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종운 前 진천군노인회 자문위원장
고종운 前 진천군노인회 자문위원장
  • 강성진
  • 승인 2011.01.09 1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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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잘 살면서 남에게 베풀수는 없다” 지역을 ‘봉사’로 개혁한 주인공


대한노인회의 고종운 자문위원을 떠올리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단어가 있다. '노익장(老益壯)'. 이 말은 '후한서(後漢書)' 마원전(馬援傳)에 나오는 '대장부라는 자는 뜻을 품었으면 어려울수록 굳세어야 하며 늙을수록 건장해야 한다(大丈夫爲者 窮當益堅 老當益壯, 대장부위자 궁당익견 노당익장)'의 노당익장에서 따온 말이다.

즉, 나이가 들어 늙어갈지라도 젊은이 못지않게 건장하다는 말로 늙어서도 청년 못지않은 기개를 보이는 사람에게 쓰이는 말이다. 사람은 늙을수록 뜻을 더욱 굳게 해야 한다는 의미도 있다.

올해 나이 67세인 고종운 자문위원은 외모뿐 아니라 모든 활동에서 노익장을 과시하고 있다. 그 면모는 특히 새마을지도자로서 활약과 노인회 활동에서 잘 드러난다.

1944년 진천읍 교성리 향교마을에서 태어난 그는 5살때 아버지를 여의고 6살때 어머니가 출가를 하게 되면서 어려운 유년시절을 겪게된다. 약관의 나이에 지금의 아내 유명자 여사를 만나 결혼한 그는 고향에서 부모님께 물려받은 논 3마지기 벼농사로는 도저히 생활이 힘들어 남의 집 품팔이를 다니며 겨우 살림을 이어갔다. 그 당시 경상도, 전라도, 경기도 동두천까지 고추, 쌀, 잡곡 등 농수산물 도매사업을 시작한 그에겐 또 한번의 시련은 찾아오고, 그마저 있던 3마지기 땅조차 근저당 잡히며 생계를 이어주던 사업마저 잃게된다.

그의 시선이 잠시 한곳에 멈추더니 “죽을 먹어도 빚만 없으면 된다고 생각하고 살았습니다”며 역경의 세월을 회고해 나갔다.

그 뒤 쌓인 빚과 가족의 삶을 위해 사우디로 돈을 벌러 가게되고 한국땅을 다시 밟은 그는 3년동안 사우디의 건설현장에서 차곡차곡 모은 돈으로 축사를 짓고 양돈업에 시작하게 된다.

지금은 이월면 노원리 서원마을에서 돼지 850두를 키우는 대화농장 대표로 20년이 넘는 양돈경력의 소유자인 그는 농장의 돼지들과 생사고락을 함께하는 동안 그의 이름표 뒤에 새마을운동가라는 호칭도 늘 함께 따라다녔다.

고종운 자문위원을 이야기하면서 새마을운동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는 이야기다. 그가 새마을지도자에 입문한 후 고향 마을길을 넓히고 오래된 가옥을 정비하는 일을 시작으로 가장 빛을 발했던 사업은 당시 110V전기를 사용하던 진천군에 최초로 220V전기를 끌어온 일이다. 나는 없어도 남에게 베푸는 일을 최고의 행복으로 여기며 살아온 그의 삶은 상산라이온스(16대회장 역임)활동, 진천군 노인회 자문위원회 활동에도 그대로 녹아들어 있다. 소방대, 읍사무소, 각 읍면 새마을지도자 등 지역단체의 크고 작은 행사마다 그의 농장에서 직접 키운 돼지를 선뜻 내주고, 이월면 42개 마을 경로여행에 타올을 지원했으며 환경미화요원들과 소년소녀가장들에게 따뜻한 겨울을 보낼 수 있는 내의와 점퍼를 지원하기도 했다. 그때 아이들에게 점퍼를 직접 입혀주면서 “나도 5살먹어서 어머님 아버님을 모두 잃었다. 너희들도 절망하지 말고 꿋꿋히 살아주길 부탁한다”고 소감을 말했을땐 지켜보던 사람들의 눈시울을 적시운 일은 아직도 회자되는 이야기다. 마을의 작은 새마을 지도자일로 시작된 그의 베품의 삶은 지역사회에 봉사자로서 당당하게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활발한 영농인으로서 새마을운동가로서의 활동과 함께 하던 그가 진천군노인회 자문위원장으로 추대되면서 노인회와 인연을 맺은것은 또다른 봉사인생의 출발점이었다. 이처럼 지역에서 노인회 활동에 참여한 이후 그의 지도력과 추진력은 가히 지역 노인 세대들에게 기운을 북돋고 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가 노인회에 참여하면서 가장 먼저 주장한 것은 바로 변화였다. 그저 노인정이나 경로당에 모여앉아 할 일 없는 노인들의 모임에 그쳤을 뿐 아니라 주변의 곱지 않은 시선을 바꿔놓기로 결심한 것이다. 그래서 그는 자문회 모임을 수시로 갖고 노인회 활동을 활성화하는 등 노는 '경로당'을 봉사로 개혁하며 그야말로 진천노인회를 '젊고 활기찬 노인회', '지역 사회와 함께 하는 노인회'로 만드는데 앞장서 실천했던 주인공이기도 하다. 그의 농장집 한켠에는 각종 표창장, 공로패, 감사패가 거실장 가득 채우고 있다. 그가 67년동안 지역 골골을 누비며 살아온 그의 활기찬 인생 행보를 대신해 주는 것들이리라.

그는 이제 '마지막까지 봉사'를 위해 자신이 가진 모든 역량을 발휘하려고 한다. 1만여명에 가까운 노인들이 행복한 진천만들기가 그것이다. 고종운 전 자문위원장이 바라는 모든 꿈이 꼭 이루어지길 바란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은 영원 가운데의 한 순간, 오늘이라는 이 소중한 현실의 마당에서 진정 무엇을 해야 가치 있는 삶이 될 수 있을까? “내가 잘 살면서 남에게 베풀수는 없다”는 고종운 前 진천군노인회 자문위원장의 삶이 좋은 해답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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