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호주 진천군사우보존회 사무국장
이호주 진천군사우보존회 사무국장
  • 임현숙
  • 승인 2015.04.02 13:2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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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중과 관련된 문화유산 보존 앞장

타고난 집념으로 무엇을 하든 최선 다해
모아진 자료를 토대로 자서전 집필 예정

▲ 매사에 최선을 다하는 이호주 진천군사우보존회 사무국장은 지역의 개별 문중과 관련된 문화유산 보존 관리에 앞장서는 상산인이다.
▲ 매사에 최선을 다하는 이호주 진천군사우보존회 사무국장은 지역의 개별 문중과 관련된 문화유산 보존 관리에 앞장서는 상산인이다.
이호주 사무국장은 요즘 마음이 가볍다. 지난해 말 우리고장 마을사 제5집 '행정리 자연마을'을 펴내고 여유를 가지고 따뜻한 봄을 즐기는 중이다. 그는 “평생을 내가 태어나고 자라온 내 터전을 세상에 내놓고 나니 후련하지만 마치 발가벗겨진 어린아이처럼 부끄러움도 감출 수 없다”고 말했다. 애지중지 모아놓던 자료를 세상에 내놓고 과거에서 돌아온 이호주(68) 진천군 사우보존회 사무국장을 만났다.

행정리 마을사(史) 집필

이 국장은 매우 꼼꼼하고 겸손하다. 말이 많지 않고 언뜻 웃지 않는 얼굴에서 날카로운 눈빛이 매섭다. 넉넉지 않은 시골에서 6남중 막내로 태어나 있는 듯 없는 듯 자신을 감추고 가슴에 세상을 담고 살았다.

건장함이 느껴지는 그는 “과거 몸무게가 100Kg까지 나갔다”며 “20대부터 40대까지 진천군 대표 씨름선수를 지냈다”고 했다. 전국적으로 큰 상을 받지는 못했지만 “이름 좀 날렸다”는 그는 진천군 초대 씨름협회장을 지냈고 현재는 고문으로 후배양성에 힘을 보태고 있다.

삼수초, 진천중을 졸업하고 오랫동안 새마을지도자 등으로 지역의 발전을 위해 봉사했고 1979년 33세에 공직에 입문해 진천읍사무소 행정직으로 첫 발령을 받았다.

그는 “늦은 나이에 공무원이 돼 나라에 누가 되지 않기 위해 늘 조심했다”며 “지난 2003년 농정계장으로 정년퇴직 때까지 공직생활을 또 천직으로 알고 최선을 다했다”고 자평했다. 정직함과 함께 무엇을 하든 끝을 보고야마는 집념을 타고난 탓이리라.

충무공 이순신 장군과 함께 노량해전에서 왜적을 무지른 이영남 장군의 사당인 '충용사' 건립추진위원장을 맡아 지난 2009년 준공하기까지 4년여 동안 사업비 확보 등을 위해 뛰어다닌 일은 지금도 기억에 남는다.

습관처럼 기록하고 촬영

그와 사우보존회와의 인연은 지난 2002년 전국적인 가뭄을 이기기 위해 군에서 기우제를 추진하면서다. 사우보존회가 진천군내 각 문중과 관련된 문화유산들을 보존하는 등 옛 것을 관장하는 것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이듬해 퇴직 후 사우보존회에 적극적으로 힘을 보탰다.

현재 사우보존회는 17개에 이르는 사우(祠宇)의 제향(祭享)을 주관하며 음력 2월부터 11월까지 월별로 4-5개의 제향을 치르고 있다. 그는 늘 '바쁘다'를 입에 달고 살지만 “제향 때마다 새로 태어나는 느낌이라 더욱더 정성을 다하게 된다”고 말했다.

그는 가장 감명 깊은 여행지로 중국 길림성을 꼽는다. 그는 “보재 이상설 선생 유학지인 길림성 용정시에서 '탄생 충청북도 진천'이라고 쓰여 진 것을 보고 울컥했던 감정이 늘 중국이라는 말만 들어도 감동으로 다가온다”고 했다.

그는 지난 2년 동안 마을사를 집필하면서 늘 니콘카메라를 지니고 다녔다. “보이는 모든 것을 머리와 가슴에 담아 잊지 않기 위해 촬영하고 기록하면서 수만 장의 사진을 찍었다”는 그는 기록이 습관이 된 탓에 수십 년 된 영수증도 버리지 않고 간직하고 있다. 그는 “우리고장 마을사에 들어간 많은 자료와 사진들이 군지 등과 마을의 어르신들, 지역 원로분들을 통해 구한 것이지만 많은 부분 자신이 모아놓은 자료”라며 자랑스러워했다. 한때 그는 “아내가 집에 모아놓은 자료를 버려 한동안 관계가 좋지 않았다”고도 했다.

평생을 말보다는 행동으로 일하고 '성실'을 좌우명으로 산 그는 “지금은 하찮아 보여도 그것들이 언젠가는 또 빛을 보게 될 것”이라며 모든 자료의 소중함을 역설했다. 그는 모아놓은 자료를 토대로 몇 년 후 자서전을 쓰겠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

그는 사우보존회와 함께 향토사연구회 집필위원이면서 진천향교 장위다. “활동하는 회원으로는 가장 막내 격이고 층층이 어르신들이 많아 말도 조심스럽고 튀는 행동에도 건방져 보일까 늘 노심초사한다”며 옷 매무새를 가다듬었다.

그는 요즘 하루하루가 날듯 기쁘다. 위암으로 6년간 고생했던 부인 이희남(65) 씨가 지난 2월 완치판정을 받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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