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주흠 진천소방서 중앙119안전센터장
연주흠 진천소방서 중앙119안전센터장
  • 임현숙
  • 승인 2014.12.10 17:1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평생 소방에 몸담고 마음껏 즐긴 넉넉한 선배

올해로 28년째 근무…소방관이 천직
“이제 과정 살피며 주변에 베풀 터”

▲ 올해로 28년째 소방관으로 근무하고 있는 연주흠 진천소방서 중앙119안전센터장이 소방펌프차량 앞에서 포즈를 취했다.
▲ 올해로 28년째 소방관으로 근무하고 있는 연주흠 진천소방서 중앙119안전센터장이 소방펌프차량 앞에서 포즈를 취했다.


연주흠 진천소방서 중앙119안전센터장은 오는 26일 삶의 무게였던 소방서를 떠난다. 28년 동안 천직이라 여겼던 일을 내려놓고 이제는 자신을 보듬기 위한 시간을 갖기로 한 것이다. 정년 3년을 앞두고 스스로 퇴직을 결정했다. 그는 동료, 후배 등 주변의 걱정과는 달리 의외로 담담하다.
“가정적으로 아직 책임져야할 일이 있지만 개의치 않고 나'만 생각했다”는 그는 “그동안 목표를 보고 달려왔으니 이제 과정을 살피며 베풀고 싶다”고 말했다. “평생을 소방에 몸담고 마음껏 즐겼다”는 연주흠 센터장. 119구급대 앞에서 겸연쩍이 웃어 보이는 그의 외모에서 강단(剛斷)이 느껴진다.

30세에 소방사 입문
그는 파출소장이라는 꿈을 갖고 경찰이 되고 싶었으나 소방공무원이 됐다. 30세 늦은 나이에 소방사라는 새로운 직업을 가진 그는 청주에서 처음으로 소방 일을 시작했다. 그 후 증평소방서와 영동소방서를 거쳤고 지난 1999년 고향 진천소방서에 발령을 받았다.
그때가 44세, 늦었지만 간부시험에 도전했고 46세에 소방위가 돼 음성소방서로 자리를 옮겼다. 그는 “모두 늦었다고 생각했지만 나이와 상관없이 해낼 수 있다는 것과 후배들에게 도전하고 기어코 해내는 선배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지난 2008년에는 소방경으로 승진해 청주서부소방서에서 근무했고, 지난 2010년에 진천 소방서 중앙119안전센터 센터장으로 발령받아 마침내 고향에 돌아왔다.
그가 수장으로 있는 중앙119안전센터는 문백·백곡지역대를 관할하고 있으며 총 34명의 소방대원들이 3교대로 근무 중이다. 그는 노심초사 3명의 여성응급구조사를 걱정한다. “딸만 둘인 아빠의 입장에서 보면 힘들고 안쓰러운 일이 많다”는 그는 “일이야 다 같지만 정신적으로 건강하지 못한 사람들이 있어 그들의 마음을 다치게 하는 것이 안타깝다”고 했다.

“나에겐 소방일이 천직”
그는 또 “화재는 물론 구조, 구급 등의 일을 하는 119안전센터가 바쁘다는 것은 진천이 어렵다는 뜻”이라며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사건사고하면 119를 먼저 생각하기 때문에 우리 소방요원들은 모두가 만능이 돼야한다”고 말했다. 그만큼 대원들이 자부심을 갖고 일한다는 뜻이다.
우연한 기회에 소방에 발을 들였는데 일을 하며 직업을 사랑하게 됐고 자랑스러웠다는 그는 “농부가 전답을 사랑하지 않는 이는 없으니 결국 나에게도 소방일이 천직이었다”며 크게 웃었다.
그는 “오래전 민원으로 많은 기관을 거쳐 안전센터까지 온 할아버지를 도와드렸는데 감동해 눈물을 흘리는 것을 보고 공직자는 작은 민원에도 크게 반응해야 주민을 만족시킬 수 있다는 것을 느꼈다”며 그 후부터는 후배들에게 '배려하고 감동을 주는 사람이 되라'고 늘 주문했다.

“검소를 알기 때문에 부자”
그는 자신의 생을 바꾼 책으로 안현필 씨의 '천하를 잃어도 건강만 있으면'을 꼽는다. 어릴적 다쳤던 팔목 뼈로 인해 예고도 없이 여기저기 뼈에 통증이 나타났고 책에서 제시한 현미식으로 80%이상 통증을 치유했다는 것이다. 그동안 바쁜 생활로 중단했지만 그때부터 현미 전도사가 된 그는 퇴임 후 가장 먼저 할 일로 현미자연식으로 건강을 다시 챙겨볼 계획이다. 그는 “포만감은 많이 먹어서도 느끼지만 오래 씹어서도 느낄 수 있다고 덧붙였다.
그가 옆에 끼고 늘 보는 책은 데일 카네기의 '카네기처세술'. 그 중 '비판하거나 비난하거나 불평하지 말라(Don't criticize, condemn, or complain)'는 구절이 마음을 흔든다고 했다.
그는 최근 들어 한 시간 이상 책읽기가 어려워졌다고 한다. 가정에서는 늘 검소한 아버지로 평생에 자동차는 프라이드와 싼타페를 10년 이상씩 탔다. “현대인들은 돈을 가장 중요시하지만 나는 감히 그것으로부터 자유롭다할 수 있다”는 그는 “검소를 알기 때문에 만족하고, 그러니 나는 부자”라고 말했다.
부인 민정임 씨와의 사이에 공직에 입문한 두 딸이 있다.
연 센터장은 명퇴 이유를 “이제는 쉬고 싶다”는 단 한마디로 정리했다. '어떻게'라는 질문에는 “그동안 받은 것이 많으니 남에게 줄때 더 행복하다는 것을 느껴보겠다”고 답했다. 퇴임식도 갖지 않을 예정이다. 마침내 자유인으로 생활할 그의 모습이 기대된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