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평면 금곡리 수문(水門)마을(서원말)을 찾아서…
초평면 금곡리 수문(水門)마을(서원말)을 찾아서…
  • 정선옥 기자
  • 승인 2009.01.15 13: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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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창이 밝았느냐
노고지리 우지진다
소치는 아희 놈은
상기 아니 일었느냐
재 너머 사래 긴 밭을
언제 갈려 하느니

동이 트고 종달새가 한가로이 지저귀는 농촌의 평화로운 아침풍경을 운치있게 묘사한 소론계의 거두 약천 남구만(藥泉 南九萬)의 글이다. 떠오르는 해와 함께 부지런히 아침을 맞는 수문마을의 전경이 약천의 시조 안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 마을의 유래
차령산맥의 끝자락이 병풍처럼 드리워진 야트막한 야산을 따라 길게 자리 잡은 마을은 전형적인 배산임수의 조건을 갖춘 명당으로 약천을 사사한 명곡 최석정(明谷 崔錫鼎)이 세운 지산서원(芝山書院)에서 유래한 서원말이라는 이름이 뒤에 얻은 수문마을이라는 지명보다 익숙하다.

비록 고종 때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서원은 사라진 지 오래지만 그 자리에 초평초등학교가 자리하고 있어 후학 양성을 낙으로 삼았던 명곡의 유지가 이어지고 있다.

■ 아이들의 미래가 있는 마을
수문마을에는 유독 아이들이 많아 초등학생만도 20여명이나 되고 80세를 넘긴 노인들도 적지 않아 장수마을로도 유명해 젊은이들이 없어 존속이 우려되는 다른 농촌 마을과는 대조적으로 마을의 미래에 기대감을 갖게 하는 마을이다.

동네 어디를 가도 세발 자전거가 눈에 띄는 수문마을은 초등학교가 마을 입구에 위치해 있는 덕에 마을에는 아이들의 재잘거림이 끊이지 않는다.

■특용작물 재배로 안정적인 농가소득
수문마을은 75가구에 120여명의 주민이 거주하고 있다. 쌀농사가 주업이기는 하지만 고추와 마늘, 그리고 오이와 작두콩, 수박 등 특용작물 재배로 농가소득 증대에 큰 역할을 하고 있고 인근의 기업에 근무하는 직장인들도 많아 대체적으로 주민들이 다양한 직업군에 종사하고 있는 편이다.

■ 한 가족처럼 지내는 마을 사람들
마을회관을 찾은 낯선 이에게 동네 어르신들은 집안처럼 지내는 마을의 화목함을 자랑하기에 바쁘다. 특히나 부녀회와 청년회의 활동상이 인근 마을에 비해 남다름을 칭찬한다.
마을 젊은이들은 모든 노인분들을 내 부모처럼 생각하는 것이 당연지사라고 이야기한다. 그 덕분에 마을 주민들은 모두가 한 가족처럼 가깝게 지낸다.

따뜻한 인심과 쾌적한 환경으로 모두가 건강한 마을

■ 부모님을 모시는 딸의 심정으로, 며느리의 손길로 활동하는 부녀회
부녀회 회원들은 무엇보다 마을 어르신들의 복지 문제에 관심이 많다.

장수마을이지만 노인들을 위한 시설이 부족한 것이 한걱정이란다. 마을 형태가 긴 탓에 거리가 멀어 마을 회관을 찾지 못하는 어르신들이 마음에 걸려 쓰레골 쪽에 어르신들을 위한 공간이 하나쯤 더 있었으면 하는 것이 바람이라며 이런 문제가 단지 서원말의 문제가 아니라 교통약자일 수밖에 없는 농촌 지역 주민들이 겪는 일상적인 문제라고 꼬집는다.

■ 청년회는 마을의 든든한 기둥
청년회가 하는 일을 열 손가락 안에 꼽을 수는 없지만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마을 일을 내 일처럼 생각하는 회원들의 마음 자세다. 특히나 농번기가 되면 일손이 부족한 일터에 아무런 댓가 없이 노동력을 제공하고 한집 한집이 별개의 가구가 아닌 작은 것 하나라도 공유하는 공동체 의식을 가지고 있다. 덕분에 노인가구도 농사에 큰 어려움을 느끼지 않는다고 한다.

그리고 청년회에서 하는 일 중 단연 돋보이는 행사가 일년에 한 번씩 있는 효도관광이다. 마을을 일구기 위해 평생을 바치신 분들에게 당연히 해드려야 하는 일이라고는 하지만 마음만으로 되는 일은 아니기에 그 마음 씀씀이가 더 빛난다.

■ 마을의 숙원사업인 복지시설 확충과 수해방지 대책
수문 마을은 10여년 전부터 꾸준히 인구가 늘고 있는 성장가도를 걷고 있다. 그에 반해 주민들을 위한 복지시설이 턱없이 부족하다.

주민들은 건강한 생활을 위해 운동시설의 구비를 숙원사업 1순위로 꼽는다. 물론 내년에 초평초등학교에 세워지는 다목적회관이 완공되면 체육·문화 측면에서 보다 많은 혜택을 볼 수 있을 것이나 자연지물을 이용한 야외 체육공원 등의 설치가 아쉽다는 바램을 감추지 않는다.

