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행문] 백두산을 다녀와서…
[기행문] 백두산을 다녀와서…
  • 강성진
  • 승인 2011.09.19 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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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희 前 이월면장

생거진천이 낳은 이상설 애국지사의 발자취 … 그리고 통일에 대한 염원

백두산 여행을 하자는 지인의 제안에 따라 지난 7월 11일 오전 11시 30분 비행기로 청주 공항을 떠나 연길로 향하였다. 비 내리는 궂은 날씨에도 비행기는 힘차게 이륙하여 어느새 구름위로 날고 창밖으로는 구름 밑에 구름이 정말로 아름답게 여러 모양을 만들며 빠르게 움직인다. 모양도 가지가지다. 잠시 눈을 붙이니 잠시 후 연길에 착륙한다는 기내 방송이 나온다. 밖을 보니 우중충한 건물이 점점 크게 보이면서 드디어 육중한 비행기의 동체가 땅에 착지를 한다. 체조 요정처럼, 엄청난 비행기 중량에 그 많은 사람과 화물을 싣고, 조종사의 조종은 예술이다.
입국 심사를 마치고 나오니 우리 일행을 반가이 맞이하는 밀양 박씨에 이름은 호산이라는 현지 가이드가 연길 사투리로 말한다. “여러분, 1시간 젊어 지셨습네다. 우리나라와 1시간 시차가 나는데 해 뜨는 시간은 한국과 같습네다. 여기는 북경을 기준으로 하기 때문에 그러합네다” 호텔에 짐을 풀고 시내 관광에 나서보니 여기가 한국인지 중국인지 헷갈린다. 모든 간판이 한글과 한문으로 되어 있다. 연길은 조선족 자치주라 법으로 정했단다. 눈에 띄는 간판은 이빨 임플란트, 유난히 치과 의원이 많아 보인다. 진달래 공원에서 사먹는 팥빙수의 맛은 우리 것과 별 차이가 없다. 이렇게 간단히 시내 관광을 마치고, 시내 불고기 집에서 중국술에 삼겹살 안주로 기분 좋게 저녁식사를 마치고 호텔로 돌아와서도 한 잔 더하자며 호텔 맥주집으로 향한 일행 몇이 한 병에 10원 하는 맥주를 몇 잔 하고는 잠자리에 들었다.
7월 12일 백두산 정상에 오르기 위해 아침 8시 버스에 몸을 실었다. 오랜만에 함께 여행을 하는 몸이 성치 않은 아내가 백두산 정상까지 갈 수 있을까 걱정을 하면서 말이다. 차창으로 스치는 이국땅 모습을 보면서 가이드의 열띤 설명을 반은 듣고 반은 흘리며 창밖을 보니 와! 정말 큰 과수원이다. 물으니 사과·배나무란다. 아시아에서 두 번째 큰 과수원이며 80년대 농민에게 분양하여 협동 농장 때보다 더 많은 수확을 한다는 과수원은 길이가 장장 16Km라니 과연 중국이다. 긴 계곡을 달리는 버스는 그 유명한 청산리 전투로 일본군에 대승을 거둔 청산리 계곡, 김좌진 장군과 독립군이 열악한 환경에서 말이다. 잠시 쉬워 간다는 휴게소 화장실 수준은 우리나라 70년대, 그래서일까 연길시에는 '문명도시 건설하자'는 구호가 곳곳에 붙어 있다.
차창으로 스치는 것은 산과 산, 나무와 나무뿐이다. 점심을 먹고 간다고 간 식당은 해발 800m 고려음식점 5월 20일부터 10월 30일까지만 장사를 한다는 주인은 이렇게 벌어 1년을 먹고 산단다. 점심을 먹고 12시 30분경 출발하여 오르막길을 계속 오른다. 원시림이라는데 철길이 있다. 목재 수송 철길 임목 하차장을 뒤로 하고 도착한 매표소에서 셔틀 버스로 갈아타고 30분을 올라 승합차로 다시 옮겨 탄다. 해발 1,800m 다녀온 사람들의 말은 가장 위험한 코스라는데, 가이드 설명도 가슴을 조이게 한다. 드디어 내가 탄 승합차가 출발한다. 안전벨트가 없는 승합차는 뱀처럼 구불구불한 오르막길을 오른다. 정상이 가까워지니 아직도 음지에 많은 눈이 녹지 않고 쌓여있다. 과연 높기는 높은 산이다. 당초 듣던 것보다 별로 위험하지 않다. 승합차에서 내려 60m 정도 오르니 정상 천문봉 백두산 정상이다. 해발 2,750m, 눈 앞에 그림처럼 펼쳐진 천지, 너무 많이 본 모습 처음이지만 처음 보는 것 같지 않다. 멀리 북한 땅 장군봉이 보이고 천지 물은 생각보다 멀리 보인다. 600m 쯤 된다고 하는 가이드의 설명에 따르면 천지의 둘레가 13Km, 수심 가장 깊은 곳이 373m, 직경이 2Km, 이 높은 고지에 이렇게 큰 호수가 있다니 동행한 일행들도 모두 좋아한다. 백두산 천지를 이렇게 선명하게 볼 수 있는 것도 큰 행운이란다.
