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재훈 삼성서울병원 영상의학과 박사
임재훈 삼성서울병원 영상의학과 박사
  • 이상훈 대표
  • 승인 2014.07.23 10:4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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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회가 닿는 한 고향 찾아 주민들의 건강지킴이 역할 계속 할 것 ”


출생지

문백면 구곡리

학 력
1960년 문상초등학교 졸업
1963년 진천중학교 졸업
1966년 청주고등학교 졸업
1972년 서울대학교 의학대학 졸업

약 력
1973~77년 서울대학병원 수련
1977~80년 국군 서울지구병원(군복무)
1980~93년 경희대학교 의과대학
진단방사선과 교수
1994~현재 성균관대학교 의학대학
삼성의료원 영상의학과 교수
1991~92년 스코틀랜드 던디대학 석사 취득
2007~ 09년 영국 옥스포드대학 대학원 졸업
대한 PACS 학회 회장 역임
대한 초음파의학회 회장 역임
現 대한민국의학한림원 회원, 의학평가위원장



문상초·진천중을 졸업하고 서울대 의대를 졸업한 뒤 경희대 교수를 거쳐 삼성서울병원에 정착한 임재훈 교수는 수많은 논문을 발표하며 영상의학 진단분야에서 국내 최고 권위자로 인정받고 있다. 또한 고향 진천에서 십 수년 간 의료봉사를 해 오고 있다. 의료여건이 열악한 농촌을 해마다 한두차례씩 찾아 무료봉사를 펼치는 게 최고의 보람 중 하나라는 그를 만나 최근의 근황과 고향에 대한 향수를 들어 보았다.

Q 고향 진천에서 보낸 유년시절 이야기를 좀 해 주시지요.
A 여름이면 농다리에서 멱을 감으며 놀았습니다. 학교가 끝난 후 농다리로 달려가면 언제나 친구들과 물장구치고 물고기를 잡으며 날이 어둑해질 때까지 놀곤 했어요. 바지 하나만 내리면 언제나 들어갈 수 있는 미지근한 개울물, 그 속을 헤엄쳐 다니는 물고기떼, 올갱이도 줍고 모래무지도 잡다가 진력나면 논이나 산비알로 가서 개구리를 잡아 뒷다리를 뽑아 구워 먹기도 하고 남의 밭에서 밀을 뽑아 껍질째 밀을 질겅질겅 씹어 먹곤 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해요.
또 겨울이 되면 동네 가운데 큰 논에서 썰매를 타거나 팽이를 쳤어요. 그러다 눈이 오면 눈싸움이나 말타기 놀이도 하곤 했죠. 밤이면 동네 사랑방에 모여 희미한 등잔불 밑에서 딱지치기, 흙을 굽거나 돌을 갈아 만든 구슬 따먹기, 등잔불에 종이를 태우며 불장난하다 그것도 시시해지면 동네 아저씨나 형들이 들려주는 옛날이야기도 듣고 어른들이 말해주는 바깥 세상 이야기를 들었지요.
한번은 동네 어른 한 분이 서울을 다녀온 후 서울 이야기를 들려주어서 '아! 이런 세상도 있구나!' 하며 '내가 죽기 전에 서울 구경을 한번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다 잠이 들기도 했답니다. 밤이 이슥해 속이 출출해지면 남의 부엌에 들어가 밥과 김치를 훔쳐 볶아 먹으며 허기를 달래고 낄낄대다 각자 집으로 갔지요. 지금으로선 상상도 못할 일이지만 그 때의 시골 인심이 그랬어요. 돌아갈 때는 골목 모퉁이의 달걀귀신과 멍석귀신을 조심하라는 형들의 말에 겁을 집어먹고 집까지 귀를 막고 뛰었어요. 지금 생각해 보면 참 즐거웠던 어린 시절이었답니다.

Q 지금도 자주 만나는 고향 친구들이 있으신지.
A 자주 만나는 고향 친구들은 주로 구곡리 동네 친구들과 어른들로 그 중 구곡 친목계 회장 임의수씨, 전 진천군 기획실상 임상은씨, 전 문백면 부면장 임영섭씨를 자주 만납니다. 임영섭 씨는 매년 두 번 Join -Us 봉사회에서 시행하는 진천군민 진료에 무한한 애정을 갖고 저를 돕고 있습니다. 또 진천읍에서 신진건설을 운영하는 이윤세 사장을 자주 만나곤 합니다.

