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운 진천경찰서 경위
이재운 진천경찰서 경위
  • 안창규
  • 승인 2015.03.02 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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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사회 빛과 소금 역할 한 ‘민중의 지팡이’


6월 말 경찰인생 마무리…2막 인생 설계
매사위선(每事僞善) 실천하며 37년 봉직


▲ 누구도 본받기 힘든 프로의식을 가지고 항상 의연하고 슬기롭게 국민의 공복으로써 묵묵히 해야 할 일을 해왔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이재운 경위
▲ 누구도 본받기 힘든 프로의식을 가지고 항상 의연하고 슬기롭게 국민의 공복으로써 묵묵히 해야 할 일을 해왔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이재운 경위
“1980년대 초 진천읍 사석리에서 발생한 '사석자매강간살인사건'의 범인검거를 위해 2~3년 매달렸지만 결국은 미제의 사건이 됐다. 당시 어떤 연유에서인지 인근 군부대와 수사 공조가 되지 않았다. 수사비는 형사들이 스스로 우선 조달해 사용하고 사후에 결제를 올려 정산을 받았다. 그러다보니 경찰서 인근 다방이나 약국에서 돈을 빌려 수사를 하는 경우도 자주 있었다.”

오는 6월말 경찰인생의 정년퇴임을 맞이하는 진천경찰서 이재운(60) 경위. 그는 80년대 우리 사회의 격동기에도 의연하고 슬기롭게 수사경찰 임무를 수행했던 당시를 회상했다.

37년 봉직기간 동안 징벌 전무


그는 지난 37년 간 국민의 공복이자 민중의 지팡이로 봉직했다. 경찰이 37년간 처음 발령을 받은 경찰서 관내를 떠나지 않고 정년퇴임을 맞이하게 되는 경우도 드물지만 그가 봉직기간 내내 단 한 번도 징벌을 받지 않았다는 사실은 세인의 입에 오르내릴만 하다. 개인은 물론 그가 속했던 부서 또한 사소한 단체징벌도 받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는 경찰공무원으로서 국가와 지역사회를 위해 헌신하고 정년을 맞아 퇴임을 앞두고 있다. 구리 빛 동안(童顔)으로 경찰보다는 마음씨 좋은 이웃아저씨로 보이는 그는 두터운 옷속에 평생기계체조로 다져온 다부진 몸을 갖고 있다.

그의 부친은 충남 삽다리에서 진천으로 이주해 왔다. 그는 넉넉하지 않은 집안의 5남 2녀 중 막내로 태어나 초·중·고를 진천에서 마치고 조금이라도 일찍 집안에 도움이 되기 위해 지난 1975년 전투경찰 18기로 자원입대했다. 논산훈련소에서 훈련을 마치고 제대할 때까지 광주 117전경대와 영광 해변에서 근무했다.

정보 18년·수사 10년·기타 9년

그는 경찰로서는 경험하기 힘든 실제 교전을 두 번이나 경험했다. 근무 첫해인 지난 1975년 7월 광주시 동운동 뒷산에서 산업시설을 촬영하고 돌아가는 무장공비 2명과 교전을 벌였고, 두 달 뒤 9월 영광 해변에서 무장공비 1명과 또 교전을 했다.

지난 1978년 전투경찰 복무를 마친 그는 정식 민중의 지팡이로 근무를 시작했다. 정보형사 18년, 수사형사 10년, 파출소장과 민원센터장 9년. 그의 37년 경찰이력이다. 고향 진천을 위해 열심히 성실히 근무하다 보니 내무부장관, 경찰청장 표창 등 45차례 상을 받았고, 지난 1989년에는 충청북도지사로부터 '자랑스런 공무원'에 선정되기도 했다.

가훈은 “매사위선(每事僞善). 매사를 다스릴 때에는 착함을 지키며 행하라”는 의미다. 그는 항상 '착함'을 삶의 기본 가치로 두고 가정은 물론 공직생활에 적용했다.

18년을 정보형사로 산 그는 부드럽고 착한 사람으로 동료나 후배들에게는 능력있고 일 잘하는 경찰로 정평이 나 있다.

그러나 집에서는 경우가 다르다. 업무에 매달리다보니 부인으로부터 '좋은 가장'이라는 평가는 일찌감치 포기했다. 그도 그럴 것이 근무 중 몸으로 때우다 보면 툭하면 2~3일, 길게는 10~15일을 귀가하지 않는 가장이니 어느 부인이 좋아하겠는가.

그는 슬하에 아들 둘을 두었다. “충북대 법학과를 졸업한 둘째가 경찰 정복을 입은 아버지의 모습이 너무 좋아 경찰에 입문을 하게 된 것이 무엇보다 감격스런 일”이라고 그는 회상했다. 둘째 아들은 경찰에 투신해 경사로 6년째 청와대 경비경찰대에서 근무하고 있다.

외길 인생 자부심 드러내

공직마감을 몇 달 앞둔 그는 이런저런 생각이 많다. 부모님과 더불어 그간 모셨던 37명의 경찰서장 모두에게 고맙다. 좀 더 높은 직급에 올라 많은 일을 해보지 못한 점은 아쉽지만, 오직 한길을 묵묵히 걸어 온 자신에게 나름대로 자부심을 갖고 있다.

“맘 적으로 힘든 일이 왜 없었겠는가. 하지만 무탈하게 공직을 수행했다는 것 만으로 감사하다”는 그는 “작년까지만 해도 57세가 정년이었는데 처음으로 연장된 정년퇴임 연령 60세의 혜택을 본다는 사실도 감사하다”고 했다.

그는 아직 퇴임 후 특별한 계획이 없다. 그동안 미루어왔던 가족여행을 하고 싶은 것도 계획 중 하나다.

“한번 경찰은 죽을 때 까지 경찰이다. 자연인으로 돌아가더라도 마음은 경찰로서 지역에 있을 것이다. 경찰인으로서 조직의 발전과 동료들의 건승을 기원한다. ”

평생 봉직한 진천경찰서를 뒤로 한 그의 뒷모습이 당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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