드디어 계란이 익는다는 뜨거운 온천수가 나오는 장백 폭포가 저 멀리 보인다. 조금 걸으니 장백 폭포의 관문인 '신비·신괴·신기'하다는 문구를 통과하여 폭포의 낙하지점으로 걷는데, 용암 온천수가 용출하는 곳을 지나니 뜨거운 열기가 올라온다. 얼마나 뜨거울까 호기심에 손을 넣으니 나도 모르게 '앗 뜨거워' 소리가 절로났다. 정말 달걀이 익을 것 같다. 장백 폭포(60여m)의 웅장함을 겨울 내내(얼지 않아서) 볼 수 있다니 신기하다. 물에 손을 담그니 차가워서 오래 담글 수 없다. 이렇게 차가운 물이 흐르는 바위 위로 용출하는 뜨거운 온천수가 나오니 정말 신비하고, 신기하고, 신괴하다. 내려와서 온천수에 익힌 계란을 사서 먹어보니 반숙보다 조금 더 익어 맛이 더 있다. 백두산 북파 산행과 장백 폭포 관광을 마치고 이도백화 마을 호텔에 도착하여 하루 쉬고, 다시 서쪽으로 백두산을 올라 천지를 본단다. 저녁 식사 후 야시장에서 맥주를 안주삼아 하는 이야기는 시간 가는 줄도 모른다.
하루를 쉬고 다시 버스로 이동 해발 1,300m 지점에서 셔틀 버스로 옮겨 타고 백두산을 오르는데 올라 갈수록 나무 수종이 바뀐다. 셔틀 버스가 도착한 지점에는 나무가 없는 고산지대에 이름을 알 수 없는 고산화가 노란색의 꽃을 피우며 땅에 달라 붙어있다. 올려다 보이는 계단 1,340개를 올라야 천지를 볼 수 있다는데 아내가 걱정이다. 끝까지 갈 수 있을지. 아내가 춥다며 점퍼에 우비를 입고 오르는데, 계단을 오르며(몇 번을 쉬었는지) 힘겹게 정상에 오르니 오늘도 어제처럼 너무나 선명하게 천지가 보인다. 중국과 북한의 경계를 표시한 비석을 넘으면 북한 땅, 많은 사람들이 북한 땅 10여m까지 넘으니 중국 군인들이 통제를 한다.
우황 청심환과 안국환, 북한 술과 북한 돈을 팔고 있다. 북한 돈을 상품으로 팔고 있으니 북한의 어려움 짐작이 된다. 현금 취급을 할 수 없으니 창구에서 구매 전표를 돈을 내고 사오란다. 카드도 가능하며 달러·중국 돈·한국 돈 모두 가능하다는 안내원의 얼굴은 수심이 있어 보이고 물건을 팔려고 노력도 하지 않는다. 이것이 중국 사람과 차이일까 돈 맛을 안 중국 사람들이 '싸다', '진짜다'라며 팔려고 기를 쓰는 모습과 너무 대조적이다. 팔아도 내 것이 아니니 그러는 걸까? 북한도 중국처럼 개방하고 개혁하면 잘 살 수 있을 텐데 하는 아쉬움만 남긴 채 용정 중학교로 향하였다. 용정 중학교는 2,200명의 조선족 학생이 재학 중이며 수업도 우리말로 하고 조선족만 입학할 수 있단다. 바로 옆에는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 없기를' 윤동주 시인 교실이 있고 진천에 사당이 있는 보재 이상설 애국지사의 역사 전람관이 있는데 나하고는 종친으로 아저씨가 되는 분이다. 우리 민족을 깨우치기 위해 얼마나 많은 고생을 하였던 분인가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이제 집으로 오기위해 연길 공항으로 이동, 전세기에 올라 이륙을 기다리는데 창가로 북한 고려 항공의 비행기가 착륙을 한다. 통일이 되어 우리의 명산 백두산을 이렇게 중국으로 돌아오지 않고 버스로 2박3일, 3박4일 북한을 여행할 수 있는 날이, 북한 동포들이 우리와 같이 자유롭게 경제 활동을 하면서 풍요로운 생활을 할 수 있는 날이, 언제쯤 올까, 혼자만의 생각이 아닌 우리 모두의 바람이며 두 손 모아 빌 것이다. 비행기가 이륙하면서 4박5일의 백두산 여행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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