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배 광혜원농협 공단지소 농기계센터 담당
김홍배 광혜원농협 공단지소 농기계센터 담당
  • 정선옥
  • 승인 2012.04.28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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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심히 배울 것, 그리고 한 우물을 팔 것”


점심시간을 갓 넘어 뜨거워진 햇살이 내리쬐는 광혜원농협 공단지소 농기계센터 앞마당에는 토요일 오후라는 이름이 무색하게 문제가 생긴 각종 농기계들이 줄을 서 구원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었다.
기계를 몰고 온 농부들은 당장 논밭에 쌓인 일이 발등에 떨어진 불이건만 사정이야 매한가지니 마음 비우고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여기는지 농기계에 걸터앉아 한해 농사 계획을 주고받는다. 시골 장터마냥 정겨우면서도 어수선한 공기 뒤에 혼자서 고장 난 농기계를 손보며 바쁘게 손을 놀리는 이가 있다. 바로 광혜원농협 공단지소 농기계센터 김홍배 담당이다.
연신 흘러내리는 땀을 닦을 새도 없이 콤바인, 이앙기, 트렉터, 바인더 등 각기 다른 종류의 농기계들이 그의 손을 거쳐 다시금 제 몫을 하는 일꾼으로 주인에게 넘겨지고 김홍배 씨의 꼼꼼한 설명이 이어진다.
김홍배 씨(43세)가 광혜원농협에서 근무하기 시작한 것은 1994년부터다. 결혼하자마자 광혜원으로 이주해 왔으니 이제 광혜원 사람이나 다름없어 이 근방에서 농사를 짓는 사람이라면 그를 모를 리 없다.
농기계는 현장에서 사용하는 물건인 만큼 고장도 잦을 수밖에 없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기계의 이력을 주인보다 훤히 꿰고 있는 그인지라 이곳을 찾는 이들의 신뢰는 꽤나 두텁다. 게다가 요즘 같은 농번기에는 이른 아침부터 늦은 밤까지 주말도 반납해 가며 자기 일처럼 챙겨주니 그 사람됨에 형님, 아우가 된 지도 오래다.
초평이 고향인 김 씨는 그 또래의 남자 아이들이 그렇듯이 개구쟁이로 자랐다. 마을 앞을 흐르는 초평천에서 미역 감고 물고기 잡으며 평범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고 한다. 하지만 워낙 손재주가 좋고 가끔씩 뭔가를 만드는 일에 열중하는 일이 잦았다 하니 떡잎을 보면 그 열매를 알 수 있듯 엔지니어로서의 싹이 이미 그때부터 자라고 있었던 모양이다.
중학교를 졸업할 무렵부터는 제법 진로에 대해 진지한 고민을 했었다고 한다. 농업은 국가의 근간이다. 당시에도 농업은 우리나라의 산업구조 상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고, 농촌 인구의 감소로 인한 노동력 부족과 급속한 산업기술의 발전은 농기계 수요의 급증을 불러왔다. 어린 눈에도 농기계 분야의 비전을 보았고 그는 자신 있게 엔지니어 쪽으로 일찍 진로를 정했다.
그렇게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곧바로 엔지니어의 길에 들어섰으니 나이도 많지 않은 그가 이 분야에서만 벌써 23년의 경력을 자랑한다. 하지만 오랜 기간 쌓인 내공에도 그는 여전히 부족함을 느낀다. 농기계의 경우 그 종류만도 수 십 가지인데 거기에 기계별 브랜드가 또한 같은 가지 수를 자랑하니 베테랑인 그라도 어려울 수밖에 없다. 더욱이 농기계들은 자동차처럼 작동 원리가 일정하지도 않고 보기보다 복잡한 구조를 지니고 있다.
자신이 최선의 노력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기술적인 면이나 부품 유통상의 문제, 시간상의 문제 등 사정이 여의치 않을 때는 아무리 외향적이고 호탕한 그일지라도 마음이 편칠 않다. 하지만 다른 곳에서는 손도 못 대는 기계를 자신의 기술로 고쳤을 때에는 비단 고객의 칭찬 때문만이 아니라 엔지니어로서의 보람이 더해져 뿌듯하기 그지없다고 한다. 그럴 땐 '내가 이 길을 선택하길 정말 잘했구나' 하는 생각에 일신의 피로가 다 풀린다고 하니 천생 엔지니어다.
농기계를 수리하는 틈틈이 인터뷰 시간이 길어져 필자는 진이 다 빠졌는데도 그는 여전히 활기차다. 몇 시간을 의자에 한 번 앉지 못하고 일 하면서도 얼굴에서 미소가 떠나지 않는다. 수리 중에도 고객과 이런저런 이야기가 오고 간다. 농기계 판매까지 담당하고 있는 그가 고객들에게는 고마울 뿐이다. 일단 기계의 특성이나 용도 같은 기본적인 사항부터 워낙 오랜 시간을 보아 온 사이다 보니 고객의 취향까지 알고 있는 그에게 추천을 받는다면 후회할 일이 없기 때문이다.
엔지니어로서의 자부심이 강한 그는 이제 고등학교 3학년인 딸에게도 기술을 갖도록 권한다. 엔지니어로서의 길이 평생 공부해야 하고 육체적으로도 힘든 어려운 길이지만 평생 직업으로 가질 수 있는 기술을 가지고 있다면 무엇보다 든든한 자산이 될 수 있으리라는 것이 그의 이야기다. 또한 그는 엔지니어를 꿈꾸는 젊은이들에게 '열심히 배울 것, 한 우물을 팔 것'을 당부하는 이야기를 잊지 않는다.
인터뷰가 끝나갈 즈음 마지막으로 그가 한 가지 더 당부하는 이야기는 농기계 관리다. 워낙 고가의 농기계지만 융자금을 다 갚아갈 즈음에는 벌써 새것으로 교체할 시기가 도래하다 보니 농민들의 입장에서는 어려움이 이만저만이 아니란다.
하지만 평소에 깨끗이 청소하고 기름 치고 관리를 제대로 하면 농기계 수명을 훨씬 연장시킬 수 있다고 강조하는 그를 보니 기계를 하나의 생명처럼 소중히 여기는 엔지니어로서의 마음가짐이 느껴진다.
오늘도 혹시 농기계가 고장 나 내일 농사일에 지장을 받을까 염려하는 고객이 찾아올지 모른다며 쉽사리 센터를 떠나지 못하는 김홍배 씨는 부인 김경화 씨와의 사이에 3녀를 두고 있다. 시간이 날 때마다 부인과 산을 오르며 소소한 이야기를 나누는 행복이 깨알 같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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