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과 바늘
실과 바늘
  • 정선옥
  • 승인 2010.12.14 1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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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과 바늘, 그 풍요로운 상상의 바다”


『세요 각시 가는 허리 구붓기며 날랜 부리 두루혀 이르되, 진주(眞珠) 열 그릇이나 껜 후에 구슬이라 할 것이니, 재단(裁斷)에 능소능대(能小能大)하다 하나 나 곧 아니면 작의(作衣)를 어찌 하리오. 세누비 미누비 저른 솔 긴 옷을 이루미 나의 날내고 빠름이 아니면 잘게 뜨며 굵게 박아 마음대로 하리오." 청홍 각시 얼골이 붉으락 프르락 하야 노왈, "세요야. 네 공이 내 공이라. 자랑마라. 네 아모리 착한 체하나 한 솔 반 솔인들 내 아니면 네 어찌 성공하리오."』

절로 입가에 미소가 지어지는 규중칠우쟁론기(閨中七友爭論記) 중 바늘 세요 각시와 실 청홍 각시가 서로 옷을 만드는 데 일등공신임을 자랑하는 대목으로 우리 규방문화 중 바느질이 차지하는 비중을 짐작할 수 있는 수필이기도 하다.

요즘은 흔치 않지만 옛날 우리 여인네들의 규방 한켠엔 색색의 고운 실과 바늘, 골무, 가위 등을 보관하는 반짇고리함이 필수품으로 자리하고 있었다. 복주머니 같은 작은 소품 하나부터 이불에 이르기까지 어느 것 하나 여인의 야문 바느질 솜씨가 소용치 않은 곳이 없었다. 근대화 이후 홈패션, 퀼트, 양재 등의 이름을 달고 면면히 이어져 오던 바느질은 최근 DIY 바람을 타고 새로운 전성기를 맞고 있다.

실과 바늘, 그리고 마음대로 쓸 수 있는 천 조각만 있다면 실로 무궁무진한 세계를 만날 수 있는 것이 바로 바느질이다. 그 풍요로운 상상의 바다에 빠진 이들이 있으니 바로 「실과 바늘」 회원들이다. 겉으로 드러나게 활동하는 이들이 아닌 탓에 만남에 어려움이 있지 않을까 걱정하며 여성회관을 찾았는데 반가운 재봉틀 소리가 그런 기우를 날려 주었다.

드르륵 드르륵. 재봉틀이 귀에 익은 소리를 내고 작은 천 조각들이 바늘을 수 십 번 통과하면 어느새 이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가방 하나가 탄생한다. 조금 비뚤비뚤하게 박히고 살짝 비어져 나온 부분이 있어도 회원들은 그저 내가 만들었다는 자부심에 마냥 흐뭇하기만 하다. 회원들이 이곳에서 만들어 내는 작품은 앙증맞은 키홀더부터 가방, 커튼, 이불, 패턴을 이용한 간편한 평상복까지 다양하다.

굳이 장르를 따지자면 손바느질과 재봉틀을 겸하는 머신퀼트나 소잉 등으로 분류될 수 있겠지만 그리 중요한 조건은 아니다. 손바느질만으로는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고 그 내구성을 장담하기 어려운 만큼 주요 박음질은 재봉틀을 이용하고 마무리나 장식 단계에서 손바느질을 병행한다. 벌써 3·4년씩의 내력을 가진 회원들이 많다 보니 작품은 이제 전문가 수준이다. 제작에 한 달씩 걸리는 조각이불 같은 고난도의 작품도 이제는 겁내지 않을 만큼의 실력이다.

물론 새로운 회원들을 위한 문은 언제든지 열려 있다. 기초반에서는 재봉틀 사용법부터 재단, 손바느질 기법 등의 기초를 20년 경력의 최미애 강사로부터 차근차근 배울 수 있고, 여성회관에 시설이 충분히 갖추어져 있어 개인적으로 재봉틀이 없어도 충분히 작품 활동을 할 수 있다. 사실 재봉틀이라는 기계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망설이는 이들이 많지만 2주 정도의 수업이면 어느 정도 감을 익힐 수 있다고 한다. 지금은 베테랑인 회원들도 처음에는 옷감을 박고 뜯기를 수차례 씩 했다며 '뜯는 것도 실력'이란다.

