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희(진천읍장)·이춘자(삼덕리 상덕 이장) 부부
이원희(진천읍장)·이춘자(삼덕리 상덕 이장) 부부
  • 정선옥
  • 승인 2012.01.21 11:3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부모는 자식의 거울, 가족 모두가 공직자 ”


지난해 연말부터 진천읍민 뿐만 아니라 진천군민들의 가장 큰 관심사 중 하나라면 과연 누가 73개 마을을 책임지는 진천읍장이 될 것이냐 하는 것이었다. 많은 이들의 관심 속에 이원희 읍장이 그 주인공이 되었다.

25번.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는 이 번호는 이 읍장이 공무원이 되기로 결심하고 서른 살 늦은 나이에 응시한 지방공무원 공채시험의 수험번호다. 시험에 합격해 초평면에서 공직자로서의 첫 걸음을 내디딘 지 벌써 30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다. 두 아이의 아빠로서 쉽지만은 않은 결정이었지만 가족들의 적극적인 응원에 힘입어 오늘까지 후회 없이 일할 수 있었다고 한다.

이 읍장에게 가장 큰 힘이 되어준 사람은 부인인 진천읍 삼덕리 상덕의 이춘자 이장.

똑 소리 나는 살림꾼으로 소문난 이 이장 역시 3차례나 이장직을 연임할 만큼 마을에서 신임이 두텁다. 천생 농사꾼이라 자칭하는 이 읍장이기는 하지만 워낙 일이 바쁘다 보니 농사일을 전반적으로 책임지는 이도 역시 이 이장이다. 처음 이장이 되었을 때는 사실 마을 어르신들의 염려도 컸다고 한다. 하지만 마을의 대소사를 척척 처리하는 그녀를 보며 이제는 열렬한 팬을 자처하신다.

3차례나 연임할 수 있었던 비결을 물으니 그저 어르신들의 말씀을 귀 기울여 듣는 것이란다. 다른 이의 이야기를 듣고 의견을 조율하는 일이 어찌 쉬운 일이겠나 싶지만 내 마음을 먼저 열어 보이는 것이 또한 비결이라고 한다. 그래서인지 이 이장의 집은 늘 북적북적 하다. 일부러 손님을 초대하는 것도 아니다. 워낙 부부가 사람을 좋아하다 보니 옥외에 설치된 냉장고에는 길 가던 사람 누구나 와서 목을 축이고 갈 수 있는 막걸리가 채워져 있다. 들일을 하다가도 잠시 들러 막걸리 한 사발 가볍게 들이키며 이웃들의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곳이다.

남편이 읍장이니 청탁이 많지 않느냐는 질문에 미소를 지어 보이던 이춘자 이장이 정색을 한다. 오히려 더 조심스럽고 어려운 일이란다. 그러면서도 자신이 할 일이 이장님들과 읍장님 사이에서 보다 적극적으로 의견을 전달하고 조율하는 것이라 이야기 하는 것을 보니 진정 내조의 여왕은 여기 있었구나 싶다.

산림축산과에서 잔뼈가 굵은 그인 만큼 이 읍장이 꿈꾸는 진천은 푸르고 쾌적한 도시다. 시가지가 워낙 좁다보니 주민들이 원하는 가로수 식재도 어렵고 예산이 넉넉한 것도 아니지만 얼마든지 삭막한 도시를 푸르게 변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시가지 구석구석의 자투리땅과 화분을 이용해 색색의 꽃을 가꾸고, 읍민들이 자발적으로 동참해 자기 집 앞과 상가 앞을 꾸민다면 도시가 한결 아름답고 쾌적해질 수 있다는 이야기다.

자연환경에 대한 그의 관심은 이미 오래된 것이어서 역사테마공원에서 진천군하수종말처리장에 이르는 백사천변의 가로수들 역시 그의 작품이다. 무려 15년에 걸친 사업이다.

덕분에 백사천변 가로수 길은 돈 주고도 살 수 없는 진천군의 커다란 재산이 되었다. 매년 봄이면 흐드러지게 피는 벚꽃 사이로 주민들의 밝고 상기된 얼굴을 만날 수 있다. 걷기 코스로 개발된 구간 역시 가쁜 숨을 몰아쉬며 운동하는 이들에게 시원한 그늘과 맑은 공기를 선사한다.

하지만 그에게도 힘든 순간이 있었다. 지난해 온 국민을 망연자실하게 했던 구제역은 이 읍장에게도 아직 아픈 상처다.

늘 현장에서 직원들을 독려하고 솔선수범 하던 그였지만 축산농가들이 무너지고 직원들이 부상을 당하던 기억에 아직도 가슴 한 편이 아리다. 부상이 심한 직원들은 장애를 입기까지 했다. 공직생활이 마냥 편할 것이라는 국민들의 편견이 야속할 때도 많다. 그는 우리나라가 이만큼 살기까지 선배 공무원들의 노고가 컸음을 잊지 않는다.

이제 남은 3년의 공직생활이지만 그 역시 후배들에게 기억되는 선배가 되고자 더 많은 노력을 한다. 열심히 일 하고, 은퇴 후엔 손자·손녀들을 돌봐주는 평범한 할아버지가 되고 싶단다.

사실 이 읍장 가족은 모두가 공무원이다. 부부의 삶이 나보다는 남을 위하는 봉직자로서의 삶을 살고 있듯 그들의 아들과 딸 역시 그 삶을 이어가고 있다.

아들은 용인시청에, 딸은 음성군청에 근무한다. 아이들에게 공직을 권한 적은 없었지만 어려서부터 일 하는 부모님을 늘 지켜보며 자란 그들에게 부모가 어떻게 비쳤는지는 굳이 묻지 않아도 누구나 알 일이다.

이춘자 이장이 오랜 시간 산림축산과에서 근무했던 남편 덕에 아직까지 진해 벚꽃이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른다고 이야기한다. 산림공무원이다 보니 행락철이면 비상근무를 하느라 이제껏 함께 여행 한 번 가기가 녹록치 않았다는 말이다. 올해에는 무슨 일이 있어도 진해 벚꽃을 꼭 봐야겠다는 이 이장에게 이 읍장은 진천읍에 오니 할 일이 더 많다며 너스레를 떤다. 하지만 부인에게 어찌 미안한 마음이 없으랴.

흔한 말이지만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이라는 한자성어가 있다. 인터뷰 내내 상대를 세워주고 칭찬하는 이 읍장 부부를 보니 그 집안이, 마을이, 그리고 진천읍이 잘 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든다. 성실한 부부가 이리 합심해 일하니 잘 되지 않을 이유가 없지 않은가.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