그리고 또 한가지 아쉬운 것이 있다면 매해 겪으면서도 대책이 부족한 수해문제다.

현재 하천정비 공사를 진행하고는 있으나 산이 많은 지형 탓에 호우시마다 겪어야 하는 국지적인 수해 또한 극복되어야 할 문제다. 골짜기가 많아 그에 따른 피해가 잇따르고 있지만 이에 대한 대책은 전무한 상태여서 수해 우려 지역 소하천의 복개나 수로 유도 등의 대책이 절실한 실정이다.



/우/리/동/네/이/장/님/

복지시설 확충과 수해방지 대책에 전력을 다하겠습니다

우리 동네에는 연세가 많은 어르신들이 많습니다. 아직은 그분들을 위한 시설이 부족해 어려움이 많습니다. 비록 인구는 적지만 도시보다 복지시설이 더 필요한 곳이 농촌입니다. 어르신들 뿐만이 아니라 놀이터 하나 없는 것이 농촌의 현실입니다.
무엇보다 주민들을 위한 복지시설 확충과 수해 방지 대책을 세우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노인회관의 재건축이 노인회의 숙원사업이지요


마을회관이 건립된 지 12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습니다. 건물이 노후화 된 것은 아니지만 지속적인 인구 증가로 인해 마을회관이 비좁습니다. 그리고 농사일이 없는 겨울철에 노인들이 매일 모이는 회관이 단열이 되지 않아 어려운 점이 많습니다. 기회가 된다면 정부의 지원을 받아 회관을 재건축하는 것이 우리 노인회의 크나큰 바램입니다.

초평천 이용한 관광상품 개발로농가소득 증대에힘쓰겠습니다


서원말은 아이들이 많은 동네입니다. 마을에 아이들을 위한 시설 보강이 필요합니다. 이를 위한 노력이 뒷받침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마을은 천혜의 자연환경을 갖추고 있습니다. 마을 앞을 흐르는 하천을 최대한 활용한 관광상품을 개발해 마을에 또다른 소득원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잦은 수해 방지를 위한 효과적인 치수사업이 관건입니다


수문마을은 모든 면에서 다른 마을보다 생활여건이 좋은 편입니다. 기름진 옥토가 있어 농사에 어려움이 없고 주변 환경이 뛰어난 곳입니다. 게다가 10여년 전부터 꾸준히 인구가 늘고 있어 앞으로도 발전 가능성이 큰 곳입니다. 현재 공사중인 하천 재정비가 끝나면 어느 정도 수해의 위험에서는 벗어나겠지만 쓰레골 등 일부 지역의 경우는 생활의 불편함이 많아 소하천복개 등 적극적인 대책이 시급한 실정입니다.

학교 앞 안전사고 대책으로아이들의 안전을 지켜야 합니다


수문마을 초입에 위치한 초평초등학교는 전교생이 100명도 채 되지 않는 작은 학교지만 초평면민 장학재단 설립으로 학생이 지속해 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학교 앞을 과속으로 운행하는 차량 탓에 아이들이 늘 교통사고의 위험에 노출되어 있습니다. 관계 기관에서 학교 앞에 과속 단속 카메라 설치를 검토해 주셨으면 합니다.

마을 어르신들을 모두 내 부모처럼 모셔야지요


이곳이 고향은 아니지만 정착한 지 20년이 지났으니 고향이나 마찬가집니다. 저에게도 그렇게 해주셨지만 마을 주민들 모두가 외지인도 동향 사람처럼 진심으로 대해 주십니다. 그리고 저희 청년회에서는 매년 어르신께 효도관광을 보내드리고 있습니다. 회원들 모두 어르신들을 내 부모처럼 생각하고 모십니다. 앞으로도 어르신들에게 더 많은 혜택을 드릴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우리마을 이야기
◆지산서원(芝山書院)◆
지산서원은 경종 2년(1722년)에 건립되어 이듬해 사액을 받았다.

노년에 명곡 최석정(明谷 崔錫鼎 ; 1646~1715)이 젊은 시절 경종의 생모인 희빈 장씨의 처형을 반대해 유배되었던 진천에 낙향하여 태극정(太極亭)이라는 강학 공간을 마련해 후학 양성에 힘썼고 이후 그 제자들이 지산서원을 세워 명곡의 위패를 모시고 제향(祭享)했던 곳이다.

명곡은 8번이나 영의정을 지냈을 정도로 학식과 인품이 뛰어난 인물이었다. 조선은 본시 주자의 성리학을 국시로 받들었으나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으면서 지행합일(知行合一)을 주장하는 양명학이 고개를 든 것이다.

조부 최명길의 학풍을 이어받은 명곡은 일찍이 양명학을 받아들여 당시 주류학자들로서는 꿈도 꾸지 못할 음운학 저서 경세정운도설(經世正韻圖說)과 한국 고대 수학책 가운데 가장 체계화된 구수략을 저술했다.

이제 서원이 자리했던 곳에는 초평초등학교가 세워져 명곡의 뜻이 이어지고 있지만 지산서원이었음을 짐작케 할 만한 증거는 학교 뒤 석벽(石壁)에 명곡이 각자(刻字) 한 옥천병(玉川屛)이라는 석자가 전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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