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수화 (사)대한노인회 진천군지회 부회장
박수화 (사)대한노인회 진천군지회 부회장
  • 정선옥
  • 승인 2012.12.03 15:4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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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년이 먼 미래라 생각지 말고
어떻게 나이들 것인가에 관해 고민하라

사람이 나이가 들면 자기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말이 있다. 중년이 되면 자신이 걸어온 여정이 고스란히 얼굴에 묻어나기 마련이다. 하물며 고희가 지난 다음에야 더 말해 무엇 하겠는가?

(사)대한노인회 진천군지회 박수화(여·75) 부회장을 만나 본다면 사람이 얼마나 멋지게 나이들 수 있는지 새삼 깨닫게 될 것이다. 자그마한 체구에 70대라고는 절대 볼 수 없는 웃는 인상의 박 회장은 그 얼굴을 대하는 것 자체만으로도 사람을 행복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그만큼 편안하고 기분 좋은 인상이다.

제천이 고향인 박 회장이 남편을 따라 진천에 정착한 지 30년이 지났다. 남편과 시아버님의 고향이었지만 이곳으로 처음 이사 올 때에는 “이런 곳에서 어떻게 사나?”하는 생각이 들만큼 적막했었다고 기억한다. 은행에 다니던 시절 당시 충주시청에 근무하던 남편을 만나 청주와 대전 등지의 대도시에서만 생활했으니 그런 생각이 들 법도 했다.

그리고 진천에 와서 처음 시작한 사회단체 활동이 육영회였다. 지인의 소개로 입문하게 된 육영회는 당시로서는 여성단체 중 가장 큰 조직을 갖추고 아이들을 위해 커다란 역할을 하는 단체였다. 뒤늦게 들어간 단체였지만 총무를 맡았을 정도로 회원들로부터 신임이 두터웠다.

그렇게 진천에 적응할 즈음 시작한 것이 삼성생명 보험설계사였다. 결혼할 때 은행에 재직하며 모아둔 돈으로 친정아버님께 논 몇 마지기 사드렸을 만큼 알뜰살뜰한 그녀였지만 공무원인 남편 월급으로 세 아이들을 공부시키려니 가만히 앉아 있기가 편치 않았다. 그 때가 마흔 세 살. 처음 하는 영업이 쉬울 리는 없었다. 하지만 시간은 그녀의 편을 들어주는 듯 했다. 만 3년이 지나니 차츰 일도 자리를 잡아가기 시작했다.

단란한 가정에 일도 안정이 되고 행복한 가정을 꿈꾸는 일만이 그녀에게 남았다고 생각됐을 때 뜻하지 않은 불행이 그녀의 행복을 송두리째 빼앗아 가는 듯 했다. 너무도 고통스러웠던 남편과의 사별. 하지만 박 회장은 그대로 주저앉아 있을 수만은 없었다. 아직 어린 세 아이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 뒤론 일만 하고 살았다. 내성적이고 수줍음 많았던 그이지만 아이들을 생각하며 이겨냈다. 그렇게 20년 근속을 하고 그녀는 당당히 사표를 냈다. 그 사이 세 아이들은 대학공부까지 마쳤고 풍족하지는 않아도 통장엔 노후를 대비할 수 있는 저축이 생겼다.

60세에 사표를 내면서 고민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더욱이 그 당시에도 월 평균 250만 원이 넘는 수입을 유지하고 있었으니 포기가 쉬운 일이 아니었을 터요, 무엇보다 그렇게 일에 매진하던 이가 하루아침에 손에서 모든 일을 내려놓기 또한 어려웠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과감히 손에 쥔 모든 것을 내려놓았다. 돈을 벌고 쓰는 건 한도 끝도 없다는 것이 그녀의 생각이다. 10여 년이 지났지만 지금도 그 때 직장을 그만두길 잘했다고 생각한다. 퇴직하면서부터 바로 노인회 들국화봉사단에서 봉사활동을 시작했다. 가끔 힘들 때도 있지만 욕심내지 않고 편안하게 남을 위해 작은 힘을 쏟고 사는 지금이 훨씬 행복하단다.

직장생활을 하며 몸에 익힌 사교성은 봉사활동에 많은 도움을 준다. 특히 박 회장이 이끌고 있는 '무궁화 말벗 봉사단'에서는 특유의 친화력과 리더십으로 어르신들의 환대를 받고 있다. 무궁화 말벗 봉사단은 각 마을의 경로당을 찾아 어르신들의 손톱에 메니큐어도 칠해 드리고 손 마사지도 해 드리며 외로운 속내를 들어준다. 흥겨운 우리 민요와 건강박수 등으로 꾸며진 레크레이션 시간은 단연 인기 최고다.

진천읍에 있는 진천군노인복지관을 방문하면 더 많은 프로그램이 준비되어 있지만 실상 우리 군에는 이곳에 올 수 없는 어르신들이 더 많다. 박 회장은 그것이 늘 마음 아프다. 게다가 찾아갈 때마다 와줘서 고맙다고 두 손 꼭 잡아주는 어르신이나, 이젠 뼈만 앙상한 손으로 힘들게 쪄서 내주시는 고구마 한 개가 눈물 나게 고마워 봉사활동을 게을리 할 수가 없다.

그래서일까? 박 회장은 노인복지관의 노인학대 예방 일자리사업에도 참여하고 있다. 또한 진천군시니어클럽을 통해 조손가정의 조부모들의 말벗도 자청한다. 몸이 힘들 땐 지금도 자신을 필요로 하는 곳이 있음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달려간다. 이런 박 회장의 노력은 이미 지난해 대한노인회 사례발표 우수상과 올해 노인자원봉사축제에서 군수 표창을 수상함으로써 인정받고 있다. 이러한 사회적 시각의 평가로 박 회장의 진심과 성실함을 다 나타낼 수는 없지만 서두에 이야기 했듯 박 회장의 얼굴을 보면 그가 어떠한 마음으로 세상을 사는지 단박에 알 수 있다.

젊은 시절 보험영업을 위해 온종일 걸어 다녔던 것이 건강의 밑받침이 되었다는 박 회장은 요즘도 웬만한 거리는 자전거로 이동한다. 지금도 체중관리를 할 만큼 자기관리에 철저한 그녀지만 다른 이에 대해서만큼은 너무도 관대하다.

박 회장은 “나이 60이 되면 생각이 많이 달라진다”며 젊은이들에게 “노년이 먼 미래라 생각하지 말고 지금부터 어떻게 나이들 것인지에 관해 고민하라”는 조언을 빠트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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