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천 생활체육계의 산증인
진천 생활체육계의 산증인
  • 오선영 기자
  • 승인 2008.10.15 14: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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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행복하게 한 체육이 군민을 행복하게 해주는 그날까지...


김 형 운 진천군 체육회 사무국장

인터뷰를 위하여 김형운 진천군체육회 사무국장을 만났을 때 40대 중반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건강과 젊음이 넘치는 외모가 인상적이었다. 김국장은 지금의 젊은이들과 견주어도 손색이 없을 만큼 훤칠한 키와 운동으로 다져진 단단한 몸으로 건강한 삶을 위해 꾸준한 운동이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 보여준다.
그의 이 같은 신체조건은 어렸을 적부터 타고난 것으로 체육계에 몸담게 된 계기가 되기도 하였다. 초등학교 3학년, 10살이 되던 해에 또래보다 훨씬 큰 키와 다부진 체격조건이 선생님의 눈에 띄여 운동을 시작하게 되었다. 뚜렷하게 어떤 종목을 육성하기 보다는 학교의 상황에 맞추어 육상, 핸드볼, 배구 등 6종목을 넘나들며 운동을 시작한 그는 5학년 말 '관내 초등학교 체육대회'에 씨름 선수로 출전하게 되어 당시 씨름이 지정종목이던 초등학교를 누르고 우승을 차지하게 되었다. 이 대회의 우승을 계기로 초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씨름을 계속하였으며 당시 럭비로 8연승을 이루며 이름을 날리던 진천중으로 진학하게 되었다. 하지만 중학교 시절은 운동보다는 공부에 열중하여 청주에 있는 고등학교로 진학하게 되었고 이 때 매스컴을 통해 접했던 복싱은 새로운 눈을 뜨게 하였다. 합법적으로 힘을 펼치며 상대방을 제압할 수 있는 복싱의 매력에 빠져든 김국장은 학교를 마치고 체육관에 입관하여 복싱스타의 꿈을 키우게 되었다. 185cm의 키에 웰터급으로 시작한 복싱은 타 선수들보다 유리한 신체조건으로 데뷔하자마자 충북대회에서 우승을 거머쥐게 되었다. 여세를 몰아 중앙대 체육관련학과의 입학을 위해 서울로 상경하여 홍수환 등의 유명 복싱인을 키워낸 프로덕션에 청주 체육관의 추천으로 입관하여 전국 신인왕전과 함께 대학입학을 준비하였다. 그러던 차에 연습중 불의의 사고를 당하게 되어 허벅지근육 파열과 허리 부상으로 청운의 꿈을 접게 된다. 서울에서 치료를 계속하다가 고향인 진천으로 돌아와 주변 분들의 도움으로 빨리 회복할 수 있게 되었다. 몸이 회복되기 시작하자 그 해 10월에 열린 도민체전 씨름대회에 선수로 출전하게 된다. 가족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몸의 회복상태를 확인하고 싶었던 김국장은 씨름왕전에 출전해 그해부터 4~5년간 양호한 출전 성적으로 씨름을 계속하며 체육인의 길을 다시 걷게 되었다. 다행히 지금은 몸도 완전히 회복되었고 이렇게 30년 가까이 선수이자 경기사로 다양한 종목에 출전할 수 있었다.
한 때 고등학교 전국 꿈나무 선발대회를 통해 선수를 발탁하여 86아시안게임, 88올림픽을 대비해 태능선수촌에 입촌시키고자 하는 정책이 있었는데 충북대표 2명 가운데 한 명으로 선발될 만큼 유능한 선수였던 그였으나, 계획자체가 무산되어 전문체육인의 길을 가는 것이 좌절되기도 하였다. 그는 이처럼 체육발전사의 과도기를 살면서 다양한 기회를 접하기도 하지만 또 많은 좌절을 겪어오며 오늘에 이르렀다.
진천읍, 광혜원면, 다시 진천읍 세군데 볼링장의 부장직을 맡으면서 직장생활도 체육관련 일을 해오던 김사무국장은 94년 생활체육회 사무국장일을 보다가 생활고로 잠시 접었으나 97년 다시 생활체육회 사무국장일을 맡게 된다.
그가 생활체육회의 일을 해오면서도 과도기적 체육사는 그대로 들어났다. 서울올림픽 이후 많은 인식전환으로 인해 육성체육에서 국민이 즐기고 건강도 증진시킬 수 있는 생활체육으로 관심이 확장되며 89년 호돌이 계획을 시작으로 91년도 생활체육협의회 구성 발족 후 94년 진천군 생활체육협의회가 충북 군 단위 최초로 발족하여 초기 사무국장 혼자 일할 때부터 IMF이후 2001년 국민체육협의회 청년 일자리 창출의 일환으로 생활체육지도자를 각 생활체육협의회에 파견하게 된 현재는 8명으로 인원이 증원하게 되었다. 지난 5월 14일 생활체육회와 진천군체육회가 통합되며 진천군체육회와 생활체육회의 일을 총괄하게 된 김국장은 지난해 46회 충북도민체전에서 청주시를 누르고 우승을 차지한 것이 가장 감격스러웠다고 한다. 지역 특수성과 체육행정의 한계로 인해 도민체전 20회부터 씨름선수로 출전하는가 하면 볼링, 배드민턴, 유도, 궁도 등에도 출전해왔으며 당시 생활체육회의 사무국장이어서 생활체육인들 가운데 출전한 선수가 많아 이 같은 쾌거에 더욱 보람을 느꼈다.
좋게 말해 만능 엔터테이너가 되어버린 그가 정작 시대와 스승을 잘 만났다면 어느 스포츠계에서 우뚝 선 거봉으로 만날 수 있지 않았을 까 아쉽기도 하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명예, 권력, 경제력도 중요하지만 그에게는 체육활동을 통한 건강과 즐거움을 얻을수 있어 살아가는 데 큰 힘이 되었다고 한다. 나자신을 위한 성취감이나 단련은 물론 타인들이 나의 경기로 인해 행복해 하는 것 역시 삶의 목적과 목표가 되어줬다는 김국장은 지금은 생활체육을 통해 군민들에게 건강하고 즐거운 삶을 전파하는 보람으로 사는 건강전도사가 되었다.
또한 요즘은 오는 17일부터 3일간 우리고장에서 열릴 생활체육문화축제의 준비로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하루24시간이 짧게 느껴진다는 김형운국장. 생활체육의 발전된 모습을 나누며 문화행사와 병행하여 지역상권에도 파급효과를 기대하고 있다며 오늘흘린 땀의 성과를 생각하면 하나도 힘들지 않다고 하며 열심히 일하고 있다.
굴곡을 많이 겪은 그의 삶이 행복과 즐거움으로 점철될 수 있었던 것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수 있게 옆에서 항상 내조해준 아내 조윤기(41)씨와 별이(16), 현이(13) 두딸과 아들 현성(10)이와 함께하는 건강하고 즐거운 삶을 위해서라도 체육인으로 살고자 하고있다.
취재 / 오선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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