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호 석 백곡 강당골농장 대표
이 호 석 백곡 강당골농장 대표
  • 김미나
  • 승인 2018.01.18 13: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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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부로 변신한 30년 경력 패션마케팅 전문가
 ▲이호석 강당골농장 대표가 농장에서 환하게 웃으며 포즈를 취했다.
▲이호석 강당골농장 대표가 농장에서 환하게 웃으며 포즈를 취했다.


3년 전 귀농, 슈퍼으뜸도라지 서리태콩 등 재배
“작물은 농부의 숨소리, 발자국 소리 듣고 자라”

고급 세단을 타고 서울 테헤란로를 누비던 한 도시인이 있었다.

도시에서 태어나 한 평생을 빌딩숲에서 살아온 그는 나이가 들면서 작은 꿈을 하나 키우게 됐다. 회색 도시 대신 맑고 깨끗한 자연환경에서 좋아하는 팝송을 실컷 들으며 농작물을 키우는 농부가 되는 것.

꿈을 이루기는 쉽지 않은 일이지만 평소 추진력 있는 성격으로 도시에서 인정받았던 그는 귀농을 결심했고 결국 현실로 만들어 냈다.

그는 백화점에서 산 명품 양복 대신 밀짚모자를 쓰고 무릎까지 오는 장화를 신었다. 물론 그의 생각처럼 평화롭고 좋은 일만 가득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의 삶이 그 어느 때보다도 귀하고 행복하다고 자신하고 있는 귀농인, 이호석(59) 강당골농장 대표를 만났다.

청정백곡서 강당골농장 운영

이호석 대표는 3년 전 도시에서의 모든 삶을 던지고 백곡면 강당마을로 귀농했다. 1만 6000여㎡ 규모의 강당골농장을 열고 명함에는 '생거진천 청정백곡'이라는 말을 새겨 넣었다. 특히 '청정백곡'이란 단어는 그의 마음에 꼭 드는 말이 아닐 수 없다.

이 대표는 “강당마을은 아버지의 고향이라 어린 시절 자주 찾았던 곳”이라며 “깨끗하고 맑은 청정백곡의 땅에서 농부가 되는 것을 늘 꿈꾸었다”고 말했다.

귀농을 하기 위해 그는 차곡차곡 준비했다. 추진력 있는 성격에 꼼꼼함까지 두루 겸비해 회사에서도 늘 인정받았던 그였다.

그는 서울농업기술센터에서 진행하는 귀농·귀촌 프로그램에 등록해 1년 동안 열심히 교육받았다. 여기서 그는 귀농·귀촌에 필요한 다양한 실무를 배웠다. 직접 밭을 일구고 농기계 사용법을 익히며 농촌 생활의 적응을 위한 정신무장을 했다.

그는 “귀농한지 3년이 됐지만 사실 아직도 도시생활과의 정신적인 충돌이 느껴질 때가 있다”며 “하지만 좋았던 기억을 담아놨다가 좋지 않은 일이 있을 때 그 기억을 떠올리며 마음의 안정을 찾는다는 앵커링 효과를 생각하면서 나름 평화를 찾는 방법을 익혔다”고 미소지었다.

할아버지, 아버지의 고향
그는 서울에서 4남 1녀 중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강당마을은 그의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고향이고 두 형들이 태어난 곳이다.

서울에서 학창시절을 보내고 경기대에서 건축공학을 전공한 건축학도였던 그는 우연히 둘째 형의 권유로 패션업계에 발을 들이게 됐다.

대한민국 대표 패션디자이너인 고 앙드레김의 (주)나라패션에 공채1기로 지난 1985년 입사한 이후 여성커리어 패션브랜드로 유명한 '벨라디터치'의 상무이사로 2015년 퇴직하기까지 30년 동안 패션업계에 몸담았다.

트렌드에 민감하고 늘 앞서가야 하는 패션업계에서 그는 불가능한 것을 가능하게 만드는 추진력을 인정받아 승승장구했다.

그는 “당시에는 몰랐는데 퇴직 후 부하직원들이 무서운 상사였다고 얘기해 놀랐다”며 “직장 생활을 하는 동안 안되는 일은 없다라는 의지를 가지고 직원들을 이끌었다”고 회상했다.

하루하루 최선 다하는 것 행복
요즘 그의 얼굴은 검게 그을렀다. 입술은 부르터 있고 팔, 다리는 상처투성이다. 아침 5시에 일어나 하루종일 농장을 누비며 구슬땀을 흘려도 일은 끝나지 않는다.

그는 “작물은 농부의 숨소리, 발자국 소리를 듣고 자란다”며 “하루 종일 일을 해도 해도 끝이 없지만 이렇게 해서 얻어진 작물을 보면 이처럼 귀한 일도 없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강당골 농장에는 포포나무, 체리나무 등의 나무들과 슈퍼으뜸도라지, 서리태콩, 배추, 들깨, 참깨, 고구마, 감자 등 다양한 작물이 자라고 있다. 이 중 올 해 수익을 창출한 품목은 슈퍼으뜸도라지와 서리태콩이다.

3년이라는 시간과 그동안의 노력을 생각한다면 아직 높은 수익을 올리고 있지는 못하는 상황이지만 그의 표정은 밝기만 하다.

그는 “슈퍼으뜸도라지로 처음 5만 원을 벌었을 때의 감동은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 귀하고 값진 일이었다”며 “최고는 아니더라도 최선을 다한다는 마음가짐으로 그저 하루 하루 최선을 다하고 있을 뿐”이라고 환하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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