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곡면 성대리 학동(관동)마을을 찾아서…
백곡면 성대리 학동(관동)마을을 찾아서…
  • 박우동 기자
  • 승인 2009.01.07 11: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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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삶을 돌아보게 하는 한적한 시골 모습
다사다난했던 한 해를 마무리하는 12월의 마지막 주. 진천 최고의 자연을 자랑하는 백곡의 성대리 학동마을을 소개하고자 길을 떠났다.
여러 가지 색깔로 우리에게 다가온 가을을 뒤로하고 시작된 겨울이 찬바람과 함께 우리에게 다가왔고 또한 생활 속에서도 경제 한파를 함께 몰고 와 다들 무거운 마음속에 살아가는 이때 옛정취와 우리의 삶을 되돌아 볼 수 있는 한적한 시골의 모습을 만난다는 생각에 무척 마음이 설레었다.
백곡저수지와 면 소재지를 뒤로하고 구수삼거리에서 안성쪽 313번 지방도로 접어들어 얼마를 달리면 우측의 가마소 옆을 끼고 도는 강에는 맑은 냇물이 흐르고 백로들이 무리를 이루어 고기사냥을 즐기며 한가로이 노닐고 있다.
잠시 후 우측 성대리 팻말이 있는 군도를 접어들면 주인 없이 덩 그러니 옛 영광을 간직한 성대초등학교가 있고 무제봉, 덕주봉으로 이어지는 차령산맥의 줄기가 우측으로 펼쳐지고 금강서북쪽을 지나는 산줄기인 금북정맥이 칠장산으로부터 시작되어 좌측으로 원만하게 산줄기를 형성하여 시야를 맑게 한다.

■ 동화 속 같은 학동마을
학동으로 접어들기 전에 도로 우측으로 길게 이어지는 성대저수지는 약 2만평규모로 야산으로 둘러싸인 때묻지 않은 아름다운 계곡형 저수지로 항구적 가뭄대비를 위해 준설작업이 이루어졌고 제방과 물넘이 부분도 준설공사가 한창 진행 중에 있다.
저수지를 끼고 돌아 상류쪽 개울을 건너는 작은 다리 두 개를 지나면 깊은 산 속에 마을로 들어가는 길을 제외하고는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여 흡사 움푹 패인 분화구나 박을 타서 만든 박 바가지의 모습을 연상케 하는 푸른 하늘과 어우러진 산과 마을의 모습이 마치 마음으로나 볼 수 있는 동화속의 모습 그 자체다.
학동마을 중앙에 있는 마을회관에는 집안 식구들이 함께하는 여느 가정집에 들어선 것 같은 착각이 들 만큼 온 동네 분들이 모여 정겹게 오는 이를 반긴다.
학동마을은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성대리, 상봉리, 대명동, 모니, 행정리 일부를 병합하여 성대리라 하였고 성대리 5개 마을 중 하나다.
총 32가구 35명이 살고 있으며 마을회관 주변으로 형성되어 있는 가구 수는 15가구에 18명이 생활하고 있고 마을 뒤 능선을 시작으로 북동쪽으로 자리 잡고 있는 중앙컨트리클럽종사자 17명의 식구는 클럽 내에 거주하고 있다.

■ 전원생활을 사랑하고 넉넉한 인심이 있는 곳
마을의 살림꾼으로서 듬직한 모습의 이장(정연해)은 “우리 마을은 아직 때묻지 않은 자연환경과 넉넉한 인심 속에 서로 도우며 한 가족처럼 생활하는 공동체입니다. 예전에는 30호이상의 가구가 있었고 성대초등학교에 다니는 학생만도 15명 이상이고 주민수도 100명 이상 이였지요. 여느 농촌 마을이 다 그랬듯이 생활여건과 자녀 교육 등으로 인해 하나, 둘 도시로 떠나고 고령화와 함께 동네에 학생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시절도 있었으나 농촌의 전원생활과 자연을 사랑하여 다시 찾아 온 분들로 인해 몇 해 전부터 젊은이들과 어린애들의 웃음소리가 들리고 가구 수도 늘어나고 있습니다”
지나온 시절을 회상하며 자리를 함께한 노인 회장(정인해)은 “우리 마을은 아주 깊은 산속마을로 옛날 우리 선조들은 난리를 피해 생활하던 곳으로 주변의 산세가 험하여 왜군이 침입을 못하므로 덕을 보았다고 덕주봉 이라 이름 붙인 산봉우리가 주변에 있는 오지이며 젊은 시절 많은 식구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마을주변의 산비탈에 불을 놓아 화전 밭을 일구고 고구마, 감자, 잡곡을 심어 겨울식량으로 사용하였고 다랭이 논에 쌀농사를 지어 귀하게 사용하던 시절이 생각납니다”
찢어지게 가난함을 벗어나기 위해 산나물을 채취해서 안성 장을 가기 위해 장 고개를 넘나들고 십리가 넘는 길을 걸어 다니며 공부하는 아이들, 한마지기도 되지 않는 비탈진 다랭이 논에 모 한 지게 지고가 4~5명이 함께 모를 심던 지난 시절을 회상하며 지금의 풍요로움과 어려운 일을 함께 돕고 어른을 공경하는 쾌적하고 살기 좋은 마을임을 자랑하였다.

