이 60대 후반의 할머니로 건강상태가 매우 좋지 않아 사실상 수형능력이 없었고, 피고인 또한 진심으로 반성하고 있는 것으로 보여 꼭 선처가 필요한 사건이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피고인이 동종의 죄를 저질러 집행유예 기간 중에 있었기 때문에 집행유예 결격자이어서 법률상 다시 집행유예를 할 수가 없었고, 1심 선고형은 법정 최저형이어서 더 이상 감형의 여지도 없었습니다. 형집행정지 등 집행단계에서의 석방을 기대하면서 저로서는 무기력하게 항소를 기각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Q 사회적 견지에서 보았을 때 법관의 역할이란 무엇일까요?
A 갈등과 분쟁을 해소하고, 사회정의를 실현하는 조정자 내지는 판단자의 역할 아닐까요. 단순히 이미 발생한 사건에 대한 문제 해결에서 나아가 그 조정 내지 판단과정을 통하여 제시되는 기준과 방향성이 사회를 이끌어 가는 상당히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고 봅니다.

Q 법복을 벗고 변호사라는 제2의 인생을 시작하셨는데 변호사로서 법정에 서는 입장에서 감회가 남다르리라 생각합니다만.
A 진실을 추구하고 정의를 실현한다는 지향점은 법관이나 변호사나 똑같다고 봅니다. 다만 그것을 이루어 내기 위한 각자의 역할이 다를 뿐이지요. 재판을 담당했던 경험이 있는 사람으로서 재판부가 정확한 판단을 할 수 있도록 늘 연구하고 노력함으로써 재판부에 도움이 되는 유용한 변론을 하리라 다짐하고 있습니다.

Q 따로 개업을 하시지 않고 법무법인을 선택하셨는데 주성의 대표 변호사로서 「법무법인 주성」에 대한 소개 간단히 부탁드립니다.
A 법무법인 주성은 법원, 검찰 등 현직 경험과 다양한 실무경험을 두루 거친 유능한 변호사 6명 등 각 법무 영역의 전문가 23명의 직원으로 구성된 중부권 최대, 최고의 로펌임을 자부하고 있습니다.
기업회생 등 기업법무, 민사, 형사, 행정, 가사, 세무 등 우리 생활에서 발생하는 모든 법률문제를 각 분야별 전문변호사들이 주축이 되어 사건별로 팀을 구성하여 체계적이고 심도있게 사건을 분석하여 신속, 정확하게 자문, 해결해 드릴 것입니다.

Q 법관의 길을 후회해 본 적은 없으신지?
A 법관은 매번 힘든 결정을 강요받는 참으로 고독하고도 힘든 직업입니다. 그래서 더욱 보람있는 직업이기도 하구요. 직무의 무게를 감당하기 어려운 때도 많았지만 그렇다고 법관의 길을 후회한 적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만두고 나서 아쉬움도 없지 않지만 후련하기도 했습니다.

Q 이전부터 고향인 진천군에 법률자문을 많이 해 주시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 이야기를 좀 해 주시지요.
A 진천군의 공식 자문변호사가 따로 있어서, 사실 제가 공식적으로 도와드릴 기회는 없었어요. 다만 진천군 관계자와의 개인적인 인연으로 몇 차례 법률적인 문제에 관하여 어드바이스해준 적은 있습니다.
앞으로 기회가 닿는다면 보다 적극적으로 진천군과 군민의 이익을 위해 기여하고 싶습니다.

Q 안에서 보는 진천군의 위상과 밖에서 보는 진천군의 위상은 차이가 많이 있을 텐데 외부에서 느끼는 진천군의 위상은 어떤지?
A 제가 대학에 다닐 때만 해도 서울 사람들 중 우리 고향 진천을 모르는 사람이 대부분이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전혀 다릅니다.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브랜드화 된 '생거진천'을 인식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상당수의 사람들이 그 내용, 즉 쌀, 관상어, 장미, 파프리카, 수박 등 유명 농산물, 활성화된 경제상황, 대학유치 노력 등 개선된 교육환경, 종박물관, 보탑사 등 관광문화시설 등을 알고 있습니다. 저도 진천 출신으로서 매우 큰 자부심을 느끼고 있고, 활력이 넘치는 살기좋은 진천건설에 매진하고 있는 군수님을 비롯한 고향분들에께 정말로 감사한 마음을 전하고 싶습니다.

Q 앞으로의 계획과 은퇴 후 고향에 정착할 계획은 없으신지?
A 우선 변호사로서의 본연의 직무에 충실하려고 합니다. 자유롭게 사람들도 많이 만나구요. 그리고 지역사회 발전에 공헌할 수 있는 길이 무엇인지를 고민하려고 합니다. 어릴 때부터 막연히 언젠가는 고향으로 돌아가리라 마음먹고 있기는 한데, 은퇴 이전에는 현실적으로 어려울 것 같고, 변호사라는 직업의 특성상 은퇴시기를 가늠하기도 쉽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거리도 가깝고 같은 생활권이라서 그런지 청주도 거의 고향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네요.

Q 고향 후배들(초·중·고교생)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시다면?
A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다양한 경험을 즐겨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지식도 중요하지만 뭐니뭐니해도 삶의 원천은 지혜이고, 다양한 경험을 통하여 자연스럽게 이를 터득하고 가꾸어 갈 수 있으니까요.

Q 마지막으로 지역주민들에게 하고 싶은 말씀 있으시다면?
A 우리 고향 진천을 더욱 아름답고 살기 좋은 고장으로 만들기 위한 노고에 다시 한 번 진심으로 감사드리고요. 우리 출향인사들도 고향발전을 위해 가능한 방법을 찾아 지원해드리도록 노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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