Q 진천에는 자주 들르시는 편이시죠? 정기적으로 의료봉사도 오시지만 그 외의 일로도 자주 오시나요?
A 고향에는 꽤 자주 가는 편입니다. 동네 친구들 친목계가 있는데, 어릴 때 한 동네에서 같이 지내던 한 20명의 친구들이 1년에 한 번 정초에 모여 계모임을 합니다. 해마다 15명 정도의 친구들과 그 부인들이 모여 막걸리를 놓고 정겨운 옛날이야기를 한답니다. 대부분 외지에 나가서 살지만 아직도 친구 대여섯 명은 고향 동네나 진천읍에 살고 있어 저처럼 외지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고향에 남아서 고향을 지키고 동네 어른들을 모시며 지내는 이 친구들이 여간 고맙지 않습니다. 친목계 모임 외에 여름에 한 차례 농다리축제에 가기도 하고, 산소에 벌초 가기도 하며, 동네에 사시는 아저씨, 형님들과 함께 천렵에 참석하기도 합니다.

Q 아직 고향에 누가 남아 계시는지?

A 문백면 구곡리에 작은 아버지(임형섭)와 팔촌 형님(임재우), 두 분이 집안 대소사를 주관하시고 계십니다.

Q 삼성서울병원 영상의학과 의료봉사팀이 17년째 진천에서 의료봉사활동을 펼치고 계신데 처음 계기는 무엇인가요?
A 영상의학과 전문 의사로서 고향 주민, 처음에는 문백면 구곡리의 어른들에게 무엇을 도와줄 수 있을까 생각하던 중, 운반할 수 있는 초음파 진단기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것을 그 당시 제조 기계 회사에 부탁해 싸게 하나 구입했습니다. 그것을 자동차에 싣고 친구네 집(그 당시 임상락)으로 들어가서 동네 어른들 초음파검사를 시작했어요. 그 때 이틀에 걸쳐 60분 정도 초음파검사를 실시했는데, 그 당시 동네 할머니와 친척 아저씨 두 분의 병을 진단하게 되었습니다. 동네 할머니는 속앓이로 몇 년 동안 이병원 저병원 다니시며 서울의 한 대학 병원에 가서도 원인을 찾아내지 못하고 의사로부터 마음의 병이니 마음을 다스리라는 충고를 받고 집으로 돌아와 유명한 무당을 찾아가 큰 돈을 들여 굿을 하기로 하던 중이었는데 마침 제가 초음파검사로 담석(담관이 빠지는 관에 푸석푸석한 돌맹이가 생김)을 발견하고 경희대학병원에 입원시켜 수술 후 완쾌되었습니다. 그 후에 들은 이야긴데 동네 어른들이 그 조그마한 초음파 진단기로 대학병원에서도 진단을 못한 병을 진단하나 못하나 이것이 초미의 관심사였다고 하더군요. 또 동네 아저씨 한분은 전혀 증상이 없는 1.5cm 정도의 강낭콩만한 신장암을 발견해 수술 한 후 완쾌되어 현재까지 20년 이상 건강히 지내고 계십니다. 이 두 동네 어른들의 병을 진단한 것이 지금까지 십 수 년 동안 계속해 초음파 진료를 하고 있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Q 박사님의 명성은 익히 들어 알고 있습니다. 지역에서도 박사님의 의료봉사 활동이 귀감이 되고 있습니다. 벌써 오랜 시간 고향 어르신들의 건강을 보살피고 계시는데 박사님께서 보시는 지역 어르신들의 건강상태는 어떻습니까?
A 올해로 17년째 고향을 방문해 그동안 1만명이 훨씬 넘는 고향 주민들을 진료했습니다. '농촌사랑운동'의 하나로 지역농협과 연계해 보다 체계적인 진료가 진행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된 것도 참으로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진천은 아쉽게도 지역 내 의료시설이 부족합니다. 매년 의료봉사단을 꾸려 제가 자란 고향을 방문해 무료진료를 하면서 한번에 400 내지 600명 정도의 주민을 진료를 하다 보면 약 3~6명(주민의 약 1%) 정도에서는 암이 발견되곤 합니다. 금년에는 간암 2명, 난소암, 임파선암 등의 환자가 있었고 이들 중 2명을 삼성의료원에 입원시켜 치료받게 하였습니다.
또 나이 드신 주민들에게 흔한 고혈압과 당뇨병 환자들이 많은데 고혈압 치료를 제대로 하지 않는 분들이 꽤 여러분 계셨습니다. 고혈압은 약만 하루에 한번씩 먹으면 치료될 수 있는 질환임에도 불구하고, 약을 한번 먹으면 평생 먹어야 된다는 이유로 치료를 안 하는 분이 많은데, 약은 한번만 아침 후에 먹기 때문에 전혀 부담이 없습니다. 고혈압을 치료하지 않고 그냥 두면 동맥경화증, 중풍, 심장마비 등 치명적인 병의 발생 빈도가 매우 높아지고 시력도 상실하기도 하고 신장이 나빠져 소변을 제대로 보지 못하는 경우도 생깁니다. 또한 허리와 팔다리가 아프거나 쑤시는 관절염 환자가 많은데 이럴수록 몸을 움직이고 운동해 항상 몸을 부드럽게 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걷는 것은 이 모든 것을 해결해줍니다. 하루에 아침, 저녁 또는 아침저녁으로 한 시간 이상 걸으면 혈압이나 당뇨병도 치료하기 좋고 허리 관절염 환자도 죽을 때까지 걸어 다닐 수 있습니다.