■ 자연자원을 이용해 관광기반 조성을
학동마을은 아직도 산지나 구릉지 등에 계단식으로 조성된 농경지인 다랭이 논과 밭이 그대로 남아있다. 비탈이 심하고 바위가 많은 곳으로 올라갈수록 다랭이의 크기가 작고 논둑의 자연스런 곡선은 조상의 얼과 어우러져 우리의 멋을 생각하게 한다. 아직도 짚단을 지게로 지고 나르는 모습이 있고 삼퉁이 봉으로부터 양쪽으로 완만하게 형성되어 있는 산등성이가 포근하게 마을을 감싸 안은 듯하다. 마을 앞을 지나는 맑은 계곡물은 옥수와 같이 소리 내어 흐르며 겨울풍경도 아름답지만 복사꽃, 벚꽃, 살구꽃 등과 진달래, 개나리, 야생화가 푸르름과 어우러질 계절이면 얼마나 아름다울까를 생각하니 작은 마음의 동요까지 일어나게 한다.
이러한 자연자원을 이용하여 농촌 관광 활성화 방안을 마련하고 행정기관과 협조하여 교육과 견학 등을 통해 자연 그대로를 살린 관광기반을 조성하고 농촌일손체험행사, 꽃 축제, 주말농장운영, 해맞이 등산로 및 삼퉁이 봉 조성, 옛날 먹거리 집, 관광레저(골프, 수상놀이시설)등을 통해 농가소득을 증대시킨다면 마을인구나 가구 수도 늘어날 것으로 생각된다.
학동마을 식구들이 정성스럽게 준비한 점심을 함께하며 마치 고향 집을 온 듯한 따뜻함과 후한 인심을 느꼈고 돌아오는 길에 뒤돌아 본 마을의 모습 속에 기축년 새해에는 더욱 활기차고 웃음소리와 산새들의 소리가 함께하는 동화속의 마을이 번창하기를 바랬다.


/우/리/동/네/이/장/님/

항상 밝고 건강한 삶 살아갈수 있도록 노력할터...

정연해 이장님
정연해 이장님


먼저 마을의 주민 편의를 위해 물심양면으로 도움주시는 중앙컨트리클럽과 정교수(서울대)님과 외지에서 이주해 동네일에 도움 주시는 분들께 감사 인사드리며 동네 주민께도 감사드립니다. 성대진료소에서 중풍제로 마을로 유명인사 초청강의와 교육, 체조, 주민과 함께 걷기 등과 일반검진 및 당뇨, 혈압체크를 통해 삶의 질을 향상시켜주고 건강한 삶을 살 수 있게 도움줘서 고맙고 마을 입구 저수지의 중간지점까지는 도로가 확장 포장되었으나 저수지 상류까지 도로를 넓혀서 하루 3회 운행하는 버스통행이 자유롭게 되었으면 하는 바램이 있고 정월대보름 부락행사에 고향친목을 위해 찾아오는 출향인에게도 감사드립니다.
2009년에도 마을의 발전을 위해 노력할 것을 약속하며 더욱 아름다운 마을로 만들어 나가겠습니다.

/우/리/동/네/새/마/을/지/도/자/님/


젊은 우리들이 동네의 일 앞장설 터 ...

