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패기, 끊임없는 노력으로 진천의 랜드마크를 만든 김철래 前군의원
젊은 패기, 끊임없는 노력으로 진천의 랜드마크를 만든 김철래 前군의원
  • 오선영 기자
  • 승인 2009.01.08 18: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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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천하면 떠오르는 몇 가지 랜드마크. 진천 화랑관과 역사테마공원, 화랑공원에 이르기까지 이들의 건립을 함께한 군의원이 있다. 재임 당시 진천군의회 사상 초유의 젊은 군의원으로 아직까지 진천군민의 뇌리에서 떠나지 않는 김철래 전 군의원이다.

김전군의원은 1992년 39세의 나이로 제2대 군의원에 선출되어 후반기 부의장을 맡고, 3대군의원으로 재선된 후 7년간의 군의원 활동기간동안 젊은 나이와 힘있는 의정활동으로 많은 이들에게 회자되고 있다.

당시 지역구를 대표하는 군의원들 중 김의원은 진천 군민의 43%를 차지하는 진천읍을 지역구로 두고 최다득표로 당선되었다. 군의원 활동 전에 민태구 국회의원의 비서관으로 활동한 4년이 개인의 역량향상과 지역민 대변에 대한 것 등을 배울 수 있는 기회가 되어 군의원 재임당시에도 진천군 7개 읍·면을 다니며 지역현안, 행정에 대한 지식, 지역민과의 교감이 비서관으로서의 역할과 연속적으로 작용하여 역동적인 의정활동을 하였다. 젊음, 열정, 패기와 국회의원 비서의 경험을 통해 인정받는 군의원으로 재선 당시 얻은 많은 표가 이를 반증한다.

그의 강력한 주장으로 건립한 역사테마공원은 타면에서 필요성에 대한 끊임없는 반문이 제기 되었지만 상수원 개발 및 백곡저수지를 정비하여 지역경제활성화를 위한 필요성을 역설하며 진천의 미래를 위해 준비해 현재는 진천주관 대규모 행사가 이루어지고 있어 김전의원 스스로도 뿌듯함을 느낀다고 한다.

그는 현재 진천에서 열리는 대규모 공연의 메카라 할 수 있는 화랑관 건립에도 많은 영향력을 행사했다. 당시 40여억원의 예산이 확보된 화랑관 건립에 있어서도 강원도 황영조 체육관, 음성체육관 등 선례를 조사하여 건립예산을 100억원대로 상향조정 해야 한다고 군정질의에서 주장하였다. 단순히 반대를 위한 반대가 아니라 자료수집을 통하여 음성체육관 설계변경 등을 예로 들며 군정질의를 통해 방향을 제시하고 이 같은 주장이 반영되어 현재의 화랑관이 있을 수 있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화랑공원 부지매입도 김전군의원의 재임당시 이루어질 수 있었던 일이다.

젊음, 열정, 패기 와 해박한 지식과 경험으로 인정받았던 군의원

그와 인터뷰를 하는 동안 미래를 내다보는 혜안을 느낄 수 있었다. 재임 당시의 현안만을 생각하지 않고 10년 후의 미래까지 고려했던 그는 진천-청주간 4차선 공사 이전에 옥천-청주간, 증평-청주간 4차선 도로 건설 후 지역경기 침체를 예로 들며 진천도 이 같은 경기침체에 대비하여 관광상품개발 등으로 지역경기에 대한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하여 당시부터 친절, 서비스, 가격경쟁력과 좋은 품질의 상품으로 위기에 대처해야 한다고 그의 생각은 실질적으로 경기침체를 겪고 있는 현재에 이르기까지 그 설득력을 인정받고 있다.

그는 재임 당시에도 이권에 대한 고려없이 공정하게 일을 진행하였으며 군정질문을 활발하게 한 의원으로도 유명하다. 넓은 인맥을 이용한 풍부한 자료조사로 군정질의 때 잘못된 부분을 질타하고 개선과 재발방지를 요구하며 지적사항 후 반드시 대안을 제시하는 군의원이었다. 이 같은 그의 군의회성적은 재임 당시 군정질의, 청렴도 1위 의원으로 선정된 것으로도 알 수 있다.

그는 진천읍 산척리(덕산면 산척리에서 행정주소 변경) 이상설 생가마을에서 태어나 삼수초-진천중-진천농고를 졸업하고 군대 3년 복무 이외의 기간에 진천에서만 거주한 진천토박이이다. 군 제대후 고향 산척리에서 이장을 역임했으며 4선 농협이사로 15년간 활동을 하였다. 이후 민태구의원 캠프에서 비서관 활동을 통하여 정치에 입문해 군의원활동에 들어서게 되었다.

재임당시 군의회활동뿐 아니라 각종 군 위원회에 들어가 내 집 일보다 위원회 일을 많이 하며 노인회 자문위원, 푸드뱅크봉사 등을 재임시부터 시작하여 10여년 이상 활동하고 있다. 현재도 노인복지기금운용위원, 진천군 지방재정 심의의원, 경찰서 교통규제 심의의원으로 활동하고 있을 뿐 아니라 봉화로타리클럽 창립멤버(당시 총무)로 회장을 역임하기도 하며 꾸준히 봉사활동을 펼치고 있다.

진천읍 수박작목반 반장이며 주유소 협회 회장을 맡고 있긴 하지만 김전군의원은 책임을 맡기보다 묵묵히 실무를 해나가고 싶다고 한다. 초심을 가지고 지역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살아가겠다는 그는 퇴임 후에도 시정 조치할 사항이 있으면 관공서에 연락하는 열혈군민이기도 하다. 술 취한 사람 한 명, 파인 도로 한 곳조차 그냥 지나치는 법 없이 군의원 당시 몸에 베인 생활습관으로 군민과 같은 입장에서 그들을 대변하고 있다.

아내 정옥자씨의 사이에 형제를 둔 그는 아들들에게 모든 사람을 한결같이 대우하는 아버지로 인식되며 '아버지 이름에 욕되지 않기 위하여 잘못도 못한다'할만큼 행동으로 자녀들을 교육했다. 퇴임 후 현재는 주유소 경영과 수박, 벼농사를 지으며 농특산물의 고품질 고소득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

기억에 남는 김전군의원의 말이 있다. 그는 사람들을 만나면 “진천 출신이세요?”부터 묻는다. 여기까지는 여느 진천사람과 같은 질문이다. 그러나 다음 질문 “몇 년 사셨어요?” 이어지는 그의 말 “그럼 진천사람이시네요.”라고 마무리 짓는단다. 진천에 사는 모든 사람은 진천사람이라는 생각을 고취시키고 진천에 대한 애향심과 긍정적 사고를 가지게 하는 것은 이런 작은 질문부터이다. 이렇게 7만군민이 모두 내 군이다 생각하면 진천시승격은 먼 미래의 일이 아닐거라고 하며 이를 위해서는 근시안적 사고 보다는 장기적인 안목으로 시대를 앞서가는 과감한 행정추진도 함께 해야하다고 하며 인터뷰를 마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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