바느질 하면 왠지 젊은 사람들과는 거리감이 있어 보이기도 하지만 사실 요즘엔 젊은 사람들이 더 관심이 많다고 한다. 많지는 않지만 임산부들도 가끔 있어 바느질을 통한 태교는 물론 턱받이, 겉싸개, 아기이불, 수유 쿠션 등의 유아용품까지 직접 만들어 간다. 이렇게 회원들이 만드는 작품에는 그 물건을 사용할 사람에 대한 마음이 담겨져 있다. 재봉틀로 천 조각들을 이어 붙이면서, 혹은 공부 중인 아이와 멀찍이 떨어져 조용히 바느질을 하면서 받는 이의 얼굴을 떠올린다. 이런 회원들의 마음을 아는지 회원들이 직접 만든 소품을 선물로 받는 이들은 그 작품에 더해 주는 이의 정성과 사랑을 오래토록 간직한다. 그도 그럴 것이 자신만을 위한,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물건이기 때문이다.

회원들은 짬짬이 열쇠고리나 작은 파우치 같은 소품들을 만든다. 딱히 누구를 생각해서 만드는 것은 아니지만 언제고 누군가 선물하고 싶은 사람을 만났을 때 주고 싶어서다. 그렇게 많이 만들어 놓아도 없어서 주지 못할 때가 많아 아쉬울 때도 많단다. 하지만 이렇게 마음 후한 회원들일지라도 가끔 난처할 때가 있다. 수개월 씩 공들여 만든 작품을 청하는 이가 있을 때는 거절하기도 미안하고, 다시 만들어 주기도 쉽지 않으니 마음만 상할 뿐이라고 한다.

30대부터 60대까지 다양한 연령대가 포진돼 있다 보니 분위기는 흡사 잔칫날을 앞두고 종갓집에 모인 안주인들 같다. 형님, 아우 하면서 시시콜콜한 집안 이야기까지 이런저런 이야기를 섞어가며 가슴에 쌓인 먼지를 털어낸다. 자연히 요즘 전염병처럼 번지는 주부우울증 같은 건 발붙일 틈도 없다며 특히나 전업주부라면 이런 취미생활 한 가지는 반드시 가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재봉틀을 돌리고 작품을 만들어 내면서 느끼는 성취감도 중요하지만 주부 혼자서는 차 한 잔 조용히 마실만한 공간이 없는 지역에서 여기보다 좋은 곳이 없단다.

수업 시간이 너무 적은 것이 불만이라면 불만이라는 회원들은 방학 중에도 종종 만나 밀린 이야기보따리를 푼다. 실과 바늘은 단순히 기능만을 익히는 모임이 아닌, 사람을 만나고, 느끼고, 소통할 수 있는, 사람을 익혀가는 모임인 것이다.


미·니·인·터·뷰

박춘화 회장
박춘화 회장
“동아리는 소통과 교류의 장”

재봉은 기능입니다. 한 번 배워두면 시중에서 보다 저렴한 가격으로 내 감각에 맞게 집안을 꾸밀 수도 있고 부업도 가능하죠.
요즘엔 패턴도 많이 나와 있고 인터넷 등에 패키지 상품도 많아 기초만 다진다면 얼마든지 응용 작품이 가능합니다.
작은 작품일지라도 완성했을 때의 성취감이나 평소 고마웠던 사람들에게 선물할 때의 뿌듯함은 매우 클 뿐 아니라 바느질을 하는 동안에는 모든 상념이 없어지고 집중하게 됩니다. 이것이 남들에게 권할 수 있는 가장 큰 이유지요.
또 한가지, 주부들이 밖에 나와 사람들과 교류할 수 있는 공간이 많질 않아요. 육아나 지역에 대한 정보가 필요한 분들이라면 더더욱 이런 강좌에 등록해 많은 사람들을 만날 기회를 만들었으면 합니다.
더 많은 분들이 내년 봄 개강에 맞춰 여성회관의 문을 두드릴 수 있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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