염경호 새마을지도자
염경호 새마을지도자

중앙 컨트리클럽에 근무하는 17명의 젊은 우리들이 동네에서 마을 주민들과 부모, 형제처럼 함께 할 수 있어 좋고 앞으로 더욱 자주 접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으며 마을 주민의 소득증대와 화목한 삶을 위해 조용하고 맑은 물과 아름다운 자연이 있는 이곳을 함평나비축제와 같은 다양한 볼거리를 만들어 외지의 관광객들이 찾아와 함께하고 즐길 수 있는 특화사업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고 동네일을 집안일처럼 발 벗고 나서는 이장님과 노인 회장, 부녀회장, 그리고 주민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우/리/동/네/노/인/회/장/님/

농토정비 등으로 편리한 삶 누리도록 도움주어야 ...

정인해 노인회장
정인해 노인회장

예전에는 안성장이 진천장보다 마을에서 조금 가까웠고 그로 인해 생활권이 경기도의 안성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습니다. 저수지 밑 모니까지 진천에서 버스가 다니고 우리 마을에도 몇 해 전부터 버스가 운행되어 지금은 진천의 시장과 병원 등을 이용하고 있고 지금은 동네에서 안성으로 넘어가는 산길이 없어진 상태입니다.
산비탈과 작은 평지에 위치한 농토 때문에 농업에 종사하는 나이 든 우리들로서는 힘이 듦으로 관계기관에서는 농지 개량 및 농촌 수로 등을 정비 및 확충시켜 농사를 좀 더 편리하게 지을 수 있도록 도움 주셨으면 합니다.


가족같이 즐겁고 건강한 삶 살수 있도록 힘쓸터...

김미숙 부녀회장
김미숙 부녀회장

아름답고 살기 좋은 학동마을로 2007년 5월 이사와서 운수업을 하는 남편과 지금 중학교 1학년, 초등학교 4학년 자매를 키우며 행복하게 살고 있습니다. 시골생활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도와주신 이장님과 주민여러분께 감사드리며 초창기에는 애들이 학교와 거리가 멀고 친구들과 시골 환경에 잘 적응 하지 못해 어려웠으나 지금은 친구들과 잘 지내고 시골생활도 즐겁습니다.
마을의 여러 일에 열심히 도울 생각이며 자주 주민들이 모여서 즐겁고 건강하게 지내면서 함께 사셨으면 좋겠습니다.


우리마을 이야기



◆학동에 살다간 조종덕(趙鍾德)선생 이야기◆

백곡면 성대리 학동(鶴洞) 끝자락 경기도 경계에 청빈하고 인품이 온후한 도인(道人)이 살다 가셨다.
그는 한양 조씨로 이름은 종덕(鍾德)이며 호는 도인(道人)이라 불렀다. 1857년 12월 15일에 태어났으며, 조선시대 말 흥선대원군 집정시 조 대비의 친인척으로 초시에 합격 등과하였으나 부모님의 병환으로 하향, 부모님을 모시다가 가운이 기울고 부모님마저 돌아가시자, 시묘 5년을 산소에서 살다가 학동 마을에 내려와 학들과 춤을 추며 세월을 보냈다고 한다.

특히 진천과 안성 장날이면 빠짐없이 장에 가서 장 구경을 하다가 굶주린 자를 보면 밥을 사주고, 헐벗은 자에게는 옷을 사주며, 장이 모두 파한 다음에야 집으로 돌아오곤 하였다. 집까지의 거리는 40여리로 살구우물주막, 금음고개주막, 백곡을 지나 돌고개 성황당주막을 지나면 만취가 된다.

용진가마소 고개 밑에 있는 쌍분묘지에서 술에 취해 잠이 들어 호랑이가 나타나 꼬리로 물을 추겨다가 이마와 얼굴에 적셔 선생을 등에 업고 쏜살같이 달려 용진주막 앞 오리나무숲 속에 내려놓고 술에 만취된 도인을 다시 학동 동구 밖까지 등에 업고 달려오고 안성 장날은 봇고리 동구에서 한운리 뒤 장 고개를 넘겨주었다고 한다.

그를 본 동네사람들로부터 도인이라 불렸고 고결하고 인정이 넘치는 선생이 생활하다 돌아가신 학동은 지금도 마을 사람들이 어른을 공경하고 우애와 인심이 넘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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