Q 30년 전 일반인에게는 물론 의사에게도 낯선 '진단방사선과'(영상의학과)로 진로를 미리부터 마음에 정하고 있었다고 하셨다던데 진단방사선과를 선택하셨던 이유가 있으신가요?
A 첫째는 타과에서 정확한 진단을 내리는 데 있어서 진단방사선과가 결정적인 영향력을 끼칠 수 있다는 사실이죠. 어떻게 보면 의사의 의사라고도 볼 수 있고, 우리 때만도 수준이 높지 않았던 때지만 만져보고, 청진기로 진찰하는 것이 대부분이던 다른 과 의사들에게 그런 도움을 줄 수 있었으니까요.
두번째는 닮고 싶은 의사가 바로 진단방사선과 의사였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서울의대 명예교수로 계신 한만청 교수님이 그 주인공이십니다. 한 교수님은 진단방사선과 교육 프로그램을 획기적으로 바꾼 주인공으로 실력도 뛰어나 학생과 교수들의 신임을 한 몸에 받았습니다. 그래서 닮고 싶은 모델이고 목표였습니다.

Q 의사가 된 것을 후회해 본적이 있으신가요?

A 의사가 된 것을 후회한 적은 없지만, 의사가 되고 나서는 항상 후회밖에 없습니다. 내가 공부를 조금만 더 했으면, 조금만 더 꼼꼼히 판독했으면 더 빨리 발견할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생각이죠. 나중에 보면 좁쌀만한 종양도 눈에 다 보이거든요.

Q 고향 후배들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시다면?
A 어디에서 무슨 일을 하던지 항상 나를 키워주신 부모님, 친지, 동네 어른들, 그리고 공부 가르쳐주신 선생님들의 고마움을 잊지 마십시오. 또 고향의 발전을 위하여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 생각하면 반드시 할 일이 있습니다.

Q 마지막으로 고향 주민들에게 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시다면?
A 나이 들어서도 젊게 살고 싶은 것이 모든 사람들의 소망일 것입니다. 의학도 발달하고 치료 기술도 나날이 발전해 암도 완치되고 불치병도 치료하게 되어 많은 사람의 수명이 연장됐지만 오래 살면서도 병원 신세만 지는 사람은 평생 괴롭습니다.
건강하게 사는 것은 사람의 생각과 의지에 따라 큰 차이가 납니다. 매일 걷고 운동하며 음주를 절제하고 담배도 끊어야 합니다. 그리고 늙어서도 건강하게 살 수 있다는 신념으로 즐겁게, 긍정적으로 생각하며 사는 것이 중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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