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교식 진천중학교 교장
오교식 진천중학교 교장
  • 정선옥
  • 승인 2012.06.18 1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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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뢰를 잃으면 모든 것을 잃는 것


진천군민들에게 있어 진천중학교(이하 진중)는 평범한 학교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1951년 개교 이래 지금까지 19,496명의 졸업생을 배출했고 현재 798명의 재학생에 교직원 등을 포함한 69명이 이 학교에 재직 중이니 따지고 보면 진중 가족이 아닌 이를 만나는 일이 더 어려울 만큼 유서 깊은 학교다. 당연히 학교에 대한 지역 주민들의 관심이 클 수밖에 없는 노릇이지만 지난해 3월 이 학교로 부임한 오교식 교장에게 거는 기대는 남다르다.


오교식 교장(59)은 진천중학교 출신이다. 그 자신도 이 학교를 졸업했거니와 또 10여 년 전 이 학교에서 7년 간 후배들을 가르쳤었다. 교장으로 모교에 부임하면서 나름 기대감도, 설렘도, 부담도 컸지만 35년의 교직 경험을 바탕으로 후배들을 위해 해주고 싶은 것들이 너무도 많았다.

하지만 10여 년 만에 다시 찾은 학교는 외형적으로나 내면적으로나 많은 것이 변해 있었다. 첫 출근 후에 든 생각은 “앞으로 해야 할 일이 많구나”하는 거였다.
지난 몇 년간 진중은 외형적으로 많은 성장을 해왔다. 과학관을 신축하고 교실을 증축하는 한편 상원관과 상지관을 세웠고 본관교사를 리모델링했다. 운동장엔 인조잔디를 깔았고 미래형첨단교실과 영어전용실, 위클래스를 설치했다. 시설은 완벽에 가까웠지만 문제는 아이들이었다. 학력 저하는 차치하더라도 최근 뉴스를 장식하는 문제들이 남의 일 만은 아닐 터였다.

오 교장은 학교 교육의 핵심을 품성교육으로 보았다. 바른 품성을 갖추게 되면 자연히 수업시간에도 충실하게 될 터이고 또한 학교에서 익힌 지식을 사회에 나가서도 바르고 참되게 사용한다는 너무도 당연한 논리였다.

우선 학생들의 생활지도에 중점을 두고 상담과 진로지도를 활성화 했다. 학생들이 학교에 정을 붙일 수 있도록 아이들의 구미에 맞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구성했다. 또한 예산을 확보해 학력이 뒤처지는 학생들을 위해 별도의 수업을 진행했다. 뛰어난 학생들은 그 학생들대로 모아 수준에 맞는 수업을 받을 수 있도록 했다.

진심은 통한다고 했던가. 1년이 지나지 않아 학교 분위기가 바뀌었다. 점차 면학 분위기가 잡혀가고 교사들도 퇴근 후 남아서 자기반 아이들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이 시간은 아이들의 수준에 맞는 개별 멘토링 수업이 되었다. 오 교장이 꿈꾸던 '진정한 배움터'가 만들어지고 있었다.

이월이 고향인 오 교장은 당시 명문학교 소리를 듣던 진천중학교에서도 제법 수재 소리를 듣던 이였다. 친척 중에 교직에 계신 분이 계셔서이기도 했지만 그의 부친은 아들이 교사가 되기를 원하셨다. 집안이 넉넉하지 못한 탓에 실업계 고등학교를 택해야 했지만 가슴 한켠엔 늘 아버님의 바람이 자리 잡고 있었다. 부친께선 아들에게 비록 실업계 학교를 가지만 나중에라도 공부를 더 해서 교사가 될 것을 당부하셨다.

하지만 실업계 학교를 다니면서 혼자 대학입시를 준비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우선 배우는 과목 자체가 달랐다. 힘에 부쳐 서울에 있는 입시학원에서 잠깐 공부를 했지만 그가 원하는 대학엔 갈 수가 없었다. 우여곡절 끝에 그 다음해에 교대에 입학해 79년 교단에 섰지만 배움에 대한 갈증은 가시지 않았다. 그래서 대학에 편입해 중등교사 자격증을 취득하게 되었고 우연한 기회에 단양 영춘중학교로 부임했다.

