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휴 진천상산초등학교 교감
김 휴 진천상산초등학교 교감
  • 정선옥
  • 승인 2012.05.14 1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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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은 모두가 소중한 보물이다”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내세우는 성공 비결 중 하나가 스승을 잘 만났기 때문에 성공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학교 다닐 때 선생님의 칭찬 한마디가 자신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꾸어놓았다는 사람도 가끔 만날 수 있다. 그런 면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은 참으로 매력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진천상산초등학교 김휴 교감에게 학교는 그의 어린 시절을 보듬어준 고향이자 그가 사회에 첫걸음을 내딛던 해부터 40년이 지난 지금까지 오롯이 청춘을 바친 그의 인생 자체이기도 하다. 그래서인지 김 교감의 얼굴은 세상의 모든 아이들을 가슴에 품을 수 있을 것처럼 자애롭다.

광혜원면에서 태어난 그는 자신의 고향을 '깡촌'이라고 표현한다. 지금이야 그 표현이 무색하리만치 발전했지만 그가 태어났던 1950년대 초반만 해도 농촌은 한적했다. 어린 그에게는 태어난 고장이 그가 접할 수 있는 세상의 전부였다. 공부도 곧잘 했지만 팍팍한 현실에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교대에 진학하기 전까지 그는 고향을 벗어날 수 없었다.

갈수록 어려워지는 살림에 고등학교 진학조차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그는 부친을 졸랐다. 결국 논을 팔아 아들 뒷바라지를 하시는 아버님께 죄송해 어쩌다 들일이라도 거들라치면 부친은 '농사일 하라고 공부 시키는 것 아니다'시며 매몰차게 그를 내몰곤 하셨다.

조부모님에 작은 아버님 가족까지 전형적인 대가족의 품에서 성장한 그는 '선생이 사람 만들어 준다'는 말씀을 종종 하셨던 부친을 법 없이도 살 수 있는 순박한 농부로 추억했다. 딱히 아버님의 말씀이 뇌리에 남아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어쨌거나 그는, 그 사람 만들어 준다는 선생이 되었다.

김 교감을 사람 만들어 주는 선생으로 만들어 준 이들은 누구였을까? 부친만큼이나 그에게 큰 영향을 주었고 그를 교육자의 길로 인도한 스승들. 많은 분들이 계셨지만 먼저 떠오르는 이들은 고교시절 집안 형편이 어려운 그를 위해 개인적으로 장학금을 주시고 늘 칭찬을 아끼지 않으셨던 국사선생님과 친구의 어머니이셨던 김근숙 교장선생님이다.

교장선생님은 이발 기계를 사 주시고 학우들의 머리를 깎아 수입을 올릴 수 있도록 배려해 주셨다. 친구들의 머리를 깎아주고 20원씩을 받았다. 당시 이발소에서는 50원을 받던 시절이지만 학생 신분에 큰 보탬이 되었다. 그렇게 늘 곁에서 그를 응원해 주시던 분들을 보며 그가 결심한 것은 '좋은 선생님이 되어 보겠다'였다.

교대를 졸업하고 1973년 학성초를 시작으로 자신의 모교인 만승초와 이월초, 상산초, 백곡초, 충주동락초, 충주칠금초 등을 두루 거쳐 다시 지금의 상산초에 오기까지 꼬박 40년이라는 세월을 그는 교육현장에서 사람을 길러내는 일을 해왔다. 자신이 가르쳤던 학생들이 이제는 학부모가 되어 자녀의 손을 잡고 입학식에 온다. 고맙게도 제자들은 가끔씩 그를 불러준다. 함께 사회의 구성원이 되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이 길을 선택하길 정말 잘했구나' 하고 생각한다.

40년이면 무슨 일을 해도 베테랑이건만 아직도 그에게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은 어렵기만 하다. 그가 교직을 결심했을 때 아버님은 '네가 선생이 되거든 있는 집 애나 없는 집 애나 똑같이 대우해라' 하고 말씀 하셨다. 그 말씀이 비단 경제적인 여건에만 해당되는 이야기는 아니었을 게다. 누구에게나 공평한 기회를 주라는 말씀. 그렇게 해야만 한다는 뜻이었다. 아이들은 모두 소중한 보물이다. 그 아이 하나하나의 능력을 일깨워 주고 길러줘서 스스로도 당당한 국민의 한 사람이 되도록 곁에서 지켜주는 것이 선생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예전처럼 적극적인 케어가 쉽지 않은 요즘 김 교감이 아이들에게 당부하는 것은 아이들 스스로가 행동하기 전에 한번쯤 생각을 하고 행동에 옮겼으면 하는 간곡한 바람이다. 왜 선생님이 내게 그런 이야기를 하셨을까? 왜 부모님이? 왜 내 친구가? 상대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고 행동하는 습관을 들인다면 자기 자신을 통제하는데도 큰 도움이 될 것이라는 이야기다. 그렇게 된다면 요즘 사회적으로 큰 문제가 되고 있는 학교폭력은 당연히 사라지리라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온종일 1,500명이나 되는 아이들과 부대끼면서도 김 교감이 잊지 않는 한 가지는 아이들을 칭찬해 주는 일과 재미있게 해 주는 일이다. 그 자신도 학창 시절 성적이 올랐다고, 친구들과 사이좋게 놀았다고 늘 머리를 쓰다듬으며 칭찬해 주시던 선생님이 계셨기에 학교 다니는 재미가 있었다고 한다. 그 재미를 알기에 학교 수업에 학원 보습에 지친 안쓰러운 아이들에게 한 번이라도 더 칭찬을 해주고 싶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사의 입장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긍정적인 시각이다. 김 교감은 아이에게 숨겨진 반짝이는 재능을 적극적으로 찾아내 이야기해 주고 더 잘 할 수 있도록 격려해 준다면 자신이 그러했듯 그 아이에게도 학교는 늘 즐겁고 든든한 응원군이 있는 울타리가 되어줄 수 있다고 말한다.

부인 김혜자 여사와의 사이에 3녀1남을 둔 다복한 가정의 가장인 김휴 교장은 지금도 틈이 날 때마다 책을 읽고 공부를 한다. 라이온스클럽에서 활동하며 어려운 이웃을 위한 봉사에도 적극적이다.

5월의 한가운데 스승의 날이 있다. 흔히들 교육자에게 주어지는 최대의 찬사는 '스승'이라고 말한다.

매년 찾아오는 스승의 날. 스스럼없이 찾아가 마음이 담긴 카네이션 한 송이 달아드릴 김휴 교감 같은 스승이 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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