학교가 위치한 단양군 영춘면은 오지라는 표현이 전혀 낯설지 않은 지역이었다. 이곳에서의 경험은 그를 지금까지 오게 한 소중한 자산이 되었다. 저녁 늦게까지 학생들과 학교에 남아서 열심히 가르쳤다. 자정이 다 되어서야 학부형들이 경운기로 아이들을 실러 오곤 했다. 담당 교과인 국어 성적은 충북서도 단연 1등이었다. 그때 깨달은 건 아이들은 열심히만 가르치면 된다는 사실이었다. 그래서 그는 모든 아이들의 가능성을 믿는다.

35년을 교단에 있었으니 기억에 남는 아이들도 많다. 산업체 특별학급에서 패싸움을 하던 아이를 데려다 졸업시키고 결국 40대 중반에 주례까지 서준 溝� 있다. 고교 졸업 후 부지런히 돈을 모아 대학에 진학해 오 교장을 따라 교사가 되었다는 여학생도 있다. 그 학생의 결혼식에도 마지못해 주례로 서야 했다.

가끔 가장 많이 맞은 학생이 훗날 가장 자주 찾아온다는 선생님들의 이야기를 듣는다. 그런 면에서 오 교장은 자신은 체벌을 많이 한 쪽에 속한다며 웃는다. 지금도 자기는 '때리는 교장'이라며 웃지만 뚜렷한 목적이 없이 감정이 실린 체벌은 절대 금지다. 더구나 요즘 같은 세상에 함부로 학생들을 체벌했다간 돌이킬 수 없는 불상사가 벌어지기도 한다.

그래서 오 교장이 늘 하는 이야기가 있다. “선생님들은 체벌하지 마라, 차라리 내가 하겠다”는 말이다. 자신에게 학생들은 제자이기 이전에 후배다. 교장실에 있기 보다는 교내를 다니며 학생들과 담소하는 것을 좋아하고 인자한 얼굴로 칭찬을 아끼지 않는 그이지만 학생들의 잘못 앞에선 호랑이가 따로 없다. 하지만 훈육도 학생 스스로가 잘못을 인정했을 때에라야 비로소 효과가 있기에 교사들에게도 무조건 큰 소리를 낼 것이 아니라 아이 스스로가 반성하고 뉘우칠 수 있도록 기회를 주도록 당부한다.

오 교장이 자신의 자녀들에게도 또 본인 스스로에게도 늘 하는 이야기가 있다. “남에게 믿음을 잃으면 다 잃는 것이다” 이 말은 교육 현장에도 그대로 반영된다. 교사는 학생을 믿고 가르치고, 학생은 자신을 가르치는 선생이 최고임을 의심치 않는 마음가짐으로 학업에 임한다면 사제지간에 교감이 생기고, 이런 우호적인 감정은 학교를 행복한 곳으로 만들 것임에 틀림없다.

이제 정년까지 3년. 교단에서의 지난 35년을 돌이켜 보면 보람도, 아쉬움도 많지만 5년이나 근무하며 지역주민들과 희로애락을 함께 했던 백곡중학교 폐교로 마음이 편치 않다. 아무쪼록 좋은 시설로 거듭나 지역주민들에게 많은 혜택이 돌아갈 수 있었으면 하는 것이 그의 바람 하나요, 또 한 가지 그에게 남은 가장 중요한 숙제는 진천중학교가 예전의 명성을 되찾아 명문학교의 위상을 세우는 것이다. 거기에 여력이 된다면 운동부를 위한 시설 확충과 도서관 증축 또한 남은 바람이다. 아직 후배들을 위해 해야 할 일들이 많기에 진중에서 정년을 맞을 수 있다면 더 할 나위 없이 행복하겠다고.
함께 교단에 서는 부인 최미자 여사와의 사이에 1남 1녀를 두고 있는 오교식 교장은 틈이 날 때마다 테니스를 즐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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